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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33화 (333/1,615)

00333  천계(天界)  =========================================================================

보패 순어구!

삼황오제가 직접 제작해서 사용한 낚싯바늘이 바로 내 손에 들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망량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전생동안에 반드시 남궁세가를 멸망시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남궁세가를 멸망시키면 순어구는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슬며시 지나가듯 남궁명에게 질문했다.

"이제 와서 말해봤자겠지만, 너와 남궁환이 납치되었는데도 순어구를 가지고 나온 놈이 있었다는 건 적어도 남궁팔검에게는 순어구의 정체와 소재를 밝혀두었다는 말이겠지."

"그렇다."

"그토록 중요한 기물인데 남궁팔검은 신뢰한 건가?"

"......"

남궁명이 침묵하자 옆에 있던 망량이 말했다.

"신뢰한다기보다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요."

"무슨 말이오."

"순어구 자체는 혼자서 비밀을 알고있어도 별 위력이 없소. 정화능력이든 통신능력이든 직접적으로 무림에서 쓸만한 능력은 아니지.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가 납치될 경우, 혹은 중요한 적지를 정찰할 경우에는 순어구를 이용해서 연락이 가능한 거요. 이를테면 지금처럼 가주가 납치당한 상황이면 남궁팔검이 순어구를 이용해서 통신을 시도하거나 했겠지... 순어구는 동료가 있어야 위력을 발휘할 수 있소."

"아아."

"하지만 목갑 내부는 이공간이라서 순어구의 통신이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오."

망량의 말에 나는 이해가 가는 걸 느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궁명의 모습을 보면 그동안 남궁팔검의 통신을 전해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시간이 왜곡되어 있는 목갑의 이공간은 삼황오제의 보구조차 차단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남궁명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순어구는 본가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너희는 이만큼 뺏아놓고도 모자라단 말이냐? 이제 그만 두어라."

"평소에는 순어구를 어디에 놔뒀지?"

"별전에 기관장치로 별실을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었다."

"일단 그 위치를 말해 봐라."

나는 남궁명에게서 별실의 위치를 들은 후, 버려진 남궁세가의 건물으로 가서 직접 확인했다. 조그마한 손잡이를 당기자 쿠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기관의 문이 열렸다.

"흠!"

과연 성인남자 서너 명이 서있을 넓이의 기관별실이 존재했고, 여기에 평소에 순어구가 놓여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기관별실에 서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이제 다음부터는 남궁세가에서 바로 순어구를 가져갈 수 있겠군.'

한 번 비등으로 가본 곳은 다음에는 바로 순간이동이 가능하다. 나는 또다시 일정을 단축시켜서 흡족한 기분으로 진랑곡에 되돌아왔다. 그리고 남궁명에게 마저 질문했다.

"순어구의 비밀을 아는 게 너, 남궁환, 남궁팔검 이게 전부인가? 남궁가 놈들을 다 대질심문할 생각이니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마라."

"그게 전부다. 정말이다. 그런 비밀을 어찌 가원 이외에게 말하겠느냐!"

"흠..."

옆에서 듣고 있던 망량이 성큼 걸어나와서 말했다.

"순어구는 됐고, 이제 남궁세가의 제왕검법을 비롯한 무공비결이 어딨는지 말하시오."

"헉!"

남궁명은 헛숨을 들이키며 놀랐지만 이내 각오한 듯 말했다.

"우리는 구전으로 전승하기 때문에 그런 비결을 따로 놔두지 않는다."

"이 와중에도 머리를 굴리는군. 비급을 찾으면 바로 당신을 없앨테지만 구전이라고 하면 조금 오래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한 건가?"

망량이 비웃듯 중얼거린 후 말을 이었다.

"착각 마시오. 당신 목숨의 가치는 그대로니까."

"......"

"뭣하면 당신 아들을 고문해서라도 알아낼 수 있지."

그러자 남궁명이 급히 말했다.

"환이는 아직 무공경지가 낮아서 비기를 모른다. 내가 말해주겠다."

"아비 앞에서 아들놈을 고문하는 것도 재밌겠군."

그렇게 대꾸한 망량이 맞은편에 혼절해서 묶여있는 남궁환을 일으켜세워서 의자에 앉혔다. 남궁명의 눈알이 커지며 동공이 확대되었고, 이윽고 망량이 손에 내력을 불어넣어서 남궁환의 눈에 갖다대며 말을 이었다.

"난 분명히 비급같은게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말이오. 그 비급에는 분명 남궁환의 눈알 하나만큼의 가치가 있을테고."

"으으."

"셋을 세겠소."

남궁명은 극도로 고뇌하다가 망량이 둘을 셌을 때 외쳤다.

"비급은 악주(鄂州)에 살고 있는 남궁조(南宮朝) 숙조부(叔祖父)께서 가지고 계신다!!"

막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남궁환의 안구를 파내려던 망량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망량은 힐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남궁조? 들어본 적이 없군. 그 자는 강호무림에서 별호가 무엇이오?"

"......"

"정말 말귀를 못알아먹는군!"

퍼억

짧게 중얼거린 망량이 손에 힘을 주어서 남궁환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었다. 동시에 어깨에서 핏줄기가 솟구치며 남궁환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으아아악!! 아아... 아버지!!"

"아들놈 팔이 뜯겨나가는 걸 보고 싶소?"

"으으... 말하겠다. 말할테니 제발..."

남궁명은 제정신이 아닌 듯 황망하게 외쳤다. 그러더니 말했다.

"숙조부는 강호에서 무영검제(無影劍帝)라고 불리셨다! 이제 됐느냐."

"......!!"

흠칫!

"그 자가 남궁가 출신이라고?"

그 순간 망량은 물론이고 가만히 있던 진소청도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특히 진소청의 놀라움은 커 보였다.

"그럴 수가..."

나는 잘 모르는 명호였기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망량에게 물었다.

"망량. 무영검제가 누구요?"

망량은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백여 년 전의 절세고수요. 하지만 남궁가 출신이었을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소."

"대단한 고수인가 보군. 그런데 놀라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야... 당시의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었기 때문이오."

"......"

천하제일검!

단순해 보였지만 그 명호는 무림에 몸담은 자라면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기인이사며 은거고수가 넘치는 드넓은 중원대륙에서 단연 자신이 검술으로는 최강이라고 외치고 있다는 뜻이었으며, 바로 다음 날 칼맞아 죽기 딱 좋은 명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살아남아서 천하에 이름을 알리고 있으니 그 명호를 보유한 자는 가히 엄청난 실력자라고 할 수 있었다.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은 현 무림밖에 관심없어서 잘 모를수도 있겠지만 무림을 좀 깊게 파고든 자라면 무영검제에 대해서 한번쯤은 들어보게 되오. 백 년 전의 인물인데다가 정사중간의 고수로써 얼굴도 변변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자의 실력은 당시의 백련교주와 비견될만 하다고 했었소. 정사파에서 그 자를 검으로 감당할 자가 없었으니 지금은 말 그대로 전설이지."

"백련교주라... 믿기 힘들군. 그가 얼마나 괴물인줄 알고 있잖소."

"그야 그렇지만."

"그것보다 백여 년 전이라면 그 때도 현재의 백련교주였겠소?"

"아마 그럴 것이오. 독고성을 생각해 보시오."

"하긴."

독고성은 뇌신류 퇴출 당시에도 노년에 가까웠으니, 현재 나이만 해도 최소한 여든이나 아흔은 될 것이다. 그런 독고성이 숙부라 부르며 따를 정도라면 당시의 백련교주가 현재와 같을 확률이 높다.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남궁명에게 질문했다.

"무영검제가 너희 가문의 남궁조라면, 남궁팔검이 응당 순어구로 무영검제를 불렀어야 하는게 아니냐? 가문의 위기니까 당연히 와줘야 했을거 아닌가. 그렇지만 그런 초절정고수가 와 있는 기색은 없었다."

"불러봤자 오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 분은 남궁가와 인연을 끊으셨다."

"무영검제가 남궁세가와 인연을 끊어? 왜?"

남궁명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우리 가문의 정책에 회의를 느꼈다고 하셨다. 그래서 완전히 강호 활동을 접고 팔십 년 가까이 은거하고 계신다. 가문의 성도 버린 채 완전히 야인으로 살고 계신다."

"으음. 야인으로서의 이름은?"

"설조(卨朝)다. 조그마한 마을에서 대장장이 일을 하고 계신다."

무영검제는 남궁가의 포학한 확장정책에 반발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말했다.

"좋아. 그럼 무영검제는 왜 남궁세가의 비급을 갖고 간 거냐?"

"우리가 비급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 하셨다. 그래서 제왕검법을 극성까지 성취한 자가 나오기 전까지 자신이 맡아둔다고 하셨다."

"그렇군."

남궁명이 구전전승이라고 한 게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그리고 선대의 고수가 자신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면 굳이 비급을 따로 만드는 게 불경이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중요한 점을 질문했다.

"그럼 무영검제가 가진 비급의 내용은 어떤 거냐? 제왕검법이냐?"

"제왕검법도 있으며 그 외의 실전된 남궁가 비기와 숙조부님만이 익힌 검법이 수록되어 있다고 들었다."

"무영검제만의 검법이란 거군."

옆에서 망량이 차갑게 웃었다.

"어떻게든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려는 꼴이 추하군. 우리와 무영검제를 충돌시켜보려는 건가."

"......"

"백웅. 이제 됐소. 이 자들을 슬슬 처리합시다."

"알겠소."

나는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남궁명에게 다가갔다. 남궁명은 이렇게 될 걸 각오했는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비겁한 놈들! 살려준다 했으면서 역시 약속을 지키지 않는구나."

"우리가 죽이진 않소. 당신과 남궁환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지금 상태로 던져질 것이오."

"크흐흐... 그게 그거 아니냐?"

허탈하게 웃은 남궁명이 눈물을 흘렸다.

"그래. 나와 아들놈은 죽일 놈이다. 하지만 너희같은 야인들에게 정의랍시고 심판받으며 죽는 게 가당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너희가 감히 하늘의 뜻을 자처할 자격이 있느냐!"

"......"

따지고 보면 남궁명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하루만에 천참만륙을 당하게 된 셈이므로 불쌍하긴 했다. 게다가 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림에서 명성을 쌓았던 초절정고수가 아닌가? 하지만 평소의 행실이 워낙 천인공노해서 살려줄 수도 없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진소청이 내게 말했다.

"백웅. 깔끔하게 죽여 줍시다."

"무슨 소리요? 당초 계획대로 처참하게 죽여야..."

"그냥 이번만 넘어가 줍시다. 어차피 결과는 같소."

그렇게 중얼거린 진소청이 말을 이었다.

"저 남궁명은 중대한 정보를 토해낸 공(功)이 있으니 편히 죽을 자격은 있소. 하지만 앞으로의 전생에서 '남궁명'은 그럴 기회가 없겠지. 저 자는 딱 1회차만 편히 죽을 수 있는 것이오."

"음..."

나는 진소청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앞으로도 내가 남궁세가를 계속 멸망시키고 처참하게 박살낼 게 뻔하기 때문에, 남궁세가는 몇 번을 멸망할지 모른다. 아마 내가 전생하는 만큼 멸망할 것이다. 그 와중에 남궁세가에서 더 알아낼 게 없고 쓸모없어졌기에, 그들은 내게 용서를 빌 자격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 딱 한 번 정도는 편하게 죽게 해주자는 게 진소청의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납득이 안 가서 말했다.

"... 그건 내 시점이오, 진소청."

"......"

"전생을 하는 건 나요. 아무리 내 기억을 전해받아서 간접경험을 하더라도, 당신은 이전의 진소청과 동일인물이 아니오. 당신의 삶은 한 번 뿐이란 말이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남궁가에 가장 분노를 느끼는 건 바로 당신일진대 이렇게 기회를 버려도 좋소? 정말로 참을 수 있는 것이오?"

"물론이오."

진소청은 고즈넉한 눈빛으로 말했다.

"남궁명은 예전에 내가 남궁세가에 방문했을 때 친절하게 대해준 일이 있었소. 나는 그 빚을 갚는다 생각하겠소."

"그렇게 생각한다면... 알겠소."

나는 망량을 힐끔 바라보았다. 망량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견 없소. 맘대로 하시오."

"알았소."

스걱

잠시 후 남궁명의 목은 내 검강이 잘려서 툭하고 떨어졌다. 명인의 경지에 오른 내가 최대한 깔끔하게 잘랐기에 고통은 없었으리라.

고통에 몸부림치던 남궁환은 의자에 앉아서 아버지의 목이 떨어지는 장면을 직접 보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외쳤다.

"아버님!!! 으아아아아!!"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다지만 눈앞에서 부모를 죽이는 건 조금 마음이 거리꼈다. 하지만 나는 남궁세가 부자의 극악무도한 악행을 생각하며 천천히 말했다.

"화내지 마라. 너는 곧 네 아비를 부러워하게 될거다."

"으아아아!! 죽여버리겠다! 죽..."

"닥쳐라."

나는 머리채를 잡아챈 후 남궁환의 혈을 제압해서 기절시켰다. 그리고 피해자 여인들을 보호하고 있는 무영문으로 향해서 검마에게 사정설명을 했다. 그러자 검마가 흔쾌히 말했다.

"놔두고 가게. 남궁환을 수천 조각으로 찢을 사람을 모집하겠네."

"감사합니다."

"재밌는 일이 되겠군."

남궁환도 마저 처리한 나는 진랑곡으로 돌아왔다. 이제야 남궁세가 일이 얼추 끝난 느낌에 나는 허리를 쭉 펴며 말했다.

"이제 무영검제를 찾으러 가면 되는 거요?"

"아니오."

"응?"

망량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당신의 다음 전생때 하시오. 지금은 너무 위험하오."

"흠. 그럴까..."

"아무리 그가 남궁세가와 연을 끊은 자이며 멸문의 위기도 못본체 하는 은거고수라지만, 이제 곧 남궁환이 저자에서 천참만륙을 당하게 되면 그 소문을 듣고도 평정심을 갖출 수는 없소. 어쩌면 분노에 충천해 있는 전대 천하제일검과 혈전을 벌이게 될지도 모르오."

"......"

확실히 그렇다. 남궁세가가 약해서 깔보는 마음이 들었지만, 무영검제는 남궁세가를 다 합친 것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고수일 것이다. 그런 자를 상대하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망량에 이어 진소청도 한 마디 했다.

"무영검제라면 의념절기의 다음 경지에 이르러 있을거라 생각하오. 내가 더 강해지기 전에는 맞닥뜨리기 싫은 상대요."

"다음 경지?"

"그가 남궁세가의 비급을 갖고 은거한 이유는 비급에 얽매여서 무(武)의 근본을 잊을까봐 염려한 처사라고 생각하오. 그것만 봐도 그 자가 중원 최고수준의 고수라는 걸 알 수 있소."

진소청도 이렇게 경고한다면 아무래도 가선 안될 것 같다.

' 악구에 사는 설조.'

우선 기억만 해 둬야겠다.

이윽고 망량이 말했다.

"남궁세가의 일은 이걸로 일단락을 냅시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하나요."

"백련교 말이군."

"바로 그렇소."

고개를 끄덕인 망량이 말했다.

"백련교에 입교(入敎)할 때가 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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