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1 천계(天界) =========================================================================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뜬금없는 이청운의 말에 그를 경계하며 쳐다보자 이청운이 말했다.
"우선 자네가 재능은 없으나 의지와 심지가 굳고, 사악한 자가 아니라는 건 잘 알겠네. 자네가 부덕하고 잔인하고 오만한 자였다면 망량, 검마 같은 호걸들이 결코 자네를 도우지 않았겠지. 자네를 중심으로 싸워나갈 세력을 구축한 것만으로도 자네는 상당한 역량을 지닌 사나이일세."
나에 대해서 평가를 내린 이청운이 무심한 듯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것과 무공의 진경은 다른 거지. 다른 건 몰라도 뇌신지혼은 안 돼. 그건 자네가 결코 얻을 수 없어."
"어째서입니까?"
"말했잖나. 재능이 없다고."
나는 속에서 뭔가 확 솟구치는 걸 느꼈다.
재능이 없다!
나는 무려 백 년 이상 그 이야기를 듣고 살았다. 그래서 익숙해질 만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렇게 나의 본질과 대면하면 괴로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게 무공에 있어서는 불가일세의 절대자이며 뇌신류의 종사이니 뭐라 항변하기도 곤란했다. 나는 억지로 쥐어짜듯이 말했다.
"저는 노력했습니다. 백 년 이상..."
"알고 있네. 자네가 무공을 수련한 세월만 따지면 나보다 많을 걸세."
"뇌신류의 절학 대부분을 수습했습니다."
이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인정하지. 뇌신류의 전성기에도 자네만큼 많은 절학을 한 몸에 지닌 자는 거의 없었네. 자네는 종사까진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뇌신류의 원로나 호법의 자격이 있어."
"이제 모든 기초를 쌓아서 뇌신지혼에 도전하려 하는데 어째서..."
그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흠... 자네는 나를 되살려주고 그동안 뇌신류에 많은 노력과 헌신을 기울였어. 그 공을 봐서 뇌신지혼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 따지고 보면 자네는 외인(外人)이 아니니, 거기 앉아 보게."
나는 이청운의 말에 따라서 광산의 어두운 불빛 아래에 앉았다. 나와 마주 앉은 이청운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네는 뇌신류 최종오의에 대해서 그간 많은 정보를 수습했네. 그리고 무혼이라고 불리는 궁극경지의 과도기가 뇌신지혼이라는 걸 알게 됐지."
"네."
"그러면 한 가지 묻지. 어째서 뇌신류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고 인간의 무예를 뛰어넘은 궁극의 무혼을 추구하게 된 거라고 생각하나? 풍신류나 화신류처럼 적당한 선에서 최종오의를 마련하면 무의 흐름이 안정될텐데 말일세."
"음..."
그건 나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다른 사대무류는 모두 최종오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뇌신류만 미완성의 최종오의를 누대에 걸쳐서 개발하게 된 걸까? 이광조차도 그저 전해듣기만 할뿐 그 진짜 이유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대꾸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말이지, 무신(武神)을 마주쳤기 때문일세."
"......?"
나는 생뚱맞은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 무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 나도 그 이방인의 이야기를 들었기에 늘 즐겁게 수련을 하고 있어. 언젠가 그 무신(武神)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 설마 그대도 무신(武神)을 만났는가? 그대에게도 무신이 나타났는가?]
[ 후후... 그렇소. 나는 축복이라 생각하오만.]
진소청, 여동빈, 백련교주.
내가 만났던 무(武)의 절대자들이 한결같이 한 번씩은 언급했던 존재였다. 진소청의 경우는 워낙 그 일화가 인상깊어서 기억하고 있었고, 여동빈과 백련교주의 대담은 얼마 전에 일어났던 일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깨달은 표정을 짓자 이청운이 말했다.
"자네의 기억속에서는 세 명이 무신과 마주친 모양이군. 그리고 그들은 그를 마주칠 자격이 있었네."
"무신... 이란 게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야. 무(武)의 신(神). 환상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지만 절대를 넘어서 초월로 가는 자들은, 혹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자들은 만나게 되는 존재일세."
"......!!"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설마... 순수한 무의 경지를 관장하는 신적인 존재가 있단 말입니까?!"
여태 상상도 못 해 봤던 일이라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마주쳐 왔던 신적인 존재들은 하나같이 신선이거나 옛 지배자였는데, 그들은 그저 강력한 힘을 지닌 무언가일 뿐이었다. 무(武)라고 하는 불확실하고 거대한 개념을 다루는 초월자가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한 것이다. 내가 곤혹스러워서 대꾸하자 이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뇌신류의 무공은 사실 오 대(五代) 전에 정점에 도달했었네. 강호의 유수한 무공과 비교해 봐도 압도할 수 있었으며 동급의 경지에서는 수신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뇌신류를 상대하지 못했지. 뇌신류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는 지금까지 익혀온 자네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이청운의 말을 긍정했다.
"뇌신류의 무예는 가히 일대절학입니다."
검선 여동빈이나 무당파 장삼봉같은 투선급 존재들의 무학을 제외한다면, 뇌신류 무공은 틀림없는 최상위의 절학이었다. 나는 내공만 많은 얼뜨기 시절에도 뇌신류의 무공을 제대로 익히기 시작하자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고, 몇몇 초고수들을 제외하고는 뇌신류 무공보다 현묘한 것을 거의 본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같은 사대무류의 무공이 압박으로 다가올 뿐 중원의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무공으로는 뇌신류에 결코 들이댈 수가 없었다. 사파의 종주이자 고대무류의 일인전승문파인 무영문 정도나 경쟁상대가 될 수 있을까?
순수한 무공수준의 격차는 있을지언정 무공 그 자체가 뒤지는 일은 없었다. 중원무림이 얼마나 넓은지를 생각해 보면 이건 굉장한 일이었다.
권, 창, 검 어느 쪽이든 현묘함을 담은, 수천년 역사를 지닌 극강의 무예!
뇌신류가 반쯤 몰락한 지금도 벽력삼존이나 이광, 독고성의 무공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 뇌신류의 무공은 틀림없이 천하제일을 다투는 절세무공인 것이다.
이청운의 말이 이어졌다.
"오대 전의 사조는 뇌신류를 연마하여 의념지경을 넘어서려 했지. 허나 벽이 느껴져서 고민하던 중에 사조의 앞에 무신이라는 존재가 나타났다고 하네. 무신은 초월무예의 길을 제시하며 사조에게 무혼(武魂)이라는 경지가 있다는 걸 알려줬지. 그 이후부터 뇌신류 종사들은 무혼을 이루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게 된 것일세."
"그런 거였군요."
"... 그 경지는 공상의 영역이야. 의념지경을 넘는 것만 해도 초인인데 그 이후의 무학세계를 어찌 감히 인간이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 때문에 뇌신류 종사들은 그 징검다리가 될만한 단계를 먼저 만들 필요성을 만든 것일세."
그게 바로 뇌신지혼일 것이다.
내가 침묵하며 이청운의 말을 듣고 있자, 그가 차분하게 불빛 아래에서 말했다.
"백웅. 알아들었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이청운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뇌신류의 종사는 천고의 재능을 지닌 무의 천재가 수십 년간 각고의 노력을 거친 끝에 되는 것일세. 그런 종사들이 만든 게 뇌신지혼의 경지. 그렇기에 뇌신지혼은 기본적으로 천재에 의해, 천재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일세!"
"......!!"
"왜냐하면 무혼의 연구는 뇌신류 종사만이 이어받는 사명이기 때문이지. 입문조건이 천재일 수밖에 없어."
그렇게 중얼거린 이청운이 씁쓸하게 말했다.
"어째서 뇌신지혼의 구결이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처럼 변질되어 있는지 알고 있는가? 너무나 그 깨달음이 방대하여, 수십 개의 고급 심득을 암호화시키고 압축시켰기 때문이야. 하나하나의 심득이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을 걸고 연구해도 모자랄 수준이지. 한 시대에 하나 나올까말까한 천재가 아니면 결코 해석을 할 수 없고 입문조차 할 수 없어. 이해했는가?"
알 것 같았다.
뇌신류의 전성기에는 벽력삼존을 뛰어넘는 천뢰지경(天雷之境)의 고수가 너댓 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검뢰(劍雷)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 경지로, 천뢰지경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로 아마 무영검제 남궁조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런 불가일세의 고수들과의 경쟁을 뚫고 뇌신류를 이끄는 종사가 된 게 바로 호법사자 이청운이었고, 그의 천재성은 뇌신류의 역대고수들이 모두 열등감과 경외심을 품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심지어 백련교주조차 혼자서는 이청운을 이길 자신이 없어서 독고준과 합공을 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나는 이청운의 지금 설명을 오해의 소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청운이 잘난체하거나 잰체하는 게 아니라 그는 뇌신류 역대 최고의 고수로서 순수한 진실을 여과없이 말한 것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가슴속으로 납득할 수가 없어서 말했다.
"인간의 수명이라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전생(轉生)하기 때문에 수백 년이라도 뇌신지혼을 연마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렇겠군. 하지만 자네가 백 년을 연마한들 진소청이 일 년 연마한 것만 못할 것일세."
"......"
"자네는 이미 삼보절기의 예시로 재능의 격차를 체감했을 테지."
난데없는 사실적시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청운이 한숨을 쉬었다.
"이건 자네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자네는 지금껏 재능이 부족해도 초고수의 심득과 가르침, 기연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경지를 끌어올렸겠지. 그게 초절정의 의념지경까지는 통했을 거야. 하지만 그 윗 단계부터는 난이도가 수십 배나 뛰어오른다네. 나조차도 뇌신지혼을 연마하면서 무시무시한 난이도에 경악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닐세."
"하, 하지만..."
"이루지도 못할 꿈을 영영 붙잡는게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차라리 도중에 포기할 수 있는 건 행복한 일이지. 자네는 수백 년 동안 수십 번을 전생하면서 해독불가의 무공을 익히면서 얼마나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을 생각인가."
"윽."
"그 진소청조차 결코 뇌신지혼을 십 년 내에 익힐 수는 없네. 이건 내 이름을 걸고 장담해."
이청운의 말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었다.
지금만 해도 삼보절기 하나를 제대로 익히지 못해서 교주의 해석만 기다리며 전전긍긍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삼보절기보다 몇 배나 어려울 게 뻔한 뇌신지혼을 수백 년간 개미처럼 고생하며 익히고 있으면 도대체 얼마나 정신력이 소모될까? 아마도 사람의 몰골이 아니게 될 것이다.
이청운이 나를 달래듯 말했다.
"자네는 무공 말고도 강해질 방법이 많이 있어. 그렇잖은가? 내가 보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뇌신류 최종오의는 자네 길이 아니야. 포기하게."
"......"
내 머릿속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갈사도 말했다.
[ 백 번 옳은 소리를 하는군. 이청운도 정말 사람이 좋은걸. 보통이라면 익히거나 말거나 심화구결이나 던져주고 생색이나 낼텐데.]
[ 이광이라면 그랬겠지.]
[ 알면 관둬라. 내가 볼 때 뇌신류 최종오의같은 건 사람이 익힐 게 못 돼.]
나는 침묵하고 말았다.
마음같아서는 그게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노력하고 싶은데, 너희가 뭔데 함부로 나를 재단하냐고 악을 쓰고 싶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너무나 옳은 판단이며, 심지어 나를 배려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나는 마지막 오기로 입술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지금 제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는 알고 계실 겁니다."
"알지."
"백련교주에게 제가 가진 보물을 거의 다 빼앗겼고 제자이자 호법사자라는 빌미하에 억지로 백련교에 붙들려 있는 상황입니다."
이청운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치며 말했다.
"저는 이청운 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
화륵
갱도의 벽에 걸려있던 횃불이 흔들렸다. 이청운은 침묵하다가 말했다.
"자네가 전생자인 이상 나도 자네를 돕는 게 맞겠지."
어감이 이상했다.
' 응?'
어째서 전생자라서 나를 돕는다는 것일까? 이청운은 나와는 특별한 의리도 없을 텐데? 하지만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든 말든 이청운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방법 정도는 선택하고 싶군. 나는 내 제자를 만나서 우선 그간의 이야기를 하고, 광이에게 못 가르친 것들을 알려주고 싶네. 지금 당장 백련교주와 싸우는 건 안좋으니까."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그 전에 알려 주십시오."
나는 눈빛을 빛냈다.
"천령단을 얻는 방법과, 오십 년 전 그 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역시 그걸 물어보는 건가."
"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때문에 이청운 님을 부활시켰습니다."
"물론 알려주겠네. 그래야 내가 되살아난 댓가를 지불한다 할 수 있겠지."
이청운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안다고 하더라도 크게 의미있을까 싶지만."
"......?"
천령단 획득방법이든 오십년 전 비사든 간에 굉장히 큰 소득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청운은 저렇게 회의적인 반응인 걸까?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이청운이 입을 열었다.
"먼저 천령단을 얻는 방법부터 가르쳐 주지."
드디어!
드디어 무한의 내공, 천령단을 얻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나는 기대와 긴장감 때문에 숨도 못쉴 것 같았다. 무려 수십 수백 년을 별러 왔던 비밀이 드디어 공개되는 것인가!
"... 교주가 주재하는 수신류의 제의(祭儀)에서 각 사대무류에 전승되는 제사장의 무예를 사흘 밤낮으로 펼치는 것이 시작이지. 그리고 그 제사의식이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 마지막으로 어둠의 존재와 약속을 하게 되어 있지."
"약속이요?"
"서약(誓約)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그렇게 중얼거린 이청운이 말했다.
"세계의 중심...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경한 한 마디가 내 영혼에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머나먼 곳에 존재하는 무언가와 단말이 생겨나면서, 내가 그 어둠에 속하게 된다는 걸 약속하는 셈이었지."
"......?"
"그 약속이 끝나면 천령단을 얻게 된다네."
이건 무슨 소리인가? 어둠의 존재와 약속을 한다는 건 알겠지만 약속의 내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야기를 정리했다.
"즉, 교주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제사장의 무예를 익혀야 하는 거군요."
"그런 셈이지. 그리고 그 점에서 있어서 백웅 자네는 그 누구보다도 천령단에 근접해 있네."
이청운의 말에 나는 침울했던 기분이 다소 나아지는 걸 느꼈다. 어쨌든간에 이대로 뇌신류 호법사자 노릇을 계속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천령단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내가 내심 기뻐하고 있자 이청운의 말이 이어졌다.
"오십 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말해줘야겠군."
"해 주십시오."
"......"
"......?"
갑자기 이청운이 말하려다 말고 침묵했다. 나는 그의 변화에 의아해져서 그를 쳐다보았는데, 이청운은 크게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이청운이 말했다.
"백웅.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묻고싶은 게 있군."
"물어보십시오."
이어진 질문에 나는 또다시 곤혹감을 느꼈다.
"자네는 이광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
"이 대답을 들어야 나는 그 날의 일을 말해줄 수 있겠네."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 이 질문은 내 내면에서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답이었다. 언젠가는 이광과 결판을 내야 할 사이겠지만 그동안 봐 왔던 이광의 다면적인 입장 때문에 뭐라고 한 마디로 이야기를 정리할 수가 없었다. 온갖 애증이 범벅되어 있어서 이광을 그냥 때려죽이기도 뭐해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청운은 그런 내 심리를 파악하고 진의를 듣기 위해서 질문을 한 것이리라. 왜냐하면 이광은 그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진심을 담아서 대답했다.
"흑요석에 제 모든 기억을 담아서 이광에게 보여줄 겁니다. 그리고 그 후 이광의 진의를 듣고 나서 결정할 겁니다. 제가 아니라 이광에게 달려 있죠."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죽이든 살리든 그 후에 결정할 일인 것이다. 그러자 이청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흐음... 자네는 정말 광이와는 맞지 않는 성격이야."
"백 년 동안 느꼈습니다."
"하하핫."
이청운이 너털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그럼 말해주겠네.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