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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322화 (32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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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아침의 태양을 등진 진소청은 차분하게 자신의 창을 정자세로 들고 있었다. 저 자세는 란(欄)을 내뿜기 직전의 상태로서, 저 자세에서 무려 열여섯 개의 변초(變招)로 연결이 가능했다. 뇌신류 창술의 특징은 어떤 자세에서든 유연하게 다음 초식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으니, 진소청이 다음 순간 어떤 동작을 하는지는 그 자신만이 알고있었다.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 내가 깨달은 것을 전해주기에 앞서, 무론(武論)을 좀 설명하려 하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주시오."

"창(槍)이 검(劍)보다 강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오?"

진소청의 물음에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 질문은 나도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무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진솔하게, 내가 생각해오던 바를 여과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길기 때문이오."

진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아무리 검강이나 이기어검으로 그 차이를 메우려 해도, 치명적인 거리의 차이가 있소. 다른 기술로 간극을 메워봤자 그만큼 내공에서 손해를 보게 되지. 그러므로 창을 사용하는 고수는 무조건 검을 사용하는 자보다 한수 반 이상 앞서는 셈이오. 같은 수준이라면 검으로 창을 이기는 게 지난한 일이란 건 아마 알고 있을 것이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주 오랫동안 실감했지."

내가 한때 검법을 놓고 창을 수련했을 때 그 엄청난 편리함과 강력함에 매료되었다. 창을 제대로 쓰니 검이든 도든간에 전혀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심지어 내가 그간 이광을 쉽사리 넘어서지 못한 이유도, 그가 창술의 명인이기 때문인 것이다. 창을 자기 수족처럼 다룰 수 있다는 자체로 엄청난 이점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창술의 기본에 달통할수록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소. 내가 창술의 기본기인 란, 나, 찰만 죽어라 수련한 이유는 바로 그 원리 때문이오. 나는 그 점에 착안해서 한 달 동안 파고들기 시작했소."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걸까?

내가 그를 쳐다보자 진소청의 말이 이어졌다.

"장삼봉의 절학을 연구한 과거의 '진소청'이 생각한게 무엇이었을까를 연구했소. 그리고 굴공검과 천축검에 생각이 닿게 되고, 그 검술과 천공섬의 연관성을 유추했소. 처음에는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가면 갈수록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더군."

"어떤 결론 말이오?"

"바로 삼보(三步)였소."

삼보?

세 걸음?

나는 진소청의 말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자 진소청은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말했다.

"백웅. 한번 들어와 보시오. 어떤 뜻인지 체감하는게 빠를 것이오."

"좋소!"

나는 망설임없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 멸혼보를 쓰며 빠르게 진소청을 공격해 들어갔다. 내 무예진경은 굴공검과 천축검을 익숙히 사용하며 뇌신검무를 비롯한 검예의 묘수(妙手)도 사용할 수 있다. 원래의 진소청이라면 내공차이까지 겹쳐서 내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카앙!

하지만 내가 자신있게 휘두른 다섯 번의 절초는 너무나 손쉽게 진소청의 방어에 튕겨나갔다. 강한 쇳소리가 났지만 그 이상으로 내 아귀가 은은하게 고통을 전달했다. 나는 그 생소한 고통에 당황했다.

' 뭐?!'

아귀가 아프다. 그 말은 진소청의 반격때문에 내 내공이 밀렸다는 의미였다. 더 자세히 파고들어간다면, 진소청의 의념을 실은 반격이 내 방어력과 호신강기를 넘어섰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 교환으로 진소청의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더 들어와 보시오."

"하앗!"

카가강 카강

카가강!

나는 무려 삼십여 초를 연환하면서, 굴공참까지 쓰면서 진소청을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진소청은 마치 태산처럼 장중하게 버티면서 한 줌의 낭비도 없이 내 공격을 도중에 차단하거나 튕겨내곤 했다. 내공을 앞세워서 크게 천참만륙을 써 보기도 했지만 진소청은 천참만륙의 급소를 알고 있는지 쉽사리 격퇴시키고 말았다.

내가 뒤로 물러나자, 진소청이 고요히 말했다.

"뭔가 이상한 걸 느끼지 않았소?"

"......?"

"나는 당신에게 대항해서 세 걸음을 움직이지 않았소."

"헉!"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진소청을 상대로 나는 온갖 검격을 퍼부었지만 정작 진소청은 그 자리에서 세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결계가 있는 것처럼 세 걸음을 나오지 않았다.

언뜻 그럴듯해 보였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현재 내 실력은 전생초기 시점의 이광을 약간 넘어서고 있다. 진소청처럼 방어해낼 수 있는 자는 강호무림에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내가 놀라서 진소청을 쳐다보자 그가 진중하게 말했다.

"나는 내 의념으로 세 걸음을 제압했소. 당신은 무슨 수를 써도 이 세 걸음의 간합을 뚫을 수 없고, 따라서 그 어떤 공격도 먹히지 않소. 이것이 바로 천공섬과 역린섬을 근본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삼보(三步)의 원리요."

나는 그 말에 발끈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세 걸음이 뭐가 어떻단 말이오?"

"다시 해 보시오."

"좋소!"

콰과광!

나는 이번에야말로 모든 내공을 끌어내며, 장력과 멸혼보까지 극성으로 펼쳐내며 진소청을 공격했다. 강격으로 뒤흔들면 제아무리 진소청이라고 해도 무사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십 초도 되지 않아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귀가 찢어졌다.

진소청의 초식에 실린 반탄력 때문에 내 근육이 손상된 게 느껴진다.

또한 그렇게 험난한 절초를 퍼부으면서도 결코 진소청이 세 걸음 이상 움직이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찢어진 아귀를 부여잡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허깨비에게 홀린 것 같았다. 내가 시전하는 것은 하나같이 절세무공으로 칭송받는 절학들이며, 그 무공의 수준도 초절정에 이르러 있는데 이토록 농락당할 줄이야!

진소청은 차분한 눈으로 말했다.

"천공섬은 풍신류의 비기를 꿰뚫었고, 역린섬은 천공을 갈랐소. 그 원동력은 창끝으로 가공할 개세절학을 내뿜는 게 아니라, 자신의 무(武)에 소속된 영역을 확고히 하여 세 걸음 내에서 무적(無敵)을 실천하는 데 있었던 것이오."

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이미 진소청은 나를 훨씬 뛰어넘어 있다! 그는 한 달동안 식음을 거의 하지 않고 광인처럼 수련을 한 결과 통상적인 경지를 추월해버린 것이다. 나는 질투심보다는 외경심이 솟아오르는 걸 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이해가 가지 않소... 세 걸음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오?"

"백웅. 잘 보시오. 그리고 느끼시오."

스윽

진소청의 첫 동작은 란(欄)이었다.

"첫 걸음은 천(天)이니, 세상의 방위를 점하여, 내가 살아갈 길을 먼저 만드는 것이오."

다음의 동작은 나(拿)였다.

"두번째 걸음은 지(地). 상대방의 공간을 파악하여, 그가 살아갈 길을 막는 것이오."

부웅!

"마지막 걸음이 인(人). 공격과 방어가 자유로우니, 나머지는 자유를 누리면 되오."

마지막 동작은 예상한대로 찰(札)이었다. 나는 마지막 찌르기를 보면서 멍하니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 설마...'

나는 추측한 바를 입 밖으로 꺼냈다.

"진소청. 설마 천공섬과 역린섬은 란나찰에서 비롯된 절기였단 말이오?"

"바로 그렇소."

"그... 그런."

믿기지 않는다.

란나찰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창술의 3대 기본기로써 그저 손에 굳은살이 터질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기술일 뿐이다. 물론 달인의 경지에 오르면 제각각이 절기가 되지만, 근본적으로는 너무 단순한 동작들이었다. 이 간단한 기술이 삼보의 원리를 만들어내고, 그 화려한 천공섬과 역린섬을 파생시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진소청이 설명했다.

"아마 당신 과거 전생에서 장삼봉의 절학을 접해서 연구하던 이광과 진소청은, 장삼봉의 절학이 [공간]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점에 주목했을 것이오. 그리고 굴공검과 천축검을 파고 들었는데, 단순히 그 요결대로 공간을 왜곡하는 것만으로는 재미가 없다고 느꼈으리라 생각하오."

"재미가 없다고?"

"그렇소. 아무리 굴공검이 뛰어난 절학이라 해도 검술. 창술에 고스란히 이어붙이기에는 한계가 있지. 초식이나 절기의 완성도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랬던 거군..."

어쩐지 그 때 뇌신류 합숙에서 진소청이나 이광이 곧이곧대로 요결을 수련하는게 아니라 연구하는 기색이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창술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검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진소청의 설명을 머릿속에 새겨넣자 진소청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칠성둔영에서 단서를 찾아냈던 것이오."

"칠성둔영..."

"칠성둔영의 묘수(妙手)는 바로 두전성이(斗轉星移)라는 초식에 있었소."

파바밧!

진소청은 순식간에 칠성둔영을 펼쳐서 신형을 번복시키며 희끄무레한 환영을 만들어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진소청의 움직임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는데, 다시 쳐다보니 엉뚱한 곳에 서 있었다. 일순간 내 시각과 감지능력을 완전히 파헤친 것이다.

"헉."

"별이 차오르면 북두성이 위치를 반대로 바꾸는 것. 이것은 공간을 굴절시키고(屈空) 하늘을 오그라뜨리는(天縮) 원리를 보완해서 별을 이어붙이는 묘수였소. 칠성둔영 두전성이의 묘수를 연구해서 이어붙임으로써 그들은 천하에서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세 걸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오."

슈웃!

"천지인의 세 걸음을 사용함으로써 시전자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란나찰을 쓸 수 있소. 가장 단순한 초식이기 때문에 가장 강해지는 법이지. 무려 3가지나 되는 의념절기의 원리가 합쳐지면서, 세 걸음 내에서는 무적이 될 수 있는 것이오."

"......!!"

나는 어렴풋이 진소청의 말을 알아들을 것 같았다. 즉 지금 진소청이 보여준 삼보의 원리는 굴공검, 천축검, 칠성둔영의 3대묘리를 모두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무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세 걸음 내에서는 무적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천공섬이나 역린섬은 어떻게 된 거요?"

"지금부터 천공섬을 재현해 보이겠소."

스으으

지잉

진소청이 창을 가볍게 횡으로 휘두르는 듯 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공간에 접히듯이 끊겼고, 덧칠되듯이 나타난 진소청의 형체는 마치 시간을 끊듯 거대한 압력을 내뿜으며 전방으로 쇄도했다.

번개가 공간을 부수고 압도적인 뇌기(雷氣)가 공명한다. 천뢰무극창의 초식 중 천뢰랑마(天雷狼魔)가 흘러나오더니 일섬(一殲)을 그었다. 동시에 진소청은 춤을 추듯이 뇌영(雷影)을 흩뿌렸다.

퍼퍼퍼펑!!

꽈광

폭풍같은 돌진과 함께 진소청이 마지막 일 보(一步)을 내딛었을 때, 그 위세는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뇌신(雷神)의 일보와 같았다. 나는 기억속에서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을 패퇴시켰던 천공섬의 움직임과 완벽히 일치함을 느꼈고, 경악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정말이군!"

진소청은 천공섬을 복원했다!

정말로 한 달만에 해냈다는 뜻인가?!

내가 경악성을 터뜨리자 진소청이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 보시오. 나는 방금 전에도 천지인의 삼보를 중심으로 움직였소. 또한 천뢰랑마도 사실 꼭 필요한 초식이 아니었고, 그 초식 대신에 란나찰 중에서 아무거나 넣어도 되는 거였소. 그렇지 않소?"

"듣고보니..."

"의념의 삼보로 [공간]을 확보해둔 다음에는 어떤 초식을 쓰던간에 위력이 증폭되는 것이오. 아까 당신이 공격했을 때 나는 수비로만 운용했지만, 세 걸음의 영향력 내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면 이 정도의 위력이 나오는 것 뿐이지."

진소청은 피식 웃었다.

"천공섬이나 역린섬에 이름이 대충 붙었던 이유가 짐작가지 않소? 실제로는 그냥 세 걸음 내에서 생각나는대로 강해보이는 초식을 휘둘렀을 뿐이오. 그래서 변변히 초식이나 절초라고 칭하기도 힘든 것이지 사실."

"......"

그러고보니 이광은 초식의 이름을 물어보는 질문에 얼버무리듯 답변했었다. 천공섬이나 역린섬이라는 이름이 휘황찬란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초식이 아니라 삼보절기의 파생동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럼 당신은 역린섬도 사용할 수 있겠군."

"역린섬이라는 건 그냥 찰(札)을 매우 빠르게 시전했던 것 뿐이오. 스승님은 아마 삼보절기를 운용하면서 풍탄의 중심을 꿰어서 하나하나 터뜨렸던 거겠지.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치 하늘을 자른 것처럼 보였을 것이오."

"으음..."

"풍탄이 다 터지면 용비천의 호신강기 정도는 식은죽 먹기니까 팔도 겸사겸사 벤 거고."

기가 막혔다.

천공섬이나 역린섬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사실 보법절기였다니!

이제야 수십 년동안 쌓여있던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보통의 무림인이라면 지극히 기뻐할 일이었지만 나는 순수하게 기뻐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기억을 이어받았다지만 진소청은 거의 무(無)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과거의 상황을 유추하고, 알아서 무공의 묘경을 깨달아서 그걸 부수고 재창조한 끝에 절기를 복원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건 천재라고 칭하기도 힘들었고, 그저 괴물이라고 칭할 수밖에 없었다.

진소청이 말했다.

"천공섬과 역린섬을 익히기 위해서는 우선 칠성둔영을 깊은 경지로 깨달아야 하오. 지금부터 전수해도 되겠소?"

"핫!"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당신은 자기 말을 지켰소. 그러니 당신 뜻대로 남궁세가에 납치된 여인들부터 구하러 갑시다."

"고맙..."

풀썩

"어?! 정신 차리시오!!"

난데없이 진소청이 웃으면서 앞으로 쓰러지자 나는 당황했다. 진맥을 하며 진소청의 동공을 살펴보자, 극도의 피로와 공복 때문에 기력이 손상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에 경악했다.

' 흑백련과 천년설삼을 복용해서 대단한 내공을 손에 넣었을텐데 그게 고갈될 정도로 혹독한 수련을 했단 말인가?'

아마 그는 밤낮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짜내서 노력했을 것이다.

"......"

이건 천재성을 질투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진소청은 이번 일에 사나이의 의지를 걸고 덤벼들었고 모든 힘을 소모해서 자신의 말을 실천한 것이다. 나는 착잡한 기분으로 진소청의 체내에 기운을 흘려내었고 흑백련을 하나 더 꺼냈다.

"연꽃죽이라도 만들어 줘야겠군."

진소청이 깨어나면 최선을 다해서 그의 뜻을 들어줘야할 것 같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궁가에서 여인들을 구출해내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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