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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43화 (343/1,615)

00343  천계(天界)  =========================================================================

만독불침지체가 되었다고 해도 내게는 별 감흥이 없었다.

' 지금까지 독 때문에 곤란한 적이 있었던가...'

기껏해야 마도팔마 중에 독마가 무서운 자이니 조심하라는 언급밖에 듣지 못했다. 그렇기에 실감이 안 나는 것이다. 망량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강호에는 사천당문 말고도 독술을 사용하는 문파가 아주 많소. 공식적으로는 독을 쓰는 게 비겁한 짓이지만, 달리 말하면 독처럼 상대를 제압하기 편한 방식이 드물기 때문이오."

"흠..."

"대요괴의 영단을 먹어서 내성이 생겼으니 이제 왠만한 독은 듣지 않을 것이오. 만독불침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오."

망량은 크게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그만큼 지금의 내 성취가 좋은 것이라는 의미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이광은 확실히 이길 자신이 있소."

원래라면 이광과 겨루면 미세한 우세를 점하는 정도였다. 왜냐하면 내공에 의한 압박은 의념때문에 통하지 않고, 무의 깨달음이 이광보다 확연히 앞서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련과 독단을 통해서 두 차례나 내공의 가용성을 높였으니 공격의 위력 자체가 달라졌으리라. 정면에서 정공법으로 초수를 부딪히게 되면 이광은 내 공격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급급하게 될 것이다.

망량은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렇다 해도 아직 강호에는 맹자들이 많소. 특히 호법사자에는 아직 미치지 못할테니 부디 조심하시오."

"알고 있소."

호법사자의 천령단!

그것은 호법사자를 일개 무림인이라기보다는 전쟁에 쓰이는 파괴신처럼 여기게 만드는 가공할 힘이었다. 무한의 내공을 무한으로 때려부을 수 있다는 건, 아무리 물쓰듯이 내공을 써도 회복율이 훨씬 높다는 의미였다. 천령단의 소유자를 상대하려면 무의 깨달음이 아주 높던가 혹은 동일하게 천령단을 갖추는 수밖에 없었다.

' 반드시 이번 전생에서는 천령단을 얻어야 해.'

교주가 준 임무를 행해서 우리 셋이 천령단을 얻게 되면 그때부터는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게다가 천령단의 비밀만 알아내도 다음 전생부터는 백련교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망량이 말했다.

"그럼 일단 가 봅시다."

"알았소. 그럼 진랑곡으로..."

"아니오. 화요가 있는 남부대륙으로 갑시다."

"응? 알았소."

뜬금없이 남부대륙이라니,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아무튼 망량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파앗!

남부대륙에 오자 망량이 말했다.

"원주민을 찾아서 한 명을 제압해서 데려와 주시오."

"흠... 알았소. 찾아보지."

나는 기감을 돋우어서 광활한 대지에서 원주민이 있을만한 장소를 찾았다. 다행히 예전에 왔던 원주민 촌락 부근이라서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따로 떨어진 원주민을 찾아서 혈도를 제압한 후 망량 앞에 데려오자, 원주민은 공포에 질려서 눈만 데굴거리고 있었다.

부우우우...

망량이 천천히 그의 이마에 손을 갖다대며 정신을 집중하자, 잠시 후 원주민의 이마에서 희끄무레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아주 천천히 삐져나왔고 망량도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집중하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약 한 식경이 지났을까? 희끄무레한 기운은 완전히 이마에서 빠져나와서 망량의 손바닥으로 흡수되었다. 망량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놓아 주시오."

나는 망량의 말대로 원주민을 다시 기절시켜서 원래 자리에 놓아두고 왔다. 망량은 되돌아 온 나에게 말했다.

"방금 한 것은 이혼대법의 요결대로 백(魄)을 빼낸 것이오."

"으음!"

나는 깜짝 놀랐다.

"벌써 응용단계라고?"

나와 망량은 같은 시기에 이혼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단순수련만 하고 있는데 망량은 벌써 요령을 깨달아서 고급수법을 쓰는 것이다. 망량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선 망량의 술법과 경험이 있으니 이 정도는 간단하오."

"......"

그건 나도 있는데 왜 이리 이해가 안 되는 걸까?

내가 속으로 꿍얼거리고 있을 때 망량이 말을 이었다.

"이혼대법 초급단계에서 백을 빼내는 걸 반복수련하는 이유는 그게 이혼대법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오. 원리를 알고 수련해야 성취가 빨라지기 때문에 백웅 당신에게 설명을 해 주러 여기까지 온 것이오."

"아!"

망량은 조금이라도 더 내 성취속도를 빠르게 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혼대법을 자신이 더 빨리 익힌 후 내게 강의를 해 주러 온 셈이었다. 왜냐하면 제갈사에게 상세한 설명을 요구해봤자, 둔재를 싫어하는 제갈사가 망량처럼 친절하게 설명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내가 정신을 집중하고 망량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망량이 말했다.

"지금 나는 아까 그 원주민의 백(魄)을 빼내어서 내 몸에 흡수해서 통제하고 있소. 그 말은 내가 이 백을 조종할 줄 알게 되면, 저 원주민의 심령(心靈)을 감시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오."

"그렇군."

"백을 빼내는 게 초급단계, 백을 조종하는 게 중급단계, 마지막 단계는 백을 이용해서 혼을 움직이는 단계라고 할 수 있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백을 이용해서 혼을 움직인다고? 그건 또 무슨 말이오?"

"흠... 이런 말을 들어봤소? 예기(禮記) 교특생편에서 이야기하기를, 혼기(魂氣)는 하늘로 돌아가고 형백(形魄)은 땅으로 돌아간다(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고 했소. 즉 인간이 죽었을 때 혼은 본질이므로 승천하지만 백은 대지에 흡수된다는 말이오."

망량의 눈이 빛났다.

"혼을 보조하는 동력(動力), 그것이 바로 백이라는 뜻이오."

"흠..."

나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말했다.

"잠깐. 동력이라고 하면 방금 당신이 원주민의 백을 빼내서 흡수했잖소? 그럼 원주민의 생명이 위험한 게 아니오?"

"그게 참 재밌소. 혼을 빼낼 경우 생명체는 큰 타격을 입게 되어 있으나 백은 그렇지 않소. 왜냐하면 아무리 백을 빼어낸다 해도 언제나 일정량의 백이 혼을 감싸듯이 재생성되기 때문이오."

"......!!"

"생명력과는 좀 다른 개념이오."

그렇게 설명한 망량이 말을 이었다.

"나는 원주민의 백을 흡수했지만 아직 조종하는 기술이 없어서 그의 심령을 제압할 수 없소. 그러나 제갈사라면 백을 빼내는 것도 빠를 것이며, 백을 이용해서 심령을 감시할 수 있을 것이오."

"그렇겠군."

"그리고 고급단계에 가면 백을 움직여서 혼을 다루는 것..."

망량은 바닥에 나뭇가지로 두 개의 원을 그렸다. 큰 원과 작은 원을 겹치게 그려놓은 망량이 작은 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상대방의 혼이 호응하지 않을 경우, 인간의 술법력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혼 그 자체를 움직일 수 없소."

"뭣!"

"도교에 수만 개의 술법과 비술이 있으나 마찬가지요. 혼이라고 하는 걸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터무니없이 강한 술력이 필요하지. 강신술의 경우도 길을 터놓고 경사를 만들어서 굴러오게 만드는 것일 뿐, 흡인력을 가지는 게 아니오. 상대방의 동의 없이 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지."

"흐음..."

"그렇기 때문에 이혼대법에서는 혼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혼을 감싸고 있는 백을 움직이는 것이오. 왜냐하면 동력인 백이 움직이면 혼도 따라오기 때문이오."

"이해가 갈 것 같소."

망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기(氣)가 흩어지면 혼백이 상응하는 법. 이혼대법의 요결이라 할 수 있소."

"......?"

나는 그 순간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기시감이 어디서 느껴졌는지 알 수 있었다.

[ 백웅이여. 그대는 기(氣)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지금까지 무극(武極)에 이르기 위해 무수한 수련을 거치던 도중,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지. 그것은 내가 이룬 원영신(元靈身)이 신허(神虛), 즉 태허(太虛)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 태허(太虛)란 기(氣)를 일컫는 말이다. 태허즉기(太虛卽氣), 기가 흩어진 모습이 바로 태허인 셈.]

"......!!"

나는 깨달았다.

' 백련교주의 말과 비슷해!'

어처구니없게도 망량이 가르쳐준 이혼대법의 원리와 요령이 백련교주가 했던 무론(武論)과 상통하지 않는가? 특히 기가 흩어진 모습을 언급하는 부분은 묘한 일치감마저 느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한 쪽은 무공에 있어서 절대적 경지에 이른 자이며, 다른 한 쪽은 배교의 사술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공통점이 느껴졌다.

백웅이 이상한 듯 물었다.

"백웅 왜 그러시오?"

"망량! 백련교주가 이런 말을 했소."

나는 즉시 내가 백련교주와 했던 이야기를 말했다. 정확히는 백련교주가 풀어냈던 무론을 다시 망량에게 해주었을 뿐이다. 그러자 망량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말했다.

"이상하군... 태허즉기란 북송유학의 대가인 횡거(橫渠)가 처음으로 이야기했던 개념이오. 하지만 그건 무공과는 일절 상관없는 유학의 도(道)요. 또한 태허즉기에 관한 언급은 차라리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의 것과 닮아 있군."

"왕수인?"

"그는 지금 노년인데, 뛰어난 학자요."

잠시 생각하던 망량이 말했다.

"왕수인은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요. 유학의 학파로서 주관적인 실천 철학을 말하고 있지. 현재의 주자학을 비판하는 선두에 서 있는 자인데 주된 이야기는 심즉리(心卽理)에 대한 것이었소."

"심즉리?"

"파고들면 복잡하니 다음에 설명하겠소. 이건 유학을 몇 년이고 공부한 학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니까."

짧게 끊은 망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양명학이나 주자학에서 다루는 이기(理氣)는 무공술법의 이치라기 보다는 새로운 국가와 사회적 비전을 다루는 성리학(性理學)의 관점이오. 북송의 횡거가 말했던 태허즉기도 별로 다를 바가 없지. 그걸 백련교주가 이야기했다는 건 많이 이상하구려."

"유학의 기(氣)는 다른 것이오?"

"좀 다르오. 그게 같은 것이라면 세상의 유학자들이 다 무공고수겠지."

곰곰히 생각하던 망량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기 보다는 태허(太虛)라는 단어가 중요할 듯 싶소."

"태허?"

"태허란 기가 흩어진 형상이라 하였소. 어쩌면 백련교주는 심오한 무공의 경지를 연마하다가 태허라는 게 상상속의 개념이 아니라 실체(實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지도... 그래서 은유를 통해서 당신에게 그 개념을 알려준 것이오."

"으음... 하지만 왜?"

나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그런 초고급 개념을 재능도 없는 내게 뜬금없이 왜 말해준단 말이오?"

"......"

망량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했다.

"... 백련교주는 당신에게서 뭔가를 느꼈을지도 모르오. 그 이상은 알 수가 없구려."

"음..."

백련교주는 정말 의뭉스럽다. 한 마디 한 마디를 하는데 속을 읽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망량은 고개를 휘휘 젓고는 말했다.

"지금 말했던 무론을 진랑곡에 돌아가서 진소청에게 말해 보시오. 진소청이라면 그 무론을 연구해서 성과를 낼지도 모르오."

"알겠소."

파앗

우리는 진랑곡에 돌아와서 진소청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진소청은 백련교주의 이야기를 곰곰히 곱씹다가 말했다.

"나는 다른 게 신경쓰이는구려."

"다른 것?"

"사겁(四劫)."

진소청은 손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는 항상 성겁(成劫)·주겁(住劫)·괴겁(壞劫)·공겁(空劫)의 네 시기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하오. 또한 겁이란 상상도 할 수 없이 어마어마한 세월을 말하지. 우주가 되풀이되는 동안에 부처가 인간을 구원한다는 사상을 예전에 들은 적이 있소."

"음, 그건 마치 천신경의 술법에서 말하는 우주의 사계와 비슷하구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불교든 도교든 세계가 윤회(輪回)한다는 관점은 매한가지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뇌까린 진소청의 말이 이어졌다.

"태허를 이해하는 게 사겁에 이르러 있다는 말이 왠지 신경이 쓰이오. 그의 무공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종교적인 성향이 있고, 백련교는 불교(佛敎)와 근원을 같이하는 종교요. 그가 말한 사겁은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되오."

"어떤 의미겠소?"

"그거야 알 수가 없지. 확실한 건 태허를 이해한 후에야 사겁을 알 수 있다는 거요."

"......"

태허!

뜬금없이 나타난 개념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 교주는 무생노모의 법문을 해석한 결과 인간을 초월한 강함을 손에 넣었다고 했지. 설마 그 법문에 태허에 대한 게 적혀있는 걸까?'

나는 생각난 김에 망량에게 물었다.

"망량. 무생노모의 법문이란 것도 마도서(魔道書)일 거라고 생각하오?"

"흠... 마도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오."

망량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마도서란 [옛 지배자]에 관련된 금단의 지식을 이족(異族)이 적어둔 경우가 대부분이오. 진본 마도서의 저자는 [옛 지배자]가 아니라 그들의 추종자나 신관이요. 그런 까닭에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무명제사서라던가 하는 물건에 마기(魔氣)가 있을지언정 인간이 충분히 다룰 수가 있지.

그러나 무생노모란 존재가 내가 생각하는 '그' 존재가 맞다면, 무생노모의 법문이란 마도서라고 하기엔 너무 격이 높은 물건이 되어버리는 거요. 신(神)이 저자이기 때문이지."

"......"

"마도서보다 한 단계 높은 비술서... 그 법문은 신서(神書)라고 할 수 있겠지."

망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합시다. 지금은 수련을 하면서 이광의 재기를 기다리는 편이 빠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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