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4 천계(天界) =========================================================================
이 미친 놈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나는 순간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지만, 동시에 헛웃음이 나와서 그를 깔보듯 말했다.
"왜 사냐니 미쳤냐? 네 녀석이 그런 걸 왜 묻는지 모르겠..."
[ 네 삶은 지금 모순투성이다.]
갑자기 내 말을 끊은 제갈사가 잔잔하게 말을 이었다.
[ 영겁토록 지배자의 압제에 고통받기 싫어서 힘을 키우고 칠요를 모은다라... 좋지. 큰 그림을 그린다고 보면 아주 좋은 삶의 목표야. 힘을 키우면서 덤으로 세상도 구하는데 이 어찌 좋지 않을소냐! 그런데 이거 정말 이상하다는 거 알고 있어?]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 정작 그런 네 녀석 본인은 [옛 지배자]에게 사랑받고 있고, 그들은 네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적이 없어. 지금 상황을 보면 이 세상의 철리(哲理)에 너 홀로 발버둥치며 벽과 싸우는 것 같단 말이다.]
"......"
나는 바로 제갈사의 말에 반박하려 했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제갈사가 내가 평소에 흉중에 품고 있던 모순을 정면으로 찌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제갈사에게 반박했다.
"사랑받긴 개뿔! 어차피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을 유희거리로 볼 뿐이야. 원할 때 언제든 착취하고 찢어발길 수 있는 벌레로 볼 뿐이야. 내 전생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그런 자들의 손아귀에서 한없이 불안해하며 살란 말이냐? 그렇게 살다가는 공포심과 절망에 미쳐버리고 말 거다."
[ 호오, 일리있어. 일리있는 생각인데 왜 내 눈에는...]
제갈사가 히쭉 웃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네가 이미 미쳐버린 것처럼 보이는 건지.]
"뭐?"
[ 현이도 어지간히 미쳤군. 광기(狂氣)가 동조하는 셈인가.]
알지 못할 개소리를 지껄이던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네 전생을 돌이켜본 결과, 결과적으로 내 의견에 따른 전생이 가장 성과가 좋았지. 안 그러냐? 신의 힘을 빌어서 황궁을 쓸어버렸고 복마전의 [옛 지배자]와 다툴 일도 없어졌어. 네놈이 내 말만 들었어도 그대로 행복한 일생으로 끝나지 않았겠냐.]
"윽... 그건."
나는 멈칫했다.
확실히 그렇다. 사감(私感)을 제하고 여태껏 전생의 결과만 보면 제갈사의 의견에 따랐을 때가 제일 결과가 좋았다. 난데없이 [옛 지배자]가 강림해서 깽판을 쳤다는 안좋은 점이 있었지만 그 또한 내 선택이었다. 제갈사의 말대로 따르기만 했으면 어쩌면 좋게 끝났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제갈사가 클클 웃으며 말을 이었다.
[ 너희는 생각을 잘못하고 있어. 인간으로서 신(神)과 맞서는 건, 그리고 신을 타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칠요를 다 모으면 일말의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거야말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대업적. 칠요를 다 모은 시점에서 너는 이미 칠요가 필요없을 정도로 강대한 신적 존재가 되어있을 거다. 달리 말하면 그 순간 인간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신과 신이 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
[ 그리고 칠요를 다 모은다고 해서 [옛 지배자]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 성좌의 주인으로서 우주홍황(宇宙洪荒)을 제집처럼 누비는 절대자의 힘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 백련교주를 쳐죽였던 그 힘도 티끌만한 힘에 불과할 수도 있어.]
"하지만, 시도하지 않는 건 그저 타협에 불과해!"
제갈사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으나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회담장의 벽을 쾅하고 치며 격렬하게 외쳤다.
"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고 수십 년을 산 적이 있어! 그리고 썩을 놈의 하급표사가 되어서 허망하게 죽었다. 내가 좀 더 현실을 낫게 만들려고 노력하며 살았다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 거야. 그렇게 비참하게 인생을 살지는 않았을 거야. 전생을 하면서 수십 수백번도 더 느끼는 거라고."
[ ......]
"노력을 하면 조금이지만, 티끌만큼이라도 뭔가가 나아져! 그래서 최선을 다하겠다는데 그게 잘못되었다는 거냐?!"
지금껏 망량에게도 솔직히 털어놓지 못했던 내면의 억하심정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제갈사가 마냥 나의 동료가 아니라 심중을 찌르며 압박하는 상황이 큰 역할을 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제갈사가 대꾸했다.
[ 노오오오오력~을 하는군. 대단하셔라. 금수저들이 참 좋아할 생각이네.]
"뭐?"
[ 아니. 그냥 해본 말.]
킬킬대던 제갈사의 말이 엄혹하게 이어졌다.
[ 전생을 19번이나 하면서 네 녀석은 많은 걸 얻어냈지. 하지만 그래서 지금 상황은? 신의 힘에 터럭만큼이라도 따라잡았나? 단언하건대 지금 네 녀석 방식으로 하면 20번이 아니라 50번을 죽어도 네 목표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짜증이 나서 으르렁거렸다.
"무슨 개소리야! 이미 칠요 중에서 4개의 행방을 알아냈고 월요는 원한다면 언제든 얻을 수 있어. 그리고 화요도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 물론. 네 놈은 얻을 거 다 얻으면서 진행하고 있잖냐? 그러다가 뭐 하나 삐끗하면 돌연사하는게 일상인데 말이지.]
"......."
[ 아무리 전생자라지만 너처럼 잘 죽는 놈도 드물겠지.]
돌연사라는 말에 할 말이 없어진다. 제갈사가 느긋하게 말했다.
[ 물론 그렇게 진행하면 좋은 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 천령단이 마냥 좋은 게 아니란 걸 알아낸 건 큰 수확이야. 천령단에만 집중해서 천령단부터 얻어냈다면 알아내지 못했을 부작용이 존재했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내 생각은 네녀석은 좀 더 하나에 집중하는 편이 좋아.]
"집중이라고...?"
[ 칠요면 칠요, 무공이면 무공. 그리고 버릴 건 버려. 그렇게 해서 최대한 세력을 확장시키는 방안이다.]
제갈사의 목소리에 광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 어째서 뇌신류와 늘 손을 잡는 거지? 잘 됐으니까 이번 기회에 뇌신류를 멸망시켜버려! 얻어낼 것도 다 얻어냈겠다 슬슬 팽해도 괜찮은 시점 아니냐? 이광도 쳐죽이고 진소청도 쳐죽이고 아무튼 뇌신류 놈들은 씨를 말려버리라고! 그리고 백련교에 충성하면서 시점을 세계로 넓히는 거다. 기왕 하는 김에 백련교로 세계를 정복해버리고 나서 절대자의 진의(眞意)을 알아보는 게 최선이다.]
"......"
순간적으로 귀가 솔깃했다. 왜냐하면 뇌신류를 버린다는 발상은 나도 심심찮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소청이 흑요석을 공유하는 동료가 되면서 의리상 그렇게 하기가 눈치보이기에 미뤘을 뿐이다. 게다가 그의 말마따나 나는 이미 뇌신류에서 얻어낼만한 게 거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뇌신지혼이 남아있어. 그걸 얻을 때까지는 지켜볼 거다."
제갈사가 나를 비웃었다.
[ 크크크... 욕심이 과하군. 삼보절기도 제대로 얻지 못한 둔재 주제에 천년 역사의 백련교 최강의 무파(武派)가 만들어낸 궁극의 미완성 무예를 완성시켜 얻어내겠다는 거냐? 너 지금 소설 쓰냐?]
"그건..."
[ 잘 알아둬라. 네 녀석의 허황된 큰 그림은 등하불명(燈下不明), 마땅히 보아야 할 것조차 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모순을 지적해줘도 재밌겠지만 이 정도로 해 두지.]
"......"
허황된 큰 그림. 나는 그 말에 심장을 비수로 찔린 기분이 들었다.
벌써 19번째 삶이다. 그 동안 수많은 야망을 품었으나 허망하게 죽은 경우가 많았기에 이번 삶의 시작시점에서는 상당한 허무감을 느꼈다. 제갈사의 말을 마냥 헛소리라고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주저앉을 거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으리라. 나는 가볍게 콧김을 내뿜고는 말했다.
"어떻게든 내 머릿속에서 네 녀석을 쫓아내겠다."
[ 크크, 어떻게?]
"이혼대법을 익혀서 네녀석의 혼을 다른 육체로 옮기면 그만이다. 그 후에는 네 녀석이 어떻게 살든 알 바 아니니까 제발 꺼져줘."
[ 오, 그건 나도 환영이다. 그런데 육체는 어떻게 마련하시게?]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가 협력해 줘야지."
[ 이유는? 아, 말 안해도 알고 있어. 네 술법실력으로는 수정석비에서 초상기인을 생성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니까 그런 거지? 그리고 이혼대법은 죽은 육체에 혼을 옮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테고.]
"......"
[ 뭐 알려줄 수 있어. 어려운 일도 아니지. 나도 이 혼백 뿐인 상태에서 탈출해야 하니까. 그런데 말이지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지 않나?]
"뭔데."
제갈사가 킬킬댔다.
[ 배교교주의 비전인 이혼대법이 쉬운 줄 아냐? 나조차도 대성하기 위해서 삼 년 이상 뼈를 깎는 수행을 거쳤던 게 이혼대법인데 너같은 둔재가 일조일석에 익힐 수 있을 거 같아? 백(魄)을 뽑아내는 것만 해도 네 녀석은 십 년이 걸릴텐데.]
"십 년이 뭐가 어쨌다고? 하면 되잖아. 나는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야."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제갈사가 또다시 비웃었다.
[ 웃기지 마. 네 녀석이 정상적인 수련속도로 이혼대법을 대성하려면 최소한 이백 년은 걸린다. 배교 교주의 이름을 걸고 장담하지. 도교 최고의 영재조차 진땀을 뺄 배교 최고의 비전을 날로 먹겠다고?]
".......!!"
그가 연속해서 빈정거렸다.
[ 오래 사니 좋겠네. 이백 년 동안 뼈빠지게 노오오오력을 하시겠다니 감격할 따름이야.]
"이익..."
나는 욕지기를 하고 싶었지만 순간 멈칫했다. 제갈사가 다름아니라 배교 교주의 이름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말은 괜히 나를 놀리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냉정을 되찾으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되면 네 녀석도 좋지 않을텐데. 뭔가 방법이 있으니까 하는 말이겠지?"
[ 흠... 그래도 전생 짬밥을 헛으로 먹은 건 아니란 건가. 최소한의 가락은 있구만.]
뭔가 감탄하듯 말하던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그래. 내가 네 녀석에게 이혼대법을 전수하면 충분히 이혼대법을 익히는 게 가능하지. 대성의 경지는 특수한 과정이 필요해서 모르겠지만 7성 경지까지라면 내가 십 년 내에 이끌어줄 수 있다.]
"7성! 그건 어느 정도 성취냐."
[ 내 혼을 분리해서 초상기인에 넣기에 충분한 성취지.]
"흠..."
나는 솔깃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현존하는 유일한 이혼대법의 대가에게 수련을 받으면 아무리 둔재인 나라도 이혼대법을 쓸만하게 익힐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본래 무공밖에 모르는 상태였다면 그리 끌리지 않았겠지만, 나는 지선 망량의 지식과 이혼대법의 수련을 통해 그 위력을 알게 된 상태였다.
이혼대법은 말 그대로 천고의 비결이었다. 이혼대법을 수련한 자는 생사를 초월해서 제 마음대로 세상을 농락하는 게 가능했다. 실제로 제갈사는 본신의 수명과 명운이 요절하게 되어 있음에도 사후의 세계와 타 차원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지 않는가? 게다가 백련교주가 몸을 없애버렸음에도 이렇게 내 머릿속에 혼을 옮겨서 삶을 연장할 수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술법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 엄청난 술법인 건 틀림없었다.
이혼대법을 잘 쓸 수 있으면 돌연사를 피하고 내 삶을 연장하며 더 많은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득에도 불구하고 의심이 가서 제갈사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지?"
[ 없지.]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까 맥이 빠지는데..."
[ 지금 네 녀석은 내가 뭐라고 말해봤자 변명이라고 느낄 게 아니냐? 피차 시간낭비 하지 말지.]
가볍게 대꾸한 제갈사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 한 가지 말해두지. 지금 내가 네 영혼과 공생을 하고 있지만 만일의 경우 자폭을 무릅쓰고 네 녀석의 백(魄)을 날려버려서 적어도 50년은 백치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나는 소멸하겠지만 네 녀석은 어딘가의 거지소굴에서 노예로 굴러먹을 수도 있다는 거지.]
"거짓말 하지 마라."
[ 흐흐, 거짓말일까?]
불길하게 미소를 흘린 제갈사가 말했다.
[ 뭐, 나로서도 너와 원한을 지는 건 바라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나의 안락한 노후와 불로불멸이니까. 다만 서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내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란 소리다.]
"네 녀석이 이혼대법을 전수하는 척 하며 내 육체와 혼을 강탈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 크크크... 진심이냐?]
"뭐가?"
제갈사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 네 녀석의 현재 위치도 모르고 있나? 그걸 알고 있다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을 텐데.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멍청하군.]
지금의 말은 단순히 비웃는 게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너무 의미심장해서 짚고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놈은 지금 뭔가 중요한 말을 했다.
"무슨 소리야."
[ 아, 됐고 내 제안이나 받아들여라. 나도 바보가 아니니까 섣불리 그런 모험을 하진 않는다.]
"으음..."
나는 고민했다. 이 수상쩍기 그지없는 제갈사의 제안을 과연 받아들여야 할까?
휘잉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스산해지기 시작한 회담장의 한켠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망량과 이야기해보고 결정을 내리겠어. 그래도 늦지 않아."
[ 네놈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근데 너무 현이에게 의존하는 게 아니냐?]
"또 무슨 헛소리를 할려고?"
[ 현이는 네놈의 욕망만 충족시켜주는 기계가 아니다. 당연히 녀석에게도 나름대로의 욕망과 소망이 있지. 네놈은 십수 번이나 전생을 하면서 그걸 참 가볍게도 여기는군.]
"......"
[ 좀 더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게 좋을 거다.]
"닥쳐."
나는 고개를 젓고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백련교로 돌아간 다음에 생각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