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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86화 (386/1,615)

00386  천계(天界)  =========================================================================

선지자의 거래가 끝나고 나서 나는 독고성의 대답을 듣기 위해 용왕곡으로 향했다. 지금 당장 사불상을 타고 서역으로 가도 되겠지만, 문제는 금요가 있다는 성지가 어떤 장소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불상은 내가 가본 적 없는 곳이라도 갈 수 있으나 방금 전에 사불상에게 물어보자 대답은 이렇게 들려 왔다.

[ 성지 팔리아스라는 곳은 이 세상에 없다.]

"뭔 소리야?"

[ 천계의 이목이 닿는 곳에는 없다는 소리다. 그럼.]

사불상은 그렇게 이동을 거부해 버렸다.

' 금요의 봉인지가 이 세상에 없다고?'

제갈사는 내가 생각하고 있자 말을 걸어왔다.

[ 마법사와 연금술사의 본거지라고 했지. 그럼 당연히 금요같은 귀중한 비보(秘寶)를 이계에 봉인시켜두고 지키고 있을 거다. 그런 장소는 천계에서도 정보가 없을 수밖에.]

[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 어떻게 하긴. 해당 문두스에 대한 정보를 아는 마법사를 찾아내는 수밖에.]

[ 문두스?]

[ 서역 놈들은 세계를 문두스로 구분한다.]

그렇게 대꾸한 제갈사가 퉁명스레 말했다.

[ 금요는 당장 생각할 필요 없다.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하는 건 백련교니까 그건 나중에 파고들어라.]

[ 알았어.]

나는 소면과 닭고기를 시켜먹고 아침 동이 틀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차분하게 기와 체력을 회복한 후 독고성을 만나러 갔다.

용왕곡 내부로 들어오자 독고성이 우뚝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백련교로 돌아가겠다."

"잘 생각했소."

"......"

그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질문했다.

"백웅. 너는 교주가 천하를 통일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의 질문이 어떤 의도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제갈사가 가만히 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냥 내 의견을 밝히면 되는 국면인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대꾸했다.

"적어도 지금의 황제보다는 나을 거요. 지금의 황제는 더없는 암군이며, 인간을 거리낌없이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치고자 하는 악한이오. 백련교주는 음흉하지만 그 나름대로 절제력이 있으니 도를 넘지는 않겠지."

"정말 그럴까?"

"응?"

독고성의 반문에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독고성은 복잡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나는 숙부를 오랫동안 봐 왔다 생각하지만 그의 한계나 성품을 아직도 재단할 수 없다. 그가 절대적인 무적자(無敵者)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어떤 행동을 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어."

"무슨 말이 하고싶은 것이오?"

"나는 언제든 때가 되면 숙부의 등에 칼을 꽂을 생각이네."

무시무시한 소리를 태연하게 한 독고성의 안광이 날카롭게 빛났다.

"자네도 앞으로 나를 도와줬으면 하네."

나는 그 말에서 독고성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 언제가 되었든 내가 교주를 배신할 거라고 생각하는거군. 그리고 그 때 자신과 연수하기를 바라고 있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대꾸했다.

"물론이오. 하지만 그 때까지는 백련교에 충성하길."

"알겠다."

나는 대화가 끝난 후 독고성과 함께 백련교로 귀환했다.

파앗

독고성을 데리고 교주전으로 향한 나는 이윽고 교주를 볼 수 있었다.

"교주! 임무를 모두 수행했습니다."

알현실에서 발 너머로 이쪽을 쳐다보던 교주가 육합전성을 보냈다.

[ 성이를 데려왔군. 서찰은 전달했는가?]

"네! 확실히 전달하고 왔습니다."

[ 잘 했다...]

교주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 성아. 나는 네가 나를 도우러 와 줘서 기쁘구나.]

독고성은 우묵한 눈으로 발 쪽을 쏘아보다가 대꾸했다.

"교주. 나는 당신이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을 잊지 않고 있소."

[ 그런가...]

"나 뿐만이 아닐 것이오."

교주는 그 말에 피식 웃는듯한 기색이었다.

[ 후후... 글쎄... 나도 뇌신류가 복수하는 날이 기대되는군.]

"......"

[ 허나 지금은 아니다. 너는 앞으로 내 연구를 도와줘야 할 것이다.]

그렇게 단정지은 교주가 내게 말했다.

[ 성이와 할 얘기가 있으니 나가 있어라.]

"존명."

[ 오늘은 더 부르지 않을테니 자유행동을 하도록.]

나는 알현실에서 나와서 뇌신류의 건물로 향했다. 그리고 간만에 피로한 몸을 쉬려고 들어섰을 때 누군가가 방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 말했다.

"간만이구나."

"한백령..."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은 화신류의 호법사자인 한백령이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들어온 그녀는 흑발을 자신의 목 뒤로 쓸어넘기며 말했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왔다. 차 한 잔 정도는 대접해 줄 수 있겠지?"

"......"

"사람은 부르지 마라."

나는 그녀가 왜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화는 해서 나쁠 게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나는 차를 달였다.

달그락

이윽고 한백령과 마주앉자 한백령은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말했다.

"백웅. 풍신류 놈들을 끌어안고 있을 필요 없다. 놈들을 그냥 추방해 버려라."

"......!!"

"어차피 네 소유였으니 교주도 아무 말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린가?

난데없이 풍신류를 내치라는 말에 나는 한백령의 꿍꿍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눈썹을 꿈틀거리며 반문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요?"

"쉬운 얘기다. 풍신류를 데리고 있는 건 백해무익한 일이란 소리지."

나는 힐끔 주변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경솔하군. 밤 말은 쥐가 듣는 법인데 왜 함부로 여기서 그런 얘기를..."

그러자 한백령이 피식 웃었다.

"본녀가 그리 바보인 줄 아느냐? 이미 기로 방어막을 쳐 둬서 누구도 우리 얘기를 듣지 못한다. 구질구질하게 전음으로 대화하는 게 싫어서 이렇게 해 뒀다."

"음!"

자세히 주변의 기를 살펴보자 확실히 거대한 기의 흐름이 주변을 원형으로 감싸고 있었다. 소리를 차단하는 공능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런 공간을 만들고자 하면 일반적인 무림인의 상식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내공이 필요했다. 이것도 한백령이 천령단의 주인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리라.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왜 백해무익한 일인지 설명해 주시오."

"교주는 용비천을 쳐서 없앴으나 아직도 풍신류는 멸망한 게 아니다. 용비천의 후계자이면서, 풍신류의 2인자인 용중일이 아직까지 중원 구파일방 황산파의 장문인으로 건재한 상태지."

"음..."

"용중일의 지혜와 계책이라면 백련교 내에 있는 풍신류와 내응해서 골치아픈 일을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화근의 싹을 미리 백련교에서 내보내자는 말이오?"

"그런 거지."

"......"

용중일!

내가 봤을 때 천령단을 제외하고 본다면 그의 무예경지는 도리어 용비천보다도 높았다. 남궁세가를 맨손으로 쓸어버렸던 진소청조차 그를 상대할 때 큰 각오를 해야할 정도였으니, 일반적인 초절정고수와는 비교도 안되는 진경에 이르러 있으리라. 게다가 무력은 물론 지혜와 심계, 신중함까지 갖추고 있으니 용중일이 생존해있는 이상 풍신류는 아직 멸망하지 않은 셈이다.

한백령의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녀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말했다.

"말이야 맞소만 왜 그걸 내게 직접 알려주러 예까지 온 것이오? 그런 일은 교주께서 필요하다면 내게 명령하실 거요."

"교주께선 칠대절학의 연구에 정신없이 바쁘신 상태지. 그런 사소한 일을 미리 처리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

"후후, 의심이 가득한 눈빛이군."

한백령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 이건 그냥 권유이며 서론에 불과해. 진짜 얘기는 지금부터다."

"무슨 얘기?"

"백웅. 너는 천령단을 얻는다면 향후에 교주를 넘어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느냐?"

"으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는 대꾸했다.

"아마 힘들겠지. 교주의 원영신이 천령단보다 훨씬 우위에 있으니..."

"또한 교주가 수신류에 여러 명의 천령단 보유자를 두고 있다는 것도 정보를 입수했다."

"......"

"백웅... 본녀는 네게 아주 큰 부탁을 하려고 여기에 왔다."

이윽고 한백령이 형형한 눈빛으로 말했다.

"만일에... 교주가 폭주한다면... 그를 멈춰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약점을 알고 싶지 않느냐?"

"......!!"

나는 이게 진짜 이야기라는 걸 알아챘다.

교주의 약점!

한백령은 그걸 알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침음성을 흘렸다.

"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그러자 한백령은 실망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빼는 걸 보니 오늘은 대답해 줄 생각이 없나 보군."

"아니 그게 아니라..."

한백령은 의자에서 일어나서 홱하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중이라도 좋다. 내 제안이 끌린다면 대답을 해 주길 바라겠다."

파앗

한백령은 순식간에 불꽃처럼 사라져 버렸다. 어느 새 주변에 쳐져 있던 기의 방어막도 해제된 상태였다. 난데없는 한백령의 방문에 내가 멍청하니 서 있자, 그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 뭐, 무난하군.]

[ 한백령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게 좋았을까?]

[ 아니. 방금은 네 대응이 맞았다. 저 년도 상당한 능구렁이라서 첫 만남에서 뭐가 이뤄질 수는 없지.]

[ ... 교주의 약점이라...]

제갈사가 클클 웃었다.

[ 풍신류가 숙청당하는 걸 보고 남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걸. 용비천이 했던 말, 기억하고 있지?]

[ 물론.]

[ 용비천만 그렇게 생각했을까? 한백령이라고 해서 교주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겠냐? 저 능구렁이는 몇 배나 불안해했을 거다.]

[ ......]

일리있는 말이다.

[ 한백령은 용비천처럼 외부에 손을 뻗은 게 아니야. 그 대신에 수십 년 동안 교주를 곁에서 관찰하면서 약점을 찾고 있었던 거다. 그게 저 년 나름의 대책이었겠지.]

[ 그렇다면 한백령이 교주의 약점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냐?]

[ 십중팔구는. 이렇게 직접 몰래 찾아왔을 정도면 계책을 쓰러 온 건 아니다. 네 녀석이 현재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크나큰 변수라고 직감했기 때문에 진실성있는 얘기를 하러 온 거다. 남한테 시킬 수 없는 일이라는 거지.]

[ 흐음.]

제갈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 한백령은 또다시 직접 찾아오진 않을 거다.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네가 그쪽에 접촉해야 해.]

[ 언제쯤 하는 게 좋을까?]

[ 얼마 후 황궁에서 사절이 올 때가 좋겠지. 그 때 교주의 신경이 분산될 테니까.]

[ 그것도 궁금한 점이 있는데.]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 정말 제갈부 놈을 그 정도로 협박해도 뒷탈이 없는 거냐? 난 지금도 불안하다고.]

제갈부는 무명제사서에 추적술을 걸어두었기에 내가 무명제사서를 가지고 갔을 때 아스타나의 선지자에게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추적술을 연계해서 지금 내 위치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지금의 나라도 제갈부와 싸우는 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 제갈사가 클클 웃었다.

[ 그 놈도 이혼대법의 위력을 알고 있다. 자신이 이혼대법에 걸렸다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란 것쯤은 파악했지. 하물며 음양천고까지 걸려있는 상태라면 절대 주작 제갈유룡에게 자신의 상태를 말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멍청한 놈이라면 실낱같은 가능성에 기대겠지만 그 놈은 똑똑하기 때문에 도리어 섣부른 짓을 하지 않겠지.]

[ 당분간은 괜찮다는 거군.]

[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그 놈은 이제 네 놈의 노예나 다름없다. 앞으로도 팍팍 써먹으면 돼.]

제갈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 그래. 이혼대법을 써서 놈과 감각을 공유해라. 그게 좋겠군.]

[ 지금?]

[ 해 봐.]

[ 그러지.]

스스스

나는 이혼대법의 기운을 끌어올려서 수천 리 밖에 있는 제갈부의 백과 감응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백의 기운이 강렬하게 피부에 와닿게 되자, 나는 제갈부의 감각이 내 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침착하게 감각이 공유될 수 있도록 정신을 집중하자 일체감이 덧씌워지는 게 느껴졌다.

[ 시각... 청각... 여기까지군. 후각과 촉각까지 제대로 공유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어.]

그랬다. 나는 지금 수천 리 밖의 제갈부가 보고 듣는 것을 같이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제갈부의 시선인 것이다.

제갈부는 웬 산길을 걷고 있었다. 약간 험준한 절벽을 오르고 있는 제갈부는 수행원을 대동하지 않은 듯 했다. 좀 더 윗산에 오르자 기온 때문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새하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 여긴?'

왠지 익숙하다.

그렇게 약 반 시진이 지났다. 발걸음을 멈춘 제갈부는 허공에 부적을 날리더니 갑자기 일갈을 했다.

"개(開)!"

파앗

그러자 허공에서 반투명한 막이 잠시 일렁이더니, 놀랍게도 끊겨있던 절벽에 새로운 길이 생겨났다! 제갈부는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고 한 식경이 지나자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기이한 제단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제갈부가 제단에 앉아 있는 인물을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버님. 백련교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가만히 앉아있던 괴인이 힐끔 제갈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이가 갈리는 걸 느꼈다.

주작 제갈유룡!

제갈부 놈은 태산에 있는 주작을 찾아온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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