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0 천계(天界) =========================================================================
나는 칠 주야 동안 꼬박 천신경의 술법을 연마했다. 본디 술법이란 것은 최소한 몇 년 이상의 수련이 필요하지만, 나는 지선 망량의 기본적인 술법지식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근간이 되는 영력도 상당했다. 그래서 짧은 수련기간 동안에도 나름대로 써먹을 정도로 천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망량이 말했다.
"백웅. 검마에게서 소식이 들어왔소."
"뭐라고 하오?"
"남궁세가의 자금원이 끊긴 후 남궁세가를 오대세가에서 퇴출시키는게 오대세가회의에서 정식으로 결정났소. 검마는 안휘성의 흑도세력을 움직여서 남궁세가의 고수들을 줄이고 있다고 하오."
"으음."
예상대로의 전개다.
원래라면 중원을 제패하고 있는 오대세가 중에서 단 하나라도 빠질 일은 없었다. 하나하나가 일개세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성세를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궁세가의 가주와 소가주가 실종되고 장로들까지 무공을 잃은 상태에서, 화신류까지 그들을 버렸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미 남궁세가는 반쯤 몰락했다고 봐도 좋은 상황이었다.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냥 검마에게만 맡겨도 다 해내지 않겠소? 진소청이나 내가 직접 손을 더럽힐 이유는..."
"내 생각도 같소. 지금의 남궁세가 정도는 검마의 역량이면 다 집어삼키고도 남소. 그러나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가 직접 손을 써야 하오."
어떤 이유인가?
내가 물끄러미 망량을 바라보자 망량이 말했다.
"황궁은 이미 이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소. 그들은 언제나 무림에 감시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는데, 남궁세가의 몰락같은 큰 이변이면 더욱 그렇지. 빠르든 늦든간에 이번 일에 개입하게 될 것이오."
"음, 설마 노예시장 관련이오?"
내가 질문하자 망량이 감탄하듯 말했다.
"빨리 짚어내는군. 훌륭하오."
"남궁세가가 노예시장에도 손을 댔다는 정보를 남궁환에게 얻었잖소."
"바로 그거요."
그는 오화칠금선을 부치며 말했다.
"황궁이 노예시장과 관련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일. 그들은 큰 출자자인 남궁세가가 사라지면서 생길 파동에서 떡고물을 챙기거나, 극비정보를 알아내려고 혈안이 될 게 분명하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움직일 단체가 하나 있지."
"금의위(金衣衛)!"
"무영문의 힘만으로는 금의위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소. 우리가 직접 금의위를 잡아족쳐야만 할 것이오. 검마 문주라면 금의위를 생포할 수 있겠으나, 황궁과 직접적으로 척을 지는 것은 그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니 야인인 우리가 맡아줘야겠지."
"그렇군."
나는 망량의 계책에 수긍하다가 말했다.
"진소청과 검마에게도 이야기를 전달했소?"
"아직이오. 하지만 아마 나와 생각이 비슷할 거요."
그렇게 대꾸한 망량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제 슬슬 가 봅시다."
파앗!
나는 진소청, 망량과 함께 무영문에 들러서 검마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검마는 크게 기꺼워하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군. 금의위는 자네들이 맡아 주게."
"그런데 문주. 이전에 문주가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노예시장의 세력이 혹시 금의위였습니까?"
"음... 나도 그 일을 자세히는 알 수 없지. 어찌되었든 자네 전생동안 일어난 일이니까."
턱수염을 쓰다듬던 검마가 말했다.
"다만 금의위라고 하기에는 좀 약하지 않나 싶네."
"약하다니요?"
"아무리 금의위의 천호들이 절정고수들이라고 하지만 우리 무영문에도 그 정도의 고수들은 있네. 지금의 금의위가 내가 힘에 부쳐할 정도의 세력이라곤 생각지 않아. 금의위보다 훨씬 강력한 세력이거나, 그에 상응하는 초고수가 관여한 게 틀림없네."
"음... 금의위 총령이 아닐까요?"
"그 생각은 나도 해봤네만, 그 자는 겨우 초절정에 발을 디뎠을 뿐 그리 강하지 않네. 총령 따위에게 쫄아들 정도면 나는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걸세."
"......"
"아무튼 잘 부탁하네. 나는 계속 남궁세가를 압박하지."
"네."
대화가 끝난 후 우리는 남궁세가의 잔당이 있는 근처로 이동했다. 남궁세가에 거대한 비인(非人)의 상처가 새겨진 후 남궁세가 사람들은 건물을 버리고 옛 본거지로 되돌아갔다. 왜냐하면 진소청의 경고가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현재 그들은 안휘성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진소청은 먼 산에서 남궁세가 일대를 보자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저 자들은 내 경고를 무시했군."
"자신의 성과 가문을 그 누가 쉽게 버릴 수 있겠소? 저 자들은 이미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을 거요."
그렇게 대꾸한 망량이 말을 이었다.
"이 근처에서 매복합시다. 저 자들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야 하오."
"쳐서 없애지 않고?"
"남궁세가는 현재 궁지에 몰려있소.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할텐데, 아마도 노예시장과의 끈을 이용하려 할 것이오. 우리는 그 움직임을 잡아서 노예시장의 흑막에 도달할 수 있을 거요."
진소청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굳이 노예시장의 흑막에 도달해야 하오? 황궁이 관련되어 있다는 건 이미 알잖소."
"아는 것과 확인하는 것은 천지차이가 있소. 그리고 검마도 말했듯이, 금의위의 역량만으로는 거대한 노예시장을 통제할 수 없소. 분명히 그들과 동맹한 세력이나 고수가 존재할 것이오. 그 자를 알아내야 차후의 일이 편해질 거요."
"흐음..."
차후.
나는 망량의 그 단어를 듣자 약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역시 망량은 내가 죽는다는 전제하에 책략을 짜고 있는 것이다. 예전이라면 그저 내버려뒀을 일이지만 직접 끼어들어서 정보를 캐는 건 바로 그런 이유였다. 하나라도 내가 직접 보고 들으면서 정보를 축적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진소청이 말했다.
"만일 나중에 금의위 총령과 맞닥뜨리면 그 자는 어떻게 처리해야하오?"
망량이 단호하게 대꾸했다.
"생포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망설이지 말고 죽이시오."
"죽여도 상관없소?"
"검마가 간과한 게 있는데, 금의위 총령의 무공은 초절정급 고수 중에서 낮은 편이지만 그는 이미 황궁의 복마전에서 마(魔)를 이식받았소. 그것도 천계에 위험을 불러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마의 씨앗이오. 그 자를 섣불리 생포하려 들다가는 우리가 죽을 것이오."
"으음."
나는 망량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금의위 총령이 완전히 마물로 각성했을 때는 여동빈이 화룡소환을 하면서까지 극한의 검기를 퍼부어서 죽였다. 그만큼 위험한 마물로 재각성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진소청의 무공이라도 섣불리 마에 접촉해서 좋을 게 없었다.
우리는 계획을 짠 후 우선 남궁세가를 감시하며 근처에서 야숙했다. 세 명 모두가 감시하는 건 효율이 좋지 않았으므로 교대로 관찰하며 나머지 두 명은 쉬었다. 그렇게 약 오 리 밖에서 나흘 정도를 감시했을 때였다.
감시하고 있던 망량이 급히 축지술로 야영지에 날아왔다.
"움직였소!"
나와 진소청은 누워서 쉬고 있다가 망량의 말에 급히 일어나서 산 위로 갔다. 망량의 말대로 야밤중인데 왠 마차가 덜그럭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그 마차에는 상당한 무공을 지닌 남궁세가 고수들이 호위하며 따라가고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망량이 진중하게 말했다.
"야음을 틈타서 움직이는 거라면 비밀스러운 접선이라는 뜻."
"그럼 저 마차를 추적하면 되오?"
"아니오. 좀 더 기다리시오."
"......?"
"남궁세가 정도면 강호세력들이 자신들을 주시한다는 걸 알고 있겠지. 저 마차는 미끼일 가능성이 높소. 늦게 추격해도 상관없으니 좀 더 지켜봅시다."
"진짜가 나온다는 말이오?"
망량은 힐끔 옆 쪽의 야산을 바라보았다.
"다른 어중이떠중이들이 충분히 달라붙으면 그때 뭔가 움직일 거요."
아니나 다를까 남궁세가를 감시하는 건 우리만이 아닌 듯 했다. 여기저기에서 은밀하게 고수들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마도 남궁세가가 약해진 틈을 노리고 있는 원한관계의 세가 고수들이거나, 사파의 고수들이리라. 그 자들은 야음에 출발한 마차를 쫓아서 산야 여기저기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소청이 말했다.
"상당한 숫자군. 남궁세가는 그간 원한을 많이 쌓았던 모양이오."
"그토록 포학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다면 당연한 일이지. 모르긴 해도 따로 손을 안써도 남궁세가는 곧 멸망할 거요."
"언제까지 기다릴 거요?"
"세 시진!"
나와 진소청은 흠칫 놀랐다. 말 그대로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린다는 소리가 아닌가? 진소청이 난감한듯 말했다.
"그렇게 늦게 추적하면 마차를 쫓을 자신이 없소."
"걱정마시오. 이미 내가 추적부를 날렸소."
"아."
"남궁세가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반드시 2차로 사람을 내놓을 거요."
망량의 말대로였다.
약 한 시진 후.
아주 사소한 기척이었지만, 야행복을 입은 4~5인의 고수들이 슬며시 남궁세가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빠르게 움직이며 남궁세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들의 신법을 보자 침음성을 흘렸다.
"상당한 실력이군."
신법만으로 유추하자면 남궁팔검에 준하는 실력자들이었다. 강호에서도 제법 이름을 날릴만한 자들이었으니, 아까 마차를 호위하던 자들보다 훨씬 윗줄인 셈이다. 우리는 지금 움직인 게 '진짜'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은밀히 백여 장의 간격을 두고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아침 해가 밝은 것도 모자라서 중천에 해가 떴다. 그리고 우리 눈에는 왠 커다란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소청은 힐끔 강 유역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양자강(揚子江)이군."
"그렇군..."
"이 자들은 당도(當塗)까지 와서 뭘 하려는 거지? 벌써 백오십 리나 왔거늘."
진소청의 말대로 이 곳은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양자강 유역까지 올 정도면 말을 타더라도 상당한 거리다. 그리고 우리가 쫓는 남궁세가 고수들은 말도 안 타고 산을 올랐기에 많은 체력을 소모했음이 분명하다. 남궁세가 고수들은 이제 지쳤는지 근처에서 잠시 쉬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쉬고 나서 다시 출발을 하려는 듯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궁세가 고수들은 그대로 산을 하나 넘더니 인적없는 양자강 유역으로 가는 것이었다. 자갈과 기암괴석이 상당히 몰려있는 지형이었다.
남궁세가 사람들이 지형에 도착하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몇 명의 인영(人影)이 그들을 맞이하러 나오는 게 보였다. 처음부터 양자강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백 장 거리에서 그들을 감시하던 진소청이 말했다.
"지금 덮치면 되겠소?"
망량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지켜봅시다. 혹시 독순술 가능하시오?"
"가능하오."
"대화를 읽다가 수상쩍은 움직임이 보이면 덮치시오."
"알았소."
진소청은 한동안 안력을 집중해서 그들의 만남을 지켜보았다.
"하앗!"
그러더니 갑자기 번개처럼 엄청난 신법으로 튀어나가서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나는 같이 보고 있다가 난데없는 진소청의 돌발행동에 함께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한 호흡 늦게 망량이 축지술을 쓰는 게 느껴졌다.
백 장의 거리는 순식간에 멸혼보로 압축되었다. 그리고 강 연안에 도착하자 나는 어째서 진소청이 갑작스럽게 움직였는지 알 수 있었다.
' 죽었어!'
멀쩡히 서 있는 듯 싶었지만 남궁세가의 고수 중 셋이 이미 절명해 있었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하던 중에 공격을 받은 듯 싶었다. 진소청은 그 은밀한 낌새를 백 장 밖에서 느끼고는 전투가 벌어지는 걸 직감하고 장내에 뛰어든 것이다.
채챙!
챙!
금의를 입은 고수들이 현란하게 검영을 뿌리며 남궁세가 고수 둘을 겁박하는 모습이 보였다.
' 금의위!'
진소청은 장내에 뛰어들어서 크게 뇌령인을 날렸다.
꾸웅
"크아악."
비명을 지르며 몇 명이 날려가자 진소청이 자리에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한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적의 우두머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약간 늦게 도착해서는 남궁세가의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금의위와 싸우기 시작했다.
스걱
순식간에 나는 금의위 중 세 명을 검강으로 죽여버렸다. 그들도 나름대로 실력이 있었지만 내게 대항하기에는 모자란 것이다. 나는 급한 불을 껐다고 생각하며 진소청이 싸우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는데, 그 순간 내 동공이 흔들렸다.
"엇?!"
진소청이 창을 빼 들었다!
상대가 그 정도의 고수란 말인가?
진소청은 자신의 창을 기경하게 움직이며 적의 우두머리를 공격했는데, 그 자는 자연스럽게 그 공격을 회피하면서 반격을 하듯 세 번의 공격을 날렸다. 진소청은 삼 보를 움직여서 그 공격을 받아쳤는데 그 대신에 더 이상 공격해 들어가지 못했다.
단순히 묘사하면 단순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저 공방에 숨겨져 있는 수십 수백개의 초수가 묘수(妙手)가 되어서 서로의 의념결계 사이에 얽혀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소청의 돌격을 잠시 격퇴시킨 그 고수가 손을 젓자, 금의위들이 빠르게 그의 뒤로 모였다. 그 고수는 찬찬히 진소청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진소청. 과연 듣던대로 대단한 실력이군. 허나 왜 이 자리에 끼어들었지?"
진소청은 즉사한 세 사람의 남궁세가 고수들을 무거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서운 암경(暗經)에 당한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나야말로 궁금하구려. 어째서 당신이 이 자리에 있소?"
이어진 진소청의 말에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당신은 황산파 장문인이잖소."
구파일방 황산파 장문인, 도룡신검(屠龍神劍) 용중일(龍重壹)!
실제로는 풍신류의 호법사자 용비천의 아들이자 풍신류를 대표하는 고수 중 한 명이 바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