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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31화 (331/1,615)

00331  천계(天界)  =========================================================================

확실히 눈 앞에 서 있는 자는 내가 일전에 보았던 용중일의 모습과 같았다. 탈속한 풍모는 아니었으나 준수한 용모를 가진 장년인이었고 잘 닦인 몸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그에게서 별반 기(氣)가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에서 한 가지 경지를 깨달았다.

' 반박귀진!'

극점에 도달한 기(氣)는 최대의 효율성을 위해서 하나의 점에 집중하고 수렴하게 된다. 집중점에서부터 자신의 진기를 폭발적으로 내뿜을 수 있도록 저절로 조정하고 있는 상태이자, 최절정고수들이 의념으로 자신의 기를 통제하는 기술(技術)이 바로 반박귀진이었다.

나 또한 반박귀진의 경지에 올랐으나 아직까지 그리 익숙하지는 못하다. 선천적인 감각이 많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의념으로 잘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눈 앞에 서 있는 용중일은 자신의 기를 한 치도 드러내지 않고 내면에 갈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용중일의 진짜 무공수위가 어렴풋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경지가 따라주지 못해서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기 때문에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용중일은 강하다!

그것도 진소청이 창을 뽑아들어야 할 만큼!

진소청의 물음에 용중일은 힐끔 즉사한 세 명의 남궁세가 고수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긴 양자강이고 여기서 황산(黃山)은 그리 멀지 않지. 나는 간만에 장로들과 함께 양자강의 산수를 구경하던 중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네."

"......"

진소청은 물론이고 나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뻔뻔할수가!

누가 봐도 모종의 거래를 시도하다가 일이 틀어져서 용중일이 남궁세가 고수들을 몰살시키려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기려고 할 줄이야? 진소청이 그를 노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산수 구경이라 이말이시군. 허나 나는 방금 독순술(讀脣術)으로 당신들의 대화를 보았소만."

"으음...? 뭐라고 했던가."

"남궁세가 사람들이 당신에게 인사를 하고 당신도 맞받았소. 그리고나서 남궁세가 측에서 풍신류(風神流)의 비급을 달라고 했소."

"그래서?"

"그리고 방금 전에 당신이 암경으로 그들을 공격해서 죽였소."

두꺼운 낯짝을 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진소청의 말에 용중일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가 문제인가?"

"뭣...."

용중일은 암경에 당해서 즉사해있는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남궁세가는 이미 오대세가에서 퇴출당했으며, 진소청 자네에 의해 사람같지도 않은 사악한 악행이 만천하에 까발려졌지. 이미 그들은 안휘성 일대의 무림에서 배척받고 있으며 암암리에 무림공적으로 지정되어 있어. 헌데 감히 내게 사이한 백련교의 무공이 있는지 묻다니, 단연 사파(邪派) 그 자체 아닌가?"

"......"

정말 뻔뻔하다.

"나는 구파일방 장문인으로서 이토록 사악한 자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네."

나는 기가 막혀서 인상이 일그러졌다.

' 미친 놈!'

나는 용중일이 사실은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의 맏아들이자 풍신류의 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구파일방 장문인의 직위를 지니고 있으나 동시에 백련교의 간부급이라는 사실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눈 앞에서 꼬리를 자르려고 살상을 저질러놓고는 이토록 뻔뻔스럽게 나오다니!

당연히 진소청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용중일에게 말했다.

"그렇구려. 허나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 두 사람이 살아남았군."

사람들의 시선이 내 등 뒤로 향했다. 나는 공포에 질려서 덜덜 떨고 있는 남궁세가 고수 두 명을 보호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섯 명 중에서 세 명이 용중일의 손에 격살당했으나 진소청이 급히 끼어든 덕에 두 명을 살려낸 것이다. 용중일은 생존자들을 힐끔 쳐다보더니 대꾸했다.

"두 명을 내놓게. 그 자들을 살려두면 자네들도 남궁세가의 편을 드는지 의심받겠군."

"용 장문인."

"왜 부르나?"

진소청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작작 하시오. 나는 이 자리에서 그대와 생사를 결할 수 있으니."

스윽

진소청이 고요한 분노를 표출하듯 창을 가로로 치켜들었다. 단 한 동작 뿐이었으나 거기에는 무시무시한 의형강기가 내포되어 있어서, 용중일의 좌우를 지키고 있던 고수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삼 보를 물러났다.

"으윽...!!"

"괴물!!"

그들의 얼굴이나 행색을 보니 황산파의 장로가 아니었다. 전혀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용중일을 호위하고 있는 자들의 면면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 아마 풍신류 고수들이겠군.'

애초에 용중일은 꼬리를 잘라내려고 이 자리에 온 것이다. 크게 연관될 수 있는 황산파 장로들을 수행원으로 데려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용중일 또한 지금의 상황이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리라.

우웅

용중일은 태산처럼 우뚝 서서 진소청의 기세를 흘려내더니 슬며시 손을 저었다. 그러자 진소청의 기세가 잠시 무마되었고, 진소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용중일의 한 수도 의념절기라서 방금 전에 강렬한 역장을 분출한 것이다.

진소청의 기세를 떨쳐낸 용중일이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듣던 것 이상이군. 남궁세가를 맨손으로 전멸시켰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나는 솔직히 진소청 자네와 적이 되고 싶지 않네."

그렇게 토로하는 용중일의 표정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워낙에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인물이라서 나는 그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진소청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용 장문인이 끝내 이 두 사람을 살상할 생각이라면 나는 온 힘을 다할 뿐이오."

"후후, 걱정 말게. 그깟 놈들 때문에 자네와 생사결을 치를 순 없지. 이런 초라한 자리에선 안 되고 말고."

의미불명의 웃음을 흘린 용중일이 말을 이었다.

"나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 양자강의 산수는 천하절경인지라 더욱 만끽하고 싶군."

"물러난다고?"

성큼 하고 진소청이 한 걸음을 내딛었다.

"누구 맘대로!"

채채챙!

그 순간 용중일 옆에 서 있던 호위들이 일시에 긴장해서 검을 뽑아들었다. 그들의 검에서는 형형한 푸른빛 기운이 떠올랐고, 그건 풍신류에서 다루는 특유의 검기였다. 순식간에 긴장감이 형성되자 용중일이 호위들을 자제시키듯 손을 내젓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저 소년도 굉장한 고수로 보이는군. 아니, 반로환동한 고수인가?"

"......"

"역시 강호는 넓어. 내가 모르는 은거고수도 많이 있군."

중얼거리던 용중일이 말을 이었다.

"진소청. 이걸 받게."

파앗

용중일이 품 속에서 왠 신패를 하나 꺼내서 진소청에게 던졌다. 마치 빨랫줄처럼 주욱 밀어나듯 던져진 신패의 속도는 사실 가공할만한 것이라서, 왠만한 고수들은 받아내려다가 죽을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의념까지 섞여있어서 굉장한 힘이 실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소청은 가볍게 신패를 잡아챘고, 용중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언제고 시간이 되면 그걸 갖고 본파로 찾아오게."

"내가 황산파에 무엇하러 간단 말이오?"

"글쎄? 무슨 일이든지간에 찾아오겠지."

의뭉스럽게 대꾸한 용중일이 빙글하고 몸을 돌렸다.

"그럼 다음에 봅세."

말을 끝낸 용중일이 일행과 함께 경공으로 강가를 벗어났다. 진소청은 그들을 공격할 수 있었지만 그저 쳐다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백웅. 그 두 사람은 괜찮소?"

"괜찮소. 그냥 겁에 질렸을 뿐이오."

나는 말을 하면서도 기가 막힌 기분이 들었다. 내 뒤에 있는 남궁세가 고수 둘은 상당한 실력의 일류급 검객이었는데, 방금 전에 용중일의 암경이 뻗어낸 여파만으로도 심령을 제압당한 것이다. 억지로 칼을 휘두른 것도 기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무력화되어 있었고 공포에 지배당해 있었다.

' 도대체 어떤 무공이지?'

아마 풍신류의 비전무공이겠지만 일류급 고수를 이토록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암경은 들어본 적도 없다. 내가 그들의 맥에 기를 불어넣으며 치료를 하는 도중에 진소청이 말했다.

"망량. 싸우지 말라길래 일단 멈췄소만 괜찮은 거요?"

슈욱!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망량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미리 축지술로 도착해서 은신술로 몸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방금 전 용중일과의 대화 때도 망량이 옆에 있었던 것이다. 망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싸울만한 상대가 아니오. 그는 풍신류의 2인자니까 쉽게 처치할 수 없소."

"... 그렇겠지."

진소청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를 죽이는 건 힘들 거요. 다같이 덤볐어도 최소한 누군가 팔 한 쪽을 각오해야 했을 것이오."

나는 진소청의 그 말에 약간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 정도요?"

"나는 용중일보다 앞서있다고 확신하지 못하오. 싸우면 이길 것 같긴 하지만 큰 차이가 아니오."

"......!!"

나는 마음속이 진탕되는 걸 느꼈다.

지금의 진소청은 말 그대로 중원의 초절정고수 중에서도 독보적인 경지에 올라있다. 검마가 진소청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면 실질적으로 호법사자를 제외하고는 최강자라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진소청이 이토록 자신없는 소리를 할 줄이야?

' 용중일이 그 정도로 강하다고...?'

나는 당황해서 진소청에게 말했다.

"잠깐! 그건 이해가 안 되는데... 저 자는 천령단도 없잖소?"

"나도 천령단이 없는 건 마찬가지요. 용중일이 보유한 순수한 무(武)의 깨달음이 독보적인 경지인 듯 하오."

"허어..."

"아무래도 용중일은 필요할 때가 아니면 절대로 자기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 사내인 것 같소."

옆에서 나와 진소청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망량이 말했다.

"내 생각도 같소. 뜻밖의 강적이 나타났군."

"용중일은 예전 내 전생에서 제대로 싸우려 한 적이 없소. 그가 전력을 다했다면 얼마든지 상황이 뒤집혔을 텐데 왜 그런 거요?"

"말했듯이 그는 끝까지 참고 또 참으며 최후의 승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부류요. 아무리 좋은 판이라고 해도 변수가 있다면 결코 싸우려 들지 않겠지.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용중일이 싸우고자 한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는 뜻이오."

"으음."

극도로 신중한 최절정고수!

망량의 말대로 의외의 복병이 나타난 듯 했다. 십수 번의 전생 동안 보이지 않던 황산파 장문인 용중일의 진면목이 이제야 서서히 보이는 것이다. 망량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이 사람들에게 상황을 들어봅시다."

망량의 말대로 나는 의술과 침술으로 남궁세가 고수 둘을 치료했다. 약 한 식경 후 그들은 정신을 차렸고, 우리를 복잡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들 중 한 명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진소청, 우리를 갖고 노느냐! 죽일테면 죽여라!"

"......"

복잡한 상황이다. 애초에 남궁세가의 몰락을 이끈 것은 진소청이기 때문이다. 눈 앞의 남궁세가 고수들은 난데없이 수뇌부의 악덕 때문에 피해를 보는 입장이라고 해도 좋았다. 진소청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성과 가문을 버리라 했을 뿐, 목숨을 뺏는다 한 적은 없소."

"흐흐... 장난치느냐! 빌어먹을!!"

분통을 터뜨리던 남궁세가 고수가 악을 내질렀다.

"가주와 소가주가 죽일 놈이라 하더라도 남궁세가는 우리가 평생동안 온힘을 다해 쌓아올린 터전이다! 그걸 하루아침에 버리라고? 웃기지 마라!! 마지막 한 명까지 가문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진소청이 뭐라고 대꾸하려는 순간 망량이 옆에서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들이야말로 상황파악을 못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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