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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93화 (393/1,615)

00393  천계(天界)  =========================================================================

나는 머지않아 상관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재 수도 낙양은 황궁이 제압된 충격이 퍼져나가지는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시내를 감싸고 있는 상태였고, 하늘의 빛도 약간은 흉흉한 빛이 느껴졌다. 나는 먹구름이 낀 하늘 아래에서 상관가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현판에 확실히 상관가문이라고 쓰여 있다.

' 그리 큰 가문은 아니군...'

긴 담장이 있고 안쪽에 삼 층 짜리 전각이 있으나 의성 상관혁의 명성을 생각하면 이건 크다고 할 수 없었다. 당장 쌍문사가만 해도 상관가의 몇 배나 되는 위세를 떨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보이는 상관가의 규모는 그냥 먹고살만한 알부자 정도로 볼 수 있었다. 또한 문 앞을 지키는 경비같은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기척을 살피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잠겨있지 않은지 큰 문이 바로 끼익하는 소리를 열렸고, 십여 보를 안쪽으로 걸어들어가자 바로 본전이 보였다. 나는 기감을 돋우어서 본전 내부의 기척을 느꼈는데 약 십여 명 정도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 상관 가문의 식솔이며 하인들일 것이다.

내가 안쪽으로 더 걸어들어가자 웬 덩치 크고 수염난 중년사내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거칠게 말했다.

"이봐! 꼬맹아. 여기는 아무나 들어오는 데가 아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여기가 상관 가문이 맞소?"

"그렇다. 너는 치료를 받으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황궁에서 왔소."

그러자 중년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라?"

"내가 모시는 분께서 정중하게 의성 상관혁 님을 모시고 오라고 말씀하셨소. 지체해서는 안될 일이니 바로 연락을 드려 주시오."

아직까지 황궁의 혼란이 덜 수습된 상황이라, 교주라는 걸 직접 언급하는 건 안될 일이다.

"미친 놈이!!"

중년사내는 소리를 버럭 지르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서 나를 공격해 왔다.

파앗

' 무공을 익혔군. 그것도 꽤 높은 경지...'

나는 그의 첫 수를 피하면서 놀랐다. 중년사내에게 내공이 있다고는 짐작했으나, 그의 첫 출수는 상당히 고명한 무예의 변화가 숨겨져 있었다. 좌우로 꺾이더니 꿈틀거리며 뻗어나오는 실초는 강호의 웬만한 일류고수조차 파악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손쉽게 내공으로 뿌리칠 수도 있었지만 그의 무공연원에 흥미가 생겨서 일단 초식의 현묘함으로 겨루기로 했다.

파바밧

나는 곧장 뇌신류의 검예를 수법으로 변환시켜서 그의 찌르기를 흘려내었다. 한번은 왼쪽으로 뿌리치고 다음번에는 변초에 속는 척 하면서 몸의 균형을 달리해서 막아내었다. 그렇게 대략 오 초 정도를 빠르게 투닥거리자 중년사내가 당황하며 뒤로 몸을 날렸다. 그는 단숨에 내 멱살을 잡아서 패대기칠 생각이었으나 내 초식이 그에 못지 않으니 되려 자신이 당할 위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뭣... 이건 무슨 무공이냐?"

"나는 당신과 투닥거릴 수준이 아니오."

의가의 인물 치고는 꽤나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으나 그래봤자 일류급이다. 내 상대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나는 손목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일부러 반박귀진을 체현하고 있으니 내가 우스워보이나? 위협을 하고싶지 않으나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나도 힘을 쓸 수밖에 없소."

쿠구구구...

나는 서서히 반박귀진을 풀며 내 내공을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완전히 끌어올린 것도 아니고 그 편린을 뿜어내기만 하는데도 중년사내는 점차 질린 표정을 지었고, 이윽고는 얼굴에 공포감이 떠올랐다.

"으으윽..."

나는 그 상태에서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이게 일 할의 내공이오. 내가 정말로 힘을 써서 여기를 뒤집었으면 좋겠소?"

"그... 그만..."

중년사내는 자신의 모든 내공을 끌어내서 저항하는데도 기절할 듯한 표정이었다.

그 때였다.

"그만하게 소협."

후우웅

갑자기 봄바람이 불어오는 듯 하더니, 난데없이 내가 뿜어내던 기세가 중화되었다. 나는 계단 위에서 천천히 걸어내려오는 점잖고 청수한 이목의 장년인이 해낸 일이라는 걸 알아채고, 그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당연히 저 장년인이 방금 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 무형지기!'

초절정 고수 중에서도 의념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극한의 경지! 장년인은 무형지기를 시전할 수 있기에 내 내공의 기세를 쉽사리 억누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은 저 장년인의 경지도 강호에서 보기 드문 초절정에 이르러 있다는 뜻이었다.

장년인이 중년사내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막경(莫景). 어찌 반로환동의 고수에게 함부로 덤비는 건가? 자네가 본가의 호위무사 중 가장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네."

"으... 가주님..."

"물러서 있게."

그렇게 말한 장년인은 투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전음을 보내 왔다.

[ 교주께서 나를 부르셨나?]

역시.

나는 당사자를 찾아왔음을 직감하고 대꾸했다.

"그렇소. 상관 가주."

천하오대의원, 의성 상관혁!

그가 내 눈 앞에 있는 것이다. 상관혁은 꺼지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결국 이런 날이 오고 말았군. 그분께서는 결국 황궁을 접수하신 건가?"

"그렇소. 내가 받은 명은 당신을 데려오라는 것이었소."

"......"

상관혁이 망설이다가 내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 황제는... 돌아가신 건가?]

나는 약간 짜증이 나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당신 장단에 맞춰줄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소. 궁금한 게 있다면 당사자에게 직접 여쭤보는 게 맞지 않겠소?"

그러자 상관혁은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그대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군. 허나 나는 그대같은 인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소."

"그렇군.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자꾸 하고 있었어."

상관혁이 우묵한 눈으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알았네. 따라가지."

"잘 생각했소."

나는 사불상을 소환했다. 정중하게 모셔오라 했기 때문에 일부러 뛰어서 데려오는 건 교주가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올 때야 낙양의 분위기를 살피고 싶어서 직접 뛰어왔지만 갈 때는 손님을 모셔가는 태도가 되어야 한다.

"이, 이건."

"빨리 타시오."

영수 사불상을 본 상관혁이 크게 놀랐다. 그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오늘 귀인(貴人)을 마주할 운이었군..."

파앗!

나는 잠시 후 사불상을 타고 옥좌의 방에 도착했다. 사불상에서 내린 의성 상관혁은 좌우에 도열해 있는 호법사자 한백령과 독고준을 발견하자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옥좌에 앉아있는 백련교주 앞에 다가가서 부복했다.

"교주님. 천하의 주인이 되신 걸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그러자 교주는 기껍게 대답했다.

[ 고맙군. 그대들의 도움이 컸어.]

"별 말씀을..."

[ 그대들이 없었다면 황궁의 내부정보와 기밀, 권신들의 권력관계를 쉽게 알아내지 못했을 걸세. 그 동안 본교를 위해 큰 공헌을 했으니 나는 그대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네.]

"과찬이십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 상관 가문은 백련교의 첩자였구나!'

하지만 어떻게?

내가 봤을 때 상관 가문은 그리 가세가 크지도 않고 재력도 별로 없는 의가에 불과했다. 더욱이 예전에 천하오대의원이 천하무림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사건이 있었으니, 현재 상관가가 낙양에서 멀쩡히 생존해 있는 일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관 가문이 어찌 백련교주에게 도움이 될 정도의 고급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는 걸까? 내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고개를 갸우뚱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 상관 가문은 이족(異族)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교주는 상관 가문과 손을 잡은 것이다.]

[ 뭐? 그게 어떻게 이어지는 거지?]

[ 내가 지난번에 노예시장에서 상관 가문에 대해서 설명했던 이야기는 그냥 둘러댄 게 아니야. 상관 가문은 실제로 한씨세가만큼 오래된 역사를 지닌 가문이며 이족은 물론 마도(魔道)와 연관되어 있다. 그건 상관완아(上官婉兒)와 관련된 비사(秘事)다.]

[ 상관완아라면...]

[ 측천무후(則天武后)를 모시던 당대 최고의 재녀이다. 내사인(內舍人)이자 건괵재상(巾?宰相)으로서 그 지략과 천재성은 당대 중원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었다 하지.]

그렇게 설명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측천무후의 봉선의식에는 상관완아가 밀접하게 관련한 게 분명해. 그 증거로 상관완아가 설립한 상관 가문은 당나라 때부터 대략 일천 년 동안 전혀 망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 봉선의식...]

[ 백련교 때문에 천하오대의원이 탄압받으면서도 상관 가문만큼은 그 누구도 시비를 걸거나 건드릴 수 없었지. 그건 상관 가문이 교주의 직속이며, 호법사자 한백령이 암중에서 쌍문사가를 조종해서 저 가문을 비호해줬기 때문인 것이다.]

[ 그런 거냐?]

제갈사는 왠지 자조적으로 웃는 기색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배교 교주가 되기 전에는 상관 가문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은 자신을 한심하게 여겨서이리라.

[ 크크크... 나도 배교의 교주가 되어서야 상관 가문의 특수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의성 상관혁이라는 자는 십중팔구 이족과 거래를 트고 있거나, 마(魔)에 정통한 마도사인게 분명해.]

[ 흠...]

[ 고급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던 이유도 단순하지. 의성 상관혁이 마도(魔道)의 비술(秘術)을 쓸 수 있다면 적어도 낙양 내에서는 극비정보를 간단히 알 수 있었을 거다. 남한테 안 들키게 교주와 연락하는 것도 간단하고.]

이제야 좀 이해가 간다.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동안 교주가 상관혁에게 말했다.

[ 상관혁. 황궁을 배후에서 조종하던 자는 스스로를 사신위 주작이라 밝히더군.]

"그랬습니까? 저도 몰랐군요. 그런 자가 있다는 건 짐작했습니다만..."

[ 물론 그를 목문교에서 찢어죽였으나 나는 아직 미심쩍다.]

"......"

[ 그 자도 십중팔구는 마도에 접한 존재일 텐데, 혹여 부활 가능성이 있겠는가?]

나는 교주가 상관혁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그를 치하하고 논공행상을 하고자 부른 게 아니라, 어쩌면 교주만큼이나 마도에 정통할지도 모르는 마도사에게 조언을 듣기 위해서인 것이다! 교주는 상당히 신중한 성격이었다.

상관혁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없지 않습니다. 되려 높습니다."

[ 흐음.]

"황궁의 내부를 좀 살펴보고 싶습니다만..."

[ 좋다.]

이윽고 우리는 폐허가 된 황궁 내부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한참동안 수정석비며 내부의 초상기인 연구실 등을 살펴보던 상관혁이 수정석비 앞에 서서 말했다.

"틀림없습니다. 주작은 죽지 않았고 조만간 되살아나서 교주님을 방해할 것입니다."

[ 그런가? 그 자는 어떻게 되살아날 수 있는 거지?]

그러자 상관혁이 수정석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 수정석비의 힘을 빌리면 초상기인처럼 예비육체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아마 무명제사서의 비술을 가미했겠지요. 그 자의 술법역량이 제가 생각하는 수준이라면, 수십 개의 예비육체를 만들어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했을 것입니다."

[ 즉, 그 자의 예비육체를 모두 파괴하지 않으면 죽일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게 됩니다."

[ 골치아프군. 그 장소를 알아낼 방법은?]

상관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신에게 제물을 바쳐서 거래를 하시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 자의 근거지를 하나하나 알아내서 칠 수밖에 없습니다."

[ ......]

교주는 침묵했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 주작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살해야 한다. 그 자는 십이율주 다음가는 방해물이다.]

"그러시면..."

[ 방법은 내가 조만간 생각해 보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상관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 교주님. 황궁의 [옛 지배자]와는 어떻게 교섭하실 생각이십니까?"

[ ......]

"지금 그 존재는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추종자가 몇마리 죽는다고 해도 신에게는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조만간 교주님께서는 그 존재와 어떤 형태로든 교섭을 하셔야만 할 것입니다."

상관혁의 말은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 확실히, 이대로 가면 교주는 또 다시 신과 싸우다가 죽고 말 거야.'

나는 복마전의 지배자가 지상에 강림하면 어떤 참상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었다. 예전에 백련교주는 전력을 다했으나 그 지배자의 한쪽 팔조차 당해내지 못하고 살해당했다. 백련교주의 힘이 그 때보다 강해지긴 했으나 그렇다 해도 신을 당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전생자인 나였기에 교주의 지금 선택이 분수령을 가른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교주가 말했다.

[ 아주 간단한 일이지. 우선은 신에게 제물을 바쳐서 달래겠다.]

교주는 단호하게 자신의 의지를 말했다.

[ 그 후 나는 십이율을 쳐서 칠요를 얻고, 나아가 모든 칠요의 힘으로 지배자와 대등한 힘을 가질 것이다!]

"......!!"

나는 그 순간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 똑같아!'

무려 20회차 가까이 내가 구르고 구르면서 도달한 결론 - 거기에 백련교주 또한 도달해 있었다. 결국 이 시점에서 나와 백련교주의 목표는 대동소이해지고 말았다! 최종목표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앞으로 백련교주와 싸워야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만 것이다.

그러자 상관혁이 웃으며 포권했다.

"아주 현명하십니다. 저도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 상관혁. 그러고보니 그대에게는 황궁을 점령한 후 하나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었지.]

"음, 그랬었지요."

[ 지금 말해 보게.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최선을 다해서 들어주지.]

"......"

상관혁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교주가 황당하다는 듯 대꾸했다.

[ 말할 수 없다라...? 어째서지?]

"시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그 시기가 언제인가.]

상관혁이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교주께서 십이율을 접수하신 후로 해 두지요."

[ 아직은 머나먼 일이군.]

"금방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앞으로 백련교주는 칠요를 얻기 위해서라면 십이율과 전쟁을 치를 것이다. 그것은 여태껏 내가 본 적이 없는 거대한 규모의 충돌이 될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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