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0 천계(天界) =========================================================================
무영검제를 동료로 얻은 후, 나는 망량에게 가려다가 멈칫했다.
' 음... 왠지 민망해.'
지난 생의 죽음은 내가 성급하게 주작을 죽이러 가버린 사람에 생긴 일이었고, 삼사 운사가 해준 점괘의 흉조를 제대로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즉 전적으로 내 잘못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바로 망량의 얼굴을 보는 게 왠지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생각했다.
' 뭐라도 하나 더 얻어놓고 나서 망량을 찾아가자.'
망량이 더 좋아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왠지 그렇게 하는게 내 면피가 될것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행보는 당연히 여동빈의 화룡신검에 연관되어 있었다.
화룡신검!
그것은 검선 여동빈이 생전에 쓰던 보패로서 여동빈의 신물이었다. 그는 여산에서 마지막으로 거악과 양패구상할 때 화룡신검을 잃고 등선했다 하였으니, 나는 우선 여산에서 그의 보패를 찾아보아야 했다.
' 여산은 강서성(江西城)인가...'
강서성이라면 양자강 남쪽으로서 안휘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있는 곳이었다. 강서성 쪽은 별로 들러본 적이 없었기에 비등으로 기억나는 장소를 이동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나는 신법을 써서 강과 산을 넘으며 강서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강서성에 가는 도중에 파양호(??湖)를 볼 수 있었다. 파양호는 거대한 호수로서 수평선이 길게 보일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나는 예전에 몽골에서 보았던 호수들을 생각하며 파양호의 정경을 잠시 즐겼다.
그리고 파양호 근처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먹고 사는 어부 하나를 만나서 파양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파양호와 관련된 이야기?"
어부는 눈을 꿈벅이다가 말했다.
"그거야... 진우량(陳友諒)과 태조의 싸움이지~"
"진우량이라면 과거 태조 홍무제의 가장 큰 적수였다는 자 말입니까?"
"그려 뭐... 60만 대군을 이끌고 진우량이 홍무제와 겨뤘지만,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홍무제께서 승리하셨다 하지."
어부가 마른 물고기포를 뜯으며 말을 이었다.
"끌끌. 잘은 몰라도 강바닥에 배가 많이 침몰해 있을거여."
"그렇겠지요."
"이 근처에 산적이 꽤 돌아다닌다 하니 조심혀라. 여기서 이십 리만 더 산골짝으로 들어가면 무사도 위험허다."
어부 나름대로의 조언인 듯 했다. 확실히 이 곳은 파양호의 입구이자 경계선으로 보였고 나름대로 큰 마을에 인기척도 많았다. 하지만 더 오지로 들어가면 산적들이 횡행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산적 따위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으나,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 뭐지... 음기(陰氣)인가...'
서늘한 기운이 등골을 스친다. 나는 기분탓인가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음울하고도 소름끼치는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림고수의 살기나 위압감과는 분명히 다른 것으로, 흉칙한 예감에 가까웠다.
나는 왜 그런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 그래!'
우우웅
나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십지에 술법을 모아 천신경의 술법을 발동했다. 그러자 영의 기척이 감지되었고 이윽고 사방에 가득한 영령의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후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원령(怨靈)이 이리도 많단 말인가?'
바로 눈에 띄이는 것이 원령이었다. 원한을 품은 영혼들이 넋나간 듯 강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더러는 강 아래에 있었고 수면에 고개를 빼꼼 내놓은 놈도 있었고, 둥실거리는 영도 있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숫자가 적어도 수천은 되어 보였다.
원한을 품은 영이 이토록 많기 때문에 내가 음기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 원령이 많다면 진작에 사람들이 몸에 이상을 느꼈어야 하지 않은가?
퇴마사가 주의를 주고 갔어야 정상이 아닌가?
하지만 어부를 비롯해서 사람들은 마을에서 멀쩡히 살고있는 모양이었고 나만이 한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뭔가가 이상했지만 이윽고 원령들에게 직접 다가가서 만져보려 하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그렇군...'
지금 내가 보는 것은 실재하는 영들이 아니다. 과거에 남아있던 잔재기억들이 이 장소에 묻어 있었고, 그 기억이 마치 영이 존재하는 것처럼 투영시킨 것이다. 과거의 기억일 뿐이니 보통 사람이 느낄 리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이 어째서 생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천신경의 술법은 기억의 잔재도 읽을 수 있다!
이건 술자가 의식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능력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 소소한 능력을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달리 말하자면 그저 과거의 기억을 잠깐 훑어보고 직감하는 능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갖고 있으면 언젠가 쓸 데가 있겠지.'
나는 대수롭게 생각지 않으며 파양호를 떠났다. 파양호를 떠나서 강서성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되자 큰 도시가 나왔고, 그 도시에서 여산으로 가는 표국상단을 찾았다. 그리고 야동표국(惹動?局)의 표사에게 돈을 주고 길을 알아냈다.
"여산? 여기서 말을 타고 사나흘 걸리는 거리인데... 북동으로 관도를 따라가다보면 나올 것이다. 자세한 건 이렇게..."
표사는 표사가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간이용 지도를 내밀며 설명해 주었다. 표사야말로 이런 질문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존재인 것이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소."
"나이어린 무가의 자식으로 보이는데 홀로 다니기 힘들겠군."
"별 말씀을... 그런데 야동표국이란 이름이 무슨 뜻이오?"
표사는 힐끔 표국의 현판을 보더니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국주님은 늘 저 이름을 자랑스러워 하시더군. 깊은 뜻이 있다더라고. 우리 표국은 유서깊은 표국이다."
"그렇군! 멋진 이름이오."
"하하, 야동을 잊지 마라."
나는 표사와 헤어져서 여산으로 곧장 뛰어갔다. 여산의 입구에 들어서자 나는 천신경의 술법을 발동해서 정보를 알아내기로 했다.
우우웅 -
' 근처에 있는 강력한 영은... 두 명인가.'
나는 거대한 영을 불러들였다. 그러자 영체의 형태가 명확히 보였는데, 하나는 왠 도인(道人)이었고 다른 하나는 거문고를 뜯고 있는 아리따운 소녀의 영이었다. 나는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서 하나하나 물어보았다.
"당신은 누구시오?"
[ 나는 송풍산인(松風山人)이다.]
"당신은?"
[ 혜원(慧遠)이라고 해요.]
"......"
전위나 방현령 때와는 달리 잘 알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물론 천신경의 술법에 이끌려서 나타난 이상, 이들도 생전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상당한 기인호걸들이었으리라.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들에게 물었다.
"나는 여동빈의 보패인 화룡신검(火龍神劍)을 찾으러 여기에 왔소. 혹시 아는 게 없소?"
내 질문에 송풍산인이 눈썹을 치뜨며 말했다.
[ 알면 내가 가졌겠지. 허나 내가 여산에서 도를 닦는 89년동안 그런 건 전혀 보지 못했다.]
"89년?"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송풍산인이 도를 닦은 기간이 굉장히 길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혜원에게 질문하자 그녀는 거문고를 띠링 뜯더니 말했다.
[ 제 신자들과 함께 절을 만들 때도 보패처럼 강력한 영기는 느껴본 적이 없었답니다. 화룡신검은 여산에 없어요.]
"절을 만들어? 당신은 중이었소?"
[ 그랬답니다.]
아마도 도가와 불가의 기인들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했다.
' 흠. 89년이나 도를 닦은 도인이나 불가의 여승도 모른다 하면... 정말로 여산에는 화룡신검이 없나 보구나.'
그들이 모르는 곳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눈에 띌만한 장소에는 없다는 뜻이다.
하긴 여동빈이 마지막으로 악과 싸우고 승천한게 벌써 천 년이 다 되었다. 천 년이면 국호가 열 번 바뀌고도 남을만한 시간이라, 설령 최초에 여산에 있었어도 이후에 어디로 가 버렸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그들에게 물었다.
"그럼 여산에서 뭔가 얻을만한 영약이나 보물은 없소?"
[ 없는데.]
[ 없어요.]
"......"
정말 나는 여산에 왜 온 걸까?
허탈감 때문에 황당해서 어깨를 늘어뜨리자, 혜원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 아, 신기한 장소라면 하나 있군요.]
"어디?"
[ 향로봉(香爐峰)에 기암괴석이 있어요. 그 곳을 뒤져보면 뭔가 나올지도 모르죠.]
나는 여승 혜원의 말에 따라 향로봉을 올랐다. 이 곳은 여산에서도 절경으로 유명한 봉우리였지만 굉장히 험준한 지형때문에 인적이 드물었다. 나는 혜원이 말해준 곳으로 가려 했지만 산세가 깊어서 쉽게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 몸 줘봐요.]
결국 혜원이 답답한지 내게 강신했다.
타다닷
내게 강신한 혜원은 한참동안 심산유곡을 들어가더니, 왠 폭포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만장단애 한가운데에 있던 동굴을 돌파해서 밑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형형색색의 빛을 내는 버섯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리고 버섯이 피어있는 음지의 밑에 혜원이 말했던 기암괴석이 있었다.
혜원이 말했다.
[ 혼자서 여기까지 놀러온 적이 있었어요. 위험해 보여서 기암괴석을 뒤지진 않았지만 저기에 뭔가 있을지도 모르죠.]
' 혼자서 놀러왔다고? 여긴 놀러올만한 곳이 아닌데...'
[ 너무 심심하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 ......'
나는 황당함에 입을 다물었다. 심산유곡 만장단애에서 떨어지다가 거대한 폭포수 한가운데에 있는 동굴을 뚫고 버섯지대까지 오는 게 심심해서 할만한 일인가? 혜원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기인이었던게 틀림없었다. 나는 두 신령을 돌려보내고는 기암괴석으로 내려갔다.
쿠르르
땅이 흔들리며 안쪽에서 바람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에 공력을 집중해서 어둠을 잘 살펴보았는데, 역시 커다란 돌덩이 한가운데에는 구멍이 있었다. 나는 어쩔까 생각하다가 그 구멍 안쪽으로 기듯이 들어갔다.
그리고 이윽고 나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
굉장히 넓고 깊은 어둠이 있는데, 이건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몸뚱이와 같았다. 아니, 나는 지금 뭔가의 골격(骨膈)을 더듬고 있는 기분마저 든 것이다. 머릿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부정하며 밑으로 내려갔다.
"막혔군."
시꺼먼 어둠 속에서 나는 중얼거렸다. 한참을 내려왔지만 이제 막힌 것이다. 나는 여기가 대체 뭐 하는 곳일까 생각했지만 범상한 곳은 아닐 듯 싶었다. 억지로 파고들까 생각해 보았지만 만일에 절벽이 무너지면 큰일이므로, 일단은 밖으로 나왔다.
나는 맑은 햇빛 아래로 나와서 여동빈에게 물었다.
[ 여동빈. 방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았던 여산폭포 내부의 기묘한 기암괴석 이야기를 해 주자, 여동빈은 잠자코 듣고 있다가 말했다.
[ 향로봉이라 했는가?]
[ 그렇습니다.]
[ 바로 거기에 내 검이 있겠군.]
[ 아니... 없다고 하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보검이 있을만한 지형이 아니다. 내가 부정하자 여동빈이 단호하게 말했다.
[ 연자여. 향로봉 맞은편으로 가서 그 폭포를 멀리서 보아라.]
타닷
나는 여동빈의 말대로 했다. 그러자 만장단애 폭포의 장엄한 광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여동빈은 나와 시야를 공유하듯 비집고 들어오더니 말했다.
[ 알아차렸는가?]
[ 뭘 알아차렸단 말입니까?]
[ 잘 보아라. 저 폭포의 크기와 길이를.]
[ 아주 길고 크군요. 근데 그게 무슨...]
[ 마치 용(龍)과 같지 않은가?]
[ ......]
나는 멍청한 눈으로 향로봉의 만장단애를 쳐다보았다.
쿠르르르
웅대한 자연 그 자체가 눈 앞에 있었다. 수십 장 너비의 폭포가 눈 앞에 있다. 평상시라면 그저 장관이라고 하며 감탄하며 쳐다볼 테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나는 저 폭포가 떨어지는 거대한 절벽 그 자체가 하나의 생물이라고 생각하며 보게 되었고, 그 생명체의 크기를 상상하자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거룡(巨龍)!
산채만한 거룡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방금 들어갔던 기암괴석은..."
[ 내가 마지막으로 쓰러뜨렸던 거악은 고대에 봉인되어 있던 마룡(魔龍)이었다. 그를 없애고 심장에 칼을 박아서 여산에 봉인했지.]
여동빈이 단호하게 말했다.
[ 마룡은 자기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연과 동화하여 산이 되어버린 모양이군.]
"그 말은... 저 절벽 그 자체가 마룡이란 말입니까?"
[ 그렇다. 그리고 연자가 방금 들어갔던 동굴은 마룡의 목구멍이나 식도같은 것이리라 생각한다.]
"커헉..."
나는 황당한 크기에 신음성을 냈다.
설마 향로봉의 절벽이 사악한 거대 마룡이었을 줄이야!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방금 그 동굴을 좀 더 파고들다보면 화룡신검이 나오겠군요."
[ 연자여. 그건 모르겠노라.]
"네?"
[ 해 보면 알겠지...]
나는 이윽고 공력을 써서 기암괴석 하부의 동굴을 힘으로 밀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절벽이 붕괴되며 내 몸이 절벽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급히 멸혼보를 써서 허공에서 몇 번 도양해서 낙하를 피하자,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폭포 너머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죽을 뻔 했기에 숨을 겨우 몰아쉬었다. 여동빈이 말했다.
[ 음... 화룡신검을 얻으려면 절벽을 전부 다 부숴도 모자라겠구나, 연자여.]
"절벽을 부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 아니, 의미없노라.]
"네?"
[ 나는 내 보패와 가까이 있으면 감응해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근처에는 없다는 게 느껴지는구나.]
그렇게 말한 여동빈이 말을 이었다.
[ 아마 천 년의 시간 동안에 누군가가 화룡신검을 발견해서 가져간 모양이구나.]
"누가 가져갔단 말입니까?"
[ 글쎄... 나도 모른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허탕을 치고 말았다는 걸.
============================ 작품 후기 ============================
내용중복이 있었습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