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0 천계(天界) =========================================================================
출발 당일, 나는 교주의 목갑에 들어가자 시간이 멈춘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교주의 손에 의해 목갑에서 꺼내어지자 주변 풍경이 갑자기 뒤바뀐 듯 했다.
' 이런 기분이군.'
지금까지 내가 목갑에서 넣었다 뺐다 한 사람들의 기분이 이런 거였을까? 제반사정을 모른다면 귀신에 홀린 듯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의외로 수신류의 고수들이 떼로 몰려있는 게 아니라 교주와 나를 비롯해서 호법사자 둘, 그리고 독고성만이 서 있었다. 분명히 수신류 고수들을 수십명이나 목갑 안에 넣는 걸 봤기에 나는 약간 의아했다.
그러자 제갈사가 킬킬거렸다.
[ 교주는 바보가 아니다. 명목상으로는 어디까지나 마도서를 교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니, 쓸데없이 많은 전력을 불러내서 경계시키지 않는다. 싸움이 시작되면 그때가 되어서야 꺼내겠지.]
[ 음...]
교주가 호법사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 내 명이 떨어지기 전에는 가만히 있도록.]
[ 존명!]
목문교는 낙양의 교외에 있는 한적한 장원가의 다리였다. 교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가지를 저벅저벅 가로질러갔는데, 역시 가면을 쓴 우리 일행은 눈에 띄는 면이 있었다. 나는 가면을 딱히 쓰지 않았는데 어린아이의 육체라서 모습을 들켜도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가면 자체가 껄끄럽기도 하고.'
가면에는 뭔가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윽고 목문교에 도착하자, 사방에는 기척이 없고 한산했다. 한산하다기보다 주변에 살아있는 것의 기척이 없는 수준인지라 인위적으로 황궁측에서 자리를 만들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목문교 다리 위에는 의문의 삿갓사내가 서 있었다.
"왔군. 교주."
원래라면 나는 그의 정체를 몰랐을 것이다. 제갈부가 나와야하는데 왜 생뚱맞은 인물이 나왔는지 의문을 품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전생을 하는동안 저 자의 정체를 밝혀냈고, 저 자가 바로 황궁의 진짜 흑막인 사신위 주작 제갈유룡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주작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걸 깨닫고, 제갈부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한 모양인 듯 했다. 교주 또한 주작의 정체를 짐작했는지 별반 의문을 표하지 않은 채 고요히 주작에게 대꾸했다.
[ 교환할 물건은 가져왔는가?]
"아니."
주작이 설핏 비웃음을 짓는 듯 했다.
"여기가 그대의 무덤이다."
쿠과과광!!
주작의 말이 끝나는 순간, 거대한 폭음과 함께 일대에 무시무시한 폭발이 몰아쳤다. 나는 너무나 엄청난 폭발인지라 순간적으로 솜털이 쭈뼛 설 정도로 긴장했다.
"......!!"
이건 무공으로 일으킨 폭발이 아니다.
화약이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양의 화약을 일순간에 폭발시킨 게 분명하다! 십만 관... 이십만 관... 아니 백만 관?! 그 증거로 화약 특유의 냄새와 유황내, 그리고 피어오르는 연기구름이 보였다.
' 으으으윽!!'
나는 찰나지간에 호신강기를 끌어모아서 내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내가 형성한 호신강기가 순식간에 뒤흔들렸다.
쿠구구과과광!!
' 미... 미치겠군.'
아직도 폭발은 미친듯이 이어지고 있었고, 호신강기가 계속 부숴지면서 내 내공이 급격히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라면 보통의 무림인이 절대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아니 이대로라면 나는 반드시 죽는다!
난데없이 찾아온 죽음의 예감에 내 목이 바싹바싹 마르고 있을 때였다.
위이이잉
갑자기 내 주변에 사신처럼 다가오던 폭발의 충격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 눈 앞에는 녹색빛을 띈 기묘한 반투명한 방어막이 만들어져 있었다. 놀라서 교주를 쳐다보자, 그는 한쪽 손을 든 채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우우우우...
[ 괜찮은가?]
"네, 넵."
나는 얼떨결에 대답하면서도 마음속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 정말 인간이 아니군...'
교주의 방어막은 무려 수십 장 크기로 만들어져 있었고, 어쩌면 백만 관 이상일지도 모르는 화약의 폭발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고 있었다. 이런 방어막을 펼칠 수 있는 건 무공의 상식으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니 - 이건 더 이상 무공의 영역이 아니라 권능의 영역이다!
이윽고 폭발이 잦아들며 주변이 불바다 지옥이 되어, 사위는 흑연과 업화에 물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나는 호법사자들과 함께 교주 주변에 모여서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교주는 뚫어져라 전방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 아주 철두철미하군, 저 자는...]
후우우웅
연기가 걷히고 주변에 나타난 것은 우리를 사방팔방으로 포위하고 있는 수십 수백의 괴인들이었다. 괴인들은 하나같이 강렬한 마기(魔氣)를 뿜어내고 있어서, 그들이 황궁에서 이족과의 융합으로 만들어 낸 마인(魔人)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인은 순수한 육체능력만으로 초절정고수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뿐만 아니라 마인 중에는 더러 용인(龍人)도 섞여 있었다. 황궁에서는 풍신류에만 용인의 술법을 전해준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용인을 양산하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이 정도의 전력이면 강호의 절반을 쓸어버리는 게 손쉬울 정도!
' 뭐지? 예전에는 이 정도로 빨리 마인과 용인을 양산하지는 못했던 거 같은데...'
제갈사가 클클 웃었다.
[ 제갈부가 당했으니 몸이 달아서 금주법(禁呪法)을 써서 빠르게 병력을 생산했겠군. 수정석비의 힘도 많이 빌어 썼겠고...]
' 뭐? 그런게 가능해?'
[ 제갈유룡은 현 중원 최고의 술법사 중 한 명이다. 편법을 써서 전력을 강화시키는 정도는 일도 아니지.]
게다가 나를 질리게 만든 것은, 정면에 나타난 주작의 양옆에 있는 존재들이었다. 무표정한 선남선녀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얼핏 평범해보이는 그들의 정체와 능력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 초상기인!'
수정석비와 동서양술법의 융합으로 만들어낸 인조생명체! 제물용으로 쓸 수도 있으며 완성시킬 경우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게 되는 개조인간이 눈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총 4명이었다. 적다고 볼 수도 있지만 놈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기술로 호법사자조차 위협할 수 있었다.
주작은 교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팔짱을 꼈다.
"과연 백련교주로군. 설마 그 폭발에서 멀쩡히 살아남다니..."
백련교주는 힐끔 주변의 포위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 이게 너의 준비인가?]
"뭐 그렇지. 아무리 백련교주 그대라 해도 쉽게 상대할 순 없을 것이다."
[ ... 그러고보니 아직 그대의 성명별호를 듣지 못했군.]
주작이 놀라는 듯 했다.
"음...?"
[ 나는 백련교주, 독고운천(獨孤運天)이다. 나는 황궁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그대의 성명별호를 알고 싶다.]
"......"
생뚱맞게 이제 와서 왜 소개를 한단 말인가? 나는 교주의 태도가 황당하게 느껴졌지만 주작은 잠시 생각하더니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본인은 현 제갈가의 가주(家主)이며 사신위의 주작인 제갈유룡(諸葛維龍)이다."
[ 제갈유룡... 그대는 천하무림에 그간 발톱을 감추고 있었군.]
교주의 말에 주작이 훗하고 자조적으로 웃었다.
"무림따위가 뭐가 대수란 말인가? 인간의 세상은 뚜껑과 같을진대."
[ 그렇군... 그러니 어둠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거군...]
"나에 대해 아는 척은 그만해라. 그럼 결판을 내자."
따악!
[ 우오오오오!!]
주작이 손가락을 마주침과 동시에 사방팔방에서 용인과 마인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경이적인 그들의 육체능력은 인간의 순수한 육체능력으로는 결코 상대할 수 없는 영역에 이르러 있었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호법사자들이 떼로 몰려있다고 해도 상당한 고난을 겪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 심적권청의 찰나 -
[ 후후후...]
나는 교주가 분명히 비웃는 말투를 흘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황궁의 힘이 겨우 이 정도인가.]
겨우?
이게 겨우라고?
내가 교주의 광오함을 새삼 느끼기도 전에 교주의 첫 수가 시작되어 있었다.
[ 자아.]
칠대절학(七大絶學)
지주명왕(蜘蛛明王)
교주는 마치 시간이 절단된 듯한 경이로운 순간에 자신의 전신에서 구슬같은 걸 뿜어 내었다. 구슬이라고 보인 것은 사실 기(氣)로 만들어진 광구(光球)로서, 그 숫자가 무려 수백 개나 되었다. 손가락만한 크기의 광구는 잠시 진동하더니 이윽고 심적권청의 찰나를 뚫고 긴 광선(光線)을 그렸다.
쉬콰콰콱
수백 개의 광선이 궤적을 마친 순간, 광선의 궤적에 걸려있던 모든 살덩어리들이 조각나며 절단되었다. 달려들던 용인과 마인들은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비명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숭덩숭덩 잘려나갔다. 핏방울이 허공에 번져 나가는 광경이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허공에 빛의 거미줄이 만들어지자, 그 거미줄은 이윽고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뒤틀면서 나선의 형태를 만들었다. 나선은 진동하면서 원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입체적으로 영역을 넓히며 탐욕스럽게 모든 걸 먹어치우는 거미줄! 물론 그 거미줄은 하나하나가 무시무시한 내공을 머금고 있어서 용인의 몸뚱이를 두부처럼 베어버릴 수 있었기에, 궤적에 걸린 모든 적들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분쇄당했다.
휘리릭
후두두둑
교주가 두세 번 더 지주명왕의 거미줄을 파리잡듯 휘두르자, 반경 오십여 장 이내에 있던 모든 적들이 전멸해 버렸다. 설명은 길었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실제로는 눈을 한 번 깜박이는 시간의 절반도 흐르지 않았다.
괴물들의 시체가 마치 쓰레기처럼 휘날렸다.
[ 크오오오?!]
[ 크아아아아아!!]
용인과 마인들은 최소한의 본능과 지성을 갖고 있었으므로 순식간에 압도적인 교주의 학살을 보자 공포에 질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놀랐다.
' 칠대절학?! 설마 칠대절학을 조합해서 저런 가공할 절기를 만들었다는...'
교주의 말은 결코 헛소리가 아니었다. 저 지주명왕 또한 칠대절학을 근간으로 삼보절기에 버금가는 절세무공으로 다듬어진 것이리라!
파앗!
그 순간 교주의 몸 주변에 초상기인들이 나타나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나로서도 파악하지 못했지만, 초상기인들이 교주를 기습한 듯 했다.
' 저 자식!'
그 중 백발을 한 초상기인 소년은 교주의 목젖 바로 앞까지 단검을 찔러넣은 상태였다. 예전에 항우가 강림했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초상기인의 능력은 무공과는 동떨어진 무언가인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초절정고수인 내 이목을 완벽하게 속이고 교주의 지근거리에서 기습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주는 그 공격을 막지도 피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한 치의 거리를 남긴 채 칼날이 멈춰 있었다. 교주의 무시무시한 호신강기가 발동했기에 더 이상 칼을 찔러넣을 수 없는 것이다.
여유롭게 칼날을 쳐다보고 있던 교주가 중얼거렸다.
[ 재밌는 능력이군. 완전체였다면 분명 위협적이었겠어.]
퍼버벙
그게 끝이었다. 초상기인 4체는 다음 순간 교주의 한 수에 휘말려서 몰살당했다. 피분수가 재차 몰아쳤고 진한 피냄새가 교주의 몸 주변에 흘렀다.
고작해야 오 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이 참상!
황궁 세력은 이미 전멸 직전이었다. 호법사자들이 무한의 내공인 천령단을 써서 나설 것까지도 없었다.
' 교, 교주 혼자 다 해치우다니...'
용인과 마인들이 더러 남아있으나 그들이 덤벼든다 해서 교주를 어쩔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한 수에 마인 100여체를 회쳐버린 괴물에게 도대체 무슨 수로 공격을 가한단 말인가?
교주가 원래도 강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교주는 내게서 칠대절학을 배운 후 더욱 무시무시한 진경에 이르게 된 게 틀림없었다.
순식간에 패배가 결정되자 주작은 약간 당황한 듯 말했다.
"이런..."
너무나 순식간에 결판이 나버려서인지, 여동빈 또한 내게 강림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교주는 싸늘한 기색으로 한쪽 손을 제갈유룡에게 향했다.
[ 자, 너도 가라.]
푸콱
그것이 주작 제갈유룡의 최후였다. 그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백련교주의 일 장에 사지가 분해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육체 하나를 버렸을 뿐이며, 예비육체를 이용해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방심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주작의 그 수법때문에 된통 당했던 것이다.
교주는 격공장으로 주작을 해치운 후 우리에게 명령했다.
[ 잔챙이들을 정리해라.]
[ 존명!]
이윽고 호법사자들이 주변에 남아있던 용인과 마인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무수한 강기가 날아다니며 폭음이 울렸다.
[ 크아아아!]
놈들은 비명소리를 꽥꽥 지르며 달려들었으나, 독고준 한백령은 그들이 상대할 수 없는 엄청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독고성도 교에 돌아와서 칠대절학을 연구한 이래 무공이 급증했는지 용인을 혼자서 가볍게 5체나 해치워버린 것이다. 나도 그들을 거들어서 용인의 목을 치기 시작했다.
정리가 끝나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교주..."
내가 뭐라고 경고하기 전에 백련교주가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 흐음... 이제부터가 진짜겠군.]
"네?"
쿠구구구...
하늘이 피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강렬한 마기가 하늘의 중심에서 뻗어나오며 요이(妖異)의 기운이 천지를 뒤덮는 걸 느꼈다. 나는 이 현상이 무엇인지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달기!'
신의 사도 달기가 강림하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물론 지금의 전력이라면 어떻게든 물리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 수요가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교주를 위해 흉신의 주문만 써 줘도 달기의 주술방어가 깨질 것이다. 그러면 교주가 어떻게든 해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흉신의 주문을 쓰면 교주가 대번에 엄청난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 그렇다고 달기한테 그냥 죽어줄 수도 없고... 달기의 주술방어를 뚫지 못하면 아무리 교주가 강해도 의미가 없을 텐데.'
쿠구구구
달기가 강림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내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제갈사가 말했다.
[ 야. 그냥 지켜 봐.]
[ 뭐? 교주가 달기한테 패하면...]
[ 교주는 황궁이 복마전의 지원을 받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사도와 싸우게 되리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지. 그런데도 오늘 황궁측의 유인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건 사도를 이길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
[ 으음.]
[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군.]
나는 못미더웠지만 일단 제갈사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제갈사가 말한대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혈천(血天) 속에서 거대한 거품을 머금은, 대요괴 달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백련교주가 난데없이 목갑에서 웬 언월도를 꺼내 든 것이다. 나는 그 언월도의 형상을 보자 깜짝 놀랐다.
' 자... 자령언월도!'
그랬다.
교주가 수요와 교환해서 십이율주에게서 얻은 자령언월도가 난데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신의 사도와 대책없이 싸우는 건 멍청한 짓이지. 충분히 예상한 일.]
교주는 자령언월도를 달기에게 겨누었다.
파앗!
교주가 언월도에 매달려 있던 검은 명주실을 다섯 타래 풀어버렸다. 명주실은 총 아홉 타래가 있었는데, 그 중 다섯 개를 풀었으니 이제 네 타래가 남은 셈이었다. 준비가 끝났는지 교주가 크게 외쳤다.
[ 그러니까 추방시켜 주마.]
자령언월도가 푸른 빛을 발했다. 그 빛은 아주 잠깐 빛났는데, 난데없이 허공을 뒤덮던 혈천(血天)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쉬쉬쉬쉬쉭!
뭔가가 되감기는 소리가 들린 건 착각일까?
그리고 원한어린 비명소리가 허공에서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 아아아아아아악!! 두고보자!!]
그게 끝이었다.
당장이라도 강림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던 달기는 끔찍한 원한을 토해내며 다시 금오도로 송환되어버린 듯 했다. 하늘은 도로 맑아져 버렸다.
"......"
내가 황당해서 교주를 쳐다보자, 그는 자령언월도를 목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 네 타래가 남았으니 나머지 다섯 타래를 채우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걸리겠구나. 그러나 사도를 물리친 댓가로는 아주 싸군.]
"그, 그게 무엇입니까?"
[ 자령언월도의 진짜 사용법이지.]
그렇게 대꾸한 교주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미 장내에 있던 황궁세력은 씨몰살당해서 우리 이외에는 어떠한 생명의 기척도 남아있지 않았다. 무심하게 주작의 시체를 쳐다보던 교주가 말했다.
[ 가자. 이제 황제놈을 죽이고 황궁을 접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