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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95화 (29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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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직후 독고성과 청월 일행을 찾아갔다. 그들은 이광을 따라서 청룡무관에서 머물고 있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정체를 숨기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광의 거처인 와룡전에서 얼굴을 본 독고성은 내게 현재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독고성은 난처한 듯 말했다.

"그 망량이란 책사가 황궁에 납치당했다고? 살아있긴 한가?"

"확인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내가 침통하게 대답하자 독고성이 혀를 끌끌 찼다.

"으음...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라면 우리도 거기에 맞춰줘야겠군. 검마와 합류해서 태산노옹과 싸울 준비를 하겠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광이 네게 하려는 말이 있으니 좀 들어 보아라."

나는 힐끔 탁자의 옆에 앉아 있던 이광을 쳐다보았다. 이광은 냉막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당신의 자금력으로 황연 대장군의 거취에 도움을 줬으면 하오."

이 자리는 독고성의 눈치가 보였으므로 정중하게 이야기하는 듯 했지만 말투에는 가시가 돋혀 있었다.

"황연?"

"시치미 떼지 마시오. 당신이 황연 대장군을 여기까지 뫼시고 왔잖소? 지금까지는 내가 관중 육대가의 영향력을 동원해서 그분을 도와드렸지만 슬슬 한계요. 어느 쪽으로든 지원을 해 줬으면 하오."

"흠."

일리있는 소리였다. 황연과 대뢰옥 죄수들을 구출하긴 했지만 이번 생에는 마땅히 활용할 방법이 생각 안나서 이광의 청룡무관에 던져놓고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 상황에서 황연을 어떻게 활용한다는 말인가?

' 금괴를 지원해주는 건 쉬운 일이지만...'

어쩐지 이광이 말하는대로 돈만 지원해주는 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량이라면 이 상황에서 다른 타개책을 고안해냈을 것 같았다. 나는 앉아서 고민하던 중에 황연이 어떤 존재인지를 되새겨 보았다.

대뢰옥에 갇혀있었던 군부의 정점.

이광이 버릴 수 없는 옛 은사이자 동료.

그리고...

문득 번뜩하고 좋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광. 내가 황연 대장군과 이야기할 수 있겠소?"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하오?"

"지금 상황은 그분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군. 서둘러 불러와 주시오."

"알았소."

이광은 군말 없이 황연을 데리고 왔다. 정작 그 자신은 황연의 가능성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윽고 황연을 마주하자, 나는 그가 꽤 기력을 되찾아서 헌앙한 무장(武將)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자리는 단둘이 이야기하도록 마련된 자리다. 뇌신류 고수들은 방해되기에 내가 우긴 것이다. 나를 대면한 황연은 훗하고 웃었다.

"간만이군. 그간 잘 지냈는가?"

"저는 잘 지냈습니다. 장군께서도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나도 물론 잘 지냈네."

겉치레 인사가 지나간 후 나는 황연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황 대장군. 현재 황궁에 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큰 일이라니 무슨 소린가?"

"제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니 충격받지 말고 잘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태산노옹의 정체가 사신위 주작이었으며 황제와 주작, 제갈부가 어떻게 봉선의식을 진행했는지를 이야기했다. 망량이 봉선의식의 권리를 빼앗긴 것도 이야기했으며 봉선의식이 무엇인지도 황연에게 설명했다.

"허어... 그럴수가...!!"

황연은 이야기를 듣던 중 믿지 못하는지 몇 번이나 눈을 껌벅이며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그같은 순수무장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주술적이고 뜬구름잡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진실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며 이야기를 해서인지 잠시 후 납득하는 듯 했다. 황연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지금의 폐하께서는 이계의 마신(魔神)의 도움으로 불로불사가 되셨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 예상이지만, 아마도 황궁 지하에 있는 전국옥새를 이용해서 '문'을 열려 할 겁니다. 온세상 곳곳에 대명제국의 군대를 파견해서 확장전쟁을 시작하려 하겠지요."

"확장전쟁이라니..."

"저희는 납치된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맞서싸울 생각이지만 황 장군은 어떠십니까? 지금 무엇이 충(忠)이라고 여기시는지요?"

내 물음에 황연은 난색을 표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서 좀 생각을 정리해야겠군..."

"저는 황 장군께서 기회를 보아 군(軍)을 일으켜 주셨으면 합니다."

"......"

"말씀드렸다시피 현 황제는 창힐의 언령을 사용해서 그 어떤 인간이든간에 강제로 자신의 명령권에 복속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정치고 뭐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모든 걸 파멸시키고 말 겁니다."

"으음!"

일의 심각성을 깨달은 황연이 침음성을 흘렸다.

언뜻 대명제국의 황제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듯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조정의 중신이나 권신, 그리고 장군, 각지의 친왕, 성주 등을 통제하면서 적절하게 조율해야만 했다. 그리고 황제가 지닌 권력이 현실적으로 한계가 정해짐에 따라서 정치가 최소한의 투명성과 자정성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황제가 창힐의 언령을 써서 누구든지간에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이상 이제 절대권력이 부패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바른 소리를 간언할 신하들이나 조정의 인재들이 모조리 마비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황제가 제멋대로 폭주하더라도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황연이 말했다.

"자네는 폐하를 견제하는 게 충성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현재의 황제가 말도 안되는 인물이라는 건 황 대장군께서 더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가 천자(天子)로서 대명제국을 다스릴 자격이 없는 폭군이라면, 제국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진정 군인된 자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흠..."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고대 은주시대의 폭군이었던 주왕을 생각해 보십시오. 서제후 희창은 달기의 만행과 주왕의 주지육림에 천하의 운이 다한 것을 깨닫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현재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장군 뿐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을 거듭하던 황연이 입을 열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무엇을 말입니까."

"폐하께서는 그저 대명제국을 크고 강하게 일으키시려고 봉선의식으로 불로불사를 얻으셨을 수도 있는 걸세. 강대한 제국의 번영을 위해서 사소취대를 선택한 것일수도 있는 거지. 폐하의 선택이 틀렸다고 어찌 부하가 함부로 결단을 내릴 수 있겠나."

"웃기지 마십시오!!"

나는 버럭 화를 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대명제국이 크고 강해진다 한들 그건 누구를 위한 제국입니까? 황제와 측근의 극소수만이 절대권력을 누리며 그 아래 있는 자들은 힘껏 착취당하다 죽게 될 겁니다. 이족의 공양의식에 무고한 민초들이 희생된 정황도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권력을 누릴 수만 있다면 인간을 괴물에게 인신공양하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

"이 자리에 망량이 없지만, 그가 있었다면 저와 똑같은 말을 했을 겁니다. 천하의 대의(大義)를 위해 싸워주실 수 있는 건 장군 뿐입니다."

갑자기 황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핫!!"

"엇..."

나는 난데없이 황연이 웃자 당황했다. 웃을만한 이야기가 아닌데 황연이 웃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웃음을 터뜨리던 황연은 씨익 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자네는 걸물(傑物)일세. 잠시 자네의 속을 떠봐서 미안하네."

나는 황연의 진의를 알아챘다.

"황 장군께서도 황궁에 대적하길 결의하셨던 겁니까?"

"그렇네. 자네가 오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지. 그리고 나 또한 자네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네."

그는 창문 바깥의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과거 진천휘 장군이 억울하게 모살당할 때부터 폐하께 회의감이 들었네. 두뇌가 뛰어나고 지배력이 있는 황제라는 평이었으나, 정통성이 부족해서인지 자기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분이었지. 나는 거기까지는 충분히 황제로서 있을만한 자세라고 생각했지만 대뢰옥에 투옥당한 이후로 생각이 크게 바뀌었네."

황연은 한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황제는 대명제국이 아니야. 대명제국을 대표할 순 있어도 국가 그 자체가 될 순 없지. 군림(君臨)하되 지배할 수 없는 게 바로 황제의 위치이며, 그렇게 되어야 태평성대가 이룩되는 것일세. 이건 중화의 유구한 역사에서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던 법칙이라고 생각하네."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고요?"

"그렇네. 중화(中華)는 강력한 통치자를 필요로 하고 일원화된 사고방식과 충성을 요구하게끔 되어 있지. 그건 거대한 대륙에서 거대한 민족을 다스리게 되면서 필연적인 일일세. 그러나 그 전제군주의 권력이 확립되면 될수록 세상은 썩어갈 수밖에 없네."

"......"

"지배하고자 했던 황제는 예외없이 천하를 도탄에 빠뜨렸지."

황연은 잠시 고적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지금도 나는 정통성 있는 진천휘 장군이 꼭 황제가 되었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 하지만 나는 황제 또한 중화를 영도하는 천직(天職)에 불과하다 생각하며 절대자가 되려 할수록 모든 것이 뒤틀어질거라고 확신하고 있네."

"틀림없을 겁니다."

"대명제국의 인민을 거침없이 괴물의 밥으로 줄 수 있는 황제라면 없는 편이 낫네. 게다가 불로불사라니 최악이군! 나는 군을 일으켜서 황제에게 대적하겠네."

나는 확언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황 장군. 결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황연이 미온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어물쩡한 태도를 보였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지금 이런저런 이야기로 포장하긴 했지만 결국은 우리가 역모(逆謨)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실패하면 구족이 멸하게 되는 역모이니 만큼 함께할 동지를 모으는 건 신중하고 또 신중해도 모자랐다.

나는 황연에게 말했다.

"당장 움직이면 황제의 권능 때문에 군세가 무의미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당분간은 제가 금괴와 세력을 지원해 드릴테니 힘을 쌓으십시오. 황제의 언령을 무력화시키고 나면 그때부터 움직이시면 될 겁니다."

"믿고 있겠네. 오늘부터는 아주 바빠지겠군."

원래는 망량이 했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내가 대신해서 황연을 설득해서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황제를 쓰러뜨리고 나서도 복마전이 어둠의 세력을 움직여서 황궁을 장악하게 되면 무의미했으므로, 황연이 새로운 세력을 일으켜서 정권을 장악해줄 필요성이 있었다. 황연의 역할은 적어 보였지만 아주 중요했다.

이걸로 같은 배를 탄 셈이다. 나는 황연에게 질문했다.

"장군. 여쭤볼 게 있습니다만 사신위 주작에 대해서입니다."

"흠. 그 질문을 할 거라 생각했네."

침음성을 흘린 황연이 말했다.

"사신위 주작은 아주 신비스러운 인물이었네. 조정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도 않았고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 겨우 전해들었지. 사실 자네에게서 그 자의 정체가 태산노옹이며 강호의 초절정고수이며 술법사라는 것도 처음 들었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보니 뭔가 수상했던 낌새는 있었군."

"수상했던 낌새요?"

황연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몇십 년 전, 선제 폐하께서 붕어하실 때 나를 포함한 조정의 중신과 중요인물들이 그 자리를 지키러 갔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싸늘하게 식어있는 선제의 옥체와, 황태자 전하를 발견했네. 황태자 전하가 가장 먼저 붕어하신 선제의 곁을 지켰다 하며 임종시의 유언을 전해들으셨지. 그 때의 황태자가 현 황제일세."

"......"

"그리고 황태자의 곁에는 주작이 함께 있었지. 주작은 자신이 황태자의 후견인이라고 밝혔네."

이게 무슨 소린가?

나는 뜻밖의 증언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선제 폐하의 임종때 주작이 있었다고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신위 주작을 눈으로 확인했던 날이었지."

수상하다.

내가 침묵하자 황연이 말을 이었다.

"그는 아주 멀끔하고 청수하게 생긴 백면서생같은 인물이었다네. 한평생 글공부만 하며 살아왔을 것 같은 외모였지. 또한 나중에 전해듣기로 그의 대외적인 직책은 황궁의 대천문관(大天文官)이었지. 내황각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천문관의 수장이었으니 나조차도 그때 얼굴을 처음 봤던 게야."

"대천문관... 설마... 주작이 내황각주(內皇閣主)였단 말입니까?"

"그렇네."

나는 순간 멍해졌다.

' 서... 설마?'

지금 황연의 증언은 굉장히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주작은 태산노옹이며, 제갈부와 동일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제갈부는 현 내황각주였다. 그 이야기는 선대(先代)의 내황각주가 바로 주작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황각주의 직위가 주작에게서 제갈부에게 옮겨갔다는 뜻이다.

또한 망량에게서 듣기로 내황각의 직위는 천문관이었다.

[ 나는 전직 천문관 출신이오. 현재는 황실을 나와서 선사 노릇을 하면서 살고 있소.]

아주 옛날에 망량을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서 들었던 망량 제갈현의 자기소개가 떠올랐다.

천문관이란 한 해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황실의 번영을 기원하며, 나아가서는 국가적인 도교(道敎) 의식을 주관하는 제사(祭事) 직위였다. 그들은 황실 내 직책중에서도 특별하게 취급되는 듯 하며, 과거(科擧)로 뽑히는 직위가 아닌 세습직이었다.

[ 세습직을 관둘 수도 있단 말인가?]

[ 나는 역량이 부족했소. 내 형님이 더욱 특출났기에, 나는 수도에서 쫓겨나서 낭인으로 살게 된 것이오.]

망량의 형은 제갈부다. 망량은 특출난 재능을 지닌 중원지보 제갈부에게 밀려서 내황각주의 직위를 빼앗긴 셈이었다. 그리고 세습직이라는 건 혈연에 따라 직계비속에게 이어지는 직위이다.

그렇다면, 현 내황각주가 아닌 선대 내황각주가 주작이라면, 그의 정체는...

"그럴 리가..."

말도 안 된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설마 그 자가 주작이었다니?!

그렇다면 망량이 난데없이 기습당해서 납치당한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아무리 망량이라도 그 정체를 예상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으음... 이야기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럼 다행일세."

나는 당황하면서도 황연과의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금괴로 황연의 기본적인 자금을 지원함과 동시에, 향후 화신류에게서 자금을 지원받아서 황연의 세력을 돕기로 한 것이다. 한진성이 보유한 장원과 무림세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황연은 금세 군부에서의 위광을 되찾고 군을 일으킬 잠재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황연과 논의한 내용은 이내 이광과 독고성에게도 전했다. 그들은 역모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크게 놀라는 기색이었으나, 황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하자 곧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이광은 불편해하면서도 황연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였다.

나는 이윽고 이광과 일대일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광. 당신도 주작의 진짜 정체를 짐작하시오?"

"......"

이광은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러더니 대답했다.

"너도 알아낸 모양이군."

"당신은 아마 태산에서 주작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부터 알았을 것이오. 아니, 그 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 같은 사신위니까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지."

"왜 말하지 않았소?"

이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걸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어차피 그 시점에선 태산의 팔진도를 뚫을 수 없다는 사실에 변화가 없었다."

"그건 당신 생각이오. 그 사실을 몰랐던 탓에 망량이 당했을 수도 있소."

"것 참 안됐군. 위로해 주지."

빠득!

나는 순간적으로 눈에서 불꽃이 치솟는 걸 느꼈다.

이 자는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광이 그 정보만 제대로 생각해서 전달했어도 망량이 좀 더 처신을 조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큰 계획의 그림도 달라졌으리라. 그러나 망량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자에게 의표를 찔린 셈이 되어버렸고 결과적으로 일이 꼬인 셈이었다.

나는 이를 으득 악물고는 검을 겨누었다. 그리고는 사납게 말했다.

"난 도무지 당신과는 맞질 않는군. 평생 그럴거야."

"신기하군. 나도 그런 기분이 든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이광과 사생결단을 낼지 고민했다. 당장 저 놈을 찢어죽여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전에 진소청이 말했던 게 있는데다가, 이광이 현 시점에서 중요한 전력인 게 사실이었기에 억지로 인내심을 끌어내었다.

나는 검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사과하란 말은 하지 않겠소. 대신 당신이 알고 있는 주작의 수법과 약점을 말해 주시오."

"주작의 약점이라... 그런 게 있을까?"

"뭐라고?"

이광은 제법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 자는 대대로 이어오는 황궁의 수호신이었다. 내가 전성기 때 주작과 무예를 겨룬 적이 있었는데 딱 호각의 태세였고, 그나마도 그가 상당히 봐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분명히 호법사자급 존재이며 무공과 술법을 동시에 최절정으로 연마한 자다."

"......"

"현재의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나와 동급의 고수가 최소 3명은 필요하다."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이광도 그나름 미안한지 주작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내려준 듯 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자의 무공은 수라천광대법과 공손검법이라 들었소. 그 무공의 파해법은 없겠소?"

"나도 잘 알고 있는 무공이다. 수라천광대법은 굉장히 뛰어난 최상승의 신공이며 공손검법도 절세무공이지. 공손검법을 상대하는 요령 정도는 알려 주겠다."

"요령이라?"

이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손검법은 사상오행의 원리에 의거해서 만들어진 검법이다. 무공의 연원부터 의념절기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거지. 그래서인지 상대하다보면 상대의 흐름에 끌려들어가며 수세에 몰리게 되는데, 이걸 막기 위해서는 대등한 무리(武理)로 상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상당히 괜찮은 조언인 듯 했다. 나도 오랫동안 무공을 수련해서인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아들은 것이다.

' 직접 상대해 본 진소청과 얘기해 보면 파해식이 나올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고맙다는 말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난장판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이광이 중대한 정보를 숨긴 탓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광에게 경고했다.

"한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긴다면 당신은 그만한 댓가를 치를 것이오."

"무서워 죽겠군."

이광은 툭 내뱉고는 가 버렸다. 정말 끝까지 재수없는 인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요즘 폭염때문에 생활리듬이 깨져서 꽤 힘들군요... 그래도 1일 1연재를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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