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317화 (317/1,615)

0317 ----------------------------------------------

천계(天界)

동방무결과 백원쌍마는 나를 경계하면서도 당장이라도 공격해 올 듯한 태세였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그들은 내게 진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동방무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뭐라고... 이 놈..."

우우웅

동방무결의 가공할만한 공력이 그의 손에 강기의 형태가 되어서 모였다. 백원쌍마도 저마다 검기를 이끌어내는 걸 보면 전투태세를 갖춘 후였다.

' 확실히 초절정고수 셋. 원래라면 어려운 싸움이겠군.'

하지만 그건 예전 이야기다. 나는 그들을 보는 순간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감을 잡은 것이다. 나는 씩 웃으면서 동방무결에게 말했다.

"왜 그리 성급하시오? 지금 우리가 싸워야하는 이유가 뭐가 있지?"

"이유같은 건 지금 만들어 주마!!"

동방무결이 큰 고함을 지르며 내게 돌격해 왔다. 쐐액하는 소리와 함께 전방 십여 장의 공간이 순식간에 빛으로 물들었다. 예전에 봤던 대로 부채꼴 모양의 파괴흔이 대지를 크게 박살내면서 그의 가공할 내공을 과시했다.

' 어이쿠.'

나는 그 순간에 멸혼보를 써서 동방무결의 공격범위를 가볍게 피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품 속에 있던 단도를 엇갈리듯이 던졌고, 동방무결은 공격한 직후라서 약간의 경직 때문에 그 단도를 피하지 못했다. 잠시 식은땀을 흘리던 동방무결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움직여서 단도의 직격을 피했지만 그의 허벅지에는 길게 혈선(血線)이 그려져 있었다.

동방무결의 내공은 백련교의 영약을 복용한 덕에 매우 높지만, 그의 무공 자체가 현묘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충분히 그의 초식을 간파하고 반격할 수 있었다.

백원쌍마는 그 상황을 지켜보지 않고 동시에 검을 빼어들어서 월녀검(月女劍)을 시전해서 나를 공격해 왔다. 나는 예전에 백원쌍마 중 한 명과 정면으로 검을 겨루어서 이긴 적이 있었지만 그들 개개인의 실력이 초절정의 초입이라는 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합공도 굉장히 위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비 모양의 접파(蝶派)가 검기를 싣고 내가 피할 공간을 줄였다. 그들은 고수답게 찰나간에 멸혼보의 속도를 간파하고는 적절한 공격을 해온 것이다. 나는 끝까지 접파검기를 지켜보다가 손에 내공을 끌어모았고, 이내 뇌신권(雷神拳)을 휘둘러서 정면으로 맞서 나갔다.

꽈릉!

뇌신권과 접파가 부딪히자 뇌음이 튀겼다. 거대한 공명이 일어나더니 백원쌍마들은 검력(劍力)을 이기지 못하고 삼 장 밖으로 튕기듯 날아갔다. 그들은 재빨리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아서 충격을 완화해서 착지했지만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으음!"

"이런..."

가볍게 그들의 파상공격을 격퇴한 나는 히죽 웃었다.

"놀아드릴 순 있지만 당신들은 그만한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오."

"윽."

가벼운 말투였지만 내 말에는 살기가 깃들어 있었기에 그들은 고수답게 내 말뜻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게 이 말을 실천할만한 실력이 있다는 것도 증명한 상태였다. 동방무결이 어깨에 약간 힘을 풀며 말했다.

"혹시 반로환동한 고수인가? 그대의 무공은 그렇게밖에..."

말투가 공손해져 있었다. 나는 속으로 동방무결을 쿡하고 비웃으며 대꾸했다.

"날 찾아온 용건부터 밝히는게 먼저겠지. 왜 나를 찾아왔소?"

동방무결이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거대한 기(氣)가 먼 곳에서 일렁이는게 느껴졌다. 그래서 정체를 알아보려고 미리 동선에서 기다린 것이다."

"그랬군."

그들도 초절정고수라서 강력한 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지쳐서 내 기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으므로 손쉽게 내 존재를 알아챈 모양이다. 당연히 그들은 거대한 기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나를 찾아온 것이리라.

동방무결이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누구길래 우리 정체를 알고 있지?"

나는 동방무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알아서 뭣할 것이오? 내자불선(來者不善)이라 하더니 다짜고짜 공격부터 하는 자에게 내가 뭐하러 알려줘야하지?"

"이익."

동방무결이 발끈해서 다시 덤벼들려 하자 나는 싱긋 웃으며 호흡을 끊었다.

"흐흐, 농담이오."

"어?"

"나는 교주 직속 원로원에서 파견되었소. 다만 그대와는 다른 임무지."

"......!!"

그러자 동방무결과 백원쌍마가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내가 교주 직속 원로원이라는 한 마디로 그들의 의문을 다 해소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 반로환동의 모습, 동방무결의 정체를 알고있는 것 모두가 이야기가 되었다.

' 뭐 거짓말이지만.'

동방무결은 당혹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무, 무슨 임무요?"

"내가 왜 그걸 말해줘야 하지?"

나는 고개를 홱 돌리며 말을 이었다.

"확실한 건 내 임무는 당신 임무와 다르다는 거요. 내 일을 방해하지 말고 갈 길을 가시오."

"윽... 믿을 수 없군."

"그럼."

내가 자리를 뜨려 하자, 동방무결이 황급히 외쳤다.

"잠깐! 잠깐만!"

내 신형이 멈추자 동방무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대가 원로원의 고수라는 걸 믿겠소. 그럼 잠시만 우리 임무를 도와줄 수 있겠소?"

나는 그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왔다!'

나는 방금 전, 원로원을 사칭할 때 바로 동방무결에게 협력을 요청하면 이상하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억지로 엉겨붙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척 해보기로 했다. 그러면 동방무결이 어떻게든 신호를 보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방무결같은 이가 이렇게 수상한 자를 지나칠 리가 없다.

물고기가 떡밥을 물자 나는 한층 느긋한 마음으로 대꾸했다.

"그대의 임무는 용화수의 씨앗을 찾는 거 아니었소? 내가 뭘 도와줄 게 있다는 거지?"

"허억. 그것까지 알고 있다니... 진짜군."

동방무결은 헛숨을 집어삼켰다. 아무래도 그는 이제 완전히 의심을 거둔 듯, 간절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사실 우리는 축융족(祝融族)과의 교섭이 난항에 부딪혔소. 지금은 그들에게 내놓을만한 재화를 보급하기 위해서 백련교 운남지부로 향하던 중이었소."

"......?"

나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서 동방무결에게서 얻었던 정보를 떠올려 보았다. 분명히 미호가 그를 매혹술로 홀려서 정보를 토해내게 만든 적이 있었다.

[ 저는 남만 제일의 패주(覇主)인 흑태자 나레쑤언에게 성련(聖蓮)을 진상하는 댓가로 대도서관을 열람할 기회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 때 수상한 일족과 마주쳐서 추가로 거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 저는 남만과 월남 전반의 말을 할 수 있었으나... 도서관의 고문(古文)을 해석하기엔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그 때 고문의 해석을 댓가로 성련을 받겠다고 하는 자들이 나타났고 나레쑤언이 그들에게 추가로 외주를 맡겼습니다... 저는 그들의 도움으로 도서관의 장서를 해석할 수 있었고... 더불어 거인(巨人)의 유적도 볼 수 있었습니다.]

[ 삼황오제의 전설에 나오는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의 후손... 이른바 치우(蚩尤), 과보, 공공, 형천과 같은 거대신의 일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남만 오월보다 훨씬 아래에 있는 장소에 신비한 유적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  그 수상한 일족... 스스로를 축융족(祝融族)이라고 밝힌 자들의 도움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시무시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

예전에 뇌정경을 운용한 상태에서 그 대화를 들었기 때문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정보를 토대로 지금 동방무결의 상황을 곰곰히 생각하자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 그렇군. 이 녀석은 성련을 구하려고 백련교 운남지부로 가고 있었던 거야.'

재화의 보급이라는 건, 아마도 축융족에게 내어놓을 성련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성련을 얻은 후에 다시 축융족을 통해서 고문을 해석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전후사정을 금새 파악했지만 모르는 척 하며 물었다.

"축융족? 그건 뭐하는 자들이오?"

"어 그게...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아무튼 용화수의 단서를 얻을 수 있게 고문해석을 도와줄 자들이오. 그들이 댓가로 성련을 제시했소."

"성련을...? 그 자들도 내공을 갈망하나보군."

"모르겠소. 워낙 기이한 자들이라..."

말을 얼버무린 동방무결이 말을 이었다.

"그대는 원로원의 고수이니 내가 말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성련을 얻어줄 수 있지 않겠소? 제발 도와 주시오."

"흐음."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아마도 동방무결은 백련교 소속이긴 하지만 위치가 애매하고 겉도는 처지인지라 운남에서 성련을 요청해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원로원 고수인 내게 부탁해서 성련을 쉽게 얻으려는 것이리라.

물론 나는 실제로는 원로원 고수가 아니므로 저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 그러나 이 기회를 쉽게 놓칠 수는 없다.

' 운이 좋다면 바로 축융족을 만나볼 수 있어.'

축융족은 아마 이족(異族)과 관련이 있는 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화요로 향하는 무창의 탑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동방무결의 임무를 도와주는 척 하고 그들과 접촉하면 내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나는 속에서 계산을 끝마치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도와준다면 당신은 내게 뭘 해줄 것이오?"

"당신이 수행할 임무라는 걸 최대한 도와 드리겠소. 성련을 얻기만 하면 내 임무는 거의 다 끝이 나는 셈이라서..."

나는 동방무결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실제로는 놈의 임무가 용화수의 씨앗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한참 더 남았다.

성련을 얻고 고문해석을 거친 다음 거인의 유적을 연구하고, 화요가 있는 남쪽 끝의 대륙으로 가야한다. 동방무결의 여정은 아직 반도 오지 않은 셈이지만 놈은 도중에 포기하고 백련교에 돌아갈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동방무결이라도 세상의 남쪽 끝까지 갈 엄두는 안 났으리라.

' 뭐... 고문해석으로 끝이라면 저 말도 맞긴 하지.'

나는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나도 그 축융족이란 걸 만날 수 있게 해 주시오. 그리고 교섭에는 나도 참여하겠소."

"뭣... 당신은 남만어를 알고 계시오?"

"그런 말이 아니라, 이렇게 된 이상 당신이 임무를 진행하는 경과를 교주께 보고해야겠소. 그래서 참관을 해야겠다는 거요. 그리고 당신은 내가 요구할 경우 요구사항을 즉각 들어주어야 하오."

내 말에서 어긋난 점을 찾지 못한 동방무결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원로원 소속이라지만 아주 기세등등하시군. 얼마나 도와줄 수 있길래 그런 말을 하는거지?"

"대답부터 하시오. 어쩔 거요?"

"... 알았소. 당신의 요구대로 하겠소."

동방무결이 내 말에 동의하자, 나는 목갑에서 흑백련 두 쌍을 꺼내서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난데없이 흑백련이 내 손에 나타나자 그들은 크게 놀라는 기색이었다.

"헉!"

' 여기 있소. 이걸로 놈들과 교섭하면 될 거요."

"이... 이게 성련이오? 내가 아는 성련은 그냥 하얀색인데."

"본교에서 새롭게 개량해서 재배한 성련이오. 기존의 성련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소. 아직은 극비사항이지."

"......!!"

"자, 그럼 갑시다."

동방무결은 눈을 둥그렇게 뜨다가 감탄하며 말했다.

"대, 대단하시구려. 과연 원로원..."

그는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흑백련 중에서 백련은 외형이 성련과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흑색 연꽃이 하나 추가되었을 뿐인지라 의심하고 싶어도 근간지식이 없었다.

"아, 그러고보니 당신을 뭐라 부르면 되겠소?"

나는 장난끼가 생겨서 말했다.

"그냥 여동빈이라 부르시오."

"... 알겠소."

타다닷

나는 잠시 쉰 후 동방무결 일행을 따라서 다시 한참동안 남쪽으로 뛰었다. 그들은 정말로 남만에서 왔는지 중원의 경계를 벗어나고도 한참동안 아래쪽으로 갔다. 미친듯이 뛰는 동안에 동방무결이 내게 소소한 정보를 말해 주었다.

"우리가 갈 곳은 남만 제일의 패주인 흑태자 나레쑤언의 왕궁이오. 그 자는 굉장한 고수이며 휘하의 세력도 만만치 않으니 행동을 조심, 또 조심해야 하오."

나는 힐끔 동방무결을 바라보았다.

' 이 자가 이런 경고를 한다고?'

동방무결은 중원무림에서 안하무인에 개차반으로 악명이 높았다. 고절한 무공을 이용해서 깽판을 침은 물론이고 오대세가 중 하나인 사천당문에게도 대놓고 절도를 시도하고 시비를 걸었다. 인성이 쓰레기이긴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 동방무결이 조심하라는 경고를 하다니?

나는 큰 나무를 한 걸음에 뛰어넘으며 말했다.

"남만은 오랑캐들의 땅이 아니었소? 그 나레쑤언이라는 자도 무공을 익힌 것이오?"

"그런 것 같소. 아무래도 권법(拳法)인 듯 한데 느껴지는 수준이 굉장했소. 그는 아마 의념절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오."

"......!!"

나는 속으로 놀랐다.

의념절기를 쓸 수 있는 고수는 그리 흔한 게 아니다. 넓은 중원에서도 매우 희귀하다. 일국의 국왕이면서 그정도 무공경지에 올라있다는 건 확실히 특이한 일이었다. 동방무결의 평가대로라면 나레쑤언의 무공은 동방무결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일 것이리라.

' 남만 무공이 존재하나보군.'

내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동방무결이 말했다.

"적어도 성련을 받는데 1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살았군. 도움에 감사하오."

"뭐... 앞으로 내 일도 도와주셔야지."

"끄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약 이틀이 지나서 완연한 남만의 밀림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자 커다란 도시가 보였고 그 도시의 양식은 내가 여태껏 보아왔던 어떤 곳과도 이질적이었다.

"이 곳이 바로 아유타야 라는 곳이오."

"아유타야?"

"아유타야 제국의 수도요."

괴이한 이름이었지만 남만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동방무결을 따라서 아유타야 내부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가도가 정비되어 있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나름대로의 격의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관개수도가 되어 있었으며 여기저기에 편의시설도 있어서 확실히 인구가 많은 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저기에 서 있는 병사들의 손에 총(銃)이 들려있는 걸 보자 움찔했다.

"총?"

내가 놀라자 동방무결이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총을 알고 계신가 보군. 이 곳의 병사들은 총병이 많소."

"으음. 하지만 이건..."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과거 북해빙궁주와 이야기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 이것이 바로 총이라는 것이고, 화약을 이용해서 격발(擊發)하는 화승총의 방식일세. 아마 왜국에 전해진 것도 이런 총이겠지.]

[ 짐작했겠지만 이걸 장전하는 건 꽤 어렵지만, 만일에 다수의 병대가 도열해서 이걸 순차적으로 발사하면 굉장한 위력을 발휘할 것일세. 우습게 볼 만한 무기가 아니야.]

[ 게다가 현재 아라사의 총기술은 더욱 발달해서 치륜식(齒輪式) 총이 실전에 배치되었다더군. 구조가 복잡한 대신에 화승을 쓰지 않는 방식이라서 훨씬 휴대가 용이하고, 기병(驥兵)도 사용이 가능하지.]

북해빙궁주가 이야기하기를 총기의 방식은 여러가지로 나뉜다고 했었다. 화승을 이용해서 점화하는 방식의 총이 있고, 이걸 흔히 화승총이라고 불렀다. 무겁고 길고 큰 구경을 가지고 있으며 부싯돌이나 기름을 이용해서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런 총기는 대명제국은 물론 왜국에도 다수 전래되어 있는 상태였다.

화승총에서 좀 더 발전된 방식이 바로 치륜식 총기였다. 안쪽에 있는 바퀴같은 기계장치에 황철석과의 마찰을 이용해서 불을 붙이는데, 이 방식은 화승을 쓰지 않아도 되므로 안전성이 높았다. 다만 내구성이 떨어지고 내부구조가 복잡해서 이 방식은 아라사 제국 정도로 기술이 발전된 곳에서 근위병들이 사용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근위대 병사들의 총기는 뭔가 좀 달랐다. 화승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으니 화승총은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치륜식 총기와도 다르게 생겼다. 좀 더 세련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병사들의 허리춤에 길다란 막대기를 따로 장비하는 것도 이상하게 보였다.

내가 계속해서 총기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자, 동방무결이 말했다.

"나레쑤언은 서방의 열국과 잦은 교류를 한다 들었소. 저건 아마 서방세계 최신예 총일 것이오."

"뭔가 이름같은 걸 모르겠소?"

"잘은 모르겠지만, 저건 부싯돌을 안 쓰고 방아쇠를 당기면 바로 격발된다던가... 그랬을 것이오."

"흐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독특하긴 하지만, 아무튼 저게 현시점에서 최고기술이 적용된 총기라는 말인가?

그리고 나는 동방무결을 따라서 흑태자 나레쑤언을 알현하는 자리에 갈 수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