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6 천계(天界) =========================================================================
그 후 나는 사흘동안 백련교가 있는 성 내부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백련교의 터전은 웬만한 성을 뛰어넘을 정도로 넓고 방대했으며, 내성의 견고함은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는 듯 했다. 또한 자급자족을 하는 듯 농민이나 각종 채산물을 다루는 일반인의 숫자도 매우 많았고, 교의 영향을 따지자면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백련교의 휘하에 있었다. 물론 그들 모두가 백련교도이긴 하지만 개중에서 정식으로 무공을 익히고 백련교의 활동을 직접 돕는 경우는 적어 보였다.
개중 한 농민을 만나서 어째서 백련교에 제대로 입문해서 무공을 배우지 않느냐고 묻자 그 농민이 대답했다.
"어이구. 그건 꿈같은 일이지유."
"왜 꿈같소?"
"무공에 재능이 있는 어린 아이들을 우선으로 받는데다가, 들어가서도 치열한 경쟁 끝에 성련을 받는다고 하더구만요. 그리고 엄정한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은 백련인이 되는 걸 꿈만 꿉니다요."
"흠..."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대로 백련인이 되어서 백련교의 무력단체에 소속되거나 사대무류의 일원이 되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성련을 대량으로 재배하니 강대한 내공을 지닌 고수를 찍어낼 수 있을텐데 왜 그런지 생각해 보자, 제갈사가 이죽거렸다.
[ 간자(間者)가 언제든지 섞여들어올 수 있는데 잘도 백련인으로 아무나 받아주겠다. 설령 간자가 있더라도 통제할 수 있을만큼 감시를 한 다음에 받는게 정석이겠지. 왜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모르냐?]
[ 시끄러. 그런 건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거니까.]
[ 뭐 적다고 하더라도 성련을 복용한 백련인이 수백에서 천 단위는 되겠지. 백련교가 무시무시한 단체인건 사실이군.]
[ ......]
제갈사의 말대로다. 수십만 명의 영향력 미치는 백련교인들 중에서 엄정하게 무사를 선발한다고 해도, 그 숫자는 상당히 많을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백련교는 암중에서 황궁과 대립하는 입장이므로 언제 상황이 틀어져서 명 황실의 토벌군이 몰려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만 명의 대군을 상대한다는 가정하에 늘 상비군을 보유해야 할 것이고, 그 결과가 아마 성련인의 교육과 무장일 것이리라.
' 하지만 이건 차라리 하나의 국가나 다름없군.'
나는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백련교의 내성은 그렇다 치고 적어도 수십 리 이내는 모두 백련교의 관할에 있는 것으로 보였고, 근처에는 초소는 물론이고 비상시에 요새로 쓸만한 건조물도 있었다. 심지어 곳곳에 잘 연마된 병장기가 마련된 무기고도 있었기에, 만일의 경우 언제든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했다. 심지어 외부와는 다른 통화체계를 사용하는 지역도 있는 것이다.
이 곳에서 백련교주는 황제나 다름없었다. 아니 백련교인에게 있어서 백련교주는 신이나 다름없으리라. 나는 새삼 백련교의 위세를 깨닫자 이광을 비롯한 뇌신류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런 무시무시한 단체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백련교와 싸우려고 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나는 정찰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쉬었다. 오늘이 딱 사흘째니까 내일부터 교주를 알현하고 비결의 전승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누각 위에서 밤하늘을 쳐다보며 제갈사에게 말을 걸었다.
[ 궁금한 게 있는데.]
제갈사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내가 네놈 궁금한게 있으면 꼭 대답해줘야 하나? 닥치고 잠이나 자는 게 어때?]
[ 빌어먹을. 말을 해도 꼭...]
나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 어째서 백련교는 소교주가 치료되어야 중원정복을 도모하는거지?]
그러자 제갈사가 흥미로운 듯 말했다.
[ 호오...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냐.]
[ 오늘 둘러본 결과 의문이 더 깊어졌다. 지금 백련교의 전력은 수백 수천의 강대한 무사와 호법사자, 원로고수들을 보유하고 있으니 십만대군에 뒤지지 않아. 소교주의 무공이 수신류 소속이라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백련교 전체의 힘에 비하면 개미같지. 전투력이라는 점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어.]
[ 그래서?]
[ 다른 관점으로 봐도 그래. 백련교주 입장에서는 자숙하면서 치료법을 찾기보다는 먼저 황궁을 제압하고 천하를 정복한 후에 세력을 확대해서 치료법을 찾는게 빠르지 않을까 싶어서.]
[ 크크... 뭐 둔재 치고는 꽤 많이 생각했군.]
나를 조롱하듯 말한 제갈사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 네 녀석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 뭘 간과하고 있는데?]
[ 소교주가 신의 저주를 받은 정황. 그건 전적으로 백련교주의 입에서 나왔을 뿐, 제 3자가 그 상황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게 사실이라는 증거도 없지.]
흠칫!
나는 제갈사의 말에 놀랐다. 생각지 못했던 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침음성을 흘리다가 물었다.
[ 설마 교주가 저주를 받은 정황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
[ 못할 게 뭐냐. 그가 엄청나게 음흉한 인물이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잖냐. 호법사자도 필요하면 농락할 수 있는 존재가 고작 외부인인 너희에게 왜 거짓말을 못 해? 내가 뭐 틀린 말 했냐?]
[ ......]
맞는 말이다. 한심하다는 듯 말한 제갈사가 클클 웃었다.
[ 네 말대로 교주는 소교주 하나의 생사에 연연해서 대업을 실행하지 못할 자가 아니다. 그런 자가 단순히 소교주를 아껴서 중원정복을 하지 않을 리는 없지. 즉 백련교주는 중원정복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라고 본다.]
[ 못했다고? 대체 왜?]
[ 소교주와 관련이 있겠지. 네 생각보다 소교주는 중요한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내 귀를 긁듯 말을 이었다.
[ 백련교에 입교하려면 좀 더 빨리 했어야 했어. 수박 겉핥기만 대체 몇 년을 한 거냐? 지금 너와 현이가 갖고 있는 정보는 죄다 백련교주가 선심쓰듯 넘겨준 것밖에 없잖아, 크크크.]
[ 제길! 그래서 이렇게 입교를 했잖아. 사람 속 그만 긁어!]
[ 애초에 다 얻어낼려고 하다 보니 이 꼬라지가 된거지.]
[ 아 그만 안할래?!]
내가 짜증을 내자 제갈사가 한 발짝 물러나듯 말했다.
[ 일단 네녀석이 백련교주의 신임을 얻어야 그 정황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네가 백련교주에게 그 정도 신임을 얻으려면 적어도 사오십 년은 죽어라 충성해야겠지. 그렇게라도 정보를 알아내던가, 아니면 소교주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던가, 그게 아니면...]
[ 아니면?]
[ 돌아가서 정보를 캐는 방법이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제갈사가 나를 조롱하듯 말했다.
[ 으이그. 머리가 나쁘니 정말 불편하군. 한 마디 하면 척척 알아들어야 정상 아니냐?]
[ 설명이나 해.]
[ 교주는 서역에서 온 마법사가 난데없이 소환한 [옛 지배자]와 싸웠다고 했지. 여기서 교주와 [옛 지배자]를 제외하면 남는 대상이 뭐가 되냐?]
[ 마법사지.]
[ 이렇게 말해도 모르겠냐?]
[ 아!]
나는 그제야 놈의 말 뜻을 알아들었다.
그렇다.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근처에는 분명히 죽은 마법사의 영혼이 존재할 것이다! 그 영혼이 승천해서 사라진 게 아니라면, 분명히 천신경의 술법으로 강신시켜서 그 당시의 일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돌아가는 방법을 생각지 못했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문득 황당한 기분이 들어서 제갈사에게 말했다.
[ 야! 그럼 사흘의 유예 동안에 그 방법을 알려줬으면 되잖아. 그럼 마법사의 영혼을 찾아서 알아볼 수 있었잖아. 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어?!]
[ 웃기고 있네. 지금 네놈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거 같냐?]
[ 뭐?]
[ 지금 네놈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걸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영안(靈眼)을 가진 놈도 없지 않아. 이런 상황에서 대놓고 천신경의 술법을 써서 강신을 한다? 교주가 참 너를 좋다고 신뢰해 주겠다.]
[ ......]
내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자 제갈사가 말했다.
[ 정 시간을 아끼고 싶으면 잠을 자지 말고 이혼대법이나 수련해라. 내 생전에 너처럼 둔한 놈은 처음 본다.]
"알았다고!"
화가 나서 그만 육성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나는 놈과 심어로 대화하는 것 자체가 짜증이 북받치는 기분이 들었다. 제갈사는 망량과는 달리 좋게 말해줄 수 있는 것도 굳이 비꼬고 조롱하는 말투였기에 머릿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때때로 느껴지는 제갈사의 광기는 놈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뒷받침했다.
어제처럼 이혼대법을 수련하자.
나는 좌선하고 앉아서 침착하게 장심에 기운을 모았다. 그리고 기운을 흡인하는 연습에 몰두했다. 제갈사가 말했다.
[ 백(魄)은 동력이다. 그러므로 네가 백을 빨아들이는 힘은 혼력(魂力)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혼력은 후천적으로 단련하는 방법이 매우 한정되어 있으므로, 요령을 익혀서 흡인력을 키워야만 한다.]
스으으...
[ 혼력은 기나 내공과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너 자신의 혼이 무엇인지 염상(念想)하고, 구체화시켜서, 그렇게 믿어야 한다. 믿는다면 그 현실이 구현화되어서 가상의 접인력을 만들어낼 것이다.]
망량에게서 들었던 요령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그 덕분에 나는 백을 빨아들이는 수련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백의 흡인력이 거의 늘지 않아서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대략 두 시진에 걸쳐서 이혼대법의 수련을 끝내자 제갈사가 투덜거렸다.
[ 원래 이런 기초수행에서는 전수자가 일일이 짚어주지 않아. 왜냐하면 배우는 자가 술법의 영재(英才)라는 전제 하에 전수하는 거니까, 이 정도 요령은 알아서 깨달을거라 생각하지. 알아듣겠냐 이 둔재 새끼야.]
"재능 없는건 나도 알아."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도달하고 나면 거기서 거기니까 좀 닥치라고."
[ 자기위안이 신의 경지에 도달했구만.]
대답할 가치도 없다.
나는 제갈사의 이죽거림에 대꾸하지 않고 몸을 씻고 정비한 후 교주를 알현하러 갔다.
"교주를 뵙니다."
내가 교주의 알현실에서 부복하자, 교주가 서서히 발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 백웅 호법사자. 나를 따라와라.]
"존명."
휘익
예전처럼 교주가 엄청난 경공으로 어디론가 사라지며 내게 방향을 짚어주었다. 나는 예전에 보았던 그 용화수가 있는 정원에 도착했다. 교주는 여기를 수련장으로 삼을 생각으로 보였다.
교주가 말했다.
[ 오늘부터 칠대절학의 전수와 재해석을 시작하도록 하지. 그대는 나를 스승의 예로 대하며 수련에 늘 최선을 다해 임할 것을 맹세하라.]
"맹세합니다!"
[ 그럼 요결을 말하라.]
"알겠습니다."
나는 교주에게 칠대절학의 요결을 다시금 한 시진에 걸쳐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교주는 지난번에 한 번 듣고 다 외우지는 못한 듯, 이번에 내 설명에 집중해서 차분하게 외우는 도중인 듯 했다. 교주가 웬만큼 외웠다 싶자, 그가 말했다.
[ 무쌍패(無雙覇)는 왜 만든 건지 모르겠군.]
"네?"
[ 그냥 혼잣말이다.]
나는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 교주의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교주는 재차 내게 칠대절학의 해석을 들었고 그게 또다시 한 시진의 시간을 소모했다.
교주는 거기까지 들은 후 말했다.
[ 음... 지금 당장은 모르겠다. 조금 수련을 해 봐야 삼보절기의 요점을 잡을 수 있겠군.]
"네."
[ 백 호법은 오늘은 자율수련을 하도록. 내일부터는 알현실로 오지 않고 바로 정원으로 오라.]
"네...?"
휘익!
그 말을 끝으로 교주는 어디론가 가 버렸다. 용화수 정원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어서 말을 잊었다.
"......"
첫날부터 자율수련이라니 대체 이게 뭔가?
물론 백련교주 특유의 방침일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불안감을 간질거리고 있었고, 그건 장래에 내게 위험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교주의 행동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제갈사가 말했다.
[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냥 시킨대로 하는 게 어때?]
"음... 그게 좋겠군."
지금은 제갈사의 말이 옳다. 어찌되었든간에 백련교주는 무공으로 천하제일을 달성한 천하제일인이고, 무공에 관한 한 백련교주의 한마디는 절대적인 신뢰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백련교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수인 내가 이래라 저래라 생각하는 것보다는 속편하게 진도를 믿고 따라가는게 맞았다.
[ 엥? 내가 말한 건 그런 뜻이 아닌데.]
"그럼 무슨 뜻인데."
[ 멍청한 놈. 그 정도는 혼자서 생각해.]
"야!"
내가 버럭 외쳤지만 이번에는 제갈사가 대꾸하기 싫다는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는 끝까지 제갈사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수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어떻게든 성실하게 수련하는 것 외에는 해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칠대절학을 시험삼아 펼쳐보기를 몇 시진이나 지났을까. 해가 뉘엿뉘엿 질때가 되자 원로원 고수 하나가 정원에 와서 내게 말했다.
"호법사자께서는 오늘의 일과가 끝났으니 가서 쉬셔도 된다 하십니다."
"알았소."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심후한 내공 덕에 잠을 자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내공으로 활력을 회복하며 밤중에는 이혼대법을 계속 수련했다. 이혼대법을 수련하다보니 새벽이 동터왔으므로 다시 몸을 단장하고 용화수로 향했다.
[ 호법사자. 다시 요결을 설명해 주도록.]
"네."
용화수에 도착한 나는 다시 백련교주에게 요결을 몇 시진이고 설명했다. 그 과정이 끝나자 백련교주가 말했다.
[ 내일 다시 와도 좋다.]
"네?"
[ 교 내의 아무 수련장을 써도 좋으니 성실히 자율수련을 하도록.]
"... 네."
뭔가 이상하다.
나는 위화감을 느꼈지만 일단은 시키는대로 했다. 어쨌든 백련교주가 스승이 되어주기로 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의 말에 따르는 게 맞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날도 큰 수련장을 혼자서 쓰면서 그동안 익혔던 무공을 다듬으며 수련했다.
그렇게 대략 육십 일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 이건 뭔가 아닌데?'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백련교주에게 말했다.
"교주님... 삼보절기를 전수해 주셨으면..."
그러자 백련교주가 말했다.
[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호법사자가 급히 해야할 임무가 있다.]
"네?!"
[ 북서쪽 대위(岱圍)의 협곡에서 잔인한 이족(異族)이 나타나서 민가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호법사자가 그들을 구제하여 교도들을 보호하도록.]
"......"
[ 염령의 사용권한을 주었으니 가 보라.]
"존명."
나는 백련교주에게서 물러나오며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 아직... 그는 칠대절학을 제대로 못 익혔구나...'
제대로 익혀서 응용이 가능할 경우 이런 식으로 반복적으로 내게 구결과 해석을 들을 이유가 없다. 그 동안 계속 불려오면서 교주는 끊임없이 수련을 했던 것이고, 그 진도는 꽤 느린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를 외근으로 돌리는 이유도 지금 당장 삼보절기를 해석해 주기에는 본인의 진경이 느려서가 틀림없다.
제갈사가 내 속을 긁었다.
[ 이제야 알았냐? 첫 날에 눈치 챘어야지.]
[ 무슨 개소리냐? 천하제일의 백련교주가 설마 수련이 느려서 핑계를 댈거라고 대체 어떻게 생각한단 말이냐.]
[ 킥킥킥.]
내가 신경질을 내자 제갈사가 낄낄댔다.
[ 백련교주의 경지는 천하제일이지만 그의 재능까지 천하제일이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애초에 이청운이 그의 재능을 훨씬 뛰어넘지 않았느냐.]
[ 말이 안 되잖아. 천하제일의 재능이 아닌데도 천하제일이라니...]
재능의 영향력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 모순을 내가 알고 있는 무학상리로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자 제갈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네 녀석은 백련교주에게 환상이 너무 많아. 아니 천하제일인에 대한 동경이 과하다고 해야하나? 내가 볼 때 저 자는 그저 욕심이 많을 뿐인데 말이지.]
[ 욕심이라고?]
제갈사는 피식 웃었다.
[ 흐흐. 지금 추측을 말해봤자 납득을 못할거고 의미도 없으니, 일단은 시킨 일이나 해라. 이청운을 되살린 후에 모든 게 확실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