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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47화 (347/1,615)

00347  천계(天界)  =========================================================================

두꺼비를 쓰러뜨린 후 나는 목갑, 나인성본전, 쌍검을 얻어서 황연 대장군 일행을 구출했다. 그리고 나서 혈도단의 본거지로 이동해서 예전처럼 해적들을 학살했고, 해적포로들을 구출함과 동시에 해적섬의 보물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동영에 잠깐 들러서 흑요석을 채취한 후 무영문으로 갔다. 검마에게 서문혜를 데려다주자 검마는 적지 않게 놀란 기색이었다. 그것은 비단 딸이 자기 품으로 돌아왔다는 놀라움 뿐만 아니라 내게서 느껴지는 기세 때문인 듯 했다.

검마는 호승심을 숨기지 않았다.

"자네, 어린 나이에 굉장한 검기(劍氣)를 지니고 있군. 혹시 반로환동했나?"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검마에게 흑요석을 넘겨 주었다. 어리둥절해 하며 흑요석을 받아든 검마는 이내 흑요석의 기억을 받아들이자 확 깬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했다.

"허허... 호사다마라더니. 백웅 자네가 설마 그렇게 죽을 줄이야."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주작이 설마 그런 대비를 해뒀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자는 정말로 철두철미하군. 누군가의 저주 때문에 자신이 죽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맞저주를 처음부터 준비한 것일세. 적으로 하기에는 너무 까다롭고 두려운 존재로군..."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하던 검마가 고민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황궁의 주작은 결국 정공법으로 꺾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그렇습니다."

"흠, 아수라장의 예감이 드는군. 심상치 않은 대전(大戰)이 일어날지도 모르네."

"각오했던 바입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는 검마에게 말했다.

"마저 다녀올 데가 있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러게."

파앗

나는 곧장 비등을 써서 순어구가 있는 남궁세가의 별실으로 향했다. 이 곳은 지난번 생에 남궁세가의 가주인 검왕 남궁명이 고문당해서 이야기했던 장소였다. 과연 별실에  도착하자 순어구가 빛을 뿜고 있었고, 나는 지체없이 순어구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는 연속으로 비등으로 남궁세가의 비밀공간으로 갔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 정말... 사람새끼들이 아니군.'

이전에 봤던 여성을 납치감금하는 우리가 보였다. 그리고 몇 명의 여인들이 근처에 있는 건물에서 당하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비명같은 교성이 울리는 걸 보니 한창 행위중인 게 분명했다. 삐걱거리는 침상 소리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나는 곧장 건물 안으로 짓쳐들어가서 문을 박차고 열었다. 그리고 안에서 벌어지는 난행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서너 명의 남궁세가 졸개들이 인간 이하의 행위를 하는 장면이 생생했다. 발가벗고 있던 졸개 하나가 놀라서 일어섰다.

"뭐, 뭐야 너..."

푸콱!

나는 방금 전에 해적들을 수십 명이나 쳐죽이고 와서 피가 끓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날려서 놈의 턱을 날리고 뇌수를 흩날리게 만들 수 있었다. 한 놈의 골통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나머지 놈들은 상황을 파악한 듯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히익!"

"대, 대협 살려주십..."

나는 귀가 썩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맨주먹을 꾹 쥐었다. 오늘 내 주먹이 피와 뇌수로 덧칠된다는 게 확연히 예감되었다.

"뒈져라."

퍼버버벅

온통 터져죽은 시체가 사방에 널부러졌다. 당하고 있던 여인들은 난데없는 살육에 놀라서 몸을 오들오들 떠는 듯 했다. 나는 그녀들에게 모포를 씌워주며 말했다.

"구하러 왔소. 여기 있는 사람들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요?"

"흐... 흐흑..."

"정말이신가요... 우릴 구하러..."

여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그 중에서 한 명이 말했다.

"네 맞... 아, 아니에요."

"아니라니?"

"두 명을 소가주가 데려갔어요."

소가주라면 역시 창천검룡 남궁환 그 놈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 놈은 어딨소?"

"저 건물에..."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약 십오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이었다. 나는 힐끔 그 곳을 쳐다보다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날듯이 멸혼보로 쇄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창문으로 휘어들듯 들어가자, 그 곳에는 예상했던 장면이 있었다.

"허억 허억."

남궁세가 소가주의 품격따위는 하나도 없이 뒤엉켜서 여색을 즐기고 있는 짐승이 있었다. 기품없는 얼굴로 색욕에 휩싸여 실실 웃고 있는 남궁환의 얼굴은 가학적인 면모가 있었다. 다만 그 또한 무공이 일류를 훨씬 넘는지라 찰나지간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등근육이 서서히 굳어지는게 느껴졌다.

나는 즉시 남궁환을 기습해서 제압해 버렸다.

타닷

"커헉..."

남궁환은 급히 검을 빼어들려 했으나 나는 그 전에 등 뒤로 가서 수도로 놈을 기절시켜 버렸고, 남궁환의 몸뚱이가 한 차례 땅바닥에 튕겼다. 남궁환이 축 늘어지자 나는 장내에서 당하고 있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

"괜찮소?"

"소... 소협. 그 사람은 소가주 남궁환..."

"아니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짐승이오. 때려죽여야 할 짐승!"

그리고는 나는 여인들을 모두 추스려서 목갑에 넣었다. 남궁환은 일단 살려 두었는데 앞으로도 쓸만한 인질 겸 분풀이 대상이 되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놈을 힐끔 쳐다보다가 생각했다.

' 자, 그럼 할것도 다 했으니 나가볼...'

멈칫

나는 비등을 써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다가 멈추고 말았다. 누가 저주를 걸거나 공격한 것도 아니었는데, 멈추고 말았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내 의지가 제동을 건 결과였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동안 서 있었는데, 낮은 목소리가 내 목구멍에서 새어나왔다.

"... 이대론 못 가지..."

화가 난다.

진소청이 어떤 심정으로 남궁세가를 멸망시켰는지 알 것 같았다. 두 번이나 이런 범죄를 보자 닥치는대로 부숴서 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물며 방금 전에 혈도단 해적을 몰살시키고 와서 파괴충동이 극심해진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어떻게든 남궁세가 놈들을 씨몰살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궁세가는 혈도단이 아니다. 지금의 내 무공이라면 남궁명이라 해도 어떻게든 일대일로 이길 수 있겠지만, 남궁명에 남궁팔검, 그리고 남궁세가의 강력한 무력단체들이 끼어들면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지난번 생에서의 진소청이 너무 강했을 뿐 남궁세가는 천하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강력한 세력이 분명했다.

박살내고 싶은 걸 뜻대로 박살내지 못한다는 것.

욕구가 가로막히자 눈이 홰까닥 돌아갈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이 개자식들에게 후련하게 한방 먹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머릿속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여동빈에게 말을 걸었다.

' 여동빈. 내 10년의 수명을 걸고 현신(現身)해 주십시오.'

[ 알았네, 연자여.]

스스슥!!

예전 수해에서 보았을 때처럼 이윽고 여동빈의 현신이 내 앞에 나타났다. 여동빈은 나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검선 여동빈. 남궁세가를 멸(滅)해 주십시오."

"불가(不可)!"

여동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예상했던 답변이지만 반문했다.

"왜입니까?"

"내가 그대와 이어져 세상에 무(武)를 행사함은 인간을 수호하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의 검은 오로지 마(魔)를 향해 휘둘러져야 함이다. 인간에게 검을 쓸 수는 없다."

나는 그의 말에 나직이 말했다.

"여동빈. 이 자들은 포학한 행위로 약자들을 겁박하고 살해하여, 아녀자들을 납치감금하고 착취했습니다. 제가 오지 않았다면 이들은 죽을 때까지 학대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금수같은 악인도 인간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

"정의를 위한 검이라면 악을 벌하기 위해 휘둘러져야 하는 게 아닙니까!"

내가 강경하게 이야기하자, 여동빈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의 힘으로 하라. 인간의 일은 인간끼리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힘이 부족하니까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안되겠습니까?"

"안 된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마를 퇴치하고 인간을 수호한다고 하셨지요. 그건 인간을 위한 숭고한 행동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악(惡)에 물들어 짐승 이하로 전락한다면, 그건 무엇을 위한 퇴마입니까? 무엇을 위한 정의입니까?"

"......"

"저는, 보기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그리고 살면서 많은 악(惡)을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느낀 것은, 인간이 이족(異族)만큼이나 사악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황궁이나 주작에게서 그 사실을 느꼈다.

자기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수백 수천만의 인간을 학살해도 거리낌없는 그 행태는 설령 이족이라 해도 쉽게 따라하지 못하리라.

"여동빈! 악멸(惡滅)이란 건 자신의 사정때문에 외면할 수 있는 편리한 개념이었습니까? 그건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벤다는 뜻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연자여."

여동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나도 인간시절에, 연자같은 생각을 했었다. 완전히 똑같은 생각을 하여, 내 스승인 화룡진인께 똑같은 말을 했었다. 화룡진인께서는 결국 인간의 일은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는 말만 하셨다."

뜻밖의 말에 나는 멈칫했다. 여동빈은 옛 기억을 떠올리듯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산(廬山)에서 마지막으로 거악(巨惡)을 베고 양패구상할 때가 되어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그 거악을 제압할 수 있는 대라신선은 많았으나, 그들이 끼어들게 되면 더욱 큰 거악이 개입하게 된다. 힘이 연쇄작용을 일으키게 되면 한계가 없으니 결국 인간의 일은 티끌처럼 조그마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

"연자여. 그대의 분노는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지금 그대는 살아있는 남궁세가의 모든 것을 찢어버리고 싶겠지. 그것이 아녀자나 갓난아이라 해도 봐주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 분노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건..."

"잘 생각해 보게. 분노는 시야를 좁게 만드니, 그대가 놓치고 있는 진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여동빈의 말에 분노를 조금 가라앉히고 냉정해질 수 있었다. 그러자 남궁세가를 몰살시켜야 한다는 막연한 분노보다는 내가 처해있는 현실상황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동빈에게 목숨 50년을 바치는 한이 있어도 남궁세가를 없애버리겠다는 방금 전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 나는 때때로 너무 감정적으로 변하는구나.'

꼭 고쳐야 할 단점이 아닐까.

내가 스스로 반성하고 있을 때였다.

"아!"

문득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여동빈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여동빈, 저를 따라와서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부탁인가?"

"누군가를 죽이는 부탁이 아니니 딱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알았네."

잠시 후 나는 비등을 써서 여동빈과 함께 악주(鄂州)에 갔다. 그리고 검왕 남궁명에게 들었던 악주의 마을까지 도보로 이동한 후, 사람이 약 백여 명 정도 살 법한 조그마한 마을에 이르렀다. 나는 이 마을이라는 걸 확신하고는 대장장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까앙

까앙

장년 대장장이가 철을 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열심히 제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내공의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상대가 정말로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거나 반박귀진의 고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확신을 하고 왔기에 후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대장장이의 등 뒤에서 말했다.

"남궁조(南宮朝)."

우뚝하고 대장장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대장장이가 서서히 내 쪽을 뒤돌아봤는데, 그는 이렇다할 외모의 특징이 없는 평범한 장년인이었다. 나는 장년인과 눈이 마주치자 단호하게 말했다.

"무영검제(無影劍帝) 남궁조! 당신 가문의 악덕을 벌할 때가 왔소."

대장장이는 내 말을 듣자 눈을 꿈벅거렸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나는 설조(卨朝)라는 대장장이인데 무슨 소리인가."

나는 그의 기만전술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내 할 말만 하기 시작했다.

"검왕 남궁명은 아들을 잘못 키웠소. 아들이란 자가 남궁세가의 내부를 개조해서 여인들을 가두는 우리를 만들고, 그녀들을 변태적인 성욕으로 학대했소. 또한 이 사실을 알게 된 남궁명도 아들 남궁환과 구멍동서가 되고 말았소. 남궁세가가 천하의 명문이란 건 이미 옛 말이며, 비인외도의 짐승들에 불과하게 된 것이오."

자칭 설조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말해도 당신이 무영검제라면 천하무림의 일에 관심을 놓았을테니 끼어들려 하지 않겠지.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

"제안?"

"내가 데려온 이 사람에게서 일백 초를 버틸 수 있다면 내 목숨을 주겠소. 대신 못 버틴다면 당신은 내 말에 따라 남궁세가로 가서 그들을 벌해야 하오."

"......"

설조의 시선이 여동빈을 향했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었다.

"꺼지게. 어떻게 내가 무영검제라는 걸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의 말대로 나는 강호에서 은퇴했어. 그리고 썩어도 남궁세가가 그런 사악한 행위를 할 리가 없지. 나는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네."

"그래서 말했잖소. 내 목숨을 걸고 관철시키겠다고."

"뭐?"

"다시 한 번 말하겠소. 일백 초를 버틸 수 있다면 내 목숨을 주겠소."

설조, 아니 남궁세가의 전대 천하제일검 무영검제 남궁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황당한 듯 말했다.

"이 사람이 누군데 그딴 소리를 하는 거지?"

"이 세상 누구보다도 검을 잘 쓰는 사람이오."

"후후!"

무영검제는 낮게 웃더니 갑자기 손을 들었다. 우리의 시선이 무영검제에게로 향하자, 그는 갑자기 손을 흔들었다.

콰앙 -

"......!!"

그러자 근처에 있던 숲의 나무가 순식간에 서른 그루는 잘려나간 것 같았다. 엄청난 힘과 속도를 가진 검초가 날아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무영검제의 손에 검이 들려있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 이기어검이 아니야...'

내 의문에 답하듯이 무영검제가 말했다.

"이는 내가 말년에 깨달은 경지인 무영검(無影劍). 검이 없어도 마치 검처럼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이지. 내 무영검을 상대할 자신이 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없소."

무영검의 위력은 척 봐도 이기어검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다. 무영검제가 과거 천하제일검이라는 명성을 얻었다는 건 결코 허언이 아닌 것이다. 무영검제는 현재의 나로서는 이길 수 없는 엄청난 고수였다. 무영검제가 훗하고 웃었다.

"오늘의 무례는 봐 주지. 헛소리 그만하고 썩 돌아가게."

"무영검제."

"왜 부르나?"

나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백 초를 버텨보시오. 자신없소?"

"......"

무영검제 남궁조는 정말로 열받은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서 여동빈 앞에 서서 그를 쏘아보았는데, 여동빈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남궁조가 말했다.

"제법 실력이 있는 듯 한데 상대를 잘못 골랐군. 되려 내가 백 초만에 한 수 가르쳐 주겠다."

무영검제의 도발에도 여동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이윽고 말했다.

"연자여. 이 자를 백 초 내에 꺾으면 되는가?"

"가능하시겠습니까?"

여동빈이 한숨을 쉬었다.

"속세의 무인이란 한결같이 바보같구나. 이런 어리석은 무공대결을 언제까지 한단 말인가?"

그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알았네, 연자여."

그러자 무영검제가 기가 막힌지 말했다.

"허허! 네가 뭔데? 네가 설령 반로환동한 고수라 해도 나 무영검제 남궁조는 네가 두렵지 않다. 네놈이 대체 뭔데 나를 백 초 내에 꺾겠다고 자신하는 게냐? 오늘 두 놈의 시체를 치우겠구나."

"음... 검선 여동빈이라고 하네."

"웃기고 있네. 어디서 사칭이냐!"

순간, 여동빈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우우우우!

무영검제의 무영검기가 암중에 일어났다. 무서운 파도가 밀려들듯 거센 기파가 장중하게 사방을 위협했다. 나는 그 엄청난 검기에 침을 꿀꺽 삼킬 정도였다. 과연 천하제일검이라 자칭할만한 절세검객이었다.

"받아라!!"

무영검제의 광세절초가 천하를 휩쓸 것만 같았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억.... 그만... 그만 때리시오..."

여동빈은 무영검제의 멱살을 잡고 얼굴을 때리고 있었다. 무영검제는 이미 얼굴이 퉁퉁 붓고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동빈은 아무 표정 없이 무영검제를 패는 중이었다.

"푸헉!"

무영검제의 이빨이 하늘을 날았다.

결판이 난 것은 정확하게 삼십 초 째였다. 단 5초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천둔검법을 연속으로 펼쳐낸 여동빈은 무영검기를 너무나 손쉽게 격파했고, 이후 25초동안 무영검제는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무영검제가 큰 약점을 보이며 쓰러지자 여동빈은 멱살을 잡고 말없이 무영검제를 패는 중이었다.

' 화났군...'

대라신선을 화나게 하다니 무영검제도 인물은 인물이었다.

퍽 퍽 퍽

"어윽. 제. 제발."

나는 더 맞았다가는 무영검제가 장애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급히 여동빈의 구타를 말렸다.

"됐습니다! 그만..."

"으음..."

여동빈은 무영검제의 피로 범벅이 된 손을 털며 차분하게 말했다.

"인간이여. 주제를 알라."

무영검제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정말 알겠는가?"

"앞으로 까불지 않겠습니다."

처맞고 있던 무영검제는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더 맞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여동빈에게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무심한 표정으로 무영검제를 내려다보던 여동빈이 말했다.

"연자여. 그럼 부디 나의 화룡신검을 찾아다오..."

여동빈은 잠시 후 허공으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여동빈이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무영검제 남궁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저, 정말로 검선 여동빈이었던 거냐...?"

"그렇소. 당신은 좀 운이 없었소."

"으으윽..."

내가 싱긋 웃으며 말을 잇자 무영검제의 얼굴이 구겨졌다.

"자, 그럼 약속대로 남궁세가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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