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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83화 (383/1,615)

00383  천계(天界)  =========================================================================

천령단의 댓가가 그 정도였다니!

' 무섭군.'

선지자 또한 이족이라서 잔혹함이나 어두움에는 익숙할텐데도 '미친 짓'이라고 표현할 정도면, 천령단을 얻은 존재에게 기다리는 말로는 파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다시금 질문했다.

"그렇다면 원영신이라는 건 뭐지?"

[ 네 말대로라면... 그건 태극과 사상... 그 모든걸 조율할 수 있을 정도의 무한의 내공... 가공할 혼돈의 힘을 받게 되는 것인데... 확실히 일개 인간 필멸자에게 내려지기는 과분한 힘이다... 나는 비슷한 것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뭐... 그 계약부터가 생각하기 힘든 미친 조건이긴 하지만...]

그렇게 대꾸한 후 잠시 고민하던 선지자가 말을 이었다.

[ 그 백련교주란 자는... 천령단 뿐만이 아니라 이중계약을 했음이 틀림없군...]

"이중계약?"

[ 확실한 건 모른다... 그러나 원영신이란 힘은... 천령단의 댓가로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의 힘... 네 말대로라면 사도의 영역에 이른 힘이 아닌가...?]

"그래."

나는 바로 긍정했다. 백련교주가 달기와 싸울 때의 위용을 보면 확실히 그 정도는 되었다. 비록 객관적으로 보면 달기보다 약할지 몰라도, 달기의 주술보호가 없는 상태라면 싸울만한 수준인 것이다. 백련교주의 힘은 신의 사도급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 당연히 그만한 댓가... 그만한 계약... 그만한 제물이 있을 것이다... 그래야 신이 필멸자에게 힘을 내려주기 때문이지...]

"......"

[ 그것이 바로 인과율이다...]

인과율에 의한 계약. 그렇기 때문에 신과 정상적으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잠시 후 제갈사의 말대로 재차 질문했다.

"당신은 내가 전생자라는 걸 알고 있지. 그러면 천령단의 단말을 붙였을 때 그게 다음 전생에 이어질까? 그리고 절연의 언령으로 천령단을 인위적으로 없앨 수 있겠나?"

[ 귀찮은 걸 질문하는군...]

"부탁이야. 꼭 알아야 해."

[ 단말이라는 건 인과율의 일부로 작용하는 인연(因然)이다. 인지할 수 없는 극도로 작은 끈이 언제나 이어져 있는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 전생에 이어져서 계승될 확률이 높고... 절연의 언령은 그 실을 자를 수 있기 때문에 단말을 없애는데 성공할 확률도 높다...]

나는 미심쩍어서 대꾸했다.

"확률? 확실치 않다는 건가?"

[ 말했듯이 천령단의 계약 자체가 수신의 마도서를 멋대로 곡해해서 만들어놓은 비정상적인 노예계약...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또한 굳이 조언을 해 주자면... 절연의 언령으로 천령단을 없애는 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시도하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

"어째서?"

선지자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말했다.

[ 내가 예측한 게 사실이라면... 천령단의 계약에 관여한 [옛 지배자]가 그리 쉽게 먹잇감을 놓아줄 리가 없지... '아버지'라는 존재는 워낙 초월적이라 도리어 무의미하다고 쳐도... 해신이 계약에 의한 자기 먹잇감을 놔줄 리가 있겠나...?]

나는 그의 말 뜻을 깨닫고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령단의 계약이 끊어진 순간 해신이 개입할 수도 있다는 건가?"

[ 개입할 필요도 없지... 그냥 무한의 내공만 사라지고... 계약채무만 고스란히 남아서... 사후에 영혼을 뜯기게 될 뿐... 개입하게 되면 더 최악일테고...]

"으윽."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 이 정도면 천령단은 그냥 포기해야겠어.'

알고보니 현세에 무적의 힘을 얻는 댓가로 모든 것을 잃는 미친 노예계약이었다니! 이런 걸 도저히 내 몸에 이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식한다 하더라도 해신을 어떻게 할 수 있을만한 힘이 없다면 절대 무리였다. 괜히 교주가 '속여서' 천령단을 호법사자들에게 나눠준 게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 칠요를 얻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심 앞으로 백련교에 더 집착하지 않고 칠요의 획득에 좀 더 신경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자 선지자가 말했다.

[ 이번엔 내 쪽에서 제안하지... 수신의 마도서는 나로서도 흥미가 있다... 네가 그걸 내게 가져와 준다면 한 가지 부탁을 들어 주겠다...]

나는 황당해서 대꾸했다.

"내가 전생자라는 걸 알고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 당신은 손해보는 셈인데."

[ 그렇지... 앞으로 네가 전생을 거듭한다면 내가 앞으로도 손해볼 수도 있겠지... 아니... 이미 손해를 본 적이 있었겠지...]

문득 선지자가 웃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탓일 확률이 높았으나 어찌된 일인지 선지자는 굉장히 여유로운 기색이었다.

[ 하지만... 어차피 그건 내가 알 바 아닌 일이다...]

"뭐?"

[ 네가 굳이 나를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다... 댓가나 가지고 와라.]

"알았다."

파앗!

나는 선지자에게서 물러나서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거래할만한 교섭재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불상을 타고 용왕곡 골짜기 앞에 도착해서 내린 후,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방금 전에 선지자에게서 들었던 정보를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했고 독고성을 만나기 전에 마음을 정비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 알 바 아닌 일이라고?'

이족은 인간과 사고방식이 다른 것인가?

아니면 내가 뭔가를 착각하고 있나?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제갈사가 말했다.

[ 이걸로 확실해졌군. 황궁이든 백련교든 둘 다 이족의 신을 숭배하는 교단(敎團)이라고 볼 수 있다. 네 녀석이 앞으로 신과 밀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지.]

"십이율도 아마 그럴테고 말이야."

[ 십이율은 뭔가 확실치 않다. 십이율주라는 놈은 단순히 신의 힘을 사용하는 제사장이라기엔 뭔가 달랐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제갈사가 내게 말했다.

[ 백웅. 이제 이걸로 네놈이 전생하면서 무공에 집착할 이유는 없어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지 않냐?]

"......"

[ 무공수련은 삼보절기를 끝으로 접어도 괜찮다. 더 이상은 시간낭비야.]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제일 정곡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찔렸기 때문이다. 나는 바위 위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렇긴 하지."

인세 최강의 무공을 지니고 있던 백련교주와 호법사자, 그들도 결국 마도서를 이용한 계약으로 신의 힘을 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을 상대하는 나로서도 결국 신의 힘을 써야만 대적할 수가 있고, 그건 무공과는 동떨어진 영역이 되고 말 것이다. 게다가 내 처참한 무공의 오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

[ 호오. 왜 그렇지?]

"망량이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망량이 제시한 길이 있었고, 망량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회상했다.

[ 네. 사실상 그를 키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래가 없습니다.]

[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생은 현실입니다. 앉아서 죽어줄 수만은 없죠. 그래서 신과 싸워서 이길 가능성을 최소한 갖춰야 하는데, 저는 그게 바로 진소청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는 분명히 백련교주를 뛰어넘을 겁니다, 언젠가는요. 또한 진소청을 키우는 건 백웅을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진소청!

망량은 내 18번째 생에서 검마와 함께 작전회의를 하면서 진소청을 언급하며 향후 그를 키워야 신에게 대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물론 검마도 너무 허황된 소리라고 내심 생각했지만, 망량이 워낙에 호언장담을 하기에 그냥 듣고 넘어갔었다.

내 순간적인 기억을 읽었는지 제갈사가 황당해했다.

[ 엉? 너 무슨 생각 하냐? 정말로 현이 말을 그렇게까지 신뢰한다고?]

"그래."

[ 무슨 근거로? 진소청이 무슨 근거로 백련교주를 뛰어넘는다는 건데? 물론 진소청의 재능이야 무림제일이라 할 수 있지만 백련교주는 이미 대라신선급 경지에 도달한 존재다. 재능이고 자시고 백련교주가 훨씬 압도적인 존재다. 100이면 100전부 비교대상으로도 삼지 못해.]

제갈사의 말은 지극히 옳았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나는 망량을 믿어."

[ 믿는다고...]

"망량은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전생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과정을 지켜봐 왔던 존재야. 그리고 그런 망량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게 있었다고 생각해. 나는 그 망량의 직감을 믿고 있을 뿐이야."

잠시동안 제갈사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 웃기는군 진짜... 믿는다니...]

왠지 투덜거리던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그래 그 예측이 사실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래봤자 강해지는 건 진소청이지 네놈이 아니다. 또한 거기까지 키우기 위해서 도대체 몇 번 죽어야 할지 예측할 수 있나? 진소청을 키운답시고 나대다가 적어도 30번은 죽는 게 눈에 훤한걸.]

"윽..."

나는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우물쭈물하면서도 대답했다.

"여동빈은 뭔데?"

[ 엉?]

"여동빈과 장삼봉은 백련교처럼 신과 계약을 하지 않고도 자력으로 무공의 극의에 도달해서 투선으로 등선한 존재들이야. 인간으로서도 신만큼 강해질 수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거야. 그리고 진소청은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 한 번 시도해 볼 만 하잖아. 칠요를 찾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그 기나긴 시간 동안에 도전해볼만 한 일이야. 그러니까 망량이 말한 걸테지."

나는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합리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인지 제갈사도 별로 비웃는 기색 없이 대꾸했다.

[ 호오... 말이야 맞다만 천계 자체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는 게 문제다.]

"천계가?"

[ 지금의 대국을 봐라.]

운을 띄운 제갈사가 말했다.

[ 이제 네놈이 독고성을 등용하고, 황궁과도 모종의 이야기를 한 직후부터 교주는 적극적인 실력행사에 나설 거다. 풍신류를 숙청할 정도로 자신의 힘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겠지? 그리고 황궁이 시일이 지날수록 강해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 속전속결로 황궁부터 부수려 할 게 뻔하다.]

"으음... 그렇겠군."

[ 여기서 문제. 황궁과 백련교가 박터지게 싸우면 천계는 보고만 있을까? 넌 이미 그게 아니란 걸 알고 있을테지.]

"......"

나는 이를 악물었다.

"또... 천계에서 미호를 이용하려 든다는 거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난데없이 월요를 각성시켜서 월요의 주인이 된 채 황제를 토벌하러 온 천계의 사자 미호! 그렇다면 이번에도 미호를 적으로 만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리라.

[ 그럴수도 있고, 또 다른 자객을 마련할 수도 있지. 너도 알다시피 네가 전생할 때마다 주변상황이 달라져서 어떤 인과율의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천계가 중간관리자라고 하지만 인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많아.]

그렇게 대꾸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네 녀석은 전생을 하는 동안에 가장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뭘 놓쳤단 말이냐?"

[ 봉선의식이 성공리에 끝나든, 황궁과 백련교가 결판을 내든 어느 쪽이든 지상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거대한 사건이다. 안 그렇냐?]

"그렇지."

후자의 경우는 승리한 쪽이 모든 걸 얻어서 몇 배나 강력한 세력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 그런데 왜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지금까지 전생하는 동안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걸까?]

"......!!"

나는 깜짝 놀랐다.

'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생각도 못 했다. 황궁이 엄청난 힘을 얻게 되면, 오백 년 후의 멸망을 최대한 유예하려 하는 천계의 입장에서는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할 텐데 왜 최강의 존재이자 신적 존재인 삼황오제가 직접 나서거나 강림하지 않는 것인가?

마치 남의 일이라는 양, 내가 봉선의식에서 부르자 그제서야 밍기적거리며 삼황오제 전욱이 나온 게 전부였다. 그것도 전욱은 지상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물어보는 말에만 대답을 해 주고 가 버렸다. 천계와 삼황오제가 같은 편이라면 거의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무관심한 태도였다.

[ 또 하나. 삼황오제는 천계에 있는 게 확실한가?]

"그게 무슨 소리야?"

[ 아무리 신적인 존재라서 시공간을 초월한다고 해도 그 존재가 거할 장소는 반드시 필요하다. [옛 지배자]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일인지라 삼황오제도 당연히 자신들이 거처할 궁(宮)이 필요하겠지. 그러나 지선 망량의 기억을 들여다보아도 천계에서 삼황오제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

[ 이건 아주 중요한 정보야. 그리고 어쩌면 터무니없는 진실이 숨겨져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중얼거린 제갈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 백웅. 답은 칠요다. 무공이든 술법이든 신의 경지에 오르고자 하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네 녀석은 이번 생에 바짝 엎드려서 최대한 힘을 비축하고, 백련교의 일통을 뒤에서 지켜봐라. 그리고 나중에는 백련교주의 힘을 빌어서 칠요를 찾는 거다.]

"그것밖에 답이 없나..."

나는 고민스러워졌다. 물론 머리로야 제갈사의 말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당연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망량의 직감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나도 수단방법 가리지 않겠어."

[ 흐흐... 뭐 그 방법이 좋을 거다.]

내가 머릿속에 떠올린 계책을 읽었는지 제갈사가 맞장구를 치고는 말했다.

[ 그럼 슬슬 독고성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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