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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49화 (349/1,615)

00349  천계(天界)  =========================================================================

마도팔문 무영문.

검마의 문파로서, 마도제일문파이며, 또한 나는 전생동안에 검마에게서 무영문의 진신무공을 가르침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 나였기에 방금 전에 무영검제가 시전했던 무영탈혼인이 무영문의 절기와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 사실 이건 두 개의 무공일세. 무영검법(無影劍法)과 탈혼검법(奪魂劍法)을 동시에 펼치기 때문에 무영탈혼검(無影奪魂劍)이라고 부르는 게지.]

[ 상대는 그저 검영(劍影)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탈혼검법이 암중에 펼쳐져서 소리소문없이 상대방의 멱을 따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무영탈혼검의 진수라고 할 수 있네.]

무영탈혼검법(無影奪魂劍法)!

무영문의 절기이며 검마의 무공이었다. 두 개의 검법을 동시에 발출하는데 소리소문없는 검영이 상대방의 약점을 노리는 이 검법은 사파의 무공답지 않게 뛰어난 현묘함을 감추고 있었다. 실제로도 검마가 무영탈혼검법을 대성한 것만으로도 그는 사파의 종주 자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아까 여동빈과 싸울 때는 긴가민가했었지만 무영탈혼인을 쓰는 순간 내 심증은 강하게 굳어졌다. 일반초식이나 전개흐름은 무영탈혼검과 다르지만, 무영탈혼인을 쓸 때 흘러나오는 흐름은 매우 비슷했다. 이름도 그렇고 동일 문파의 무공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자 무영검제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그는 내게 전음을 보냈다.

[ 한 시진만 기다려주게. 가문의 일을 정리하고 설명해 주겠네.]

[ 알겠습니다.]

나는 무영검제와 약속하고 근처의 구릉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영검제의 말대로 대략 한 시진을 기다리자 무영검제가 오는 게 보였다. 무영검제는 연못가에 서 있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백웅."

"말씀하시지요."

"자네의 정체는 뭔가?"

내가 말없이 그를 응시하자, 무영검제가 말했다.

"그 엄청난 무공과 내공... 도저히 그 나이대의 소년이라고는 볼 수 없네. 내가 아까부터 자네와 검을 겨루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했다는 걸 알고 있는가? 자네는 아마 반로환동한 고수겠지."

"......"

"헌데 전설의 검선 여동빈을 부르기도 하고... 일견하자마자 무영문의 무공이라는 것도 알아채다니... 자네처럼 기이한 자는 본 적이 없네."

나는 그의 말에 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는 무영문의 호법위를 지니고 있기에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또한 여동빈은 기연을 얻어서 우연히 그를 소환할 수 있게 된 것이고. 지금 중요한 것은 내 정체가 아니라 당신이 어째서 무영문의 무공을 사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으음... 설마 검마의 명령을 받고 나를 찾아온 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 남궁가에 숨겨진 기인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

"흠."

짧게 침음성을 흘린 무영검제가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가 무영문의 무공을 사용하는 건 문제가 없네. 왜냐하면 나 또한 무영문의 제자이기 때문일세."

"......!!"

나는 어느정도 예상했던 말이었지만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대 천하제일검이자 아마 남궁세가 역대 최강의 고수일 무영검제가 사파 무영문의 제자라니!

나는 차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시지요."

"그러지. 어차피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자네가 가만히 넘어가지 않을 듯 하군."

무영검제는 말을 이었다.

"백 수십년 전의 일이지... 나는 남궁세가 최고의 기재로 각광받으며 정파의 후기지수 중 한 명이었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협의행을 한답시고 강호를 쏘다녔지. 그러던 중 제대로 임자를 만나게 되어서 죽을 위기에 처했네."

그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사파의 이름난 절정고수를 상대로 싸워보려다가 동료가 다 죽어버렸지. 그 때 나는 정말 애송이였네. 죽어도 할 말이 없었어."

"여하튼 지금 살아계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 때 내 목숨을 구해주셨던 게 내 스승님, 바로 무영문의 전전대 조사이신 서문걸(西門杰) 어르신일세."

서문걸!

역시 무영문은 대대로 혈연을 통해서 무공을 전승하는 듯 했다. 내가 무영검제를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서문걸 어르신께 나는 무영문의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 필사적으로 매달렸지. 남궁세가의 적손이라서 안된다고 하시는 그 분께, 남궁가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배우겠다고 매달렸네. 그 결과 나는 무영문의 제자이자 서문걸 어르신의 둘째 제자로 들어갈 수가 있었네."

"둘째 제자?"

"수제자는 서문걸 어르신의 아들이었네."

짧게 대답한 무영검제가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나는 대략 이십 년 동안 남궁세가를 잊고 피와 살을 깎는 노력으로 무영문의 무공을 연마했네. 무영탈혼검법도 그 때 익혔지. 그리고 서문걸 어르신께서 영면에 들어가시자 그 분의 장례를 치르고 남궁세가로 돌아갔네."

"그랬군요."

"... 헌데 가문으로 돌아가자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더군. 그리고 괄시하는 사람도 많아서, 그냥 이름을 버리고 한 명의 검객으로 세상을 떠돌았지."

그러더니 무영검제가 쿡쿡 웃었다.

"웃기더군. 그 많은 무림인들 중에서 내 앞에서 백 초를 버티는 자가 없었어. 나는 백전백승(百戰百勝)했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 무영검제(無影劍帝)라는 명성을 얻었네. 나는 콧대가 아주 높아져서 남궁세가를 무시하고 최강의 문파를 만들 꿈에 부풀어 있었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당연히 뭔가 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무영검제가 야인이 되어있는 것이다. 내가 상황을 짐작해서 질문하자 무영검제가 한탄하듯 말했다.

"바로 그 때 내 사형(師兄)이자 무영문의 수제자인 서문휘(西門輝)가 찾아왔네. 서문휘 사형은 무영문을 정식으로 개파하려 한다 말했고, 내게 도움을 줄 것을 부탁했지. 하지만 나는 내가 사형보다 뛰어나다 생각했기 때문에 무영문주 자리를 내게 달라고 요구했네."

"두 분이 문주 자리를 놓고 겨루셨군요."

"그래. 서문휘 사형의 무공은 나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있었고 나는 처참하게 패하고 말았지."

무영검제는 씁쓸하게 말했다.

"참으로 창피했어! 천하제일검은 쭉정이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허명(虛名)이더군. 하지만 서문휘 사형은 내가 사문의 무공을 천하에 알린 공(功)을 생각해서 나를 살려주셨고, 나는 대신에 평생동안 자숙하며 은거하기로 약속했던 것일세."

나는 이제야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이후 백 년 동안 은거하신 거군요."

"그런 것일세."

"하지만 남궁세가의 비급을 갖고가신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무영검제는 헛기침을 했다.

"그건 남궁세가의 무공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해서였네. 기본기를 잊고 화려한 초식에만 매달려서 궁극으로 갈수록 벽에 막히게 되어 있었지. 나는 그게 비급전수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비급을 가지고 은거했던 것이네."

"효과는 있었습니까?"

"있었지. 봤다시피 명이는 구전전수와 자발적인 훈련을 통해서 높은 경지에 올랐지. 나는 내가 비급을 갖고 은거했던 게 잘한 일이라 생각하네."

나는 알 것 같았다.

무공이라는 건 아무리 입으로 떠들어대도 결국 몸으로 익히는 것이었다. 비급에 의존해서 자발적인 훈련과 향상심, 창조적인 감각을 갖지 않으면 퇴보할 수밖에 없었다. 검왕 남궁명은 무영검제의 계획 덕분에 강호 정상급 고수로 성장한 예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하다가 물었다.

"현 무영문주이신 검마와는 어떤 관계가 되십니까?"

"검마 서문대룡은 서문휘 사형의 친아들이지. 내가 그의 사숙(師叔)뻘이지만, 나는 그에게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다."

"왜입니까?"

"그가 나를 찾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지."

"......"

나는 순간 무영검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아마 검마도 당연히 무영검제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영검제가 사형과의 약속을 지켜서 은거를 백 년간 꾸준히 하고 있기에 굳이 건드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검마에게 껄끄러운 상대이긴 하지만 서로를 건드리지 않고 평화를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무영검제가 말했다.

"내가 말할 건 다 말한 것 같군. 이제 자네의 정체와 의도를 좀 가르쳐주지 그러나?"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만..."

"그건 답이 되지 않아. 나는 자네가 거대한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스으으으

무영검제가 무영검기를 서서히 흘려내었다. 나는 그 기세에 급히 검을 들어서 대응했으나, 직접 그의 의념을 마주하자 마치 빙굴(氷堀)에 빠져든 기분이 들었다. 백 년 이상 절세검법을 수련해 온 무영검제의 능력은 무림의 상리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지금의 나라고 해도 무영검제를 일대일로 이기는건 절대적으로 무리였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이러시면 저로서는 다시 여동빈을 소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만..."

여동빈이라는 말에 찔끔했는지 무영검제가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경계의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방금 금수같은 놈들이라고는 해도 가문의 혈육과 후계자를 베었다. 오늘의 일은 두고두고 내 인생의 파란(波亂)으로 남을 게 분명해. 헌데 자네는 자네 의도대로 나를 움직여놓고서는, 이용해먹고 사라지겠다고?"

"......"

"그런건 결코 용납할 수 없네. 자네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기를 바라네."

나는 고민을 했다.

' 음... 확실히 내가 남궁조를 너무 이용해먹은 셈이군.'

남궁세가를 쓸어버렸다고는 하지만 남궁조 자체는 큰 죄가 없는 자였다. 그가 혈육을 살해하는 멍에를 지면서까지 정의구현에 나선 것은 그 개인의 양심 때문이었다. 내가 그에게 전후사정을 알려주지 않는 건 너무 치사한 일인 것이다.

나는 생각하다가 무영검제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저와 함께 검마를 만나보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이 일은 제가 독단적으로 정할 수 없으니 문주님과 논의해야 합니다."

그러자 무영검제는 대놓고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나를 내치려 할 것이다. 또한 나는 그와 마주치는게 그리 좋지 않네."

"그건 만나봐야 아는 겁니다. 저는 문주님과 논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끄응..."

그는 침음성을 흘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한 번 만나보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파앗!

나는 이윽고 그를 비등으로 데리고 무영문으로 갔다. 그리고 검마에게 곧장 찾아갔다.

검마는 비무대에서 가만히 앉아서 정신명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내 기척을 느꼈는지 눈을 뜨고 내 쪽을 돌아보았고, 이내 내 옆에 서 있는 남궁조를 발견한 듯 했다.

"백웅. 그는 누구인가?"

"서문걸 사조의 제자인 남궁조 어르신입니다."

"......"

검마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러더니 비무대에서 내려가서 남궁조에게 포권했다.

"말씀은 들었습니다. 남궁조 사숙."

남궁조는 민망한지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마주 포권했다.

"면목이 없네. 다만 나는 서문휘 사형과의 약속을 깬 게 아닐세."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군요."

"그건 제가..."

나는 흑요석을 약간 떼어서 기억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남궁가에서 겪었던 짤막한 일을 검마에게 전해주었다. 영상기억으로 전후사정을 살피던 검마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랬군. 가문의 일이라면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사숙."

남궁조는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맹세컨대 나는 그간 전인(傳人)을 만들지 않았으며 무영문의 무공을 외부에 누설치 않았네. 믿어 주게."

"한때 천하제일검이었던 무영검제의 말을 누가 믿지 않겠습니까?"

"허험..."

남궁조가 헛기침을 하자 검마가 말했다.

"사숙. 차라리 무영문에 돌아오시는 게 어떠십니까?"

"아니, 그럴 수는 없네. 그때 문주의 자리를 탐해 도리를 저버린 나같은 죄인이 무슨 염치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나는 이대로 악주에 뼈를 묻겠네."

"그런 생각은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검마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제 아버지인 전대 문주께서 어째서 일인전승으로 이어지던 고류(古流)인 무영문을 정식개파하려 하셨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서문휘 사형은 무림천하가 도탄에 빠졌으니 위선자의 핍박에 고통받는 이들을 돕고싶다 하셨지."

"그렇습니다."

검마가 말했다.

"저는 아버님께서 창건하신 이 문파를 이어받아 수십 년간 마도팔문의 종주를 지키고 있으며, 사파로 불리는 자들이 완전히 마도(魔道)에 빠지는 걸 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러 오해받아 위기에 처한 약자들을 보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역부족을 느끼고 있습니다."

"역부족이라니?"

남궁조는 황당한듯 말했다.

"사형에게 듣기로 자네의 재능은 역대 무영문주 중에서 최고라 들었네. 수십 년 후에는 천하제일인을 노릴 수 있겠지. 지금 자네의 무공도 굉장히 높거늘 어찌 역부족이라 하는가."

"백련교(白蓮敎)!"

"......!!"

"호법사자(護法師者)의 강력함은 들으신 적이 있으시겠지요."

남궁조가 침음성을 흘렸다.

"... 물론일세. 예전에 수신류의 독고준에게 죽을 뻔 했지."

"그 자와 왜 싸우셨습니까?"

"천하제일검이라는 명성이 건방지다고 찾아왔었네. 그의 자비를 빌어서 간신히 목숨만 건졌네."

아무래도 무영검제 남궁조 또한 수신류 호법사자 독고준에게 진 듯 했다.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지금 백련교는 마도팔문, 오대세가, 정천맹을 모두 암중에서 장악했으며 곧 천하를 지배하려 합니다. 그들에게 맞서기에는 제 힘이 너무나 부족하니 사숙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정말로 그 괴물들과 싸우려는 건가? 천령단은 인간의 경지가 아닐세."

"그렇기에 여기 백 호법이 있습니다."

검마가 나를 가리켰다.

"백 호법은 호법사자는 물론 백련교주도 꺾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라면 언젠가는 그들을 꺾을 수 있을 겁니다."

"......!! 정말인가!"

"......"

나는 검마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 언젠가는 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십 몇백번을 죽어야 가능할지가 문제일 뿐이었다.

남궁조가 결심한 듯 말했다.

"좋네. 앞으로 남궁세가를 일신해서 자네에게 전적으로 협력하겠네."

"꼭 부탁드립니다."

나는 이번 19번째 전생은 시작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부터 전대 천하제일검이자 무영문의 절세고수, 무영검제를 동료로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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