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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옥좌의 방에 진입하자 천우진의 말대로 황제가 옥좌에 앉아있고, 그 옆에 연금술사와 주작이 좌우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3장 앞에는 백련교주와 백련교 호법사자 셋이 서 있었다.
' 응? 뭔가 이상하다.'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교주와 호법사자들은 적어도 반 각 이전에 여기에 도착했다. 시간적으로 볼 때 지금쯤 부딪히고도 남았어야 했을텐데 서로 얌전히 대치를 하고 있다니? 백련교주가 손을 쓰든 황제가 언령을 쓰든 어느 한쪽이 큰 피해를 입는 상황이 나왔어야 한다.
그 때 백련교주가 내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 왔군, 백웅.]
"교주!! 어서 황제를..."
나는 백련교주에게 황제를 칠 것을 종용하려 했지만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연금술사는 마치 비웃듯이 큭큭대고 있었고 주작 태산노옹은 심유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교주의 뒤편에 도열해 있는 호법사자들도 그저 냉막한 표정인 것이다.
옥좌에 앉아있던 황제가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아주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지. 아주 손꼽아 기다렸다고 해도 좋아."
젊은 목소리다. 외견상 2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젊은 외모, 불로불사의 육체이기 때문에 당연할 것이다. 내가 그를 경계하고 있자 황제가 고개를 돌려서 백련교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교주... 내 제안을 확실히 받아들이는 거겠지?"
[ 아직은 생각을 하고 있소. 본좌로서도 갑작스러운 이야기로군.]
"좋소... 그럼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 봅시다."
황제가 손가락을 까닥하자, 갑자기 넓은 공간에 커다란 상이 차려졌다. 그 위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올려져 있었으며 어디에선가 어여쁜 시비들이 걸어왔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뭔가가 소환된 걸 보면, 황제 또한 마력(魔力)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백련교주는 말없이 상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자 뒤에 있던 호법사자들도 뒤따라가서 교주의 옆에 앉는 것이었다. 백련교주가 뭘 하냐는 듯 내게 육합전성을 보내 왔다.
[ 우선 앉게.]
"하지만 교주..."
[ 이야기를 듣고 나서 싸워도 늦지 않네.]
거역하기 힘든 거력(巨力)이 느껴졌다.
' 상황이 이상하게 되어가는군.'
나는 별 수 없이 엉거주춤 걸어가서 이광과 함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반대편에 연금술사와 주작이 착석하고 상석에 황제가 앉음으로서 자리가 마련되었다.
황제는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백련교주. 다시 말하지. 지금이라도 나와 손을 잡는다면 감숙성, 청해성, 사천성, 귀주성을 그대의 영토로 인정하고 그대를 친왕(親王)이자 국사(國師)로 봉하겠소. 그리고 그 영토의 영구적인 자치권을 주겠소. 또한 백련교를 중원의 제일교(第一敎)로 인정하며 최대의 지원을 해줄 것을 약속하오."
"......!!"
나는 황제의 말을 듣자 깜짝 놀랐다.
설마 중원 영토의 3할을 떼어주면서 백련교주를 포섭하려 하다니! 황제가 지금 하는 제안은 여태껏 백련교와 황궁의 관계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역사상 그 어떤 종교도 저 정도의 혜택을 누린 적은 없었으리라.
그러자 백련교주가 냉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 하핫... 웃기는군. 그런건 지금 황제 그대를 없애면 전부 누릴 수 있는데 귀찮게 돌아갈 필요가 있겠소?]
"그렇게 생각한다면 진작에 했겠지."
황제는 묘한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힘이라면 내 언령(言靈)을 무시하고 나를 죽일 수 있을거요. 물론 나는 쉽게 죽어주지 않겠지만, 백련교주 당신의 권능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뒷감당을 할 수 있겠소?"
[ ......]
"피차 섣불리 싸울 수 없는 상태라는 건 인정을 하시오."
백련교주는 '뒷감당'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움찔하는 듯 했다. 그는 황제의 말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지 한동안 고요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산해진미를 힐끔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 내가 너무 늦었군. 그대가 복마전(伏魔殿)의 주인과 정식으로 계약하기 전에 찾아왔어야 했어.]
황제가 흉소(凶笑)를 흘렸다.
"크크크... 그랬다면 천하가 당신의 손아귀에 들어갔겠지. 하지만 지금은 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오. 어쩌시겠소?"
[ 으음...]
백련교주가 크게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고민하면서도 호법사자들과 은연중에 전음으로 대화하는듯 보였다. 아마도 서로간에 심어를 날리면서 줄창 토론을 벌이고 있으리라. 침묵속에서 긴장감이 높아진다는 건 이럴 때 말하는 듯 했다.
나는 백련교주가 침묵하고 있을 때 맞은 편의 주작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 망량을 어디 놔뒀소?"
그러자 주작 태산노옹은 황금 술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시더니 대꾸했다.
"자네가 알 바 아니지."
"그는 내 동료요. 당신이 납치한 걸 돌려받으러 여기까지 왔소."
"그런가... 현이는 좋은 친구를 두었군."
주작이 감상적인 말투로 대답하자 나는 발끈해서 외쳤다.
"아무리 주작 당신이 망량의 부친이라고 할지라도 그에게 해를 입혔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내 외침에 잠시 좌중의 시선이 모였다. 주작은 의외라는 듯 대답했다.
"용케 알았군. 이광이 알려줬나?"
"내가 혼자 알아냈소. 당신이 천문관 일족 제갈씨이며 선대 내황각주이자 주작이니 당연히 망량의 아버지 아니겠소? 설마 정파 삼대기인 태산노옹이며 황궁의 흑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대단하군... 나는 그 비밀을 반세기 넘게 지켜왔거늘."
여상스럽게 말한 주작은 표정변화없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 내가 황제폐하를 모시는 사신위의 주작(朱雀)이자 제갈가(諸葛家)의 가주(家主)인 제갈유룡(諸葛維龍)이다."
주작 제갈유룡!
그는 망량의 아버지이자 황궁을 지키는 최후의 수호신(守護神)이었다. 내가 십수 번이나 전생을 거듭하면서도 제대로 대면해서 정체를 밝혀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갈유룡은 우묵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알아보니 백웅 너도 봉선의식의 권리를 사용해서 칠요를 해방한 모양이더군. 그래서 칠요의 힘을 믿고 여기까지 온 건가?"
제갈유룡은 내가 칠요의 주인이라는 사실과, 얼마 전 수요를 해방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건 정말로 내 옆에 간자가 있지 않으면 모를 일이었으나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반문했다.
"... 알아봤다고? 당신은 무슨 수로 그걸 알아낸 거요?"
제갈유룡이 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내가 늘 태산노옹으로 가장하여 오악의 천제단을 감시했던 이유지. 천제단은 봉선의식의 장소가 될 뿐만 아니라 가장 힘을 덜 소모해서 천기(天機)를 알아낼 수 있는 통로니까. 태산의 천제단에 제물만 좀 바치면 천계의 계획이나 근황을 알아내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뭣...!!"
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현이가 봉선의식의 권리를 얻어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고 있었느냐? 적어도 20년의 시간을 단축시켰으니 나는 그날 울 정도로 기뻤다. 그리고 오악의 천제단에 매복하고 있다가 현이를 사로잡았지."
"......"
그렇게 된 거였구나.
천제단은 단순히 봉선의식으로 삼황오제를 소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계의 소식을 가장 빨리 얻어내는 창구였던 것이다! 이걸 몰랐으니 계속 제갈유룡에게 이번 생 내내 뒤통수를 맞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망량은 선계의 유물인 삼황내문을 얻어서 엄청난 술법능력을 얻었소. 아무리 당신이 강해도 망량을 쉽게 사로잡을 순 없었을 텐데."
"그건 자네 생각이지. 삼황내문을 얻어봤자 기습적인 수면향에는 이길 도리가 없으니."
"... 독(毒)을 쓴 건가?"
제갈유룡이 품속에서 섭선을 꺼내서 펼쳤다.
"그 아이가 옹고집인 건 익히 알고 있으니 우선 데려와서 설득하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말을 듣지 않아서 결국 정신제압을 하게 되었지."
나는 이야기를 듣자 기가 막혔다.
'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이다!'
본인의 능력이 더 강할텐데도, 망량의 술법능력이 강하다고 생각하자 독과 수면향을 써서 망량을 기습한 것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제갈가의 책사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대체 당신은 뭘 하고 싶은 거요? 이족과 손을 잡고 인신공양을 하면서까지 황권(皇權)이란 걸 수호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순간 탁자 위의 분위기가 굳었다. 내가 황제가 동석해있는 자리에서 정면으로 황권을 부정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대역죄라고 할 수 있었기에 백련교의 호법사자들도 나를 꽤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듯 했다. 심지어 황제는 대놓고 똥씹은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러자 제갈유룡이 선선히 대답했다.
"세상에서 폐하의 권위보다 존귀한 건 없네. 나는 삼국시대 이래로 내려오는 제갈가의 가주로서 가문을 수호함과 동시에 대명제국의 사직을 지켜나갈 의무가 있지. 내가 주작이자 태산노옹으로서 해왔던 모든 일은 모두 정당한 행위일세."
그 때였다.
옆에서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던 이광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주작! 나는 사신위 전대 청룡으로서 네게 묻겠다."
제갈유룡은 의외인지 이광을 힐끔 보았다.
"말해 봐."
"선제의 임종 때 네가 함께 있었다는 게 사실이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그냥 그랬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주작 제갈유룡은 머뭇거리며 이광의 말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를 끙끙대며 고민하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 그렇다."
"너는 언제나 선제 폐하의 최측근에 붙어서 호위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사신위들도 네 능력을 믿고 있었기에 근거리 호위 이외의 임무에 전력을 다할 수 있었다."
이광이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주작을 노려보았다.
"선제 폐하께서 붕어하셨을 때도 애써 이해하려 해봤다. 선제 폐하는 주작을 종종 다른 곳으로 파견보내셨으니, 이번에도 그런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 너 또한 내가 황궁을 떠나던 날에 그렇게 변명을 했었지?"
"... 그랬다."
"하지만 네가 최측근에서 폐하의 임종을 지켰다는 건... 그 날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군."
"......"
주작의 얼굴이 납빛으로 굳어졌다. 그 때 상석에서 듣고 있던 황제가 비직 웃으며 말했다.
"이봐, 이광! 왜 내 충실한 사신위에게 시비를 걸고 있지? 네놈은 더 이상 사신위도 뭣도 아니지 않느냐?"
"... 폐하. 사신위 직책을 반납했습니다만 저는 그 날의 일을 알 자격이 있습니다."
"흥! 자격이라고?"
황제가 갑자기 사납게 말했다.
"나는 예전부터 이광 네놈이 마음에 안 들었다. 선제께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자신이 뭐라도 된 양 기어올랐지. 그래봤자 네놈은 집지키는 개에 불과한데 말이다!"
"......!!"
이광은 애써 표정을 관리했지만 크게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마치 수십 년간의 신념이 한번에 깨어져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이제는 개조차 아니군."
황제는 거만한 자세로 출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꺼져라, 이광. 여긴 네놈이 있을 곳이 아니니까 당장 나가란 말이다. 아버님을 지키지 못한 죄가 있으니 네 발로 기어나가라!"
우웅
그 순간, 나는 창힐의 언령(言靈)이 작동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광의 눈은 순식간에 흐리멍텅해지더니 이지(理知)를 잃었다. 그리고는 황제의 명령대로 그 자리에 엎드려서 네 발로 기기 시작했다.
이광이 기어가고 있다.
비참하게 엉덩이를 비틀면서 기고 있다.
"푸하하하!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이광."
황제가 미친듯이 광소를 터뜰렸다.
나는 천천히 기어가는 이광을 보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내심 통쾌하기도 했으나 동시에 뭔가가 북받쳐 올랐다. 황제가 정당한 분노를 행사하는 거라면 몰라도, 지금 상황은 분명히 불의를 캐내려는 이광을 힘으로 억압하는 모습이었다.
이걸 가만히 보고 있어도 되는가?
백련교주와 호법사자는 물론 황제일행에게 모욕당해도 좋은 건가?
나는 정말 이 광경을 보고 속시원하게 속풀이를 할 수 있는가?
' 이건... 뭔가 아냐!'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는 마주 이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풀려라!"
우웅
그러자 황색 기운이 내 손끝에서 뻗어나가더니 이광을 적중시켰다. 동시에 이광은 정신을 차린 듯 했고, 재빨리 몸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욱에게서 받은 가호를 시전하자 이광에게 황제의 언령에 대한 저항력이 생긴 것이다. 이광은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가 이를 부드득 갈며 말했다.
"후총(厚?), 이 개새끼! 네놈만큼은 죽여버리고 말겠다."
"헉!"
황제는 이광의 살기를 받자 당황한 듯 했다. 지금 이광에게서 터져나오는 살기는 설령 나라고 할지라도 살이 에릴 정도로 장절한 기세였다. 비단 살기 뿐만이 아니라 이광이 호칭이나 존칭을 전부 내던지고 그의 이름을 직접 불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주작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했다.
"진정하지, 이광! 싸워봤자 자네가 이기는 건 불가능하네. 지금이라도 폐하 말대로 손털고 떠나게. 이건 같은 사신위로서 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로서의 충고일세."
주작이 그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이미 이광은 역린을 건들여져서 대폭발해있는 상태였다. 그 어떤 통제도 먹히지 않았다. 이광은 발악하듯 외쳤다.
"닥쳐라 주작! 네놈이 선제 폐하를 살해했잖느냐!!"
"......!!"
"보나마나 저 모질이 후총 놈이 선제 폐하를 시해했고 네놈은 옆에서 방관한 거겠지! 네놈들 제갈가문 놈들이 사직을 지킨답시고 다른 꿍꿍이를 품고있는 걸 모를 줄 알았나?! 네놈이야말로 진짜 역적이며 대명제국을 망하게 하는 괴수다!!"
이광은 걸음마다 분노하는 듯 했다. 겨우 두 걸음을 걸었는데 그의 살기는 몇 배나 강력해져 있었고, 심지어 호법사자들도 움찔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이광과 수십 년을 보아왔지만 저렇게 분노한 건 처음 보았다.
쿠구구구
이광은 이미 생사를 도외시한듯 자신의 창극에 엄청난 기운을 모아두고 있었다. 나는 왠지 그것이 이광이 진정으로 생사대적을 마주했을 때 사용하는 비장의 절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작과 연금술사가 황제 앞을 가로막고 호위하는 태세를 갖추었고 한순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로 그 때였다.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백련교주가 말했다.
[ 뭐지? 강력한 기운이 나타났군...]
콰과과광
갑자기 천장이 무너지며 대파괴가 일어났다. 천공에서 떨어진 한 줄기 월영(月影)이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주위를 환하게 만들었다. 그 소란통에 상이 깨지고 후폭풍이 몰아쳤으며, 그 틈에 상황이 급변했다.
"죽어라!"
이광은 더 이상 참지 않고 곧장 뇌명을 발동해서 자신의 최대절초를 동원해서 공격했다. 저것이야말로 이광 필생의 절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기세였다. 거대한 창강이 용틀임을 내뿜으며 황제의 전신을 꿰뚫으려 하자 주작이 마주 검을 들어서 공손검결으로 이광의 공격을 막았다.
콰아앙!!
강기가 부딪힌 폭음이 1차로 울렸지만 이광의 공격은 한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전륜(轉輪)의 기세를 타고 움직인 창은 되려 몇 배나 강력해지며 흐름을 탔다. 주작은 다시금 공손검결의 방어절초를 시전하려 했으나 다음 순간 공간이 뒤틀렸다.
"크헉."
주작이 비명소리를 냈다. 찰나지간에 이광의 절초로 간합이 뒤틀린 바람에 공손검결이 흐트러졌고 동시에 이광의 창이 그의 폐부에 꽂혔기 때문이다. 이광은 한없이 싸늘한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저놈을 죽이려 드면 네놈이 막을 줄 알았지. 이 순간을 위해 잠도 안 자고 무공을 수련했다. 맛이 어떠냐?"
"으윽... 네녀석..."
"뒈져서 선제께 사죄해라!"
퍼퍼펑
이광의 손목이 움직임과 동시에 창강이 소용돌이치며 주작의 몸뚱이가 찢겨나갔다. 나는 어이없는 사신위의 결판을 보자 그제서야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 이광은 처음부터 이 상황을 염두에 두었구나!'
방금 이광이 사용한 것은 단순한 천뢰무극창이 아니다. 바로 내가 지니고 있던 장삼봉 무학의 심득이다. 아마 진소청에게서 무공심득을 전해들은 이광은 짧은 시간동안 혹독한 훈련으로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처음부터 주작을 해치울 생각으로 나와 동행한 것이리라.
그리고 주작과 마주친 상황에서 머리끝까지 열받은 척 하면서 막무가내 공격을 하는 것처럼 주작을 기만한 후, 주작이 방어초식을 쓰자마자 굴공참과 천축검을 이용해서 그의 헛점을 한방에 꿰뚫은 것이다. 제대로 된 기습이자 필살초식이니 실력차를 무시하고 주작을 쓰러뜨린 것이다.
소름끼칠 정도로 냉정한 투사(鬪士)!
그것이 바로 이광인 것이다.
이광이 주작을 해치운 직후 낭랑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 천기를 어긴 황제는 어디에 있는가?]
월영과 함께 은빛으로 내려앉은 존재는 아홉 개의 꼬리를 일렁이고 있었다. 다만 그 모습은 내가 예전에 몇 번이나 보아왔던 것이며, 지금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은빛 광구를 몸 주변에 둘러싼 그 존재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황제를 발견했다.
[ 거기 있는가.]
"......"
황제는 굳어 있었다.
난데없는 상황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은광을 머금고 있던 그 존재가, 손 위에 여우불꽃을 소환하며 아름다운 얼굴에 살기를 돋우었다.
[ 나 미호(美狐), 월요(月曜)의 주인으로서 그대를 토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