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313화 (313/1,615)

0313 ----------------------------------------------

천계(天界)

망량이 말하는 천신경의 술법이란 바로 강령술(降靈術)이었다. 이미 강신이라는 술법에 익숙한 내게 있어서 천신경의 술법이 왜 필요한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여동빈을 강신할 수 있는 이상 왠만해서는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 그러자 망량이 말했다.

"여동빈의 힘은 강력하지만 의존할 수 없소. 그는 결국 천계의 인물이기 때문이지."

"으음."

"또한 무력 이외에도 천신경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오. 당신이 천신경에 달통하게 되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이오."

나는 그 자리에서 천신경의 수련방법과 술수의 전개방법을 배웠다. 원래는 이것만으로도 몇 개월이나 되는 수련시간이 필요하지만, 망량은 삼황내문의 영기를 이용해서 내 뇌리에 박히듯이 설명을 해 주었기에 얼추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약 네 시진동안 휴식과 수련을 반복하며 죽어라 전수를 한 후 나는 망량과 함께 관중의 숙소로 돌아왔다.

"흠. 이대로 동정을 보고있어도 좋겠지만... 우선은 무영문에 갑시다."

"그게 낫겠군."

나는 망량과 함께 무영문으로 갔다. 괜히 관중에서 어정거리는것보다는 수련을 하는게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남은 시간동안 검마에게 상세하게 장삼봉의 심득을 전수함은 물론, 망량에게서 술법을 배웠다.

"천신경의 술법을 익숙하게 만들고 다른 술법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오. 당신은 지선 망량의 지식이 있지만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있으니 아깝소."

망량의 가르침은 굉장히 머리에 잘 들어왔다. 나는 예전보다도 술법을 배우는 게 쉽고 재밌다고 느꼈다. 나는 그러면서 망량과 검마에게 흑백련을 복용시켜서 그들의 내공을 높이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에서 며칠을 남기고 관중에 돌아와서 조가장을 감시하며, 남궁환이 움직이는 때를 기다렸다.

' 남궁환이 나왔군.'

그들이 말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듯 했다. 우리는 약간 앞질러서, 해가 질 무렵의 시간에 맞춰서 함곡관(函谷關) 근처로 갔다. 원래대로라면 이맘때쯤에 진소청이 남궁환을 구하러 등장하는 시간이었다.

까강!

"으으, 천음지체를 내놓아라!!"

"물러나시오!"

진소청의 창이 횡으로 휘둘러지며 은빛을 뿌렸고, 그 기세에 서너 명의 일류고수들이 공중제비를 돌며 날려갔다. 짧은 시간에 많은 초수가 교환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소청이 한창 몰려든 무림인들과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약 삼십 장 떨어진 곳에서 은신해서 그의 전투장면을 관찰했는데, 감탄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낭비가 없군."

지금 시점에서 정면대결을 하면 분명히 내가 진소청보다 강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강함과는 별개로 진소청의 무공은 굉장히 절제되어 있었고 쓰잘데기없는 헛점이 없었다. 비록 내공과 깨달음이 부족해서 원하는 바를 완전히 펼칠 수는 없지만 이미 대기(大器)가 이루어졌다는 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진소청이 얼마나 자기 힘을 억제하고 있는지도 잘 알 수 있었다.

모르긴 해도 진소청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기 시작하면, 지금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스무 명 가량의 무림인들은 피떡이 되어서 나가떨어질 것이다. 모인 자들 중에서 진소청을 감당할 수 있는 고수는 아무도 없었다.

망량이 말했다.

"슬슬 나가 보시오. 지금이 기회군."

"알았소."

저벅

나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지금 상황은 아직 사상자가 없는 상태로 고수들이 진소청과 남궁환 일행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내가 천천히 걸어나가자, 무림인들 중 한 명이 외쳤다.

"왠 애송이냐? 꺼져..."

퍼벅

그는 순식간에 면상에 주먹을 얻어맞고 날아가서 기절했다. 그러자 주위의 이목이 한번에 내게로 쏠렸고, 동시에 두세 명의 일류고수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나를 공격했다. 방금 내게 얻어맞아서 날아간 자도 강호에서는 명성을 날리는 자였으므로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 같았다.

' 흥.'

나는 날아오는 채찍 끝을 손가락으로 잡아서 힘을 실었다. 내게 채찍을 휘두른 자는 그대로 반탄력에 어깨가 탈골되어서 통증에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검(劍), 도(刀)를 휘두르며 달려들던 자들을 뇌운유권(雷雲柔拳)의 나한각(羅漢脚)으로 갈겨 버리고 말았다.

뻐벅!

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일격에 침몰하고 말았다. 원래라면 머리통을 터뜨릴 위력이지만 많이 봐주었기에 뇌진탕과 기절 정도로 끝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싸늘하게 주변을 둘러보자, 다른 고수들은 감히 내게 덤벼들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짧은 수준이었지만 그들과 나의 수준차는 이미 장내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너, 너는 누구냐?"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보면 모르나? 고수잖아."

"......"

"시덥잖은 소리 하지 말고 닥쳐라."

따악

"으악."

그 자는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내게 덤볐지만 이윽고 일 초만에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개구리처럼 뒤로 넘어져서 기절했다. 내 탄지공(彈指功)도 간파하지 못하는 실력인 주제에 죽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이었다. 일이 이상하게 흐른다고 생각했는지, 모여있던 고수들 중에서 얼굴이 새하얀 자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반로환동한 고수이십니까? 어느 문파의 고명한 고인께서 나오셨는지..."

나는 그 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눈에 정체를 알아보았다.

' 여기 모인 자들 중에서 그나마 제일 무공이 강하군. 저 자는 분명히 색마(色魔)로, 채음보양의 술법으로 젊음을 유지하는 괴인이었지.'

기억이 난다. 사실 그 때 모용연을 덮치려 하던 무리들은 색마의 무공을 믿고 모인거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얼추 보기에도 색마의 무공은 남궁환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절정지경이었다. 어부지리를 얻을 생각인지 발톱을 감추고 있었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나는 색마에게 말했다.

"알면 뭐할테냐? 네놈들이 분별없이 설치는 바람에 관중이 어수선해졌다."

내 대답에 색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무당파의 명룡자 이십니까?"

명룡자라니.

몰려든 무림인들은 명룡자를 잘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나는 명룡자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색마 놈이 무림에 숨어있는 여러 기인들의 정보에 꽤 해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아마 어린 나이, 검술, 내공을 보고 그런 추측을 했나보군.'

내 무공에는 무당파의 흐름도 섞여 있으므로 그것도 추측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나는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므로 가볍게 대꾸했다.

"당장 꺼지는 게 어떻냐? 오늘 살계(殺戒)를 열 수도 있는데."

"흐흐흐... 재수가 없군."

파앗

색마는 툴툴거리더니 즉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무공이 중인들 중에서 가장 높은 편인데도 도망에 망설임이 없는 태도였다. 하긴 저런 식으로 처신했으니 강호공적이자 공식음적으로 지정당했는데도 오랫동안 강호를 횡행할 수 있으리라.

' 가서 죽일까?'

나는 색마를 추적해서 머리를 으깨버릴까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지금 중요한 건 저런 잔챙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나는 색마가 도주해서 당황하고 있는 무림인들을 향해 사자후를 내질렀다.

[ 셋을 셀 동안에 사라지지 않는 놈은 내가 친히 죽여 주겠다!]

"억...!!"

[ 하나! 둘 ! ]

그리고 셋을 세기 전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렸다. 하나는 그래도 자기 병장기를 꾹 붙잡고 덤벼드려는 자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자들이었다. 내게 덤비려는 자들은 약 열두 명이었고 그들 하나하나가 일류급 고수들이었다.

[ 셋! ]

쐐애액

"쳐랏!"

무림인들이 덤벼드는 모습을 보자 나는 내심 기가 막혔다. 이 정도로 실력차를 보여줬는데도 덤빌 마음이 든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내 내 외견이 어린애이기 때문에 얕보는 마음이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수준이 낮기 때문에 나와 그들의 실력차를 알 수 없는 것이리라.

나는 눈에 살광(殺光)을 흘렸다.

' 오냐. 죽고 싶다는데 죽여 줘야지.'

퍼버벅!

순식간의 일이었다. 도약해서 내게 초수를 날리던 놈들 중에서 다섯 명의 목이 동시에 분리되었다. 그저 검강을 얇게 압축시켜서 날린 것 뿐이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속도와 궤도를 감지할만한 자가 없었다. 전열이 붕괴된 사이로 나는 가볍게 뛰어들어서 검강을 길게 그었다.

일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육신이 쪼개지고 피빛이 흐르며 천지가 토막났다. 내 검은 면면부절 끊이지 않았고 적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학살당했다. 이 초식을 펼쳐냈을 때 열두 명은 두 명으로 줄어 있었고, 그 둘은 공포에 질려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헉..."

"사, 살려..."

까강!!

내가 나머지 두 놈의 목숨을 황천에 보내버리려고 일 참을 날리는 순간 진소청이 끼어들어서 공격을 막아냈다. 진소청 또한 자신의 창에 강기를 끌어모아서 내 공격을 흘려낸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내공의 차이 때문인지 손이 얼얼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소청이 말했다.

"그만하면 됐잖소. 그만 죽이시오!"

"... 그러지."

나는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내심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 진소청. 이 놈들은 아녀자를 윤간하고 간살하려 했으며 당신을 죽이려 한 쓰레기들이오. 이런 놈들을 구해줄 필요가 있단 말인가?'

당장 그에게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진소청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에게 뭘 말한들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진소청에게 말했다.

"진소청. 나는 고수를 찾아 헤매고 있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나와 겨뤄보지 않겠소?"

그러자 진소청은 긴장한 기색으로 자신의 창을 들었다.

"좋소!"

진소청은 승낙을 한 후 고개를 갸우뚱했다.

"헌데 당신의 무공은 뇌신류의 것이군. 뇌신류의 전승자요?"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내 할 말만 했다.

"만일 당신이 이긴다면 그쪽의 남궁환과 모용연 소저를 안전하게 보내줄 것을 약속하지. 하지만 내가 이긴다면..."

"이긴다면?"

"당신은 무엇이든간에 내 요구를 하나 들어줘야 하오."

"... 좋소."

진소청이 자세를 잡았다. 나 또한 진소청보다 실력이 위라고는 하지만 허투루 상대할 수 없었기에 제대로 기수식을 잡았다. 그리고 서로의 의념경지를 겨루며 선제권을 경쟁했다.

우우우 -

나는 진소청을 아직까지 누를만하다 생각했지만, 제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방어에만 전념한 채 나와 필사적으로 간합을 겨루고 있는 진소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일부러 무리해서 장삼봉의 절학을 시전했다.

카앙!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굴공참이 날아갔다. 진소청은 뜻밖의 공격에 당황하며 밀려났고, 나는 간합에서 이득을 보며 그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내공의 격차에다가 깨달음의 차이 때문에 나는 손쉽게 오십 초만에 승기를 얻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몰아붙이려 할 때마다, 진소청은 더할 나위없이 깨끗하게 내 필살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패배 직전에 발버둥을 치는 듯한 모양이었지만 실제로 그 방어는 효율이 좋았다. 나는 백 초, 이백 초가 지나도록 진소청에게 확실한 한판승을 따내지 못한 채 공격만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초조함이 느껴진다.

분명히 수준차가 느껴지는 상대인데 이렇게 제압하기 어려울 줄이야!

퍼억

내 발차기에 진소청이 맞아서 날아간 것은 무려 사백 이십 초가 흘러서였다. 확실한 열세에서 진소청은 내공이 고갈되어서 더 버티지 못하고 발차기를 허용한 것이다.

' 휴!'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진소청은 바닥에 쓰러져서 뒹굴었다가, 튀어나듯 일어나며 헉헉거렸다.

"... 왜 사정을 봐 주는거지?"

"무슨 소린지."

"시치미 떼지 마시오. 방금 그 발길질으로 나를 절명시킬 수 있었잖소."

저 말은 사실이다. 나는 방금 전에 치명적인 헛점을 발견했기에 발차기를 날린 것이기 때문이다. 내 내공은 경세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내공을 강하게 담아서 찼으면 진소청의 상반신이 폭발하듯이 터져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진소청의 말에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내기잖소? 나는 방금 내기의 승리를 획득했소."

"크윽."

진소청은 분한 표정을 지었다. 사백 이십 초를 버티면서 뇌명도 썼지만 결국 내게 이기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진땀을 뺀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내심 진소청의 끝없는 투지에 혀를 내두르며 커다란 흑요석을 꺼냈다.

"자, 이걸 받으시오."

"... 이게 부탁이란 말인가?"

"그렇소."

"받을 수 없소! 이렇게 수상쩍은 걸 어떻게..."

나는 싸늘하게 말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말인가?"

내 반문에 진소청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말했다.

"아니오. 내가 잘못 생각했군. 그 검은 돌을 받겠소."

"검은 돌이 아니오. 흑요석이오."

"이상한데 집착하는 사람이군."

이윽고 투덜거리던 진소청이 흑요석을 받아들었을 때였다.

파아앗

"어억..."

진소청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그도 그럴것이 커다란 흑요석에는 17회에 이르는 내 전생여정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얻었던 장삼봉의 심득은 물론이고, 독고성에게서 얻었던 뇌신류 검술도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 방대한 내용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니 진소청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진소청이 말했다. 그의 표정은 방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어서, 전생의 기억을 완전히 계승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백웅. 이런 식으로 내게 접근했다는 건 스승님을 버리기로 했다는 말이오?"

진소청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남궁환과 모용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뭐라고 대답하려고 할 때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망량이 앞으로 걸어나오며 크게 외쳤다.

"진소청, 잘 생각해 보시오! 이광을 즉시 죽여버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백웅이 많이 참고 있는 거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지 않소?"

"......!!"

진소청은 이를 악물었다. 난데없는 상황변화에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현실을 인식한 눈빛이었다. 그는 망량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럼 스승님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거요?"

"물론이오. 그에게 이득을 주지도 않겠지만 해를 가하지도 않겠소. 이광은 지금까지처럼 살아가면 될 것이오."

망량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필요한 건 당신이오. 당신이 있어야 백웅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소."

"그렇군... 그래서 오늘의 일이 벌어진 건가."

"양해해 주시오."

진소청은 한탄하듯 말했다.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

나는 진소청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진소청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그는 스승에게 크나큰 애정을 지니고 있으므로, 가능하면 스승 이광에게도 도움이 가는 쪽으로 움직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광의 성격이 너무 옹졸하여 그건 이제 힘든 일이 되고 말았다. 평소 행실이 큰 결과를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오, 백웅."

"나야말로."

쉬익!

인사가 끝나고 다음 순간, 진소청이 갑자기 남궁환의 목에 창날을 갖다대었다.

"무, 무슨 짓인가 친구!"

남궁환이 당황하자 진소청이 싸늘하게 말했다.

"친구라고? 그럴 리가."

"무슨..."

"예전의 '나'는 네가 어떤 인간인지 알면서도 겉으로 보기좋은 선택만 했었다. 내가 섣불리 행동하면 나 뿐만이 아니라 스승님과 뇌신류까지 너희 일에 휘말리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이제 백웅과 동료가 된 이상 내가 생각하는대로 행동하겠다."

이어진 진소청의 말에 남궁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가 희롱하듯 멸망시킨 중소문파가 무려 여덟 곳이나 되며, 그곳에서 미색이 뛰어난 여자들을 납치해서 남궁세가의 지하실에 가둬둔다고 했었지. 그리고 암흑가에서도 소문이 많더군."

난데없이 폭탄같은 정보가 날아들었다.

"......!!"

옆에서 듣고 있던 망량이 진소청에게 말했다. 망량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신녀문에게서 들은 정보겠구려."

"그렇소."

"당신은 그런 의혹을 알면서도 남궁환을 구해줬단 말인가?"

망량의 힐난에 진소청이 탄식하듯 말했다.

"헛소문이라 생각했소. 남궁환은 어쨌든 광명정대한 정파의 후기지수이니 그를 질투하는 자들의 음해라 여겼지. 그래도 찝찝한 마음은 가시지 않아서,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내 개인적으로 남궁가를 조사하려는 생각이 있었소."

그랬구나. 진소청이 간혹 수련하다말고 외출을 나가는 일이 있었는데, 아마 그 일 때문이었으리라.

"변명일 뿐이오."

"... 변명이지. '지금'까지의 나는 타인의 일에 끼어들기 싫었소. 내가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문제를 스승님께 가져올 수 없었던 것이오. 그게 진소청이라는 인간의 한계요."

진소청은 우울해 보였다.

한없이 정의로워보이는 의협이 아니라 '인간' 진소청의 우울함이었다.

나는 보다못해서 말했다.

"그만! 됐소. 다 지나간 일이니 지금부터의 일에 집중합시다."

"백웅, 나를 용서해주는 것이오?"

"용서고 뭐고 당신은 앞으로는 실수하지 않을테니 걱정 마시오."

나는 단호하게 말한 후 남궁환을 노려보았다.

"사실확인부터 하고 이야기합시다."

기대가 된다.

오랜만에 육합진살과 팔괘봉인을 제대로 써먹을 날이 온 것 같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