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311화 (311/1,615)

0311 ----------------------------------------------

천계(天界)

망량이 말했다.

"그리고 이번의 공양의식에서 굳이 미호의 용서를 서왕모에게 부탁하지 않은 이유도 알고 있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내 운신의 자유 때문이오?"

서왕모에게 미호의 해방을 부탁할 경우, 미호는 나를 호위하기 위해서 10년간 움직여야만 하는 업(業)을 얻게 된다. 그 때문에 미호와 동료들의 뜻이 충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망량은 그 불협화음을 의식한 듯 했다.

"그것도 있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소."

"무엇이오?"

"이번에 우리는 미호에 관해 큰 진실을 알게 되었소. 바로 미호가 마왕 달기의 아홉 꼬리 중 하나였으며, 서왕모가 그걸 수백년간 정화해서 탄생하게 된 게 미호라는 진실이오."

"으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검선 여동빈의 말로는 미호가 바로 마왕 달기의 분신이라고 했다. 확실히 이번에는 예상치도 못한 뜻밖의 정보를 얻은 셈이다. 내가 망량의 말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미호를 만나서 그녀에게 흑요석을 건네고, 미호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찌하겠소? 당신은 미호의 반응이 짐작되시오?"

"... 솔직히 잘 되지 않는군."

"그건 미호의 존재와 정체성에 직결되는 중대한 일이오. 당연히 혼란스러워 하겠지. 미호가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되면 당신도 그녀의 혼란에 휩쓸릴게 분명하고, 이번 생은 당신의 통제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흐르게 될 거요. 정신력은 정신력대로 소모되겠지."

망량의 말이 옳았다. 뭐라 대답할 말이 없어서 머리를 긁적이자 망량이 말했다.

"미호에게 그 사실을 말할 때는 어느정도 진실을 알아낸 후에 알려줘야 하오."

나는 망량의 말에 숨어있는 뜻을 깨달았다.

"그래서 천계에 가자는 거군!"

"그렇소."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괜히 구천현녀를 걸고 넘어진 게 아니오. 당신도 지선 망량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알겠지만, 그녀는 내 스승이었소. 또한 서왕모의 오른팔으로서 일하고 있는 전쟁의 여신이기도 하지. 그녀의 밑에서 시해지술을 가르침받다 보면 미호와 관련된 정보를 알아낼 틈이 있을 것이오."

"흐음."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내심 망량의 계산에 감탄하자 망량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또한 구천현녀는 서왕모의 모순에 대해서 늘 괴로워하고 의문스러워했소. 그랬기에 지선 망량은 당신의 전생능력을 믿고 시해지술로 기억과 경험을 옮기는 길을 택한 것이오."

"그 기억은 나도 가지고 있소."

나는 기억을 되새기며 말을 이었다.

"서왕모는 인간으로 현신하는 모습과 다른 본체(本體)를 하나 더 가지고 있소. 그러나 그 본체는 신화시대 이후 천계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지."

"좀 더 솔직히 말한다면..."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구천현녀는 서왕모가 뭔가를 꾸미고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거요. 그리고 그 음모는 사라진 서왕모의 본체에 관련되어 있고, 또한 [옛 지배자]와 연관되어 있다고 짐작했지만, 그녀의 밑에 있던 신선들 중 다수가 살해당했지."

"으음."

그것도 지선 망량의 기억에 있다. 지선 망량과 동급에 있는, 다수의 구천현녀 직속의 지선들이 의문의 존재에게 소멸당했다. 아마 음모를 캐내려다가 살해당한 것이리라.

"지선 망량은 황궁의 일을 처리한 후 그 음모를 캐내려 했으나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 생각했던 거요. 그의 능력은 다른 지선에 비해서 그리 뛰어나지 못했으니까."

나는 듣다보니 새삼 내가 뛰어든 일이 얼마나 거대한 음모인지 알 수 있었다. 지선 망량의 능력은 술법사로서 가히 최고의 경지에 가깝다 할 수 있는, 지상의 신선이었는데 그조차도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다니! 서왕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게 분명했다.

"지선을 흔적도 없이 없앨 수 있는 존재라니... 대라신선이라면 그게 가능하겠소?"

"나는 힘들다 생각하오. 그 흉수가 적어도 대라신선 중에서도 투선(鬪仙)은 되어야 가능하겠지. 혹은 완전히 신이 된 존재라던가."

"투선이라."

"대라신선이라 해도 모두 전투력이 높은 건 아니오. 지선과 그리 차이없는 자도 있을 것이오. 다만 검선 여동빈처럼 전투의 달인으로서 승천한 존재들은 굉장히 출중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지."

거기까지 말한 망량이 손을 저었다.

"뭐, 아무튼 지금부터의 일을 논해 보자면, 우선 검마와 진소청을 동료로 모읍시다."

"그래야겠지."

파앗

나는 망량과 계획을 이야기한 후 망량과 함께 해적섬으로 향했다.

해적섬에 도착하자 혈도단은 몰살당해 있었다. 무영문의 절정고수들이 그들을 남김없이 참살한 것이다. 검마는 생존자들을 모아서 치료하고 있는 중이었고, 나는 망량과 함께 그를 만났다.

검마가 껄껄 웃었다.

"하하! 이번 생에는 처음 보는군 망량."

망량은 쓴웃음을 지었다.

"구면이자 초면이라니, 저도 이런 생소한 경험은 처음이군요 문주."

"누군들 그렇지 않겠나."

"볼일은 다 보셨습니까?"

"충분하다네. 안그래도 자네들을 기다리고 있었지."

아닌게 아니라 검마는 이미 딸인 서문혜의 구출과 혈도단에의 복수를 완료한 듯 싶었다. 이제 무영문으로 귀환하는 일만이 남은 것이다. 검마는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말했다.

"백웅. 말할 게 있네."

"네."

"아무래도 짐작하건대, 내가 캐낸 혈도단의 배후에는 황궁이 있었을 듯 하네."

"......?"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러자 옆에 있던 망량이 말을 받았다.

"역시 그렇겠지요."

"흐음. 내게는 기억을 전송하는 능력이 없어서 아쉽네만... 무영문의 전력을 가지고도 내가 힘들다고 느꼈을 정도라면 그 정도 세력은 황궁밖에 없어. 하물며 투마의 배후에 풍신류가 있었다면 뻔한 이야기지. 풍신류가 황궁과 손을 잡았으니 그들의 음모가 이어진 것일세."

그렇게 자신의 추측을 늘어놓은 검마가 말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에 암경무투회를 조사해볼 생각이네."

나는 검마의 말에 깜짝 놀랐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거긴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계획이 있네. 자네가 나를 도와주면 쉬워지겠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망량이 말했다.

"십이율에 가입하실 생각이시군요."

"헛허! 과연 자네는 천하제일의 책사군..."

검마가 놀라서 감탄성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망량이 검마의 생각을 읽은 듯 했다. 내가 영문을 몰라서 그들을 쳐다보자, 망량이 말했다.

"백웅. 어차피 무영문은 이대로는 마도팔문의 종주라는 위치때문에 백련교에게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소. 행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백련교와 대등한 뒷배가 필요하지. 17번째 생에서는 뇌신류와 협동했지만 기본적으로 백련교에 맞설만한 세력은 천하를 뒤져봐도 십이율 뿐이오."

"아!"

"또한 십이율주는 암경무투회의 우승상품인 자령언월도를 소유하고 있지. 암경무투회와 적든 많든간에 관련이 있다는 뜻이오. 십이율주의 도움을 얻는다면 낙양을 조사하기는 굉장히 쉬워질 거요."

"그렇군."

"그러기 위해서는 백웅 당신이 예전처럼 힘을 써줘야 하오."

나는 앞으로 해야할 일을 생각하자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또 십이율주와 만나봐야 한다는 뜻인가?"

"어쩔 수 없소. 그 자는 전례없이 음흉한 존재이니, 한번이라도 더 접촉해서 십이율주의 진의를 알아봐야 하오."

그렇게 말한 망량이 어깨를 으쓱했다.

"17번째 생에서 당신은 백련교주의 진의를 알게 되었소. 신과 담판을 짓는 한이 있어도 백련교주가 무생노모의 법문을 얻으려 했다는 것, 그건 굉장한 정보요. 당신이 백련교주의 집착을 잘 이용하면 백련교 내에서 출세하는 것도 한결 용이해질 거요. 그를 당신의 뜻대로 유도하는 것도 쉬워질 테고."

"흐음."

"지금부터 할 일이 많소. 우선 당신은 진소청을 동료로 만드시오."

검마가 망량의 말을 듣고 있다가 질문했다.

"잠깐 망량. 이제 와서 진소청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가?"

망량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진소청이 지금까지의 백웅의 전생에서 큰 역할을 한 일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네. 물론 이광이 깽판을 놓을 때 억제하는 역할을 해 주었지만, 사실 이광 자체를 아군 진영에 끌어들이지 않으면 되는 문제야. 뇌신류를 통제하는게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데 굳이 진소청을 끌어들이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

검마의 말은 논리정연했다. 그 또한 뛰어난 두뇌와 사고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망량은 검마의 말을 모두 들은 후 오화칠금선을 들어서 부쳤다. 더운 모양이었다.

"문주의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소청을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 때문인가?"

"그는 바로 중원제일의 천재(天才)이며, 황연 대장군을 포함해서 온갖 세력을 움직이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진소청의 활약이 없었던 이유는, 우리가 그를 충분히 성장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

검마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믿기지 않는군. 자네는 진소청의 재능을 그 정도로 평가하는 건가?"

"네. 사실상 그를 키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래가 없습니다."

망량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는 17번째 전생의 실패로, 칠요(七曜)를 모으지 않으면 황궁의 신에 대적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칠요를 입수하는 난이도는 극히 어려워서 백웅의 전생을 10번 이상 반복한다 해도 얻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남쪽 끝에 화요가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 거길 가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생은 현실입니다. 앉아서 죽어줄 수만은 없죠. 그래서 신과 싸워서 이길 가능성을 최소한 갖춰야 하는데, 저는 그게 바로 진소청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어... 자네도 알지 않는가?"

검마가 답답한듯 말했다.

"그 백련교주조차 신에 맞서지 못했네. 그리고 백련교주는 무림에 한해서 고금제일인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지. 아무리 천재라지만 몰락한 뇌신류의 일개 후기지수인 진소청이 백련교주의 경지에 도달하리라 생각하는가?"

"아니오."

망량이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분명히 백련교주를 뛰어넘을 겁니다, 언젠가는요."

"......!!"

"또한 진소청을 키우는 건 백웅을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검마는 물론 내 얼굴도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망량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하지만 망량과 수십 년을 함께 지내온 내가 보건대 망량이 농담을 하거나 헛소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검마도 그걸 느꼈는지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무공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도리어 책사인 망량이 그 한계를 부정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말했다.

"망량 당신이 그리 생각한다면, 나도 진소청을 믿도록 하겠소."

"고맙소."

검마도 끄응하고 신음성을 내다가 대답했다.

"알았네. 나도 앞으로는 이 일을 더 이야기하지 않겠네."

"... 화나셨습니까?"

"나를 옹졸한 인간으로 몰지 말게. 허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망량이 이상론을 말하고 있다는 건 누구든 알 수 있을 걸세."

"......"

검마의 말은 무덤덤했기에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 정말 진소청이 백련교주를 넘을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옆에서 진소청을 보아왔던 나조차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백련교주의 무공은 내가 알고 있던 무공의 한계를 초월해 있었고 심지어 안목마저 넓혀 주었다. 아무리 진소청이 천재라지만 그런 절세초인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망량을 제외하고는.

이윽고 우리는 해적섬의 일을 처리하고는 무영문도들과 서문혜를 데리고 무영문에 왔다. 검마가 말했다.

"조만간 다시 와 주게. 그 때는 십이율과의 동맹을 바로 진행해야 할 테니."

"알겠습니다."

"아, 사사키 코지로도 데려올 수 있으면 데려와 주게. 그는 상당히 쓸모있으니."

"노력하겠습니다."

파앗

잠시 후 비등을 써서 도착한 것은 청룡무관이었다. 이번에는 망량도 왠일인지 함께 왔다. 이번 생에는 자기 눈으로 직접 이동지를 봐 두어야겠다는 망량의 고집 때문이었다. 망량은 지붕 위에서 청룡무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이번 생에 진소청에게 접근하는 건 좀 돌아갈 필요가 있겠소. 바로 들어가서 뇌신류 전승자임을 밝히지 마시오. 이광이 꼬이는 걸 피하고 싶군."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오?"

"간단한 방법이 있지."

망량이 훗하고 웃었다.

"곧 천음지체(天陰之體)가 위기에 처할 것이오. 당신은 그 사건을 앞서가서 모용가의 여식을 구출하면 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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