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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92화 (392/1,615)

00392  천계(天界)  =========================================================================

황궁을 장악한 후 교주는 독고준에게 수신류 고수들을 통솔해서 혼란을 수습할 것을 명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독고준 혼자서 이렇게 거대한 혼란과 공백을 채울 수 있을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독고준이 황궁의 혼돈을 수습하는데는 고작해야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먼저 독고준은 수신류를 이끌고 낙양에 존재하는 권문세족과 주요대신들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한나절 후 연판장을 들고 황궁의 옥좌로 돌아왔는데, 그 연판장에는 8할 이상의 권신들이 차기 황제의 선출에 동의한다는 내용과 서명,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연판장을 얻은 독고준은 이윽고 한 명의 소년을 데리고 궁 안으로 들어왔다.

[ 교주님. 데려왔습니다.]

[ 흠... 그 자인가?]

[ 그렇습니다.]

나는 그 소년의 얼굴을 확인하자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

설마?

내 의혹은 잠시 후 독고준의 육합전성으로 확실해졌다.

[ 이 자가 바로 정통 황위 계승권자인 주재후(朱載?)입니다.]

불안한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는 소년의 모습.

그것은 과거 내가 뇌신류를 도와서 부흥운동을 일으킬 때, 망량이 데려왔던 뛰어난 기재 소년 재후였다! 그 때 나는 뇌신류 합숙에 재후와 함께 참여했기 때문에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성격이 밝고 활달한 소년이라서 그리 나쁜 인상이 아니었다는 기억이다.

지금도 재후와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 처음 뵙겠어요, 백웅 사형.]

[ 새로 뇌신류에 입문한 재후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 사공린도 재후도 소청이만큼은 아니지만 천하를 오시할 만큼의 무재(武才)를 품고 있는 아이들이다. 십 년 이내에 천하를 주름잡을 고수로 키워낼 자신이 있다. 그리고 기왕 무당파의 절세비학을 연구할 거라면,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자들이 모여서 함께 논하는 편이 낫겠지.]

[ 그는 내가 감춰두었던 최후의 한 수요. 그의 정체는 나중에 말해주겠지만, 재후의 재능도 사공린에 못지 않다는 것만 알아두시오.]

그 때 이후로 내 전생에 재후가 관련될 일은 크게 없었다. 뇌신류 이광에게 크게 데인 나는 뇌신류와 점점 거리를 두려 했고, 재후까지 끌어들이면서까지 일을 벌이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재후가 황위 계승권자라니?!

내가 놀라서 재후를 쳐다보자 제갈사가 말했다.

[ 뭐 몰랐을 수도 있겠군. 하긴 현이가 네놈한테 그런걸 굳이 이야기할 이유도 없었겠지.]

[ 뭐? 뭐가 어떻게 된 거냐?]

[ 간단하다. 과거 현이가 재후를 가리켜서 최후의 한 수라고 했지? 그 말을 했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 봐라.]

[ 음... 잘 모르겠는데.]

제갈사가 클클 웃었다.

[ 그 때 현이는 이미 뇌신류를 키우다가 황연 대장군을 이용해서 역모를 일으키고, 나아가 낙양을 장악해 황권까지 좌지우지할 대계를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황연에게 정말로 황제의 자리를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지.]

[ 아!]

그러고보니 그랬었다. 망량은 그저 황궁에 있는 복마전의 세력을 쓰러뜨리자고만 했지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회피했었다. 당연히 황제의 자리를 어떻게 할지도 듣지 못한 것이다.

[ 현이는 황연 따위에게 황제의 자리를 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우국지사이며 뛰어난 대장군인 건 사실이지만 그를 황제로 삼는 건 정통성이 아예 없는 일이다. 명 제국의 정통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역성혁명이니, 당연히 천하의 평안을 추구하는 현이 입장에서는 선택할 수 없는 길이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제의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둘 수도 없는 일이니, 적절한 대안이 필요했던 거다.]

[ 그 적절한 대안이라는 게....]

[ 그렇다. 바로 주재후다. 현 황위 계승서열에서 최상위에 위치해 있는 황족이다. 너는 무지렁이 촌놈이라서 몰랐겠지만 천문관을 세습했던 제갈씨 일족은 모두 주재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 나도 주재후를 알고 있었다.]

[ ......]

[ 아마 현이는 주재후와 강한 친분관계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가 황제가 되더라도 자신이 그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겠지.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뇌신류에 끌어들여서 기재로 육성하는 한편, 자연스럽게 그를 차기황제로 밀 수 있는 포석을 마련했던 게 분명해.]

나는 제갈사의 말을 듣자 전후사정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갔다.

' 망량은 뇌신류를 키우던 시점에 이미 그렇게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구나.'

그리고 나는 그 미래에는 도달하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던 탓에 망량의 속뜻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망량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제갈사의 능력에도 일말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무리 기억을 공유했다지만 그 순간에 과거의 망량의 심계와 계책을 바로 읽어내 버리는 제갈사 또한 천재인 것이다.

제갈사가 킬킬댔다.

[ 뭐 이 몸이 좀 뛰어나긴 하지.]

[ 아 씨발. 개소리 말고...]

나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다가 흠칫 놀랐다.

[ 잠깐. 그런데 진소청 또한 황위 계승권자잖아? 그것도 저 주재후보다 서열이 높은 걸로 아는데?]

[ 호오. 네놈 빡대가리로 그걸 잘도 생각해냈군. 칭찬해주지.]

[ 아 진짜...]

[ 간단한 일이다. 망량은 진소청이 황위 계승권자인걸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재후를 황제로 만들려는 계책을 밀고 나갔을 거다. 망량은 진소청에게도 황제의 자리를 줄 생각이 없었어.]

[ 뭐라고? 왜?]

나는 놀라서 반문했다. 망량이 왜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러자 제갈사가 왜 그러냐는 듯 말했다.

[ 주재후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진소청은 통제할 자신이 없었던 거다. 단지 그것 뿐이야.]

[ 이해가 안 돼.]

[ 흥... 네놈 빡대가리로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지. 주재후 또한 두뇌와 무술재능이 뛰어난 기재이지만 진소청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리고 진소청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그러면서도 심계와 지혜, 의지력, 판단력, 인심장악술, 용기 등등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제갈사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 타고난 제왕의 그릇을 황제 자리에 앉혔다가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너와 현이에게는 해가 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진소청은 근본적으로 뇌신류의 인간이기 때문이지. 그 시점에서는 결코 끝까지 같이 갈 수 없는 관계였다.]

[ ......!!]

[ 하여간 이광은 복받은 놈이야. 그런 천재를 제자로 두다니...]

나는 제갈사의 말을 들으면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 그렇다면 그 시점의 망량은 이미 진소청의 그릇을 다 재어봤다는 말인가?'

이제 와서야 천재들의 계책과 심리를 알게 되다니. 그 시점에서 나와 그들의 그릇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열패감에 휩싸여 있을 때 제갈사가 피식 웃었다.

[ 내 말을 알아듣는것만으로도 네 녀석도 보통 인간의 범주는 넘었다. 괜히 쫄아있지 마라.]

[ 어?]

[ 아, 눈 앞의 일에 집중하라고.]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방금 이 놈이 나를 격려해 준 걸까?

아무튼 제갈사의 말마따나 지금은 눈 앞의 상황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장내의 상황을 보자, 주재후는 어느 새 앞으로 걸어와서 교주의 십 보 앞에 와 있었다.

"......"

그 상태로 한참을 침묵하던 주재후가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은 나를 꼭두각시 황제로 만들려고 데려온 것이오?"

천하의 백련교주에게 감히 먼저 당당하게 저런 말을 꺼낼 수 있다니!

그러자 백련교주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 잘 아는군.]

"당신이 황제를 시해했소?"

[ 그렇지.]

"그러면 당신이 황제가 되면 될 것이지 왜 타인을 내세우려 하시오?"

주재후를 고요히 바라보던 백련교주가 대꾸했다.

[ 나는 황제가 되고싶지 않으니까.]

"......!!"

주재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련교주는 주재후가 놀라든 말든 말을 이었다.

[ 내가 보기에 너는 꽤 재능있는 자다. 향후 백련교에 복종하고 그 권위를 거스르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면 황제로 만들어 줄 의사가 있다.]

주재후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거절한다면?"

[ 집으로 돌려보내 주지. 지금은 황도에 혼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까.]

백련교주가 마치 애를 달래듯 조용하게 엄포를 놓았다.

[ 하지만 내가 다음으로 부르게 될 황제 후보가, 너를 가만히 둘 거라고는 장담 못 하겠구나.]

"......"

확실히 그렇다. 아무리 꼭두각시 황제라고는 해도 유력한 황위계승권자인 주재후를 위협이라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백련교주에게서 밉보인 주재후를 보호해줄 자는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주재후는 당장 오늘은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향후 사지를 찢겨서 반역죄로 처형당할 가능성이 있다.

주재후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더니 백련교주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를 황제로 만들어 주십시오, 백련교주."

그는 현실을 선택한 것이다.

[ 그러지. 네가 오늘부터 대명제국의 황제다.]

"감사합니다."

[ 그럼 당장 지금부터 이 연판장을 가지고 움직여라.]

휙하고 백련교주가 주재후에게 독고준이 가져온 연판장을 던져 주었다. 주재후가 연판장을 받아들자 백련교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권신들을 찾아서 돌아다니면서 그들에게 내 선택을 받았음을 알려라. 그리고 황위계승의식의 일자를 잡고 관직체계를 정비하라. 그 정도 능력은 있겠지.]

"알겠습니다."

[ 그럼 가 보라. 호위무사로 수신류 고수를 붙여줄테니 필요할 때 도움을 받도록.]

"네."

주재후는 고개를 꾸벅하고는 옥좌의 방에서 나갔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내심 기가 막혔다. 설마 이렇게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사후처리가 끝나버리다니? 독고준이 대번에 조정의 권신들에게서 동의를 얻어서 연판장을 가져온 것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갈사가 말했다.

[ 이상한 일이 아닌데? 어차피 황제 또한 하나의 권력에 불과하다. 백련교주는 체제와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면서 새로운 막후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했을 뿐이지. 권신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았으니 마지못하는 척 백련교주를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거다.]

[ 백련교주라면 다 쳐죽일 수도 있을 텐데...]

[ 멍청아. 그럼 원래 황제는 그럴 힘이 없어서 권신들을 내버려둔 줄 아냐? 대체 이광 말을 콧구멍으로 들은 거냐? 권신들은 단순히 쨍알거리는 병신들이 아니라 대명제국을 지탱하는 기둥들이며 전 중화에서 선발된 인재들이다. 그들이 죽으면 말도 안 되는 혼란이 닥쳐오는데 뭐하러 그놈들을 죽여?]

한심하다는 듯 말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백련교주는 저래뵈도 굉장히 현명한 놈이다. 자신이 겉으로 나서서 황제가 되어서 지배하는 건 너무 귀찮고 반발도 심하니까 새로운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야. 그 과정에서 유혈도 거의 흐르지 않았잖나? 솔직히 내가 봐도 백련교주의 이번 일처리는 완벽해.]

[ 으윽...]

[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연판장을 돌렸다는 건 사전에 백련교에게 포섭된 고위관리도 꽤 많았다는 소리다. 백련교에서 고관의 목록을 파악해서 살생부를 미리 만들어 뒀을 테고. 백련교주는 늘 황궁을 접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거다.]

[ 그렇군.]

[ 잘 알아둬라. 완전한 혁명과 파괴는 있을 수 없어. 그저 윗대가리가 바뀔 뿐.]

생각해볼 만한 말이다.

내가 골똘히 생각하자 백련교주가 내게 말을 걸었다.

[ 백웅.]

"네."

[ 너는 지금 상관가(上官家)에 가서 가주 상관혁(上官赫)을 데려와라.]

이건 또 무슨 명령인가? 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백련교주를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를 정중하게 모셔와라.]

"네, 알겠습니다."

파앗

나는 바로 궁 밖으로 나갔다. 현재 궁 내부는 수신류의 고수들이 황궁 위관들을 감금하며 정보를 통제하고 있기에 삭막한 적막감이 들었다. 나는 상관가에 어떻게 찾아갈지 머리를 굴리다가 예전 쌍문사가의 정보를 들춰볼 수 있었다.

' 상관가라. 쌍문사가 중에서 장가(張家)의 옆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그 근처에 있을 것이다. 나는 빠르게 멸혼보를 써서 달려나가며, 굳이 상관가의 가주를 정중하게 모셔오라는게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았다.

' 상관가... 아! 그러고보니.'

저번에 풍신류의 노예시장에 참석할 때 상관정이라는 이름으로 참석했었다. 그 때 나는 상관가의 소공자라는 설정이었다. 그 때는 교주가 준 가짜신분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교주와 상관가는 꽤나 밀접한 관계인 모양이었다.

제갈사가 내 생각을 읽은듯 킥킥 웃었다.

[ 거기까지는 뭐... 8할은 따라잡았다 해 두지. 2할이 부족해.]

[ 뭐가 부족한데?]

[ 천하오대의원.]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 천상괴의 동방무결. 약왕 황보윤. 화타의 후예 화서명. 하남제일의 강전길. 지금까지 네놈이 만나본 천하오대의원은 총 4명이지. 그 중에서 나머지 한 명이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겠지?]

나는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왜 이걸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 의성(醫聖) 상관혁!]

[ 그래. 천하오대의원 중 의성이 바로 상관혁이다. 네 녀석은 천하오대의원이 너랑 별로 상관없어서 그간 신경도 안썼던 모양이구만.]

제갈사가 이죽거렸지만 나는 받아칠 기분이 아니었다.

의성!

그 명호는 내 의술스승이었던 화서명 의원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화서명은 강전길을 자신의 호적수로 여겼으며 동방무결을 내심 최고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의성에 대해서는 늘 숙고하는 태도를 보이곤 했다.

그 이유는 의성이야말로 인간을 살리는 인술(仁術)에 가장 가까운 의원이며, 자신은 그런 의성 상관혁의 마음가짐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의성은 다른 자들과는 달리 한가지 의술에 특화되지 않았으며 모든 의술을 고루 잘 하기로 명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화서명은 화씨세가가 하북제일의문으로 명성을 떨칠 때에도 의성 상관혁과 서찰으로 의술에 대해서 논하곤 했다는 것이다.

즉 - 천하오대의원 중에서 가장 인성이 똑바로 되어있는 참된 의원! 적어도 내가 아는 의성 상관혁은 그런 인간이었다.

[ 뭐... 뭐지? 어째서 교주가 의성을...]

[ 나는 알 것 같은데.]

[ 뭔데?]

제갈사가 말했다.

[ 잔말말고 일단 가. 이걸로 네녀석은 천하오대의원을 모두 만나보는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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