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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29화 (32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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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진랑곡에 가서 망량에게 천신경의 술법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련과 전개방법은 저번에 약 네 시진 정도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고, 오늘은 그 정확한 활용법을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망량이 말했다.

"자, 우선 술수를 전개해 보시오."

치링 -

내가 천신경의 술법을 발동시키자 손끝에서 문양이 나타났다. 손가락 끝마디에 하나씩 새겨진 문양은 총 열 개였다. 제각각의 문양은 팔괘도 오행도 아닌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 끝에 문양을 띄우자 망량이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는 천신경의 문양을 띄우는 방법과 유지시키는 법을 배웠소. 그 문양이 어떤 역할을 하는건지 알고 있소?"

"물론이오. 이 문양은 촛불과 같으니, 문양이 유지되는 동안 술법도 유지된다고 했잖소."

"잘 이해했군."

고개를 끄덕인 망량이 말했다.

"이 천신경의 술법은 삼황내문에만 기록된 비술이오. 즉 원래는 신선만이 터득할 수 있으며 인도(人道)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이지. 그런만큼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으니 잘 사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오."

"흐음... 문양을 띄우긴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요?"

"문양을 띄운 상태에서 정신을 집중하여 이 순환원리를 염상하시오."

망량이 주문을 뇌까리듯이 천천히 읊조렸다.

"우주에는 주기가 있소. 그 주기는 12만 9천 6백 년이며 그 안에도 사계절이 있소. 초기의 6개월인 6만4천8백년이 선천(先天), 후반기를 후천(後天)이라 하며, 이와같은 거대한 절후(節候)가 천하만대에 흐르고 있으니, 그리하여 사계는 육기(六氣)가 주재하게 되는 것이오."

"......"

"육기란 목(木), 군화(君火), 상화(相火), 토(土), 금(金), 수(水)의 기운이오. 이 육기가 한 해를 이루며, 하늘의 육기는 하늘의 영을 얻게 되는 것이오. 천신경의 술법은 육기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때부터 시작되오."

예전에 설명을 들어서 얼추 이해하긴 했지만 아직도 어렵다. 내가 머릿속에서 끙끙대면서 술법의 묘리를 생각하고 있을 때 망량이 자신의 십지(十指)를 뻗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잘 보시오. 열 개의 손가락에 떠오른 문양은 제각각 육기를 제어하는 고대의 약속이오."

"약속?"

"천신경의 술법이 강령술(降靈術)이란 건 일전에 설명했을 거요."

"그랬소."

"사실 강령술이란 건 굉장히 어렵고 위험한 술법이오. 영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선천적인 영매체질을 타고나야 하며, 술법의 재능도 극히 뛰어나야 하고, 영을 불러올만한 거대한 기(氣)도 소유하고 있어야 하오. 그래서 공부하고 노력하면 조금이나마 사용가능한 다른 술법과 달리 강령술은 재능없는 자는 아예 발조차 들이밀 수 없는 술법이오."

"으음..."

"육기를 제어하는 십지의 맹약. 이것은 영매체질이 없고 재능이 없어도 강령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천력(天力)의 저장고라고 할 수 있지."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 되물었다.

"하지만 내게 여동빈이나 대라신선이 강림한 적이 많잖소? 그 경우는 어떻게 된 거요?"

"그건 대라신선이 올바른 대가를 받고 강림했기에 그런것이오. 모든 계약부담을 대라신선이 지불하고 강림하는 셈이니 당신의 역량은 상관없지. 하지만 백웅 당신 스스로의 강령술 재능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소."

"......"

"아, 물론 여러차례 강림을 겪은 덕에 영적인 친화도가 높아져서 이제 평범한 수준까지 올라왔겠군."

망량은 가끔씩 송곳처럼 후비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내가 입맛을 다실 때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강령술은 입문조건이 까다로운 대신에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술법보다도 직관적이고 확실하게 결실을 가져다주는 술법이오.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하오."

"흠... 아무튼 십지의 맹약이 유지되는 동안에 뭘 어떻게 하면 되오?"

"눈을 감고 십지에 정신력을 감응해서 주변의 영령을 느끼시오."

망량의 말에 나는 눈을 감고 주변의 영혼을 느끼려고 했다. 그러자 평상시와는 달리, 암흑으로 물든 세상 속에서 새하얗고 빛나는 무언가가 가득 떠다니는 게 느껴졌다. 반경 백여 장 이내에 새하얀 도깨비불같은 게 무려 수천 개나 돌아다니는 것이다. 너무 많은지라 나는 침음성을 냈다.

"마... 많군."

"그 모든 것이 세상을 떠도는 영이며 혼이오."

"어찌 이리도 많소?"

"왜냐하면 인간의 영혼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오. 동식물 또한 혼이 있으니, 그들이 저승에 가기 전에 혼과 백이 걸러져서 순수한 영혼체만 남는 상태가 되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오?"

"지금 느끼는 감각범위를 더 넓히시오. 지금의 당신이라면 약 이십 리 이내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오."

스스스스

감각범위를 넓히자 광대한 범위가 내 인식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나는 그 와중에 천지간의 어둠이 온통 빛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기분이 들었다. 수만, 수십만 개의 영과 혼이 천지간에 맴돌고 있는 것이다! 매우 생경한 경험이었기에 내 피부살갗이 오싹거리며 돋을 정도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수많은 영혼 중에서, 유독 거대한 것이 느껴질 것이오. 다른 것보다 수백 배는 커다란 영혼이 있을 것이오."

"... 있소."

망량의 말대로다. 수십만 개의 영혼 속에서 거대한 것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새털처럼 둥둥 떠다니는 자그마한 영혼과 달리 그 자리에서 버티고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거대영혼들을 관찰하다가 문득 신기한 걸 발견했다.

"어, 시뻘겋고 엄청 커다란 게 있소만."

거대영혼보다 더 커다란 게 있었다. 시뻘건데다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건 건드리지 마시오. 그건 악령이거나 대요괴일 것이오."

"뭣?"

"그들은 승천의 때를 놓치고 타인에게 해를 주는 사악한 것들이오. 위치를 기억해두면 나중에 그들을 토벌하러 갈 수가 있소."

그렇게 대꾸한 망량이 말했다.

"자, 이제 때가 되었소. 거대한 영혼들에게 '십지의 맹약에 따라 소환한다' 라고 말을 거시오. 그러면 그들이 찾아올 것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마음속으로 외쳤다.

십지의 맹약에 따라 소환한다!

파앗

생각이 끝나자 거대한 영혼들이 내 근처에 나타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영혼들은 둥그런 형태에서 서서히 깎여나가는 듯 하더니, 이윽고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망량이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역시 이 근처에는 강력한 영들이 많군."

"망량. 이제 어떻게 하면 되오?"

"그 중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몸에 받아들이시오."

나는 주변을 둘러본 후 영혼 중 하나를 내 몸에 끌어들였다. 마치 물이 빨려들듯이 내 몸에 들어온 영혼은 잠시 후 내 몸을 장악했다. 그러면서도 내 의식은 선명해서, 강령의식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몸을 차지한 영혼은 이윽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왜 불렀는가?"

망량이 질문했다.

"그대는 누구요?"

"나는 전위(典韋)다!"

"호오... 시작부터 거물이군."

감탄한 망량이 말을 이었다.

"여기서 북북서로 십 리를 가면 악한 요괴가 있소. 잡아주실 수 있겠소?"

"알겠다!"

전위라고 불린 영은 내 몸을 빌려서 칼을 꺼내들었다. 잠시 후 내 칼에는 마치 도끼같이 생긴 시퍼런 영기가 덧씌워졌다. 그리고 전위는 미친듯이 달려서 북북서로 향했고, 이윽고 폐허가 된 사당에 도착했다.

[ 크아아아아!!]

그 곳에는 마치 뱀처럼 생긴 요괴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주변에 인골이 널려있는 걸 봐서는 사람을 꽤 잡아먹은 듯 했다. 전위는 눈에 불똥을 튀기더니 외쳤다.

"뒈져라!!"

꽈앙

잠시 후 전위가 뱀요괴를 도끼로 난자해서 쓰러뜨렸다. 그의 도끼질은 무공이라고 할 것은 없었으나, 뿜어내는 힘과 속도가 엄청났다. 내가 뇌명을 써도 그만큼의 잠재력을 쓸 수 있을까 의심될 정도였다. 또한 생명력도 대단한지 뱀요괴에게 몇 번 채이고 물렸는데도 상처 하나 없었다.

이윽고 자신의 임무를 마친 전위가 내 몸에서 떠나가며 말했다.

[ 부탁은 들어주었다.]

"......"

내가 멍청히 서 있자 어느새 축지술로 와 있던 망량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백웅. 십지의 문양을 확인해 보시오."

"... 아홉 개 남아있소."

"하나의 영을 강신시킬 때마다 한개씩 꺼뜨려지는 셈이지. 그 영혼은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기 전에는 강신이 해제되지 않고 무한지속이 가능하오. 또한 당신은 그 영혼이 가진 힘, 지식을 고스란히 사용할 수 있지."

"무슨 소리요?"

망량이 훗하고 웃었다.

"백웅. 머릿속의 기억을 다시 확인해 보시오. 새로운 기억이 생겨있지 않소?"

"헛!"

그러고보니 난생 처음 겪는 도끼질의 기억이나 싸움법을 알게 된 것 같다! 무공이라기엔 지나치게 투박한 무술이었지만 자신의 힘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실전적인 전투법이었다. 또한 전장의 장군이 필수적으로 터득하는 체술도 알 수 있었다. 이런 건 보통 몇 년이고 도끼로 싸움질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수련치였다.

"바로 그건 맹장 전위가 겪었던 전쟁터에서의 경험치요. 당신은 천신경의 술법으로 그를 강림시키며 간접적으로 그 경험치를 획득한 셈이지."

"허... 삼국시대 맹장의 싸움법이라."

"후후. 하지만 지금의 당신에게는 절세무공이 있으니 그런 무장의 강령이 별로 끌리지 않을테지."

그렇게 말한 망량이 다시 주문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영체(靈體)의 형태를 확인하고, 무장이 아니라 문사처럼 보이는 자를 선택해 보시오."

"알겠소."

나는 다시 십지의 맹약으로 거대한 영을 불러들였다. 그러자 확실히 망량의 말대로 문사의 차림새를 한 영혼이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그 영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나는 방현령(房玄齡)이오.]

[ 헉!]

나는 깜짝 놀랐다.

방현령!

그는 당나라 시대의 대정치가이며 현인이었으며 능연 24각의 필두이며 진왕 18학사의 으뜸인 자였다. 또한 역대급 명군으로 불리는 당태종 이세민의 심복이기도 했다. 어찌나 유명한지 조금이라도 글공부와 역사공부를 한 자는 방현령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실질적으로 건국 직후의 당나라를 떠받친 대신(大臣)인 것이다.

' 설마...'

무려 천 년 전의 정치가가 내 눈앞에 있자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방현령이 물끄러미 나를 보더니 말했다.

[ 맹약으로 불렀으면 의뢰할 게 있을텐데.]

[ 아, 그럼 지식을 좀 주셨으면...]

[ 어려울 건 없지.]

슈욱!

잠시 후 방현령이 내게 강령했고, 방현령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옆에 서 있던 망량이 말했다.

"지필묵이 필요하십니까?"

"필요하네."

"같이 가시지요."

망량은 방현령을 이끌고 축지술로 진랑곡에 돌아왔다. 진랑곡에 온 방현령은 붓을 잡고 종이에 뭔가를 잔뜩 쓰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 후에 방현령의 강신이 풀리고 결과물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방현령이 알고 있던 온갖 지식이 무려 책자 두 권 분량으로 쓰여져 있었다.

약간 손이 저려서 털고 있자 망량이 말했다.

"약 일천 년 전의 지식이니 쓸데없는 것도 많지만 역시 그는 현인이오. 상당한 정치적 지혜를 농축하고 있구려."

"으으... 설마 이거, 뛰어난 자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술법이오?"

"그렇소."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신경의 술법으로 필요할 때 고대 영혼을 불러서 그 힘과 지혜를 얻는 것이오. 술법의 횟수가 쌓일수록 당신은 원래보다 성장속도가 더욱 가속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전생이 수백 회씩 쌓이기 전에 목표치에 이를 수 있을 것이오!"

"......!!"

"또한 사용하면 할수록 당신의 영매체질과 영력이 발달하니 일석이조요."

나는 이 술법이 대단한 거라는 걸 알아챘다. 중원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맹장, 현인, 군주들을 내 몸에 소환할 수 있으며 부탁을 할수도 있고 그들의 경험치를 일부나마 얻을 수 있었다. 비록 대라신선의 축복이나 여동빈의 소환만큼은 아니었지만 앞으로의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것이다.

' 과연 대라신선이 남긴 삼황내문에만 기록된 비술답군...'

보통의 술법은 이렇게 편리하고 강력할 수가 없다. 신선 전용의 술법이니 이렇게 강력한 것이다. 나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겨서 망량에게 질문했다.

"망량. 그런데 이 고대영혼들은 왜 저승으로 가지 않소?"

"음?"

"방현령은 천 년 전 사람이고 전위는 거진 천사백 년 전의 인물이오.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전생의 원리에 따르자면 그들은 예전에 사후세계로 가서 새로운 존재로 환생해야하지 않소?"

"......"

망량은 꽤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대꾸했다.

"음... 설명하자면 복잡하지만, 그 질문은 한 가지 틀렸다는 것만 말해두겠소."

"무엇이오?"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사후세계와 저승은 같지 않소. 그건 엄연히 다른 것이오."

"......? 그게 무슨 의미요?"

망량의 시선이 하늘으로 향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죽고 나서도 신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지..."

============================ 작품 후기 ============================

노블레스 연재는 오늘 329화로 일시 마무리되었습니다.

10월 1일부터 편당결제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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