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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89화 (389/1,615)

00389  천계(天界)  =========================================================================

천령단 부여라니!

' 윽, 젠장!'

원래라면 팔짝뛰면서 기뻐해야 할 일이었으나 나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선지자에게서 천령단이 마신과 관련된 무시무시한 노예계약이란 말을 들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천암비서로 전생을 하더라도 천령단의 제약이 어떤 식으로 걸림돌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더 이상 전생이 불가능해지고 신의 노예가 되어서 고통속에서 영겁을 지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싫은 티를 내면 너무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나는 모든 인내력을 끌어모아서 감정변화를 숨겼다. 그리고 생각하는 척 하다가 대답했다.

"교주. 저는 삼보절기를 좀 더 익힌 후에 천령단을 얻고 싶습니다."

내 대답에 교주는 의외인지 말했다.

[ 왜지? 그 두 가지는 관련이 없는 일이다.]

"저는 관련이 있습니다."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일단 어떻게든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지만 머릿속이 답답했다. 제갈사라고 하더라도 이 찰나에 해답을 주기는 어려울 게 분명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일단 되는대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천령단은 무한의 내공입니다. 원하는만큼 마음껏 힘을 쓸 수 있지요. 익숙해지면 모르되 힘을 뿜어내는 단위가 달라지면 정밀한 무공의 기예를 수련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제가 삼보절기를 익히기 전에 천령단을 얻는 건 좀..."

어라? 말하고 보니 왠지 말이 되는 거 같은데?

말한 나도 얼떨떨하는 동안에 교주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말했다.

[ 일리있는 말이군. 그 부작용은 생각지 못했다.]

"어..."

[ 좋다. 네가 삼보절기를 수련해서 네 것으로 만들 때까지 천령단 전수는 보류해 두지. 그 때까지 성실하게 수련하도록.]

"네, 넵."

얼떨결에 잘 넘긴 기분이다. 나는 믿기지가 않아서 제갈사에게 물었다.

[ 야. 설마 네 녀석 내 정신을 조종했냐?]

그러자 제갈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웃기고 있네. 네놈 혼자서 다 해놓고 왜 나를 끌어들이지?]

[ 그럼 방금 전 내가...]

[ 그렇게 오랫동안 전생하면서 경험을 쌓았으니 당연히 가락이 쌓였겠지. 방금 전에는 축적되어 있던 임기응변과 지혜가 집중력 덕분에 터져나온 거다. 위기에 몰리니 논리력이 높아진 셈이지.]

그렇게 설명한 제갈사가 클클 웃었다.

[ 네놈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그런 임기응변을 제때 발휘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 사족만 아니었다면 좋았을텐데.]

나는 투덜거렸다. 이 놈은 말투만 곱게 하면 좋을텐데.

교주는 내가 부복해 있는 동안에 말을 이었다.

[ 어차피 네 힘은 크게 필요없으니 상관없다. 만일 황궁과의 접전이 벌어지면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나는 그 말에 모욕감보다는 이상함을 느꼈다. 그래서 고개를 들고 질문했다.

"죄송하지만 교주. 현재 저보다 강한 무예고수는 황궁에 아마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황궁과의 일전이 그 정도로 흉험한 것이 되겠습니까?"

[ 황궁 금의위나 동창 따위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지금의 사신위 따위는 말할 가치도 없지. 무예고수의 전력으로는 우리가 분명 압도한다.]

나직이 대꾸한 교주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 다만 놈은 십중팔구 제사장으로서의 힘을 사용할 것이다. 문제는 그 힘이 나로서도 어떤 수준일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놈이 주술과 사법을 동원한다면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

"놈이라니...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반문했다. 그러자 교주가 말했다.

[ 황궁의 진짜 흑막! 적어도 제갈부는 아니다.]

"으음...!!"

[ 절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교주의 말을 듣자 침음성을 흘렸다. 그것은 황궁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압박감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어차피 황궁이 강력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교주라는 인물이 생각보다 넓은 관점으로 대국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서였다.

' 설마 교주는 황궁에서 키우는 마인이나 용인의 존재도 알고 있는 걸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초기에는 교주가 그저 초월적 무공을 성취하고 백련교에서 은둔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교주는 이미 황궁이 어떤 세력인지, 어떤 뒷배가 있는지, [옛 지배자]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세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의 균형을 모조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향후 자신과 황궁이 패권을 다투리라는 걸 충분히 예상하고 미래를 도모하고 있었으리라.

제갈사가 말했다.

[ 교주 또한 마도사(魔道師)라고 볼 수 있다. 마도서를 해석하고 독자적인 계약을 성립시킬 수 있는 건 서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야. 뭐... 달리 말하자면 언제 미쳐서 뒈질지 모르는 신세라는 거지만.]

[ 그렇군... 그럼 교주가 그 때 수요를 주고 자령언월도를 대신 받은 것도.]

[ 그래. 자령언월도가 마도구이며 엄청난 힘을 비장(秘藏)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거다.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칠요에 맞먹을 정도로.]

[ ......]

[ 십이율주는 칠요를 두 개 얻었으나 교주도 그에 못지 않은 게 현재 상태라 볼 수 있군.]

제갈사의 말은 생각해볼 여지가 많았다. 괜히 천계가 내게 지상의 균형을 맞추는 임무를 준 게 아닌 것이다. 천계에서도 섣불리 십이율주와 백련교주에게 간섭할 수 없을 정도로 두 패자(覇者)의 역량이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 되었다는 의미다.

[ 그러고보니 자령언월도는 어떤 능력을 갖고 있을까?]

[ 글쎄... 비슷한 마도구의 소문을 들은 적은 있지만 확신할 수가 없군. 하지만 그 마도구일 리가 없어. 그건 아주 오래전에 봉인되어서 인간계에 있을 리가 없으니.]

[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냐?]

[ 왜냐하면 그 마도구는 아주 위험한 외신(外神)의 힘을 불러올 수 있는 거니까.]

[ 그럼 교주가 갖고 있는 게 그 마도구라면?]

[ 교주가 그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 확실한 건 네놈이 비명횡사할 확률이 급격히 상승한다는 거야.]

[ ......]

이 새끼는 말을 해도 꼭...

내가 침묵하자 교주가 말했다.

[ 좋다... 그러면 남은 칠 주야는 칠대절학의 연구에 참여시켜 주지.]

나는 반색했다.

"저, 정말이십니까?"

[ 물론 네가 연구에서 의견을 발의할 필요는 없다. 알아서 얻어가도록.]

그리고 나는 교주의 말대로 호법사자급이 모인 칠대절학의 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칠대절학의 연구는 교주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수련전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독고준, 한백령, 그리고 독고성이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독고성은 나를 발견하자 놀란 듯 말했다.

"네가 여긴 왜..."

"그렇게 되었소."

나는 멋쩍게 웃었다. 독고성이 잠시 후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좋아. 자네도 뛰어난 고수이니 이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네."

"그랬으면 좋겠소."

독고준이나 한백령은 내게 그리 관심이 없는 기색이었다. 대면이 끝나자 교주는 우리에게 말했다.

[ 그럼 연구를 다시 시작하지.]

연구회는 예전에 느꼈던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예전에도 뇌신류의 영재들이 모여서 숙식하며 연구하던 모임에 끼였던 경험이 있었으므로, 이번에도 무난하게 섞여들 수 있었다. 물론 재능의 부족은 재차 뼈저리게 느꼈으나 이제와서 그 정도로 정신력에 타격이 오지는 않는다.

' 무난하군.'

하지만 칠대절학의 연구가 시작된지 약 반나절이 지나서 휴식시간이 생기자, 한백령은 멀리서 육합전성을 써서 내게 말했다.

[ 마침 잘 됐군. 예전의 제안은 생각해 봤느냐?]

육합전성이라고 하면 보통은 웅웅 울리듯이 사방팔방에서 울리는 걸 상상하지만, 지금 한백령이 쓴 수법은 단방향으로 아주 찰나간에 보낸 것이었다. 전음의 수준을 현격하게 높인 수법으로서 명백히 주변 시선을 신경쓰는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한백령은 주변에 교주는 물론 독고준이라는 절대고수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 듯 했다. 그리고 전음을 교주가 엿들을 수 있는 만일의 가능성까지 생각하고는, 일부러 육합전성을 변형시켜서 내게 몰래 접촉한 듯 하다. 혜광심어라고 하는 전설의 수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백련교 내에는 그 수법을 쓸 수 있는 자가 없었다.

' 역시 그 얘기를 하러 온 건가?'

나는 물을 마시는 척 하면서 마주 육합전성을 써서 대꾸했다.

[ 생각하고 자시고... 당신은 내게 교주의 약점을 알려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오. 부탁이 어떤 건지는 말하지 않았소.]

[ 교주의 약점을 알려주는 대신에 너는 교주가 폭주할 경우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한다.]

[ ......]

이게 무슨 소리인가?

문맥으로만 보면 이상할 게 없는 이야기였으나 하필이면 한백령이 교주의 살해를 의뢰할 줄은 몰랐다. 설마 한백령 또한 용비천처럼 교주에게 강렬한 살의를 품고 있다는 말인 걸까?

하지만 이건 함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 내가 교주께 당신의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오?]

[ 맘대로 해라. 의미없는 일...]

[ 뭐?]

한백령은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 교주가 용비천을 숙청한 걸 보면 모르겠느냐? 빠르든 늦든 교주는 화신류도 없애버릴 거다. 그리고 화신류마저 사라지면 네 녀석의 운명도 빠르게 결정되겠지. 지금 너와 본녀의 관계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나 다름없다는 걸 모르고 있었나 보구나.]

한마디로 이러나 저러나 죽을 위기이니 배째라는 식의 도박이었다. 나는 한백령이 이렇게 과격한 제안을 할 줄은 몰랐기에 다소 당황했다. 너무 당당하게 나오니 도리어 어떻게 다뤄야 할지 헷갈리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자 제갈사가 충고했다.

[ 일단 받아들여라.]

[ 괜찮을까?]

[ 내가 보기에 이번 한백령의 제안은 떠보려는 계략이 아니다. 그리고 한백령이 한 말이 틀린 것도 아냐. 교주의 천하제패를 좀 더 늦추지 않으면 성장하기도 전에 돌연사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 뭐?]

[ 예상보다 교주가 칠대절학을 흡수해서 강해지는 속도가 빨라. 이런 제안을 그냥 넘겨버리면 기회를 놓치는 거야.]

[ 씁... 어쩔 수 없군.]

나는 별 수 없이 한백령의 제안에 대답헀다.

[ 알았소. 그 말대로 하지. 약점을 가르쳐 준다면 언제고 교주를 해치우도록 준비하겠소.]

[ 흥... 기대도 안 한다. 본녀가 바라는 건 그의 폭주를 멈추는 거니까. 새롭게 교주가 키우고 있는 너라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미묘하게 다른 어감이다. 내가 그 어감차이를 깨닫기도 전에 한백령이 말했다.

[ 교주에게는 역린(逆鱗)이 있다. 그 역린은 심장에서 두치 반 아래에 존재한다. 역린을 공격할 수 있다면 그는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 ......!!]

교주에게 역린이 있다고?!

역린이란 건 용의 약점을 칭할 때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였으나, 이 경우에는 무인의 조문과 같은 크나큰 약점을 칭하는 것이리라. 아마 뜻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다! 하지만 동시에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백령이 난데없이 교주의 약점이라고 가르쳐주는 걸 어떻게 믿어야 한단 말인가? 역린이란 게 있다는 것도 지금 처음 알게 된 것이다.

[ 당신은 어떻게 그걸...]

[ 교주 뿐만이 아니다. 수신류 중 강력한 힘을 지닌 자는 대부분 역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본녀는 지난 세월 동안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교주의 역린과 그 위치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

[ 믿기 힘들군.]

[ 판단은 알아서 해라. 본녀가 판단하기에 파국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마음을 정해야 할 것이다.]

[ ......]

한백령은 그 육합전성을 끝으로 더 이상 이야기를 걸지 않았다.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무공의 연구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라서 누구도 한백령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청난 정보를 들어버렸기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교주 최악의 약점, 역린!

그건 과연 사실인 걸까?

하지만 지금 그걸 생각해봤자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한백령은 더 이상 나와 정보공유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말했던대로 그저 교주를 막기 위한 자구책을 하나 더 마련한 것에 불과해 보였다. 제갈사가 고민하는 내게 말했다.

[ 고민하지 마라. 한백령이 한 말은 사실일 수밖에 없다.]

[ 무슨 근거인데?]

[ 그만한 핵심정보를 갖고 있다면 보통은 이것저것 재 보다가 네게서 엄청난 댓가를 뜯어내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한백령은 정보를 알려주기만 했을 뿐 다른 요구사항이 없었지. 이건 너와 흥정을 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라는 걸 의미한다. 말만 교환일 뿐 네게 뭔가 기대를 걸고 정보를 넘겨줬을 뿐이다.]

[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 지금이 정말로 그렇게 급박한 상황인 건가? 황궁과의 전투가 흉험할 거라고는 하지만 저 교주가 패배한다는 건 생각도 되지 않아.]

실제로도 그렇다. 교주는 내 덕분에 엄청난 힘을 추가로 쌓았지만 황궁 쪽은 특별히 강해질만한 이유가 없었다. 용인따위는 주먹을 쥐는 것만으로도 피떡으로 만들 수 있는 교주였기에 그가 질 것 같지 않다.

[ ......]

[ 제갈사?]

[ 확실한 건 한백령이 한 말은 진심으로 받아들이라는 거다. 역린의 정보를 알았으니 만일 교주와 싸우는 일이 생기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할거다.]

[ 그래야겠군.]

나는 제갈사의 말을 수긍했다. 비록 내 실력이 교주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나는 무수한 전생 동안에 세상일이 어떻게 꼬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역린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특히 요긴하게 써먹을 기회가 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칠 주야 동안은 호법사자들과 함께 미친듯이 무공을 수련했다. 과연 독고성은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인지 칠대절학의 연구에서 가장 앞서가는 모습이었고, 독고준과 한백령이 그런 독고성을 도와주는 듯 했다. 교주는 그들과 함께 연구회를 진행하면서 심사숙고하는 모습이 매우 많았다.

결전의 당일이 되자 교주가 말했다.

[ 그럼 가자. 목문교로.]

황궁과 백련교가 결판을 내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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