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4 ----------------------------------------------
천계(天界)
진소청은 남궁세가의 정문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병장기인 창(槍)을 빼들고 있었으며,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경비무사들 대여섯명이 움찔하며 자신의 무기를 빼어들었다.
그리고 남궁세가의 정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대장인 듯한 자가 부리부리한 호목(虎目)을 치켜뜨며 진소청을 노려보았다.
"뭐하는 놈들이냐? 여기가 남궁세가란 건 알고 있느냐?"
"잘 알고 있지."
"자세를 보니 무술깨나 하는 낭인인 것 같은데 썩 꺼져라! 여긴 개나소나 오는 곳이 아니다."
문지기가 경고를 하자 옆에 있던 다른 무사들이 킬킬 웃었다. 아마 그들의 경우, 이렇게 엄포를 놓으면 대개 물러섰기에 비웃을만 하리라. 그도 그럴것이 남궁세가의 정문에서 싸움을 거는 미친 인간은 없다고 생각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그들은 운이 없었다. 이 자리에 온 것은 나와 진소청이었고, 전혀 사정봐줄 생각이 없다. 진소청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말을 이었다.
"하나 묻겠다. 남궁명은 안에 있나?"
그러자 경비무사들의 눈매가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반쯤 장난으로 여겼다면 매서운 살기가 뻗쳐나왔다.
"이 놈이 어디서 감히 가주님 이름을!"
"잡아족ㅊ...!"
쿠궁
다음 순간, 진소청의 왼쪽 손에서 발출된 뇌령인(雷靈印)이 터져나가듯이 전방을 쓸었다. 여섯 명의 경비무사 중에서 다섯 명이 뇌령인에 휩쓸려서 삼 장 뒤로 날아갔고, 그들은 땅에 튕겨나가며 기절했다. 본디 그들의 상체를 태워버리는 위력이지만 진소청이 힘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경비무사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더듬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너는 누, 누, 누구..."
"남궁명이 안에 있나 물었다."
"가... 가주님은..."
그는 불안하게 눈을 이리저리 휘돌렸지만 다음 순간 진소청은 달려들어서 그를 발로 차 버렸다.
퍼벅
"꽤액!"
경비무사대장은 발길질 한 방에 날려가서 기절해 버렸다. 진소청은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묻다보면 나오겠지!"
그렇게 말한 진소청은 창을 되려 집어넣고 말았다. 아마 이 정도 수준의 무사들에게 창을 쓰는 건 소잡는 칼로 닭잡는 격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
나는 뒤따라가다가 그 말에 황당함을 느꼈다. 그래서 말했다.
"정면돌파라는게 정말로 정면돌파?! 이렇게 갈 생각이오?"
정면돌파라고 해도 이건 내가 생각한 방법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남궁세가의 고수들과 교섭을 하는 국면도 있어야 했다. 그 와중에 남궁환을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너무 막무가내로 들어가는 감이 있었다.
"날 믿어 주시오."
"이건 미친 짓인데."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진소청을 따라서 남궁세가의 정문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힐끔 전방의 광경을 쳐다보았다.
"시작했군."
쇄쇄쇅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아마 방금 전의 이변이 안쪽에 알려지면서 활을 쓰는 무사들이 출동한 모양이었다. 남궁세가라고 하면 검가(劍家)이기에 검객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들은 외곽경비 정도에는 궁병을 배치하는 모양이었다. 어중이떠중이를 상대로는 화살이 훨씬 더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방에서 날아오는 수백 개의 화살을 진소청은 보지도 않고 가볍게 피해버렸다. 그리고는 진각을 한 번 굴러서 바닥의 돌을 허공에 띄운 다음 손가락에 공력을 실어서 가볍게 튕겨냈다.
투둥!
"끄억."
"악."
손가락에 튕긴 돌멩이는 궁사대의 이마를 쳐서 뇌진탕을 일으켰다. 상당한 거리인데도 노리고 맞출 수 있다는게 놀라웠다. 진소청은 가볍게 멸혼보를 써서 휘저으며 궁사대를 전멸시켰고, 그 과정은 채 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놈!!"
"죽어라."
그리고 어디선가 우르르 몰려나온 남궁세가의 검사들이 여기저기에서 전진하는 진소청을 향해 덤비기 시작했다. 그들은 앞서 상대했던 경비무사나 궁사대보다 더 높은 무공을 지닌 것으로 보였고, 강호로 치면 일류에 근접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전해주지 않았을 때도 일류급 고수를 패대기치던 진소청이었다. 그는 소매에 공력을 실어서 앞서 공격해 오는 3명의 따귀를 갈긴 후 전혀 멈추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며 나아갔다.
퍼버버벅
"고작 너 혼자..."
"덤벼!"
퍼버버버벅
"허윽. 아니 잠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진소청을 멈출 수 없었다. 무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겨우 오십 장 되는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에 수십여 명의 무사들이 덤벼왔지만 그들은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권영(拳影)에 일 초도 버티지 못했다. 또한 그 자들의 검기는 진소청에게 맞기는 커녕 스치지도 못했다. 간혹 진소청에게 암기를 쓰는 자도 있었는데 그런 자들은 대번에 더 세게 후려맞고 기절했다.
풀썩
마지막 무사가 쓰러지자 진소청은 커다란 철문 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뒤따라온 내게 나직이 말했다.
"여기까지가 남궁세가의 외전이고 지금부터 내전이오."
나는 진소청을 돕기는 커녕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싸움이었기에 내가 끼어들 이유가 없을 정도였다. 나는 내심 남궁세가의 수준에 실망하며 말했다.
"제대로 된 놈이 나올까?"
"그건 문 맞은편에 있는 놈에게 물어봐야겠지."
진소청은 굳게 닫혀있는 철문에 서서히 손을 올렸다. 잠시 후 그가 공력을 실어서 발경(發經)을 시전했다.
콰과광!
"우와아아악."
다음 순간, 높이가 이 장은 될법한 거대한 철문 두짝이 그대로 밀려나가며 뒤에서 습격하려고 대기하던 남궁세가 무인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철문의 무게는 수십 명의 장정이 힘을 써도 들기 힘들 정도일텐데 발경 한 번으로 날려버리다니!
진소청은 그대로 진입해서 다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문 뒤편에도 약 백여 명은 될법한 무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진소청의 일 권에 다섯 명이 허공으로 튕겨서 날아갔다.
퍼버벙
"아악."
"어머니이이이."
아주 신나게 싸우고 있기에, 나는 문 뒤에 팔짱을 끼고 서서 얌전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감상을 중얼거렸다.
"장관이군."
진소청은 아직 제 실력의 일할도 내보이지 않았는데 벌써 오십 명이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남궁세가는 대세가답게 하급무사나 중급무사도 많이 보유하고 있었으나 진소청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만일에 진소청이 창을 썼다면 지금쯤 이 곳은 피바다가 되어 있었으리라.
그 때였다.
"천공대, 지공대! 포위하라!!"
뒤쪽 문에서 우르르 몰려든 청의(靑衣)를 입은 이십여 명이 진소청의 왼쪽으로 포진했다. 그리고 홍의(紅意)를 입은 이십여 명이 오른쪽을 막았다. 거침없이 무사들을 때려눕히던 진소청은 그 포위를 감지하자 멈칫했다.
그리고 포위명령을 내린 무인들이 뒤편에서 걸어나오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그들은 상당한 공력을 보유하고 있는 중늙은이들이었다.
"어디서 까부는 놈인지 몰라도 잘못 걸렸다. 남궁팔검의 이름을 걸고 여기를 네 무덤으로 만들어 주마!"
남궁팔검!
그들은 남궁가에서 가장 무위가 뛰어난 여덟 명의 절정고수 장로들이었다. 그들은 남궁가의 방계에 전수되는 절학을 수십 년동안 고련해서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강호에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도 그들이 만일 절정고수인지 상당한 기력을 보유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천공대와 지공대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삼사십대 정도의 무인집단이었는데 하나같이 사납게 벼려져 있는 칼날같은 기세였다. 개개인의 무공은 장로인 남궁팔검보다 약해보였으나 그들은 충분히 절정고수를 목전에 둔 자들이었다. 강호에 돌풍을 일으키고도 남는 엄청난 전력인 것이다.
나는 진소청과 함께 그들의 포위에 갇혔으나 왠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건 진소청도 마찬가지인지, 그는 태연하게 내게 말했다.
"백웅. 구경하고 있으면 끝내놓겠소."
"그러지."
그러자 남궁팔검 장로 중 한 명이 기가 막힌 듯 으르렁거렸다.
"미친놈들! 구경이라고? 네놈들 내장 색깔을 구경해 보자!"
파바밧
다음 순간, 포위한 천공대와 지공대가 동시에 이쪽으로 몸을 날려 왔다. 그들의 검로(劍路)는 아마 남궁세가의 검법인지 잘 단련된 고수의 기백이 느껴졌다. 삽시간에 주변공간이 살기와 칼날으로 가득차자 우리가 살아날 길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적들을 살피는 게 아니라 진소청을 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어?'
진소청은 여전히 창을 뽑지 않았다.
뻐억
빛살처럼 흘러나온 진소청의 일권이 전방의 천공대 세 명의 턱에 적중했다. 그들이 허공에 체류하는 찰나의 순간에 진소청은 뇌영(雷影)과 함께 움직였고, 분열된 듯한 수십 개의 동작이 공격자들에게 대응하듯 날아갔다. 그 하나하나의 동작은 한 줌도 낭비가 없었다.
진소청의 몸이 수십 개로 분열한 듯한 그 찰나에 이미 모든 공격은 끝나 있었고 진소청의 몸에 뇌영이 빨려들듯이 회수되었다. 마치 환상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
"뭐, 뭣?!"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실제로는 거세게 초식을 내뿜으며 달려들던 천공대와 지공대의 고수들이 미동도 하지 않고 멈춰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잠시 후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입에서 선혈을 토해냈다.
"크헉."
"크헉..."
후두둑...
천공대와 지공대 고수들은 자신의 병장기를 놓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미 기절해서 비명도 못 지르는 자들도 많았다. 놀랍게도 반경 십오 장에 있던 모든 고수들이 진소청의 한 수에 제압당한 것이다.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본 건 나 뿐이 아닐까?
남궁팔검은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지 경악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절정고수, 천하무림에서 그리 많지않은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검을 곧추세우며 다시 진소청을 포위하는 검진을 만들었다.
"불청객. 무기를 들어라."
선두에 있던 남궁팔검 장로가 시허연 수염을 떨며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투지와 더불어 불안감과 분노가 감돌고 있었다.
"들리지 않나? 무기를 들어라."
왜냐하면 진소청의 주무기가 창이며, 자신들이 철저히 얕보이고 있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리라.
"흥."
그러자 진소청은 대답하는 대신에 자신의 오른쪽 주먹을 더 강하게 말아쥐었다. 그는 끝까지 주먹만으로 승부를 볼 생각인 듯 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황당하면서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무리 그래도 합격진을 갖춘 절정고수 여덟인데?!'
나라고 해도 저들을 한번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내공을 앞세워서 검강을 난사한다고 해도 저들이 갖춘 합격진의 방어력을 쉽게 보지 못한다. 예전에 종남파의 여섯 장로가 진을 갖췄을 때 모든 내공을 담은 검강을 날리는 수밖에 없었을 정도였다. 원래의 진소청이라면 저 남궁팔검을 상대로 창을 들고 전력을 다해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진소청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진소청이 끝까지 창을 들지 않자, 남궁팔검들은 크게 열받은 기색이었다. 잠시 후 그들이 검날에 검염을 끌어올리며 기합을 내질렀다.
"하압!!"
"죽여라!"
청염(靑炎)이 휘몰아친다!
개개인이 귀영검객 진평급의 고수들이 검염을 휘날리며 동귀어진의 태세로 날아오는 광경은 무시무시했다. 내가 진소청의 자리에 서 있었다면 대경해서 일단 멸혼보로 피하고 봤을 것이다.
진소청은 피하지 않고 대신에 자신의 양 손을 모아서 합장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합장한 진소청이 부드럽게 첫 걸음을 내딛었다. 나는 그 걸음에 숨겨져 있는 현기를 깨닫자 흠칫했다.
' 삼보! 천(天)의 걸음!'
진소청에게서 설명을 들은 지금은 알 수 있다. 저기에는 깊은 의념절기의 원리가 스며들어 있었다.
당장 천을 제압한 진소청에게서 그럴듯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진소청이 지(地)의 걸음을 마저 딛으며 합장의 자세를 풀자, 일순간 나는 눈을 흡떴다.
피슉!
마치 피리가 새는 듯한 기묘한 파공음과 함께, 조용히 남궁팔검 중에서 세 명이 쓰러지고 말았다. 일순간이었지만 내 동체시력으로 전혀 따라잡을 수 없는 극속으로 진소청이 공격을 날렸고 남궁팔검은 그대로 당해버린 것이다. 공간이 일그러진 듯한 잔흔(殘痕)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놀라운 것은 이미 세 명을 쓰러뜨렸는데도 여전히 진소청은 공격할만한 여력이 충분해 보였다. 시간이 남자 진소청은 재차 인(人)의 걸음을 딛으며 뒤에서 목을 베어오는 장로의 손목을 잡아챘고, 도리어 그 공세를 이용해서 다른 장로의 검과 부딪히게 만들었다.
까강
"억!"
남궁팔검 두 명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진소청이 장로의 손목을 잡아채서 강제로 칼날을 맞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손목을 잡힌 장로가 벗어나려고 했으나 미동도 하지 않는지, 잠시동안 그는 의도치않게 동료와 칼날을 부딪히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절정고수를 검(劍)으로 쓰는 진소청!
"이익."
"그만둬."
채챙
남궁세가의 장로들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진소청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대리 칼싸움을 계속했다.
그 괴이한 광경은 잠시 후 진소청이 장로를 동료들 쪽으로 내던져 버리며 재차 추가공격을 하며 멈췄다. 다시 한 번 인간의 신형이 얻어맞아서 하늘을 날다가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남궁팔검 중에서 여섯 명이 순식간에 진소청의 보이지 않는 권영에 당하자 나머지 두 명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저래서는 진법이고 뭐고 소용이 없다. 진법은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줄 때 의미가 있는데, 진소청의 공격속도는 절정고수의 반응속도를 아득히 뛰어넘어 있기 때문이다.
"으으... 괴... 괴물..."
뻐억!
괴물이라고 외친 자가 진소청에게 명치를 얻어맞고 일 장 밖으로 날아갔다. 이번에도 그 자는 진소청의 일 수가 언제 오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남궁팔검의 나머지 두 명도 정확히 삼 초식만에 쓰러졌다. 그들은 발악하듯 검염을 날렸지만 진소청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순식간에 남궁팔검 여덟 명을 쓰러뜨린 진소청은 나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백웅. 잘 봤소?"
"으음...!! 완벽하오."
"방금은 좀 힘들었지만 당신에게 삼보의 묘리를 확실히 느끼게 해주려고 무리했소. 어떻게든 보고나서 감을 잡아야 습득하기 쉬울 것이오."
"......"
전혀 힘들어보이는 기색이 아니었는데?
내가 황당해서 진소청을 쳐다볼 때였다.
"엄청난 고수가 찾아왔군."
우묵한 목소리와 함께 장내에 왠 장년인이 경공으로 날아들었다. 그의 곁에는 두 명의 호위검객이 서 있었는데 그들도 상당한 고수로 보였다. 진소청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자 대꾸했다.
"간만에 봅니다, 남궁 가주."
진소청의 말에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명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는 근엄해 보이는 인상의 백의의 중년사내였다. 오랜 시간 무예를 단련했는지 잘 다듬어진 체형이 인상적이었다.
"... 자네는 진소청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행패지?"
그랬다.
진소청이 남궁세가를 정면으로 엎자 마침내 정파의 최절정고수 중 한 명이자, 오대세가 중에서도 무력으로 최상에 꼽히는 검왕(劍王) 남궁명이 나타난 것이다. 남궁명과 진소청은 면식이 있었기에 남궁명 입장에서는 지금의 대면이 황당할 것이다.
그러나 진소청의 답변은 다시금 중인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닥치고 덤비시오."
"뭐라고?!"
진소청은 그를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은 자식을 개새끼로 키운 죄로 개처럼 맞아야 하오."
"이... 이놈이."
남궁명은 그 한 마디에 분노가 충천한 모양인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그러나 진소청은 전혀 기죽지 않고 은은한 살기를 흘렸다.
"안 오면 내가 가지."
파밧!
진소청이 멸혼보로 검왕 남궁명에게 덤비는 모습이 육안에 새겨졌지만 나는 마냥 즐겁게 쳐다볼 수 없었다. 저절로 헛숨이 삼켜졌다.
"헉!"
놀랄 수밖에 없다.
진소청은 이번에도 창을 뽑지 않고 맨손으로 덤빈 것이다!
' 무슨 생각이야?!'
제왕검법(帝王劍法)
극성(極成)
제왕파천무(帝王破天舞)!
그에 대응해서 검왕 남궁명은 심적권청의 세계로 진입해서, 찰나의 시간에 자신의 비기(秘技)를 전력으로 시전하는 게 보였다. 그건 명백히 의념절기라고 불리는 상급기술이었으며 그가 이광이나 검마에 비견되는 최절정고수라는 세간의 평가를 뒷받침해주는 경지였다.
파직
제왕파천무가 펼쳐지자 남궁명의 몸에 시퍼런 강기가 둘러쌓이는 것 같았다. 검신이 마치 푸른 용처럼 변화한 남궁명은 자신의 검강을 용트림하듯 수십 갈래로 발사했다. 나라고 해도 제왕파천무를 상대로 정면으로 받아내는게 가능할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 빌어먹을! 남궁팔검이 당한 걸 보고 경계했군.'
관전하던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남궁명은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고수답게 진소청의 실력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여력도 안 남기고 최대전력을 쓴게 분명하다! 방심했다면 일이 쉬울텐데 이렇게 되면 혈전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내가 본격적으로 끼어들려고 검을 뽑았을 때였다.
"흥!"
진소청은 재차 삼 보를 펼치며 천지인의 발걸음을 펼쳤다. 남궁명의 강기는 세 걸음 속에 빨려들듯 오그라들더니, 진소청이 재차 진각을 밟으며 일권을 뿌리자 터져버렸다. 남궁명이 크게 당황하여 방어가 허술해지자 진소청이 또다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