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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72화 (372/1,615)

00372  천계(天界)  =========================================================================

그 날, 뇌신류의 종사이자 호법사자인 이청운은 본의아니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고민은 다름아닌 수신류의 현실을 알게 된 상황에서 자신의 거취를 어떻게 정하냐는 것이었다. 이청운은 자신의 방에서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 교주를 막아야 한다.'

교주는 극악(極惡)한 자가 아니다. 다만 그가 택한 방법은 한없이 극악해질 수가 있다 - 그렇기에 이청운은 교주의 행보에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중이었다.

더욱이 천령단!

천령단이라고 하는 무한의 내공은 본디 백련교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던 게 어느 순간 백련교주의 주도하에 각 사대무류의 종사들에게 주어졌고, 이청운 또한 천령단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무한의 내공을 손에 넣은 이청운은 기쁘기보다는 껄끄럽기만 했다.

이 천령단은 신(神)의 힘이다.

인간의 무예가 아니다.

그렇다면 - 언제든지 신의 뜻에 의해 사라져버릴 수 있는 불안정한 힘이 아닌가?

신에게 모든 것을 맡겨도 되는 것인가?

그리고 신과 교류하는 역량이 가장 뛰어난 것은 현 시점의 백련교에서 교주 한 사람 뿐이었다. 교주가 해석해낸 기이한 경문이 천령단의 힘을 불러일으켰다는 건 사대무류의 최고간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뇌신류의 그 어떤 술법사도 그 경문에 대해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런고로 교주가 폭주하면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의심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주를 쳐도 되는 것일까?

문제는 현 시점에서 이런 의심과 불안을 지닌 건 백련교 내에서 오직 이청운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동조해줄 자가 없다면 이런 생각을 털어놔봤자 시덥잖은 반역밖에 되지 않으며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스승님."

이청운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밖에서 그를 청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청운은 눈을 뜨며 대답했다.

"들어오너라."

드륵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그의 수제자이자 앞으로 뇌신류를 이끌고나갈 이광이었다. 그는 같은 연배의 동기 중에서도 특출나게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며, 무공의 연마에도 매우 성실했다. 또한 그가 뇌신류를 수련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이청운은 이미 가르칠만한 걸 다 가르쳤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실제로도 이광은 기본적인 뇌신류의 무공을 모두 완숙하게 익혔으며 상승절기도 익숙하게 사용할 정도였다.

이광은 이청운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정윤보와 오늘 대련해서 이겼습니다. 그걸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하하핫."

이청운은 그만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그는 한참을 껄껄 웃더니 말했다.

"이놈아, 진지한 얼굴로 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난 또 무슨 일이라고..."

"......"

"걱정하지 않아도 내 제자는 너 하나뿐이다. 윤보의 재능이 너와 대등하긴 하나 결코 그 아이를 제자로 거둘 일은 없지. 왜냐하면 종사의 자격에 더 가까운 건 바로 너이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설명해주지 않았더냐?"

"죄송합니다."

"하하하."

이청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 조금 자제시켜야겠군.'

자신의 제자 이광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든지 침을 흘리고 탐낼만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나 경쟁심리와 집념이 매우 강했다. 그는 자신의 동기인 정윤보가 자신을 위협할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자 온힘을 다해서 경쟁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는 종사의 제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격차가 컸지만, 이광은 이청운이 정윤보도 제자로 거둘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정윤보도 물론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라서 이광과 으르렁거리면서도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다. 그게 도리어 이광과 정윤보의 실력을 동시에 절차탁마시키는 셈이었기에 이청운은 그저 두고보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청운이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종사란 무엇이냐? 바로 뇌신류를 이끌고가는 존재를 의미하며, 만에 하나 백련교주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그의 위치를 대리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자다. 그러므로 종사는 실전용 무공은 물론이고 제사의식과 제례무공도 모두 알고 있어야 하지."

"......"

"정윤보는 뛰어난 권법재능을 지니고 있으나 뇌신류 검술에는 영 재능이 없으므로 제자로 거둘 수 없다. 반면에 이광 너는 무엇이든 다 잘 익히는 편이지. 너는 이미 뇌신류 검술의 상승경지에 도달해서 뇌신검무의 초식을 모두 자유자재로 쓸 수 있지 않느냐?"

"... 그것때문에 여쭤볼 게 있습니다만."

이광은 조심스럽게 이청운에게 질문했다.

"뇌신검무는 너무 약하지 않습니까? 제례용 무공을 따로 놔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흐음... 또 그 질문이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뭐가?"

이광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뇌신류의 검술은 창술에 비해 실전성이 과하게 떨어집니다. 실전의 극강함을 추구하는 뇌신류와 어울리지 않는 무공을 익히는데 인재들이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요?"

"내가 전에 그걸 네게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구나."

탄식한 이청운이 말을 이었다.

"뇌신검무를 익히다가 천뢰지경에 이르면 검뢰를 쓸 수 있는데, 이때부터는 창술과의 차이가 많이 좁혀지게 된다. 그리고 뇌신검무가 의념절기를 넘어서 더욱 극한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 때였다.

[ 이청운 호법사자! 교주께서 부르시오.]

후우웅

육합전성과 함께 거대한 기가 용솟음쳤다. 바깥에서 흘러나오는 기의 폭풍을 느낀 이청운은 힐끔 그 쪽을 바라보더니 빠르게 멸혼보를 써서 몸을 옮겼고, 이윽고 바깥의 정원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청운은 의외였기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독고준? 교주가 날 부른다고? 무슨 일이오."

그랬다.

이 자리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은 수신류의 호법사자이자, 교주의 수제자라 불리는 독고준이었다. 독고일족 중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존재로서 수신류의 무공을 거의 다 익혔다고까지 칭해지고 있었다. 독고준은 황금용 가면을 쓴 채 우묵한 안광을 흘리며 육합전성을 보냈다.

[ 예전에 교주께 천령단과 경문에 대해 의견을 올리신 적이 있지 않소?]

이청운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랬지."

[ 교주께서는 그대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 주시기로 했소. 나를 따라 오시오.]

"......"

이청운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것은 차라리 엄습해오는 육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래서 그는 독고준을 한 번 떠 보았다.

"당신은 천령단을 얻고 나서는 줄곧 전음이나 육합전성밖에 쓰지 않는구려. 왜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거요? 이 거리면 그냥 말을 해도 다 들리는데."

[ ......]

"공력낭비가 과하시군. 천령단이 아무리 무한의 내공이라지만..."

이청운이 이죽거리자 독고준이 대꾸했다.

[ 쓸데없는 탐색은 하지 마시오. 나와 당신이 그런 얘기를 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잖소?]

"같은 호법사자끼리 그 정도도 말 못해주는 건가?"

[ 교주의 명은 지엄하오.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는 게 모두 불경한 일이오.]

"흠... 그러면 갈 수밖에."

이청운은 입맛을 다셨다. 마음같아서는 시건방진 독고준을 때려눕히고 싶었지만, 때릴만한 명분이 없었다. 실력으로야 열 번이라도 눕혀버릴 수 있으나 그렇게 되면 교주에게 항명을 하는 것과 동시에 수신류와의 전면전이 되는 것이다.

이청운이 이광을 쳐다보며 말했다.

"제자야."

"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뇌신류를 부탁한다."

잠깐이겠지만.

이청운은 자못 장난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이광은 진지하게 포권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휘이익!!

이윽고 독고준을 따라서 이청운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교주전에 이르자, 그 곳에는 독고준의 말대로 교주가 있었다.

"음...?"

이청운이 이상함을 느껴서 주변을 둘러보자 백련교주가 말했다.

[ 이청운. 원로원은 모두 물렸네.]

"웬 일이오? 친위세력을 스스로 떨치다니."

[ 왜냐하면 자네의 질문에 성의있게 대답하고 싶어서지. 원로원이 옆에서 잠복하고 있으면 자네가 나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겠는가.]

"좋은 자세요."

이청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으나 내심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교주는 늘 원로원 고수들을 호위로 붙였으며 떼어놓지 않았다. 일신의 무력이라면 교주가 훨씬 위이지만 암살자가 노리고자 하면 방법이 수없이 많았기에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과거 백련교주가 교주위에 오를 때 많은 암살자들이 그의 목을 노렸던 일과도 관계되어 있었다.

백련교주가 덧붙였다.

[ 그리고 이젠 딱히 호위가 필요하지 않기도 하고.]

"......"

이청운은 그 말을 듣자 백련교주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뭔가를 깨닫고 침음성을 흘렸다.

"원영신을 이루었구려!"

교주는 놀란 모양인지 몸을 흠칫했다.

[ 과연... 자네는 불가일세의 천재일세. 일견에 그걸 알아채다니.]

"나야말로 놀랐소. 그건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경지인데..."

대꾸하는 이청운은 속으로 질려하고 있었다.

' 미친 놈! 정말로 원영신을 이뤘다고?'

원영신!

그것은 백련교주가 세운 독자적인 무공체계였다. 천령단은 원신(元神)에 이르는 길이지만, 원신 그 자체가 아니라 중간과정에 불과하다. 종래에는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이 모두 열린 마음의 경지에 도달해서 무한(無限)한 힘을 얻고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 원신이라는 게 백련교주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이청운은 백련교주를 보자마자 그 원신이자 원영신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백련교주는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천령단의 몇 배에 이르는 가공할 힘이 태극(太極)이 되어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내부에서 무한히 순환하는 거대한 회로가 갖춰져 있으니 천령단의 힘을 압도할 수밖에 없었다. 똑같이 무한의 힘이라지만 원신은 내면의 소우주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태극은 물론 오행과 사상의 속성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구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련교주가 원로원의 호위를 마다한 이유도 명백해졌다. 원영신을 이룬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지상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심 이청운이 약간의 불쾌감을 느끼고 있을 때 백련교주가 말했다.

[ 이청운. 자네는 천령단과 원신의 힘을 불신(不信)하는 것 같더군. 천령단은 향후 본교를 수호하게 될 최강의 힘이라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의심하는 이유를 말해줄 수 있겠나?]

"그걸 물으려고 여기까지 부른 거요?"

백련교주가 손을 내저었다.

[ 다른 자였다면 그냥 무시했겠지. 그러나 자네는 최강의 무류인 뇌신류의 종사이자 호법사자이니, 나는 반드시 그 이유를 들어야겠네.]

이청운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천령단의 힘이 신의 힘이란 게 너무나 껄끄럽소."

교주는 반문했다.

[ 무슨 뜻이지?]

"백련교 천 년의 역사동안 사대무류는 서로 다투고 질시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본교를 지키는 일에는 다같이 한마음 한뜻이 되었소. 그리고 그 원동력에는 중원의 그 어떤 무예에도 뒤지지 않는 사대무류의 절세무공이 있었소. 그것은 우리 교도들이 쌓아올린 '인간의 힘'이었다고 생각하오."

잠시 말을 멈춘 이청운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신에게서 내려받는 힘이라는 건, 달리 말하자면 언제든 신의 뜻대로 사라질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오. 어찌 그런 힘을 함부로 신뢰할 수 있단 말이오?"

[ ......]

"또 그 힘의 댓가는? 당신은 우리에게 자세한 건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았소."

이청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백련교주가 무시무시한 힘을 손에 얻어서 사대무류의 종사들을 복종시키고 지존의 자리에 오르던 그 날, 교주의 몸 주변에 흐르던 불길하기 짝히 없는 힘을. 순수한 무(武)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괴이한 이질감을.

[ 흐음...]

교주는 이청운의 말을 듣자 골똘히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 하지만 자네는 천령단의 힘을 받아들였지. 그렇게 의심스럽다면 어째서 받아들인 거지?]

이청운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가 없잖소. 만에 하나 나머지 무류가 우리 뇌신류를 노린다면 천령단이 없다면 얘기가 되지 않소. 내가 뇌신류의 종사가 아니었다면 결코 천령단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오."

[ 그랬군. 어쩐지 그 날 이후로 자네가 비협조적으로 나온다 했어.]

"감상은 됐고, 그래서 이유를 들었으니 이제 어쩔 생각이오?"

이청운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교주가 힐끔 독고준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 이청운. 사실 자네의 의심대로일세.]

"뭐?"

[ 천령단은 불완전해.]

"......!!"

난데없는 교주의 말에 이청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인간의 수준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더 강력한 초월자를 상대할때는 독(毒)이 될 수밖에 없는 능력이지. 이제서야 밝히게 되어서 미안하군.]

이청운은 황당했다. 난데없이 이제 와서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이청운은 냉정을 잃지 않고 머리를 회전시켰다. 그리고는 교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차렸다.

' 나를 여기서 포섭하거나 죽일 생각이구나!'

그러면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교주의 진의는 무엇인가?

이청운이 생각하고 있을 때 교주의 말이 이어졌다.

[ 내가 지금 익히고 있는 원영신의 경지도 마찬가지지. 천령단의 제약은 한꺼풀 벗었지만 도리어 더 큰 굴레가 씌여버리고 말았다네. 내가 남은 시간 동안에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국 파멸하게 될 것일세.]

이청운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렇다면 당신은 나를 포함한 호법사자들에게 사기계약을 강요했다는 거요?"

[ 사기계약이라... 그렇진 않네. 말했듯이 천령단은 초월자를 상대할 때나 안좋은 능력. 인간을 상대로라면 무적에 가깝겠지.]

"하지만 당신은 천령단을 줄 때 그 제약을 이야기하지 않았소."

[ 그건 미안하군.]

이청운은 분노의 빛을 담은 눈으로 백련교주를 노려보았다.

"사람을 갖고 놀리지 말고 진의부터 얘기하시오. 나를 무엇때문에 부른 거요?"

[ 말했듯이 나는 오늘 자네를 솔직하게 설득하기 위해서 초대했네. 그래서 천령단과 원영신의 약점에 대해 말한 것이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니 귀담아 들어주게.]

"......"

이어진 말에 이청운은 경악했다.

[ 천령단과 원영신은 사실 모두 무생노모(無生老母)께 영혼을 제물로 바치는 대신에 얻는 힘이네.]

"뭐... 뭐라고?!"

백련교주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시립한 독고준은 이미 들었던 기색인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 제물이라고 하기도 뭣하지. 그분께선 인간에게 관심이 없으나, 우리가 알아서 그 분이 거하시는 혼돈의 옥좌에 스스로를 바치는 것일세. 천령단이나 원영신을 얻은 자는 사후에 무한한 어둠의 일부로 녹아들어가는 것이라네.]

"허허..."

이청운은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 설마 그 어둠으로 녹아들어가는 기분이...'

무생노모!

그것은 백련교에서 모시는 최고의 신위이자 신앙 그 자체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무파의 성격이 더욱 강해진 백련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진짜 신이라기 보다는 그저 신앙하는 교조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점에 무생노모니 제물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서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 그리고 천령단과 원영신을 만들어낸 경위는 바로 이 마도서(魔道書)일세.]

스윽

백련교주가 천천히 자신의 품에서 한 책자를 꺼냈다. 그 책자의 전면에는 한자가 아닌 괴이한 이족의 언어가 새겨져 있었다. 또한 인피(人皮)로 장정되어 있는 듯 했으며 묘한 습기가 맺혀 있었다. 이청운이 말없이 마도서를 쳐다보자 백련교주가 말을 이었다.

[ 우리 수신류에 전해지는 수신(水神)의 마도서. 이걸 본격적으로 해석해낸 것은 나의 선대였고, 나는 그 내용을 토대로 효과적으로 신과 계약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일세.]

이청운은 떫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미쳤군. 마도서라 함은 이족의 물건이고, 이족의 마법과 관련이 있는 것이오. 그걸로 만들어낸 사악한 주법(呪法)을 우리 호법사자에게 이식시켰다고?"

[ 쓰기 나름이지.]

교주는 고개를 저었다.

[ 말했듯이 천령단은 자네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네. 다만 수신의 주법에서 비롯된 만큼, 힘의 근원이 되는 암흑의 존재... 그 중에서도 해신(海神)이나 흉신(凶神)에게는 결코 항거할 수 없게 될 뿐.]

"......"

[ 해신의 권능을 매개체로 더욱 위대한 '아버지'의 힘을 빌리는 주법이라고 설명해 두지.]

정말로 교주는 미쳤다.

' 사신에게 우리 영혼을 팔아 넘겼단 말인가...?'

이청운은 진심으로 백련교주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휘돌았다. 지금까지는 그저 걱정과 불안에 불과했다면, 지금의 이 감정은 위기감이었다. 이족과 거래하며 호법사자들을 속인 사악한 자가 앞으로 어떤 짓을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청운이 침묵하자 백련교주가 말했다.

[ 달리 말하자면 이족과 충돌을 삼간다면 우리는 무림을 지배하고 나아가서 중원을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일세. 그러기 위해서는 이청운 자네의 전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네.]

"무슨 소리요? 당신에게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다고?"

[ 우리 수신류가 마도서를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네들 뇌신류도 무언가를 발전시켜 왔다는 걸 알고 있네. 그건 아마 뇌신류의 최종오의겠지.]

"......!!"

이청운은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드러내지 않았으나 내심 당혹했다.

' 이... 이럴수가. 저 놈이 최종오의 뇌신지혼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어찌 교주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단 말인가?

뇌신류 내에서도 자신과 이광만이 알고 있는 그 최대의 비밀을?

그는 저절로 이광의 얼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 광이가... 설마...'

교주가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 뇌신류 최종오의를 내게 가르쳐 주게. 그렇게 해 준다면 뇌신류의 무궁한 발전과 영화를 보장해 주고, 향후 교주 자리도 자네에게 넘겨주겠네. 원한다면 원영신을 습득하는 방법도 알려주지.]

"......"

[ 나와 거래합세, 이청운.]

이청운은 주먹을 꾸욱 말아쥐었다. 한참동안이나 침묵하고 있던 이청운이 말했다.

"속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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