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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이 상황에 내게 거부권은 없었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서 비등을 써서 도주하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건 화신류를 비롯해서 백련교까지 완전히 적으로 돌리는 행위였다. 방금 전에도 일부러 최대한 진실을 이야기했던 이유는, 앞으로 백련교가 황궁을 적대하느냐 아니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간에 백련교주라고 하는 거대세력의 축에게 이야기라도 꺼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백련교주가 황궁과의 전투에 참전할 것인지는 다른 문제였지만 적어도 화살을 내게서 돌리는 것만큼은 성공한 것이다.
한백령이 말했다.
"염령(焰靈)으로 이동하자."
"네."
나는 한진성과 한백령을 따라서 한씨세가의 더욱 깊숙한 공간으로 들어갔다. 여기에는 왠 커다란 화덕이 있었는데 불은 피워져있지 않았다. 이윽고 한백령이 손가락을 마주치자 화륵 하고 화염 한 줄기가 솟아올랐고 화덕에 맹렬한 화염이 나타났다.
잠시 후 한진성이 자신의 품 속에서 왠 적색의 구슬을 꺼내서 내게 건넸다. 나는 이게 뭔지 몰라서 어리둥절해했지만, 한진성이 이내 설명해 주었다.
"그 구슬을 손에 갖고 계십시오. 무슨 일이 생겨도 결코 움직이지 마십시오."
한진성의 손이 내 어깨 위에 올려졌다.
후와아앗
"헉."
다음 순간, 나는 시야가 확 뒤바뀌면서 내 몸 주변이 열염(熱炎)으로 불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 화염 속에서도 나는 뜨겁거나 고통스럽지 않았으며 도리어 그 화염의 일부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린 한진성도 마치 화염 그 자체로 변해있는 듯 했다.
화르륵
다시 몸이 어디론가 옮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두세 번의 이동감을 느끼고 나자,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장소로 와 있었다. 커다란 건물에 텅빈 강당이 있고, 강당 한가운데에 거대한 화덕이 있었다. 나는 화덕 바로 앞에 멀뚱히 서 있는 상태였고 그런 내 옆에는 한진성과 한백령이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지?'
한진성이 내 의문을 알아채기라도 한듯 입을 열었다.
"여긴 백련교의 화신류 본단입니다. 교주를 뵐 준비를 해 주십시오."
"......!!"
여기가 감숙성이란 말인가?! 낙양에서 단숨에 여기까지 오려면 적어도 천리길이었다.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는데 순식간에 도착했다는 소리였다. 물론 나도 비등으로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전혀 뜻밖의 상황인건 틀림없었다. 설마 화신류가 순식간에 이동하는 술법을 보유하고 있다니!
"정말로 여기가 본단이란 말이오? 어떻게..."
"방금 드린 염령이 사라져있을 겁니다."
나는 손을 펴서 손바닥을 보았다. 그 말대로 내 손바닥에 쥐어져 있던 둥근 적색의 구슬, 염령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한진성이 고요히 말을 이었다.
"염령신공이 일정경지에 도달하면 자연지물에 동화될 수 있습니다. 이 화덕은 그 공능과 술법을 결합한 장치로, 화염 사이를 이동할 수 있지요. 다만 백웅 님은 염령신공을 익히지 못했으니 염령을 대신 소모해서 함께 이동한 겁니다."
"그럴수가..."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폭염이동의 화덕!
그 말대로라면 화신류는 화덕만 설치되어 있다면 화염에서 화염으로 이동해서 수백 수천리를 격하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여태껏 화신류가 이런 비장의 장치를 숨기고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비등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이 드넓은 중원대륙에서 이런 이동장치가 있다는 건 엄청난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설마 한씨세가의 상행이 크게 발달한 것은..."
"가끔 중요한 거래나 이동의뢰가 들어오면 종종 염령을 사용합니다. 그 덕을 본 적도 많지요."
"......"
한진성의 말대로라면 화신류 본단과 한씨세가 뿐만이 아니라 강호 여기저기에 화덕이 설치되어 있고, 화신류 고수들은 그걸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모양이다. 물론 염령신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사기적인 건 틀림없었다. 대륙 끝에서 끝까지 순식간에 화물을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건 한씨세가가 천하제일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리라.
내가 할 말을 잊자 한백령이 서슬퍼런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말해두겠다. 교주께 있는대로 고해라. 그렇지 않으면 백련교의 힘으로 네 모든 게 파멸하고 말 것이다."
"알겠습니다."
저벅
한백령은 화신류 본단을 걸어나갔다.
"종사님!"
"종사를 뵙니다."
"종사를 뵙니다."
그러자 곳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화신류의 고수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한백령 앞에 부복했다. 걸음을 옮길때마다 그 숫자는 늘어났고, 이내 일백 보를 움직이기도 전에 좌우에 도열한 고수들이 부복하여 장관을 이루었다.
쿠궁...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양옆에 도열해 있는 고수들은 결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강호무림에서 장로급으로 행세할 수 있는 절정고수도 더럿 있었으며, 초절정의 기백을 보유한 자도 적어도 열 명이 넘어 보였다. 그들이 두말하지 않고 한백령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걸 보자 눈 앞에 있는 한백령이 얼마나 엄청난 위치에 있는지를 새삼 알게 된 것이다.
화신류의 수장이자 지존!
무한의 내공을 지닌 극강의 호법사자!
그것이 바로 한백령이었다.
이윽고 우리는 화신류의 영역을 벗어나서 관문 앞으로 향했다. 도중에 왠 청년 무리들을 마주치자, 그 청년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부복했다.
"화신류의 종사를 뵙니다."
"일어나라. 할 일이 있다."
"넵."
"원로원 놈들에게 급한 일로 교주를 뵙겠다 전해라."
"삼노께 먼저 전하겠습니다."
놈은 그렇게 외치고 관문 안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저 놈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과거 내 전생에서 백련교를 방문했을 때 백련교의 치안을 위해서 무리를 지으며 돌아다니는 치안대장이었다. 놈은 영약을 복용해서 자신감이 넘치는지 만날 때마다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저 놈도 한백령을 보자 고양이 앞의 쥐처럼 꼼짝도 못하는 것이다."
잠시 후 관문 앞에 도착하자, 백의의 중년인이 불쾌한 표정으로 관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원로원 소속의 초절정고수인 삼노(三老)로써 나는 예전 전생에 그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삼노는 한백령을 보며 말했다.
"제멋대로군. 교주께선 바쁘셔서 일일이 만나드릴 수 없다 하지 않았소?"
아마 나이가 백여 세 이상으로 추정되는 삼노였지만 한백령에게는 감히 반말을 쓸 수 없는 듯 했다. 한백령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사소한 일이라면 그렇겠지. 그러나 이번 일은 충분히 교의 흥망을 가르는 대사(大事)라고 판단한 것이다. 당장 비켜라."
"명령하지 마시오. 당신이 아무리 호법사자라지만 우리는 당신 명령을 듣지 않소."
"호법사자의 명령은 듣기 싫다 이건가? 쓸데없는 똥고집은..."
비웃듯이 중얼거린 한백령이 말을 이었다.
"낄 때 안 낄 때 구분 못하고 나대지 마라. 제발."
"......!!"
명백한 도발에 삼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초절정고수 특유의 강대한 살기가 주변에 흘러맺히고 저절로 의형강기가 일어났다. 삼노의 내공은 굉장한 수준이라서 강호무림에서 비교할 자가 거의 없어 보였다. 하지만 끝내 출수하지는 못하고 자신의 기세를 늘어뜨렸다.
"알았소. 교주께 말씀을 전할테니 기다리시오."
"빨리 갔다와라."
삼노는 이를 으득 악물고는 빠르게 경공으로 안쪽으로 사라졌다. 아마도 교주전에 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해가 안되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한진성에게 전음을 보냈다.
[ 원로원과 화신류의 관계가 좋지 않소?]
[ 사대무류 중 누군들 원로원과 사이가 좋겠습니까...? 저들은 교주의 친위세력이라서 다들 달갑지 않게 여깁니다.]
[ 수신류도 말이오?]
[ 수신류는 따로 봉지를 받아서 거기에서 마을처럼 모여 삽니다. 외부인과 거의 접촉하지 않아서 알 수가 없습니다.]
[ 흐음...]
그 말대로라면 현재 백련교의 요새 내부에는 풍신류와 화신류 양대세력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뇌신류는 예전에 축출되었으니 논외일테고 수신류는 요새 바깥에 따로 무리지어서 지내는 모양이었다.
"교주께서 면담을 윤허하셨소. 따라오시오."
잠시 후 우리는 삼노를 따라서 교주전으로 들어갔다. 교주는 예전에 보았을 때처럼 발 뒤편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교주 앞에 서자 한백령이 다소곳이 예를 갖추며 부복했다.
"화신류 호법사자 한백령, 교주께 급히 진언드릴 상황이 생겨서 급히 면담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교주의 기휘를 훼손했다면 백번 사죄드립니다."
백련교주는 육합전성으로 대답했다.
[ 아닐세. 불쾌하지 않아. 다만 예전에 이야기했던 방침은 잊지 않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교주께선 예전에 말씀하시길, 호법사자 세 명의 힘으로도 감당이 불가할 경우에만 직접 도움을 요청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외에는 서신교환으로 충분하다 말씀하셨습니다."
[ 잘 알고 있군.]
백련교주의 육합전성이 이어졌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나를 직접 면담하는 상황이라... 아주 궁금해지는군.]
한백령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침묵했다. 그리고는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자는 백웅이라 하며, 이번 면담을 청하게 된 이유입니다."
[ 소상히 말해 보게.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네.]
"백웅. 설명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와서 다시 한 번 부복했다.
"뇌신류의 백웅이 백련교주를 뵙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말에는 한치의 오차나 거짓도 없으니 믿어 주십시오."
그러자 교주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 뇌신류라...?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 좋다, 말해보아라.]
나는 내가 한백령을 만나게 된 일을 포함해서 이번 전생에서 겪었던 일을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동영까지 가서 아오키가하라 수해를 뚫었던 일처럼 사연이 구구절절 길어질것 같은 일은 무관하다고 생각해서 넘겼다. 그렇게 황제와 봉선의식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나자 상당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 이렇게 된 것입니다."
[ ......]
교주는 발 뒤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 원로원은 전원 즉시 출정 준비를 하라.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에게 가서 대기하고 있도록 해라.]
[ 존명!!]
슈슈슉
어디에 있었는지 여기저기에서 육합전성이 울리더니 기척이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원로원 고수들이 은신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원로원에 명령을 내린 교주는 몸을 약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 아주 흥미롭군. 백웅 그대는 어째서 봉선의식의 권리를 얻으려 생각한 거지?]
단순해 보였지만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기에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황궁의 뒤에는 [옛 지배자]의 권속인 복마전이라는 세력이 존재합니다. 그들에게 맞서싸우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신의 권능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 그래서 봉선의식으로 힘을 얻으려 했다... 흐음...]
뭔가 고민하던 백련교주가 말을 이었다.
[ 백웅. 그대는 내 제자가 되고싶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천하제일의 고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 그대들 뇌신류를 숙청한 건 바로 나인데도 말인가?]
"제 스승이신 독고성은 제가 교주의 제자가 되는 걸 반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원에는 오해가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교주를 믿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거짓말이다. 독고성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그는 뇌신류 부흥에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숙청당한 일을 그리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독고성이 교주의 조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교주를 떠볼 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 교주의 속내를 조금이라도 알아봐야 한다.'
효과는 생각 이상이었다. 내 말을 듣자마자 교주는 왠지 부르르 떠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허탈한 듯 말했다.
[ 성이는... 그렇게 생각했단 말인가? 그렇게 되고도 나를 믿어주는가?]
"교주께서 뇌신류를 뿌리째 뽑으려 했다면 여반장이셨겠지요. 잊을 수 있는 원한은 아니겠으나 교주께서 뭔가 이유가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 ... 그런가...]
교주가 잠시 후 말했다.
[ 좋다. 백웅 너를 내 직계제자로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뇌신류의 호법사자로 임명하겠다.]
"......!!"
뇌신류 호법사자!
그 말은 내가 전대 호법사자 이청운의 뒤를 잇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동시에 궁극의 내공인 천령단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한백령도 이의가 없는지 가만히 앉아있는걸로 봐서는 확실시된 듯 했다.
교주가 말했다.
[ 닷새 후 백련교의 힘을 모아서 사악한 황궁을 멸하겠다. 그때까지 모두 충분한 준비를 해두도록 해라.]
"존명."
[ 그리고 백웅. 너는 내 가르침을 받기에 앞서서 먼저 해야할 게 있다.]
해야할 거라니?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교주가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 닷새를 줄 테니 뇌신류의 고수들에게 내 뜻을 전달하고 백련교에 되돌아오라고 충분히 설득하라. 너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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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더위때문에 pc방으로 피신중인데, 오버워치가 재밌다고 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트레이서 고수는 정말 감당이 안되네요. 리퍼나 맥크리는 어떻게든 에임 맞으면 없앨수 있는데 트레이서는 정말...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