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8 천계(天界) =========================================================================
내 손에 들어온 월요는 다른 각도에서 볼 때마다 다른 빛을 내뿜었다. 무광(無光)인 듯 하다가도 오채의 빛을 내뿜기도 했다. 나는 이 세 가지가 모여서 모두 월요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제갈사가 말했다.
[ 흐흐... 나중에 동료들에게 이 악행을 뭐라고 설명할 생각이지?]
나는 그 말에 뜨끔하는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내가 난데없이 월요의 봉인을 풀어버리는 바람에 지금쯤 월요의 수호자가 미친듯이 날뛰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각오했던 바이기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어차피 이대로라면 천계가 황궁이나 백련교를 토벌하려고 미호를 강제로 월요의 주인으로 만들거야. 미호는 또 다시 승산도 없는 싸움을 해야만 해. 미호가 그렇게 되는 꼴을 보느니 내가 그 업을 짊어지겠어.]
[ 호오... 지극정성이셔라. 그 구미호가 그렇게 좋냐?]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 그래. 난 미호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
[ 크크크... 확실히 한 번 죽긴 했었지.]
어딘지 감탄한 듯한 말투로 대꾸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나도 네놈이 월요를 얻은 건 나쁘지않다 생각한다. 지금 교주에게 수요를 뺏긴 상태에서 하나라도 칠요를 보유하고 있는 게 중요하지. 다만 지금 상태로는 봉선의식을 할 수 없으니 월요의 봉인을 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겠지?]
[ 윽.]
그게 문제다.
칠요는 두 가지 방식으로 해방되게끔 되어 있었다. 하나는 칠요로 살상을 거듭하다가 힘이 쌓이면 저절로 해방되는 방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봉선의식을 통해서 정상적으로 칠요의 주인으로 인정받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힘이 쌓여서 자연적으로 해방될 경우 [옛 지배자]가 강림해서 가공할 참극이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봉선의식으로 정상해방을 하지 않으면 칠요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봉선의식은 현재 치를 수가 없다. 봉선의식을 치를 권리를 천계에서 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봉선의식을 치를 수 있는 오악(五岳)의 천제단(天祭檀)도 장악하지 못했다. 칠요를 갖고 있다고 해도 이래서야 의미가 없었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 야. 네 녀석은 전생하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아보지 않았어.]
[ 어? 또 뭐야?]
[ 목요의 주인인 십이율주가 현재 칠요를 해방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모르고 있잖냐? 놈이 칠요를 해방했기 때문에 강한 건지 아닌지 모르잖아.]
[ 아!]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지적을 받자 놀랐다.
확실히 그렇다. 지금까지 십이율주가 칠요의 주인이라는 점만 생각했을 뿐 그 칠요가 해방상태인지 아닌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 물어볼 수가 없잖아. 십이율주도 칠요 해방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만날 때마다 그걸 신경쓰고 있었어. 그 능구렁이 같은 인간에게서 칠요해방에 대해서 알아내려 하는 건 너무 위험해.]
[ 후후... 확실히 그렇지.]
제갈사가 웃더니 말을 이었다.
[ 그런데 생각해 봐라. 만일 십이율주가 목요를 해방시키지도 않았는데 저 정도 힘을 갖고있는 거라면 어떨 거 같냐?]
[ ......]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거다. 가능성은 늘 열어놔야지.]
[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강하게 제갈사의 말을 부정했다.
현재 십이율주의 힘은 백련교주와 대등한게 분명했다. 그리고 백련교주는 신과 계약을 맺어서 준신급의 권능을 손에 넣은 게 확실했는데, 그런 백련교주와 대등할 수 있는 십이율주도 초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그게 칠요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일 그게 칠요의 힘이 아니었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십이율주가 칠요 두 개를 해방시키면 어떤 힘을 얻게 되는 것인가?
내가 내심 전율하고 있을 때 제갈사가 말했다.
[ 잡설은 이 정도로 하고, 이걸로 확실한 건 지상에 칠요 중 사요(四曜)가 세상에 풀려나왔다는 사실이다. 뿐만아니라 네 녀석이 월요의 봉인을 풀면서 수호자 뒷처리를 안했으니 천계에서는 좌시할 수가 없겠지.]
[ 으음...]
[ 아마 여동빈이 네 녀석을 계속 지켜보고 있을 거다. 한번 그를 불러 봐.]
나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생각지 않으려 했던 점을 짚었기 때문이다.
' 으... 어쩔 수 없지.'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한 채 정신을 집중해서 내 영혼의 단말을 통해서 여동빈을 불렀다. 여동빈은 지난번에 내 부탁을 들어준 후 천계로 돌아가버렸는데, 단말이 통해있으니 언제든 올 수 있는 것이다.
우웅
이윽고 내 눈 앞에 일렁이는 여동빈의 검령(劍靈)이 나타났다. 검령이라고는 하지만 대라신선 여동빈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여동빈은 상당히 노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 연자여. 그대는 어찌 제멋대로 월요의 봉인을 풀었는가? 그 일이 어떤 재앙을 불러일으켰는지 알고 있는가?]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제갈사가 속삭였다.
[ 양심의 가책을 무시해. 그리고 네놈 할 말만 해라.]
[ 그래도...]
[ 여기서 여동빈과 담판을 짓지 않으면, 네 녀석은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여동빈에게 칼맞고 죽을 테니까.]
난데없이 건곤일척의 담판이라니!
나는 입맛이 썼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천천히 대꾸했다.
"여동빈. 나는 천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월요를 꺼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 무슨 소리인가?]
"알고있을지 모르지만 얼마 전 수요가 동방 십이율주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는 지상에 존재하는 칠요 중 2개가 한 인물의 손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 ......]
"십이율주가 향후 어떤 힘을 얻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십이율주를 견제하고 마(魔)를 토벌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얻기 위해서 월요를 얻어야만 했습니다."
나는 이걸로 여동빈을 설득할 수 있으면 좋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동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냉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과한 변명이군. 그대가 천지의 균형을 걱정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월요의 수호자가 현재 무시무시한 재액을 불러일으킨건 책임지지 않고 있군. 그럴듯한 논변을 내세워서 사람을 농락하려 드는 게 연자의 방식인가?]
"윽..."
[ 연자와의 인연을 봐서 좀 더 이야기를 들어주지. 그러니 다음 한 마디를 신중하게 고르게.]
여동빈은 더 입을 열지 않았으나, 저 한 마디에는 무시무시한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여차하면 여동빈이 나를 적대해서 목숨을 뺏을 수도 있으며, 천계 그 자체가 내 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책임을 지겠다는 겁니다."
[ 어떻게? 이미 연자의 목숨으로 책임질만한 사안이 아니야.]
"내게 월요의 주인이 될 권리를 주십시오. 그러면 월요의 힘으로 수호자를 토벌하겠습니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닙니까?"
[ ......!!]
여동빈은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신중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 이해가 되지 않는군. 어찌 칠요에 그리 집착하는가? 칠요는 엄청난 힘을 주는 신보(神寶)이지만 인간의 힘으로 다룰만한 물건이 아니다. 힘에 과한 집착을 하다가는 파멸하고 말 것이다.]
"여동빈. 정말 모르겠습니까?"
[ 뭘 모른다는 거지?]
나는 꺼지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천계에서 어떤 수를 쓰더라도 백련교주, 십이율주, 황궁 그 어느쪽도 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칠요... 혹은 그걸 훨씬 뛰어넘는 힘을 손에 넣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더 늦기 전에 극약처방을 해서라도 그들을 견제하려 하는 거란 말입니다."
[ 필멸자가 고려할 일이 아니...]
"여동빈! 인간의 일은 인간이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게 바로 인과율에 맞는 해결방식이 아닌지요?!"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여동빈이 침묵했다. 여동빈은 한동안 그 자리에 굳어서 움직이지 않다가 말했다.
[ 방금 전 천계에서 회의가 끝났다.]
"회의요?"
[ 연자가 했던 제안을 심도있게 논의해 보았지. 내가 회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아무래도 천계의 시간개념은 인간세상과 달라서, 그 찰나에도 많은 시간이 흐른 셈이리라. 여동빈이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 연자여. 그대는 진실로 이 세상을 수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
"물론입니다."
[ 그렇다면 그대에게 칠요의 재회수와 봉인을 명하겠노라. 그걸 위해서라면 그대가 봉선의식을 치를 권리도 내릴 것이며, 특히 황궁의 사악한 존재를 멸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라.]
"헛...!!"
[ 나아가서는 십이율주와 백련교주가 포학한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견제하라. 이는 천계 태상노군(太上老君)의 명이다.]
이거 너무 좋은 얘기 아닌가?!
나는 여동빈에게 칼맞아 죽는 것까지 각오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지금 천계의 대답은 굉장히 좋았다. 나는 천계와의 적대를 피함과 동시에 봉선의식의 권리까지 얻게 된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서 서 있자 여동빈이 말했다.
[ 너무 좋아하지 말라. 백련교주와 십이율주의 힘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판단했기에 내린 고육지책일 뿐이니.]
"아하하... 좋아하기만 할 리는..."
내가 멋쩍게 웃자 여동빈이 말했다.
[ 그리고 월요의 수호자 일은 걱정 말라. 그 일은 이미 처리중이다.]
"네?"
[ 서왕모(西王母)께서 그 존재를 봉인하실 것이다.]
휘이잉!
잠시 후 여동빈의 검령이 안개로 변해서 사라져 버렸다. 아무래도 다시 천계로 돌아가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여동빈의 말에 골똘히 생각했다.
' 서왕모가?'
여기서 서왕모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 네놈의 예전 전생에서 미호가 월요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서왕모가 강림해서 수호자를 처치했기 때문이었지. 서왕모 정도 되는 대신격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 하다.]
"하지만... 수호자도 [옛 지배자]의 범주에 속하는 거 아니냐? 서왕모가 때려잡는다는 게 상상이 안 되는데."
[ [옛 지배자] 사이에서도 격차가 엄청나게 나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이자나기노미코토는 격이 낮은 편이니 서왕모가 처치할 수 있는 거다.]
"흐음..."
[ 뭐 이상하긴 하지. 서왕모의 힘이 천계 대라신선 중에서도 특출난 것 같긴 해. 투선조차 초월할 정도로...]
그렇게 중얼거린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아까의 교섭이 성공한 건 당연한 거다.]
"왜?"
[ 천계가 이렇게 호의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지. 왜냐하면 네 녀석은 지금 능력을 인정받았거든.]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 고작 십 대의 나이로 엄청난 무공을 보유한 채 천지를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 무려 2개나 되는 칠요의 봉인을 몇 년 사이에 풀어버렸지. 이미 신화의 영웅으로 취급받아도 이상하지 않아. 천계는 지금 지상세계에 마땅한 인재가 없으니 네 녀석을 유용한 장기말로 써먹으려 드는 게 정상이다.]
"......"
내가 그 정도로 인정받았다는 건가.
왠지 기분이 좋아서 히죽 웃자 제갈사가 퉁명스레 말했다.
[ 좋아할 거 없다. 지금 이건 밑밥깔기에 불과해. 황궁부터 쓰러뜨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을 거다.]
"아, 그래..."
[ 월요의 봉인은 지금 풀 수도 있겠지만 우선 놔둬라. 네 힘이 월요로 인해 급격히 상승하면 교주가 바로 눈치 챌 거다. 나중에 교주와 싸울만한 국면이 찾아오면 그 때 월요의 힘을 해방시키는 게 좋아.]
그렇게 앞으로의 방침을 정해 준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자, 이제 뭘 하면 되는 줄 알겠냐?]
"뭘 하면 되는데?"
내가 기대에 차서 되묻자 제갈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 이혼대법 수련이나 해라. 멍청아.]
"......"
기대한 내가 바보지.
나는 사불상을 타고 월요를 남쪽 대륙으로 가져가서 큰 바위 밑에 묻어버렸다. 이렇게 해 두면 누가 훔쳐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는 뇌신류 호법사자의 삶으로 복귀해서 때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이혼대법 수련을 했다.
교주는 현재 독고준, 한백령, 독고성 등과 함께 열중해서 폐관수련을 하는 중인지 더 이상 내게 삼보절기를 가르치지 않았다. 나는 다소 아쉬웠지만 제갈사의 말마따나 이혼대법 수련만으로도 할게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대략 석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
교주는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 백웅. 황궁에서 사절이 왔다.]
"무슨 사절이었습니까?"
[ 교환에 응하는 사절이었지. 그래서 칠 주야 후 낙양 목문교(木?橋)에서 만나서 황궁의 인물들과 교섭을 하게 될 것이다.]
"......"
역시 제갈부가 죽으면서 제갈유룡은 모든 제약을 씹어버리고 독자적인 선택을 한 모양이었다. 석 달이라는 시간동안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이유는 아마 제갈부를 수정석비와 초상기인의 힘으로 되살려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낙양은 적의 본거지입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 위험하겠지만 나는 갈 생각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누구도 날 위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꾸한 교주가 내게 말했다.
[ 백웅. 너도 나를 따라와라. 가서 황궁 놈들을 모두 쳐죽이는 것이다.]
역시 목적은 그거였나. 나는 은근슬쩍 발을 뺐다.
"제 실력이 부족해서 그 싸움에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습니다만..."
[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
되려 인정하니까 속이 쓰렸다. 하지만 이어진 교주의 말에 그걸 신경쓰지도 못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 그러니 내일 백웅 네게 천령단을 부여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