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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내가 이번에 망량에게 준 것은 지선 망량의 술수지식과 경험까지 함께 세밀하게 담아놓은 흑요석이었다. 그래서 망량은 이번에도 지선 망량까지 올랐을 때의 경험을 전승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망량은 그 지식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더니 말했다.
"백웅. 현재 우리는 심대한 모순에 부딪혔소."
"어떤 모순 말이오?"
"당신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최고의 힘은 현재로서는 수요 막야라고 할 수 있소. 수요 막야를 정상해방할 경우 목표에 이르는 길은 굉장히 단축될 것이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봉선의식을 거쳐야 하는데, 그건 내 아버지인 주작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길이오."
"그렇겠지. 주작은 태산노옹으로서 천계의 정보를 다 엿듣고 있으니."
"그러므로 막야의 해방은 약간 뒤로 미뤄둡시다. 이게 우선이 될 것이오."
망량의 말이 옳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망량이 말을 이었다.
"봉선의식의 권리를 얻을 방법은 수기를 공양하는 것만이 아니오. 약간 옆으로 돌아가긴 하겠지만 분명히 방법이 있소."
"정말이오?"
"그렇소."
망량은 오화칠금선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팔락거리며 말했다.
"요는 천계에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선물을 안겨주면 되는 것이오. 막야의 수기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세상에 그만한 보배는 분명히 또 있을 거요. 백웅 당신은 비등과 목갑을 이용해서 수많은 재보를 찾을 수 있으니 우선은 뛰어난 가치를 가진 유물을 모아 봅시다."
"흠, 그러면 되겠군."
"이번에 수기를 공양할 때는 좀 다른 부탁을 하는 게 나을텐데, 뭔가 생각해둔 게 있소?"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대라신선을 통해 [옛 지배자]에 대항할 방법을 손에 넣고 싶소."
내 대답에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겠으나, 무리요. 천계의 그 어떤 신도 그 대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오."
"......"
"지난 생에 비록 패하긴 했지만, 그건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소. 그게 소환된 시점에서 우리의 패배였던 것이오. [옛 지배자]를 싸워서 이길만한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오."
"빌어먹을."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분한 기색을 보이자 망량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백웅. 당신은 [옛 지배자]가 두렵지 않소?"
"응? 두렵다기 보다는 답답하구려. 그래도 어떻게든 수를 내야겠지."
"... 당신의 정신력은 정녕 대단하구려. 꺾이기는 커녕 도리어 분노의 감정을 느낄줄은..."
왠지 고개를 젓던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해 봅시다."
망량이 계획을 내게 말해 줬다. 나는 망량의 계획이 좋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우리는 빠르게 망량선사의 마을로 가서 막야의 수기를 공양할 준비를 시작했다.
"하앗!"
천우진이 제단에서 주문을 외우자 강신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강신한 것은 역시나 태허천존이었다.
[ 수기는 잘 먹었다. 인간들이여. 헌데... 이상하군.]
나는 태허천존이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말을 끊었다. 시간을 아끼고 싶었다.
"다음 분!"
[ 아닛?!]
난데없이 내가 외치자 태허천존이 대경했다.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축복이 중복되지 않잖습니까?"
[ 그... 그건 그렇지만.]
"도움이 안 되시는군요."
[ ......]
왠지 태허천존은 만만하게 느껴졌다. 단순한 직감이 아니라 존재적인 무언가가 말하고 있었다. 그건 천암비서의 영향인 것 같았는데 왜 그런지는 몰랐다. 천우진의 볼살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다음 분!"
[ 으윽... 이 무례한 놈...]
태허천존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말했다.
[ 좋다... 그럼 이번은 예외로 하겠다. 네 몸에 거하는 대운(大運)의 잔재를 제거하고 새로운 축복을 불어넣어 주겠다. 이러면 되겠느냐?]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 물론이다.]
"그럼 새로 들어오게 되는 대운은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그러자 태허천존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 관상도 좋아지고 애정운 사업운 재능운 건강운 등등 길흉화복에 있어서 특출난 운이 따르게 될 것이다! 보통 인간의 평생치 대운의 몇 배나 되는 기운이 네게 깃들게 되는 것이다.]
아주 솔깃한 이야기였다. 내가 태허천존의 기분을 건드린 덕분에 그가 도발당해서 억지로 축복을 주겠다고 나선 셈이다.
' 생각했던 것과 다르군.'
예상과 다른 상황에 내가 힐끔 옆에 서 있던 망량을 보자, 망량은 골똘히 뭔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태허천존이시여, 그 전에 알고 싶은게 있습니다."
[ 무엇인가...?]
"구천현녀(九天玄女)도 이번 의식에서 강신이 가능합니까?"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태허천존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 구천현녀는 아니된다.]
"어째서입니까?"
[ 그녀는 타 존재에게 축복을 내릴만한 도량이 없다. 자신의 업(業)만으로도 바쁠지니 그녀를 내버려두어라.]
"정녕 안되겠습니까?"
[ 가능은 하지만 추천하지 않는다.]
그러자 망량이 나에게 눈짓을 했다. 그건 명백히 태허천존의 제안을 거르고 구천현녀를 부르자는 눈짓으로 보였다. 나는 확인할 겸 망량에게 전음을 보냈고, 망량은 단호하게 말했다.
[ 구천현녀를 부르시오. 그게 낫소.]
[ 알았소.]
나는 망량과 의사를 교환한 후 태허천존에게 말했다.
"태허천존이시여! 방금 전의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허나 그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대신에 구천현녀님께 꼭 축복을 받고 싶습니다."
[ 끄으응... 알았다.]
파앗
그러자 태허천존이 천우진의 몸에서 물러가고 이윽고 뭔가 싸늘한 기운이 사방에 내려앉았다. 그것은 마치 살기와 비슷한 기운이었는데, 실제로는 당장이라도 전투가 벌어질 법한 살벌한 기세가 들어찬 듯 했다.
잠시 후 천우진이 눈을 떴다. 그 눈동자는 완연한 은빛으로 신령스럽게 빛나고 있었으며, 천우진에게서는 여성의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후우우우
천우진의 몸에 강신한 존재는 이윽고 구슬을 두 손에 안듯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대들은 누구이길래 나 구천현녀를 청했는가?]
무뚝뚝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 말투의 이면에, 영시(靈示)로 구천현녀의 영체를 보자 감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천하에서 꽤 많은 절세미녀를 보아왔다 생각한 나조차도 경외심을 느낄 정도의 완벽한 미모! 달의 이슬을 자아냈다고 표현된 바 있었던 월궁 항아의 미모가 저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너무 고아한 나머지 도리어 색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찬연한 절세미모였다.
망량은 그녀의 모습이 익숙한 듯 그녀에게 곧장 말을 꺼냈다.
"구천현녀시여! 저와 이 백웅은 시해술(尸解術)을 익히고 있습니다. 저희는 시해의 술법을 완전히 터득하기 위해서 천계(天界)에 들어갈 자격이 필요합니다."
[ 뭣이...?]
구천현녀는 놀란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시해술이란 드넓은 천계에서도 오로지 구천현녀라는 대라신선만이 보유하고 있는 고유술법이었다. 시해선(尸解仙)이라고 하여 육신을 버리고 혼만이 빠져나가 신선이 되는 자들도 더러 있었으며, 역사상 상당한 신선들은 이 시해술을 터득하여 등선한 예였다. 실제로는 구천현녀가 보유한 술법을 제자뻘되는 지선(地仙)들을 통해 지상에 내려주고, 인연이 닿는 도사들이 우연히 그걸 수십 년 동안 수련하는 식으로 면면히 내려오는 게 시해술이었다.
구천현녀가 다소 날카로운 표정으로 망량을 보며 말했다.
[ 시해의 술법에 천계에서의 수행이 포함되는 건 사실이다. 허나 그 비밀은 시해술의 막바지단계에 이른 자만이 알 수 있고, 그나마도 지선들이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대들이 도맥(道脈)에서 인정받은 바를 듣지 못했다.]
"......"
[ 그대들은 어찌 그 비밀을 알고 있는가?]
망량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와 백웅은 이미 시해술의 전반적인 내용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이지요."
그렇게 말한 망량은 뭔가 암송을 하듯이 경문을 외기 시작했다. 중얼중얼거리며 흘러나오는 내용은 한동안 느긋하게 이어졌고, 총 500여 자의 경문 내용이 모두 암송되고 나자 구천현녀는 크게 놀란 듯 굳어 있었다. 방금 망량이 말한 것은 완전히 시해술을 터득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독경이었기 때문이다.
망량이 말을 이었다.
"저희는 이미 천계에 갈 자격이 있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 ......]
구천현녀가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 후우... 거절하고 싶으나 그대들이 내놓은 수기의 공양이 너무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라 어쩔 수가 없구나. 방금 대선(大仙)들이 회의를 한 결과, 너희를 천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곤륜산에 입산이 허가된 겁니까?"
[ 그렇다. 그대들은 언제든지 원할 때 천지간을 통해 천계에 들어올 수 있다. 천계에 들어오게 되면 바로 나를 찾아 오거라.]
"감사합니다."
[ 그럼...]
파앗
구천현녀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제정신으로 되돌아 온 천우진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사형답지 않구려."
"뭐가?"
"사형은 원래 천계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잖소."
망량이 피식 웃었다.
"사람은 변하는 법이지. 그리고 시해술을 완전히 터득하는 건 필요한 일이니."
"사형의 선택이라면 말리지 않겠소."
"뭐 너야 언제나 네 맘대로 살지 않느냐? 언제는 말렸던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흥."
천우진은 망량이 살짝 찌르는 말투로 이야기하자 민망해졌는지 고개를 돌렸다. 정말 볼수록 기묘한 사형제지간이었다. 망량은 이번에는 천우진을 바로 영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는지 나와 함께 마을을 나섰다.
망량은 산길을 걸으며 말했다.
"백웅. 우선 계획한대로 되었소."
"그렇긴 한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오. 왜 그 선택을 해야만 했소?"
내 의문은 당연했다. 나와 망량은 처음부터 구천현녀를 부르기로 계획했었다. 왜냐하면 시해술의 터득을 핑계로 천계에 진입할 권리를 얻기로 했기 때문이다. 도중에 태허천존이 끼어들어서 당황하긴 했지만 어쨌든 계획대로 된 셈이다. 태허천존부터 서왕모, 여동빈 등을 지나쳐가면서 천천히 상황을 보려 했지만 결과가 크게 다르진 않다.
천계에 진입할 권리를 얻으려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천계에 삼황오제가 있는지 찾아보려는 것이다. 전욱은 삼황오제 자신들이 천계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표현을 썼고, 그 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직접 천계를 탐색할 필요가 있었다.
두 번째는 나도 이제 술법을 수련해서 터득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천계는 지상보다 훨씬 높은 영력이 갖춰져 있기에 몇 배나 빠른 속도로 술법을 수련하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최고의 술법 중 하나인 시해술을 터득하게 되면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반문을 한 이유는, 도중에 태허천존이 끼어들어서 [대운의 축복]을 내려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술법을 수련하기 위해서 천계 입산권을 손에 넣는 것보다는 대운의 축복이 훨씬 더 와닿을 것 같았다. 과거 내가 대운의 축복을 얻었을 때는 말 그대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지 않았는가?
"대운의 축복은 최상급 축복이오. 그 좋은 축복을 포기하면서까지 천계에 들어가야 하는 거요?"
"흠... 솔직히 나도 내심 아깝다 생각하오 백웅."
"그럼 어째서?"
망량이 말했다.
"태허천존의 축복이기 때문이오."
"응?"
"백웅. 당신은 태허천존이 수상쩍지 않소?"
그는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아서 말을 이었다.
"당신 전생의 기억에서, 태허천존은 [옛 지배자]와 천계가 싸울 때 제일 선봉에 섰소. 그리고 막야 천빙이라고 하는 엄청난 권능을 정면에서 막아내었지. 게다가 이타콰 또한 태허천존을 아는 듯한 말을 했소."
"아."
"그 뿐만이 아니오. 태허천존은 온건파 이족의 대표격인 선지자에게 거짓말을 했소. 수요 막야의 비밀에 대해서 왜곡된 정보를 주었지. 뿐만 아니라 지선 망량의 기억에서, 태허천존이 평소에 천계의 어디에 거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소. 그는 현 시점에서 천계에서 가장 신비하고 음험한 존재요."
"......!!"
"그렇게 수상쩍은 존재가 주는 축복을 받아들이는 건 좋지 않소. 예상치못한 위험요소를 늘려서 뒤통수를 맞을 확률이 높아질 뿐이오."
"그렇겠군."
나는 망량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확실히 태허천존은 수상하다. 천계에서 제 3의 서열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긴 하지만 정작 태허천존이 어떻게 해서 대운을 다스릴 수 있는지, 어떤 존재인지 너무나 불분명했다. 망량은 눈 앞의 이득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일단 태허천존이라는 위험요소를 피해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망량이 훗하고 웃었다.
"어쨌든 이걸로 당신과 나는 언제든 곤륜산에 가서 술법을 수련할 수 있게 된 거요. 인간의 술법사라면 누구든 꿈에서도 그리는 등선(登仙)의 권리를 손에 넣은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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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예비군의 여파가 쎄군요... 내일은 힘내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