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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65화 (365/1,615)

00365  천계(天界)  =========================================================================

나는 사불상을 써서 바로 백련교에 귀환했다. 중간에 망량에게 들러볼까 생각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왜냐하면 백련교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내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그동안의 내 행적을 모두 관찰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백련교주가 장령곡주로서 일대의 무림세력을 모조리 제압해버린 걸 보면, 진랑곡 근처에 교주의 끄나풀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순간이라 할지라도 진랑곡에 들르게 되면 강호 곳곳에 퍼져있는 교주의 이목 때문에 망량까지도 백련교주의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물론 들키지 않을수도 있지만, 지금 그 정도의 위험을 무릅써야할 이유가 없었다. 비등과 목갑을 강탈당한 상황에서 만에 하나 망량이 인질로 잡히게 되면 큰일이었다.

내 생각을 읽은 제갈사가 비웃듯 말했다.

[ 돌다리를 두들기며 가는군. 매번 그랬다면 죽는 횟수가 반은 줄어들었을 텐데.]

"좀 닥쳐..."

사불상에서 내린 나는 짜증을 내며 교주전으로 향했다. 출입구에 있던 삼로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순간이동을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게 사실이었군. 요녕성까지 이리도 순식간에 갔다올 줄이야."

"......"

"너무 경계하지 마라. 네가 교주에게 쓸모있는 이상 원로원은 너를 도울 테니까. 앞으로 한솥밥을 먹게 될텐데 인상쓰면 네 녀석만 피곤할 거다."

그렇게 말한 삼로가 히죽 웃었다.

"교주께서도 너를 보고싶어 하신다. 따라와라."

"알겠소."

나는 삼로를 따라서 교주전으로 향했다. 교주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 그대는 내가 십이율주를 이토록 경계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가?]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가 거느린 십이율의 세력이 강성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물론 십이율은 강한 세력이지. 우리 백련교를 제외한다면 새외의 세력 중에서 단연 으뜸. 그들의 힘을 다 합친다면 중원의 구파일방보다 두 배는 강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십이율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 세력의 힘 때문이 아니다. 그런건 어차피 호법사자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일.]

"그럼..."

[ 십이율주 개인과 삼사(三師). 그리고 그가 몸을 담고 있는 만하령문이란 문파... 그게 가장 껄끄럽다.]

묘한 일이었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나는 좀 더 머리를 굴리다가 말했다.

"십이율주의 무공과 술법이 굉장함은 알고 있으나 교주의 진경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 물론. 그 자는 매우 강하다.]

"......!!"

백련교주가 단언하다니!

나는 내심 당황했다. 그 동안 전생을 하며 십이율주가 매우 강한 존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얼마 전에 봤던 백련교주의 압도적인 무위(武威)가 인상적이었기에 내심 십이율주를 아래로 두고 있었다. 아무리 인간중에 강하다고 해도 백련교주의 원영신과 현겁, 무량심천같은 절기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백련교주의 태도는 완전히 그를 자신과 동급으로 보고 있었으며 확실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내가 백련교주를 쳐다보자 교주가 말했다.

[ 만하령문을 두려워함은 그들 또한 신(神)의 직계임을 고문(古文)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삼사라고 불리는 운사, 우사, 풍백도 반쯤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들이지. 그러나 그보다 두려운 것은 바로 십이율주는 그런 만하령문에서도 낮도깨비처럼 튀어나온 절대자라는 사실이다.]

"십이율주는 인간이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봉황소환이 가능한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가능한 시점에서 그 자는 인간을 초월했다.]

"......"

나는 문득 과거 십이율주를 대면했을 때 그의 자기소개를 떠올렸다.

[ 뭐라 대답해야할까... 해동문 십이율(十二律) 만하령문(萬河靈門)의 봉황(鳳凰)을 다스리는 23대 하백(河伯)으로서의 의무감... 혹은 삼위태백의 신단수를 다스리는 단군(檀君)으로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하려는 의무감... 혹은 칠요 중 목요(木曜) 해인(海印)의 주인으로서 다른 칠요의 주인에 대한 호기심... 어느 쪽으로 봐도 좋겠군.]

그 때는 그저 십이율주에게 다른 직책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백련교주의 말을 들어보면, 만하령문의 봉황을 다스리는 하백이며 단군이라는 직책에 굉장한 의미가 있는 듯 했다.

' 음... 십이율주의 힘의 비밀은 그저 목요 해인 뿐만이 아닌건가? 설마 목요 해인을 지닌 것보다 단군으로서의 힘이 더 강하다는 뜻인가?'

칠요의 주인보다 강력한 힘이 있을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가 없다. 십이율주는 온갖 사실을 다 주절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정말 중요한 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저 객관적인 단서만 몇 번 던져줬을 뿐 자신이 심중에 숨기고 있는 꿍꿍이나 비밀은 털어놓지 않은 것이다. 정말로 음흉한 자였다.

나는 속으로 제갈사에게 물었다.

[ 십이율주에 대한 내 기억을 읽었겠지? 너는 십이율주를 어떻게 생각하냐.]

[ ......]

[ 제갈사?]

제갈사가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 잘 모르겠군. 그 놈은 너무 생뚱맞아.]

[ 좀 그런 감은 있지.]

[ 생뚱맞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는 대답하는거냐? 쯧...]

난데없이 나를 바보취급하는 제갈사였다. 나는 욱해서 뭐라 대답하려 했지만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 정상적이라면 백련교주를 위협할만한 존재, 그것도 인간세력은 존재할 수 없다. 그건 그를 직접 맞닥뜨린 내가 가장 잘 알지. 백련교주는 동방 역사상 최강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초인(超人)이며 투선급 존재다. 백련교주를 제외한 백련교 모든 세력과 중원무림세력을 합쳐도 백련교주를 이길 수 없을 거다.]

[ 그게 왜?]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는 백련교주와 대등한 십이율주란 존재가 있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저런 존재가 출현할 확률은 엄청나게 희박한데도 하필이면 이 시대라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냐?]

[ ......]

그건 그렇다. 지금까지 너무 당연한 듯 십이율주가 내 삶에 끼어들었기에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이지만,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역대급 최강자가 동시에 두 명이나 존재할 수 있는 걸까? 내가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제갈사가 말했다.

[ 현이도 그 점을 수상하게 여겨서 지난 생에 십이율을 끌어들여서 백련교를 견제함과 동시에 그 비밀을 파헤치려 했나 보군. 뭐 아무튼 한번쯤 십이율을 파고들 필요도 있다.]

[ 백련교가 먼저지.]

[ 됐고 얼른 눈 앞의 일이나 신경써라. 백련교주가 수상하게 여기잖나.]

앗!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백련교주와 나 사이의 침묵은 꽤 긴 공백을 맞이하고 있었고, 백련교주의 시선이 이쪽으로 뚫어져라 향하는게 명백히 느껴졌다. 나는 황급히 백련교주에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생각이 길어져서..."

[ 그대는 생각이 많군. 나쁘지 않아.]

"주의하겠습니다."

[ 신경쓰지 말게.]

백련교주는 가볍게 넘겨버리고는 말했다.

[ 지난번에 그대가 뇌신류의 귀환임무는 싫다고 했었지. 그 말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이번 보상을 달리 준비하기로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 천령단을 바로 하사하고 싶지만 수신류 내부는 지금 한창 승격의식 때문에 분주하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천령단을 줄 수 없어. 적어도 이삼 년은 기다려야 하지.]

"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어차피 해신을 상대함에 있어서 천령단의 단점을 들었기에 마침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승격의식이란 게 따로 있단 말인가? 그리고 천령단을 얻는데는 수신류의 힘이 지대한 듯 했다.

백련교주의 말이 이어졌다.

[ 그래서 나는 그대의 스승으로서 제대로 수련을 시켜주는 게 올바른 보상이라 생각했다.]

"수련이라니요?"

백련교주가 왠지 침중하게 말했다.

[ 이미 몇 차례 내부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대의 실력을 가늠해본 호법사자 3인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실력부족이라고 하며 난색을 표하더군.]

"......"

[ 다른 문파면 몰라도 뇌신류의 종사(宗師)라고 하기엔 납득할 수 없다 하였다.]

이건 또 뭐야?

나는 골치아픔을 느꼈다. 그 말대로라면 그 날 장령곡에 모였던 호법사자 모두가 나를 기대이하라고 생각했다는 뜻 아닌가? 그간 용비천이나 한백령은 내 무공에 꽤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서 불쾌하자 제갈사가 낄낄거렸다.

[ 크크, 멍청한 놈아. 일반 중원무림인이라면 감탄할 무공이겠지만 뇌신류는 천년역사 사대무류 중에서 최강을 다투던 무맥이다. 사대무류 종사로서 네 녀석의 실력이 결격이라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천령단을 제하고 봐도 네녀석의 무공은 용비천에도 미치지 못해.]

[ 윽...]

아픈 곳을 찔린 기분이었다. 확실히 내 무공 실력은 이제 이광을 살짝 넘어섰지만, 호법사자들의 눈에는 차지 않을 것이다. 이광수준이 중원 기준으로는 최상위 초절정고수이지만, 최강무림세력인 백련교에 그 정도 고수는 그리 드물지 않았다. 당장 원로원만 따져도 이광급 고수가 최소한 다섯 명이 넘어갈 것이다. 또한 과거 벽력삼존 중에서 적월과 녹월이 이광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던 걸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침묵하고 있자 교주가 말했다.

[ 삼보절기(三步絶技)를 포함해서 칠대절학의 연구해석을 내가 손수 해 주겠다. 삼 년 정도면 어느정도 성과가 있겠지.]

"네?!"

[ 싫은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 물론 좋은 조건이지만...'

무공에 있어서 백련교주를 넘어서는 자는 강호에 존재하지 않는다. 실질적인 무림 최고수가 직접 나를 지도해주는 건 굉장한 기연이었다. 그러나 저 말은 동시에 내가 지니고 있는 칠대절학을 숨김없이 그에게 모두 전해줘야 함을 의미했다. 세부적인 칠대절학의 요결마저도 백련교주에게 전해주게 되면 장삼봉의 깨달음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셈이다.

안 그래도 인간을 초월한 강함을 지니고 있는 교주인데, 칠대절학을 온전히 얻게 되면 얼마나 강해질 것인가? 어쩌면 뇌신류의 뇌신지혼마저도 필요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 백련교주에게서 내 보물을 되찾는 게 영영 불가능해지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큰 은혜에 감읍드릴 뿐입니다! 부디 많은 지도를 바랍니다."

어차피 백련교주는 지금 시점에서는 건드릴 수 없는 거대한 산맥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대항할 힘이 생길 때까지는 최대한 이용하면서 내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내 보물은 이번 생에는 아예 포기하는 편이 나았다.

백련교주가 흡족한 듯 말했다.

[ 누군가를 가르쳐 보는 건 오랜만의 일이라 서툴지도 모른다. 잘 따라오도록.]

"네. 당연합니다."

백련교주에게서 삼보절기를 가르침받아서 열심히 수련하면 다음 생, 혹은 십 년 후에는 충분히 써먹을 정도로 강해지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백련교주의 말이 이어졌다.

[ 본교의 분위기를 익힐 시간이 필요하겠지. 사흘 후에 다시 부르겠으니 이 신패를 받아라.]

휘익

왠 금패가 날아왔다. 내가 금패를 공손히 받아들자, 거기에는 뇌신(雷神)이라는 글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만져보니 순금재질으로 보였다. 물끄러미 금패를 내려다보고 있자 교주가 말했다.

[ 뇌신류 호법사자임을 증명하는 금패다. 호법사자 이하의 다른 백련교 무인들은 앞으로 그대 백웅의 명을 듣게 될 것이다.]

"존명!"

[ 그럼 물러가라.]

나는 백련교주의 알현실에서 물러나왔다. 그리고 다시 삼로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삼로가 말했다.

"백웅. 금패를 받으셨으니 앞으로 뵐 때는 정식 호법사자로서 대우해 드리겠소."

삼로의 말투가 반존대가 되었다. 내가 그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삼로가 클클거렸다.

"물론, 알맹이가 있어야 진짜 호법사자 대우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게 무슨 말이오?"

삼로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뇌신류는 달랑 당신 혼자. 심지어 실력도 종사급에 미치지 못하니 섣불리 호법사자의 권위를 내세우면 비웃음을 살거란 말이오."

"......!!"

"고깝게 듣지 마시오. 이건 충고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삼로의 말이 이어졌다.

"풍신류와 화신류의 고수 중 나이를 많이 먹은 원로들 중에는 굉장한 맹자(猛者)들이 있소. 그 자들은 원로원의 수위급 고수들도 함부로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강하지. 섣불리 나대다가 체면을 잃지 말길 바라오."

"... 알았소."

나는 삼로의 말이 충고라는 걸 납득할 수 있었다. 삼로는 원로원 소속이라서 백련교 내의 정세를 가장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존재였고, 그 나름대로 신입 호법사자를 위한 충고를 해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 내 무공만 해도 현재 중원무림에서 상대할 자가 몇 되지 않는데... 백련교에서 운신하기가 이토록 힘들단 말인가?'

하지만 어쨌든 백련교에 제대로 입교한 셈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번 생에서 얻을만한 게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숙소에 도착하자, 이십대로 보이는 아름다운 미녀가 시비 복장을 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호법사자님."

"누구요?"

"목욕물이 다 준비되어서 시중을 들러 왔습니다."

"......"

나는 얼굴이 시뻘개졌다. 목욕 시중이라 함은 암묵적으로 남녀간의 정사(情事)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고위층이나 부유한 자들이 접대를 받을 때 흔히 쓰는 은어였다. 나는 혹시나 내가 착각했을까봐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혼자서도 씻을 수 있소. 만일 다른 의미를 말하는 거라면 거절하겠소."

"다른 의미였습니다만..."

"......"

당당한 말투에 내가 당황하자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그럼 목욕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필요없소. 대체 누가 그런 걸 시킨 거요?"

"교주께서 호법사자님을 보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윽..."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긴 이 시점에 호법사자의 시중을 들라고 시킬만한 존재가 백련교주밖에 없었다. 그는 아마 나를 반로환동 경지에 이른 성인이라고 판단하고는 괜한 배려를 한 듯 싶었다. 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 내 육체는 외견상 어린아이에 불과한데 왜 그런 배려를 한단 말인가?'

아무튼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호의다. 나는 혹시나 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다른 호법사자들도 다 이런 시중을 받고 있소?"

"글쎄요. 이런 명령을 들은 건 저도 오늘이 처음이라..."

"나참. 교주께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물러가시오."

"네. 편히 쉬시길."

그녀가 방 밖으로 나가자 제갈사가 이죽거렸다.

[ 왜 그러냐. 동자공이라도 익힌 거냐?]

"젠장할. 나는 미호 말고는 필요 없어."

[ 크크크... 전생자가 순정파라니 웃겨서 미칠 지경이군.]

"아 좀 닥..."

제갈사가 갑자기 말투를 바꾸며 말했다.

[ 이봐. 네 녀석은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라도 내년 신년 초하루까지 신강(新疆)으로 가라.]

"뭐?"

[ 원래 내가 했어야 할 일이었는데 육체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못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네가 해야 한다.]

나는 황당해서 대답했다.

"뭔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 위치는 신강에서도 토번(吐蕃)에 있는 청장고원(?藏高原)의 장북(藏北)이다. 너는 반드시 거기에 가야 한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왜 거길 가야하는데? 거긴 서장으로 가는 길목이잖아."

황당하다. 지금 제갈사가 말하는 장소는 정말로 내가 가본 적이 없는 장소였다. 왜냐하면 신강 토번 일대는 중원에서 벗어나서 확연히 서장으로 향하는 머나먼 사막지였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가다보면 사막이 나오고, 그 사막은 수천 리에 이르는 천연의 험지였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그런 변방까지 가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질문에 제갈사가 대답했다.

[ 거기에 벽지상이 배교 교주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도왕 벽지상?"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그게 무슨 이유가 되냐? 네가 벽지상과 어떤 만날 약속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 부탁을 들어줄 이유는 없..."

[ 꼭 가는 게 좋을 거야. 가지 않으면 벽지상이 너를 죽이러 올 테니까.]

나는 멍하니 있다가 코웃음을 쳤다.

"웃기고 있네! 벽지상이 강하다고 해도 기껏해야 사천의 절정고수인데 무슨..."

제갈사는 그답지 않게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 그건 외견상 쓰고 있는 설정일 뿐이지. 결코 진면목이 아니야. 네 녀석은 그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어.]

"정체가 뭔데? 내가 벽지상을 못 이긴단 소리냐?"

[ 그래. 싸우게 되면 넌 1초만에 죽을 거다.]

"......"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황당해서 굳어 있자 제갈사가 말했다. 그도 내심 골치아픈 기색이었다.

[ 설마 이렇게까지 꼬일 줄은 몰랐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말해줘야겠군.]

"무슨 말?"

[ 벽지상은 인간이 아니야. 내가 왜 요절할 수명을 억지로 늘리지 않았는줄 알아?]

"인간이 아니면 뭔..."

설마.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말을 멈췄다. 제갈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실실 웃더니 광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마왕(魔王)과 계약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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