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4 ----------------------------------------------
천계(天界)
진소청과 합류한 후, 우리는 곧장 비등을 써서 무영문 지하로 향했다. 왜냐하면 이곳이 근거지에 가까운데다가 고문시설이 가장 잘 마련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볕도 안 드는 곳으로 이동하자, 혈도를 제압당한 남궁환은 꽤 놀라는 눈치였다.
"여긴..."
무영문의 고문실은 촛불 하나만 일렁이고 있어서 꽤 괴기스러운 분위기였다. 나는 남궁환을 신경쓰지 않고 망량에게 말했다.
"이제 어쩌면 좋겠소?"
그러자 망량이 모용연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모용연 소저. 우리는 말한대로 준비를 다 갖췄소."
"무슨 말인가요?"
"시치미 뗄 필요 없소. 남궁환의 진의를 듣는다, 그 이후의 당신 거취를 정해줬으면 하오."
"......"
모용연이 망설이자 망량이 내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나는 성큼 앞으로 걸어가서 남궁환의 인중에 손가락을 갖다대었다. 그리고는 건(乾)에 이어서 태(兌)의 위치를 잡은 후 놈의 몸뚱이를 완전히 팔괘봉인의 영향력에 두었다.
파지직!
"끄아아악!!"
남궁환은 벼락맞은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며 경악했다. 나는 놀라는 남궁환에게 말했다.
"팔괘봉인은 이런 것이다. 건과 태를 이미 제압했다.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이 이어지는 동안 차례대로 팔부(八部)에 금제가 걸릴 것이다. 통각은 갈수록 예민해질 것이고, 시간감각은 계속 느려질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그러자 남궁환은 전신에 땀을 송골송골 흘리면서 비명을 내뱉었다.
"끄아아아악!!"
"왜 그러지? 겨우 딱밤이야. 누가 보면 고문이라도 하는 줄 알겠군."
내가 중얼거리자, 남궁환이 기겁을 하며 외쳤다.
"사... 살려주시오! 뭐든 원하는 걸 말하겠소!!"
"그게 아니지. 진실을 말해야지."
내가 다시 손가락을 모아 딱밤 자세를 만들자 남궁환이 눈가에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알겠소! 진실을 말하겠소! 제발..."
"......"
"뭘 알고싶소? 뭐든 말하겠소."
나는 힐끔 진소청을 쳐다보았다. 이 자리에서 남궁환의 '비밀'에 대해서 가장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한 것은 그였기 때문이다. 진소청은 그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한걸음 앞으로 걸어나오며 물었다.
"백상문, 진양문, 소검문.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이 세 곳이 네 뜻으로 멸문(滅門)했다 들었는데 사실인가?"
"모르는 일일세!"
남궁환이 사정하듯 말했다.
"정말로 그런 일은 없었어! 남궁세가의 후계자인 내가 어찌 그런 짓을 하겠는가? 진소청 제발 나를 구해주게..."
"상황파악이 안 되는가 보군."
진소청은 짧게 말하고는 손가락을 들어서 그의 심장께 위에 올렸다. 남궁환은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은 소리를 한 건지 깨달은 듯 눈을 부릅떴지만 늦어 있었다. 진소청은 거침없이 팔괘봉인의 이(離)를 점한 것이다.
파지직
"......!!"
"다시 딱밤을 놓아보지."
진소청은 3괘로 극도로 예민해진 남궁환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단지 그것 뿐이었지만 남궁환은 그 순간 인생의 행복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절망에 가득찬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비명을 토해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악!!"
그리고 지릿한 냄새가 그의 하체에서 올라왔다. 충격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가 오줌을 싸 버린 것이다. 너무 아파서 학질 걸린것처럼 눈을 까뒤집는 모습은 심상치 않았다. 모용연은 새하얘진 얼굴로 그 광경을 쳐다보다가 진소청의 소매를 잡았다.
"너,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비키시오 소저."
"하지만..."
"이미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모르겠소?"
무덤덤하게 대꾸하는 진소청이었다. 남궁환은 충격이 너무 커서 잠시 기절했으나 진소청이 맥문을 잡고 내공을 흘려보내자 정신을 차렸다.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던 남궁환이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맞... 맞아. 그 세 곳은... 내가 멸문시켰다... 내가 남궁세가의 전력을 움직여서 없앴다..."
"......!!"
이 자리에 모여있던 자들의 안색이 좋지 않게 변했다. 아무리 고문으로 강제했다고는 하지만 남궁환이 자신의 모든 명성을 부정해버릴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진소청이 연속해서 물었다.
"왜 멸문시켰지?"
"마... 말하면 살려줄 거냐...?"
"물론 살려주겠다. 우리가 원하는 건 진실 뿐이다."
"크윽..."
남궁환은 입술을 짓씹더니 말을 이었다.
"여식들이 예뻤다."
"뭐?"
"백상문과 진양문의 소문주가 예뻤고, 소검문주의 아내도 예뻐서 점찍어두고 있었다."
"뭐라고..."
순간 진소청은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나나 망량, 심지어는 듣고 있던 모용연도 마찬가지였다. 하도 기가 막혔는지 듣고 있던 망량이 걸어나와서 남궁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남궁환 당신은 그 무림문파의 여인들을 취하려고 그 문파들을 멸문시켰다는 말이오?"
남궁환은 긍정하고싶지 않은지 머뭇거렸지만 진소청이 다시 딱밤을 놓으려 하자 기겁하며 말했다.
"그, 그래! 그런 이유였다."
"그래서 점찍어둔 여인들은 어떻게 했지?"
"몰래 빼돌려서 본가의 지하실에 가둬두었다."
"가두어서?"
"내, 내가 원할 때 찾아갔다."
"......"
찾아가서 뭘 했는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듣고 있던 모용연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쓰레기같은 놈!! 어찌 오대세가의 후손이 그런 짓을..."
모용연의 손에 모용세가의 절학인 천강수(天?手)가 끌어올려져서 퍼런 빛을 내뿜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천강수로 남궁환의 목숨을 절단내고 싶은 듯 했지만 내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기다리시오. 다 듣기 전엔 참아야할 거 아니오."
"저 음적과 결혼하려 했었다니 수치스럽기 그지없군요."
"그러니까 기다리라니까."
내가 모용연을 진정시키는 동안에 진소청이 냉정하게 심문을 계속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묻겠다. 지금 이야기한 건 전부 진실이지?"
"그렇다..."
"다른 중소문파들의 멸문에도 네가 관여했나?"
진소청이 신녀문에서 얻은 팔개 문파의 목록을 이야기하자 남궁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머지 문파들도 여인들이 예뻐서 멸문시켰나?"
"... 그렇다."
진소청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남궁세가는 명색이 정파이며 오대세가의 일원이다. 어떤 명분으로 그 중소문파들을 쳐서 없앨 수 있었던 거냐?"
남궁환이 망설이며 말했다.
"쉬운 일이다. 압력을 가해서 그 문파에 가는 자금원을 차단시키고 그들이 백련교의 끄나풀이라는 소문을 강호에 흘렸다. 그리고나서 오대세가의 수뇌부들도 그 소문을 알게 되면 슬며시 더러운 일을 대신 해 주겠다고 그들과 협상했다."
"... 수뇌부들이 그 사실을 묵인했다는 건가?"
"그렇다..."
"멸문당한 자들은 백련교의 수하가 아닌데도 멸망한 거고?"
"... 그래."
그 때 듣고있던 망량이 질문했다.
"정파에는 오대세가만 있는 게 아니오. 구파일방이 있을텐데 어찌 그리 맘대로 행동할 수 있었지?"
"세가의 동향에 가장 밀접한 움직임을 보이는건 오대세가 그자신이다. 구파일방은 자기 영역권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면 거의 신경쓰지 않는다..."
"주먹이 가깝다는 거군. 하긴 멸문당한 문파들이 거의 안휘성 인근에 있구려."
망량의 말으로 상황을 대충 정리할 수 있었다.
즉 남궁환은 자기의 색욕(色慾)을 채우기 위해 죄없는 중소문파들을 멸문시키고, 그 여인들을 지하실에 가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오대세가는 거짓된 정보에 속아서 침묵했고 구파일방은 자기 세력권이 아니니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리라.
섬뜩한 것은 이렇게 남궁환 본인을 족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이런 사실을 짐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진소청이 신녀문을 통해서 암흑가의 정보를 몰래 입수해서야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진소청은 아무런 감정없는 눈으로 남궁환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가 수집한 그 여인들은 지금도 지하실에 있는건가?"
"그렇다."
"그녀들은 무사한가?"
"......"
남궁환은 진소청의 눈을 회피했다. 그러자 진소청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금수같은 놈."
"지, 지, 진소청. 왜 이러는 건가?"
남궁환이 진소청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자네의 스승인 삼절 이광과 내 아버님은 절친한 관계가 아닌가! 자네와 나도 몇 년 전부터 얼굴을 보며 친교를 다졌는데 어찌 갑자기 이런 짓을 하는건가... 나를 어서 풀어 주게."
진소청은 침묵하다가 말했다.
"다시 묻지. 그녀들은 무사한가?"
"그... 그건, 하도 시끄럽게 구는 것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 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년도 있..."
콰직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진소청이 남궁환의 손가락 끝마디 하나를 쥐어서 터뜨려 버렸다. 손톱과 함께 손가락 마디가 육편이 되어서 으개져 버렸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아파서 혼절할만큼의 부상이었는데 팔괘봉인을 활성화시킨 지금은 전신을 면도날 수백 개로 쑤시는 고통이 분명하리라.
남궁환이 침을 흘리며 대변과 소변을 지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자 나는 깜짝 놀라서 진소청에게 말했다.
"이런! 죽으면 안 되는데..."
"걱정 마시오. 이 정도론 안 죽소."
진소청이 남궁환의 심장에 일 장을 날리자 덜컹 하며 남궁환이 강제로 의식을 되찾았다. 남궁환은 극도의 충격과 공포에 빠진 듯 입을 덜덜 떨며 헛소리를 해댔다.
"히익... 살려... 나... 어윽..."
"죽지는 않아도 미칠 것 같은데."
내가 걱정스럽게 쳐다보자 진소청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서 팔괘봉인이 아주 좋은 고문법인 것이오. 팔괘로 신체의 각 부위를 제압해 두면 풀릴 때마다 정신을 강제로 각성시키지. 이런 원리이기에 왠만한 정신력으로는 미치기도 쉽지 않소."
"그렇군."
"일단 최선을 다해서 알아보겠소."
나는 새삼 진소청도 뇌신류의 무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고문실력도 나보다 위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왠지 남궁환 이전에도 많이 고문해본 양이 아닌가?
남궁환의 심문이 끝난 것은 그로부터 약 반 시진이 지나서였다. 미친듯이 비명을 내지르다가 대소변을 지리면서 기절해 있는 남궁환의 모습은 처참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던 망량이 모용연에게 말했다.
"모용연. 당신은 이제 남궁환과 남궁세가의 진실을 알았소. 어떻게 할 생각이오?"
"......"
모용연이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저희 모용세가의 모든 힘을 다해서 남궁세가의 추문을 밝혀내고 그들을 매장시킬 거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하실에 감금된 그녀들을 반드시 구출해내야 해요."
"그렇겠지. 그 일도 우리가 하게 될 것이오. 다만 우리로서는 수고비를 좀 받고 싶소."
"돈을 원하나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아니 그런 말이 아니오."
손을 내저은 망량이 훗하고 웃었다.
"앞으로 우리가 모용세가의 협력을 얻을 일이 많을텐데 그 때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주었으면 하오."
"무슨 뜻이죠?"
"우리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가 보면 알게 될 것이오."
우리는 지하 고문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고문실을 경비하고 있던 무영문의 고수 한 명이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호법님. 하시는 일은 잘 되셨습니까?"
그는 나와 안면이 있는 자였다. 무영문에서 검마에게 심득을 전하는 동안 내 신분은 무영문의 호법이었으며, 당연히 무영문 내에서의 권력도 최상위에 가까운 것이다. 지금도 아마 우리가 고문하는 걸 그가 알고 있었겠지만 내 얼굴을 확인하자 침묵하고 있었으리라.
"네. 저 자가 대소변을 지렸으니 조금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그가 킬킬 웃었다.
"호법께선 이쪽 일도 잘 하시나 보군요. 다음에 제 고문수법을 배워보시겠습니까?"
"기회가 된다면..."
대충 대답한 후 밖으로 나와서 검마와 만났다. 검마는 난데없이 우리가 진소청은 물론 모용연을 데리고 나타나자 놀란 기색이었으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이해한 듯 했다. 그리고 남궁환을 고문해서 알아낸 정보를 이야기해 주자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흐음. 나도 뜬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사실이었나?"
"문주께서도 알고 계셨습니까?"
"흑도문파에서 암암리에 흐르는 소문이니 모를 수가 없지. 허나 뜬소문이라 생각해서 나서지 않았네."
중얼거린 검마가 모용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모용연 소저. 앞으로 본문과 모용세가가 서로 힘을 합칠 일이 많을 것 같구려."
"네, 네에..."
"오늘 온갖 일을 겪어서 심적으로 힘들겠군. 숙소에서 쉬시오."
정작 모용연은 약간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소극적인 태도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난데없이 마도제일문파인 무영문에서도 지존인 검마를 맞닥뜨린 셈이었기 때문이다. 모용세가의 가주가 와도 움츠러들 자리에 그녀가 온 셈이었다.
모용연을 숙소로 보낸 검마가 진소청에게 말했다.
"반갑네."
"제 합류를 그리 반기지 않으시더군요."
"미안하군. 허나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네."
검마가 무덤덤하게 말하자 진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무림에서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증명해야하지요."
"그렇지. 앞으로 기대하겠네."
그들의 인사가 끝나자 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남궁세가의 지하실에 갇혀있는 여인들을 구출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는게 좋겠소?"
"남궁세가를 멸(滅)하는게 상책이겠지만 뒷배경이 걸리는군."
"뒷배경?"
검마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원래라면 모용세가와 동맹을 맺어서 오대세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이 일대에 구축했을테지. 그럴만한 명분도 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백웅 자네가 전생하는 동안에 알아낸 정보 하나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네."
"......?"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망량이 말했다.
"오대세가를 후원하는 것은 바로 화신류의 종사인 한백령이오. 오대세가는 화신류의 부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오."
"아...!!"
나는 그제야 퍼뜩 생각이 났다.
그러고보니 한백령은 한씨세가의 막강한 자금력을 이용해서 오대세가를 후원하고 있었다! 황보세가의 절정고수이자 천하오대의원인 약왕이 한백령의 일개 주치의로 있을 정도이니, 망량의 말대로 오대세가가 화신류의 부하에 가까운 것이다.
' 오대세가를 건드리면 화신류가 나서겠군.'
그건 정말로 버거운 일이다. 화신류의 세력은 풍신류에 못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한백령이라는 호법사자의 존재가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내가 막야를 해방시키면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망량이 훗하고 웃었다.
"도리어 잘 되었다고 생각하오."
"계책이 있소?"
"물론이오."
망량은 오화칠금선을 펼치며 말했다.
"어차피 백웅은 백련교에 입교해서 천령단의 비밀을 알아내야 하는 몸이었소. 이렇게 된 이상 이번 사건을 이용해서 화신류에 접근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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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안 좋아서 하루 쉬어버린 셈이 되었네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