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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67화 (367/1,615)

00367  천계(天界)  =========================================================================

내가 염령을 써서 대위(岱圍)에 가자, 그 곳에는 이미 백련교의 청년고수들 스무 명이 파견되어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대위는 협곡지대였는데 그 내부에 백련교의 전진기지와 마을이 있었고, 더러 시체가 널려 있었다.

크아아아!!

"하압!!"

"저놈 죽여!"

검광과 장풍이 날아다니면서 백련인들이 심후한 내공을 바탕으로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싸우는 대상은 마치 거인과 같았다. 하지만 그냥 거인이 아니라 입이 머리 꼭대기에 수직으로 나 있어서 머리통이 세로로 찢어진 것처럼 보였고, 또한 팔꿈치부터 갈라진 2쌍의 팔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저건 절대로 자연발생할만한 생물이 아니었다.

' 이족!'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魔)에서 탄생한 이계의 종족이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것이다. 저 이족거인은 보통인간의 키보다 두세 배는 커 보였고 힘이 굉장히 억세보여서 위협적인 존재였다. 심지어 속도도 굉장히 빨라보였다.

하지만 대략 여덟 마리의 이족 거인을 상대로 스무 명의 백련인은 도리어 압도하며 몰아붙이고 있었다. 숫적으로 우세하다고 하지만 이족거인의 신체능력은 일개 인간과 비교가 안 되는데도, 성련에서 비롯된 심후한 내공과 백련교의 무공으로 거인을 퇴치할 수 있는 것이다.

거인의 팔에 한 칼을 먹이고 경공으로 뒤로 물러선 백련인 하나가 나를 발견하자 외쳤다.

"호법사자께서 지원 오셨다! 다들 힘내라!!"

시선이 내 쪽으로 잠시 쏠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시선을 느끼자 곧장 해야할 일을 해야한다고 직감한 채 전신의 내공을 피어올렸다. 그리고 기운이 최고조에 이르자 발 끝에 경력을 모아서 마치 튕기듯이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뇌신검무(雷神劍舞)

청천화(靑天花)!

검강지기가 내 검신에 솟아오르면서 번개로 만들어진 꽃 문양이 허공에 잠시 새겨지는 듯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가 스쳐지나간 곳에 있던 두 마리의 이족 거인의 몸뚱이가 수십 조각 내서 쓰러지고 말았다. 청천화의 검기는 극도로 빠른 쾌검(快劍)이므로 이족 거인으로서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쿠웅!

쿠궁!

"오오!!"

두 마리를 순식간에 쓰러뜨리자 장내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이족거인들은 최소한의 지능은 있는지 자신들이 크게 불리해진 걸 깨달아서 주춤거렸고, 백련인들은 사기가 대폭 상승한 것이다.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씩 웃으며 말했다.

"마무리 합시다!"

"네!"

이족거인과의 혈투가 끝난 것은 그로부터 반 식경이 지나서였다. 단순히 쓰러뜨린다면 그 절반의 시간으로도 가능했겠지만 부상자나 사망자 없이 완벽히 쓰러뜨리려다 보니 시간이 걸린 것이다. 장내는 이족 거인의 피로 피바다가 이뤄져 있었고 역한 냄새가 경사를 타고 흘러내렸다.

전투가 끝나고 백련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내게 다가와서 포권했다. 나이는 이십 대로 보였고, 검(劍)을 사용하는 깔끔한 인상의 청년고수였다.

"저는 화신류(火神流) 소속이며 현재 화신대(火神隊)의 대주를 맡고 있는 우영표(祐營豹)라 합니다. 말로만 듣던 뇌신류 호법사자 백웅 님을 뵙게 되어 감격했습니다."

"피해상황이 어떻게 되오?"

화신대주 우영표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화신대는 부상자와 사망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 중에서 열두 명이 사망하고, 스물 아홉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으음..."

나는 마을을 둘러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 큰 피해군.'

척 봐도 이 곳에는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많아봐야 이삼백 명 내외인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그런 곳에서 사십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는 것은 굉장히 큰 피해인 것이다. 내가 말없이 파괴된 마을 건물을 둘러보자 우영표가 말했다.

"호법사자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화신대 중에서도 사상자가 나왔을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 해괴한 괴물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요?"

"그게... 이 근처에 마굴(魔窟)이 생겨난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마굴?"

내가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우영표가 설명했다.

"이족(異族)들이 난데없이 출현할 때 그 놈들의 발생지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런 게 있소?"

"네."

나는 약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중원에 그런 건 없었는데?'

아니, 지금같은 이족거인의 존재 자체가 중원 섬서지방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나는 오십여 년을 표사로 살아가면서 이족괴물 따위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런데 백련교의 땅에 오자 난데없이 이족이나 마굴이 출현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화신대주 우영표가 말을 이었다.

"마굴을 부수는 데 도움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알았소. 찾아 봅시다."

나는 즉시 화신대를 따라서 마굴을 찾아나섰다. 화신대에는 추종술에 능한 고수가 있었으므로, 그가 마물의 체액과 냄새, 흔적을 바탕으로 마굴을 역추적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말없이 그들을 따라가고 있자 제갈사가 말했다.

[ 틀림없군. 이 일대는 암천향(暗天鄕)과 불안정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다.]

흠칫!

"왜 그러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우영표에게 손을 내저으며 제갈사의 말에 대꾸했다.

[ 그게 정말이냐?]

[ 이 대지에 넓게 퍼져있는 마기(魔氣)를 느끼지 못하는 거냐? 이 정도의 마기를 내뿜으며 현실세계를 침식시킬 수 있는 이계(異界)는 암천향 뿐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차원계면이 중첩되어 있구만.]

[ ......]

암천향!

그것은 [옛 지배자]는 물론이고 이족들이 살고 있는 환상과 악몽의 대지였다. 심지어 대라신선마저도 그곳에 가면 소멸될 위험이 있다는 극악한 장소가 언급된 것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물었다.

[ 그럼 마굴이란 건 이계 암천향과의 통로인 셈인가?]

[ 그렇겠지. 차원이 불안정해서 구멍이 뚫린 거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통로긴 하지만.]

[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 낸들 아냐? 등신새끼. 니 머리로 생각해.]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

내가 내심 제갈사에 대한 살의를 증폭시키고 있자 제갈사가 낄낄댔다.

[ 굳이 내 생각을 말하자면, 백련교주와 관계가 있겠지.]

[ 백련교주? 왜?]

[ 크으... 멍청한 놈. 과거 백련교주와 [옛 지배자]가 충돌한 적이 있지 않았냐. 바로 그 때 무슨 일이 벌어져도 벌어진 거겠지. 이 불안정한 공간은 그 여파일 가능성이 크다.]

[ 으음... 그럴 듯 하군.]

나는 제갈사의 가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중원은 멀쩡한데 이 일대만 이족이 횡행하는 무서운 장소가 된 게 설명이 된다. 백련교주와 [옛 지배자]의 충돌이 거대한 공명파장을 일으키고, 그 파괴력이 이 시공간을 불안정하게 만든 것이리라.

나는 제갈사에게 또다시 질문했다.

[ 암천향과의 연결을 끊고 이 일대를 안정시킬 방법은 없을까?]

[ 접점이 있으니까 구멍이 뚫렸을 때 연결되는 거지. 지금 이 현상은 암천향과의 차원간 거리가 가까워서 생기는 일이니, 거리를 넓히면 되긴 될거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대주술사가 몇십 년은 고생해야겠지만.]

대략 설명한 제갈사가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 이 병신아. 이건 그냥 남의 일이야. 뭘 복잡하게 신경 써? 네가 얻을 것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 사람들이 이족에게 피해를 입고 살해당하잖아. 어떻게 내버려 두냐.]

[ 알게 뭐냐. 그럼 다음 전생 때는 여기에 와서 사람들을 구해 주시게? 실익도 없는데 할 일이 몇 배는 많아지겠네.]

[ ... 그건...]

제갈사가 비웃듯 말했다.

[ 잘 들어. 이건 네가 책임질 일이 아냐.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책임져야 할 일이지. 이것저것 다 하려 들다가는 결국 덤터기만 쓸 거다.]

나는 왠지 제갈사가 내게 제대로 된 충고를 해 줬다는 생각이 들어서 위화감과 껄끄러움을 느꼈다. 이 미친 광서생이 얼마 전부터 나를 도와주는 상황이 익숙치 않을 뿐더러, 제갈사 본인은 이 관계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갈사의 원래 성격을 생각하면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제갈사에게 물었다.

[ 무슨 꿍꿍이지? 왜 나를 이렇게 잘 도와주는 거지?]

[ 당연히 잘 도와줘야지. 그래야 네가 초상기인으로 내 혼백을 옮겨주잖냐. 이렇게 망령처럼 천년만년 지낼 수야 있겠나?]

[ 난 너를 믿을 수 없어.]

[ 그러시던가...]

제갈사도 뭔가 꽁했는지 히죽하고 나를 비웃었다.

[ 내가 너였다면 정말 할 게 많았을텐데 피곤하게만 사는군.]

[ 어차피 제대로 된 일은 아니겠지.]

[ 크크크...]

그렇게 제갈사와 잡담을 하던 중에 마굴에 도착해 있었다.

우우우우 -

허공에 뻥하니 뚫려 있는 어둠의 공간! 그 크기는 대략 삼 장 정도로 보이는 원형 문이었다. 그리고 평야에 뚫려있는 그 공간 주변에는 온갖 마물들이 어슬렁대고 있었다. 하나같이 이 세상의 것으로 볼 수 없는 기괴한 마물들이었다. 특히 촉수를 꿀렁대며 눈이 수십 개나 붙어있는 놈은 보기만 해도 역겨웠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마 백련인들은 매번 이런 놈들과 싸워왔던 거요?"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삼 년에 한두 번 있는 정도였지요. 물론 어려운 임무긴 합니다만..."

"일단 마물을 전멸시키고 생각합시다."

"부탁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앞으로 성큼 걸어나갔다. 그리고 전신에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모으면서 거대한 검강을 생성시켰다. 인간끼리의 실전에서는 쓸 수 없는 부조리한 초식이지만, 적은 인간이 아니었기에 내가 기를 모으는 걸 그저 보고만 있었다.

쿠콰콰콰

이윽고 강기가 치솟아 올라서 삼 장 크기를 훨씬 넘는 광인(光刃)을 형성했을 때, 나는 다소 힘이 남아돈다는 걸 느꼈다. 느낌으로는 삼 할 오 푼 정도의 여력이 남은 듯 했다.

' 이 정도면 예전 종남파에서 썼던 것과 대등한데, 내가 그 때보다 내력이 훨씬 늘었구나.'

나는 잡생각을 멈추고는 오로지 파괴만을 위해 만들어진 강기를, 뇌신검무의 의념절기에 맞춰서 전방으로 뻗어냈다.

콰과과광!!

쿠콰쾅

마치 폭약이 수만 근은 터진 듯한 폭음과 함께 전방에 있던 마물들이 번개의 소용돌이에 휩쓸려서 비산했다. 나는 검강의 기세를 멈추지 않으며 횡베기를 두어 번 더 했는데, 그 때마다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죽어나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그렇게 미친듯이 서른 번을 휘둘렀을 때, 평야에는 번개와 불꽃으로 타오른 흔적과 괴물들의 시체밖에 남지 않았다.

"허억... 허억..."

나는 기운을 거의 다 써서 숨을 몰아쉬었다. 예전에는 한 번 떨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탈진했는데 이번에는 제법 초식처럼 운용한 셈이었다.

이윽고 내 근처로 다가온 백련인들은 경악한 모습이었다. 화신대주 우영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 말도 안 되는 내공... 설마 벌써 천령단을 얻으신..."

나는 비틀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지금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니오. 마굴을 파괴하시오."

"아... 네!!"

허공에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마굴 근처에 백련인들이 다가갔다. 그들은 진형을 만들어서 무언가 주문(呪文)을 외웠는데, 그러자 허공에 웬 기이한 모형이 떠올랐다. 나는 혹시 사악한 마법인가 싶어서 주춤했는데, 그 모형은 사기 대신에 포근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이족들 특유의 마기와 달랐기에 나는 눈에 이채를 띄고 그 의식을 지켜보았다.

내 시선을 공유해서 백련인들의 의식을 지켜보던 제갈사가 말했다.

[ 오망성. 고대신의 표식인가...]

[ 그건 또 뭐야?]

[ 저 모형을 잘 봐둬라. 저건 [옛 지배자]에 항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 중 하나니까.]

[ 뭐?!]

나는 제갈사의 말에 뚫어져라 그 모형을 관찰했다. 모형의 형상을 외우고 있자 제갈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 이 세상에는 [옛 지배자]는 아니지만 그들과 유사한 힘을 지니고 있는 고대의 존재들이 있지. 주술사들은 그들을 고대신(古代神)이라 칭하며, 고대신들은 생각보다 인간종족이나 정명자들에게 호의적인 편이다.]

[ ......!!]

그런 존재들이 있었다니!

내가 머릿속으로 그 내용을 기억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 그리고 저 모형은 고대신의 권능을 상징하는 표식. 오망성(五望星) 별의 표식으로 하여금 부정한 존재와 [옛 지배자]의 권속을 몰아낼 수 있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 정명자가 자신의 몸을 지키는 호신용도로는 최고라 할 수 있지.]

[ 음, 그렇군...이 아니라.]

나는 황당해서 대꾸했다.

[ 그런 모형을 왜 백련교도들이 쓰는 거냐?! 그건 비밀스러운 지식 아냐?!]

[ 나야 모르지. 이제부터 네가 그걸 알아봐야 하는 거고.]

[ ......]

슈르르륵

어느 새 마굴의 틈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평야에 가득찼던 마의 기운도 크게 스러진 듯 했다. 심지어는 내가 해치웠던 수십 수백마리의 마물들도 그 시체가 녹아서 땅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신기한 눈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자 우영표가 다가와서 내게 포권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물어볼 게 있는데."

"말씀하시지요."

"방금 그 봉인의식에 쓰인 모형은... 어디서 배운 거요?"

그러자 화신대주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육성의 대답과 거의 동시에 전음으로 우영표의 말이 들려 왔다.

[ 백련교주께서 모든 교도들에게 외우게 하신 모형입니다. 모든 이족의 봉인의식에 사용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아마 화신대주는 내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으나, 그의 화신류라는 입장상 함부로 기밀을 말하기가 꺼려졌을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모른다 하면서도 살짝 귀띔을 해준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화신대를 따라서 염령 화덕으로 본단으로 복귀하면서 알 수 있었다.

' 수상해.'

백련교주는 사법(邪法)을 잘 알고 있으며, 이족을 비롯한 이계와 마도의 지식이 깊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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