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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독고성 일행과 헤어진 후 진소청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이광은 내가 진소청을 데리고 가는게 마뜩찮은 모양이었지만, 독고성이 그의 신변을 보증했기에 어쩔수없이 허용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독고성은 내 기억을 읽었으니 내가 진소청에게 해를 입힐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어떻게 하지.'
다시 만나는 날까지 진소청을 수련시켜 주기로 했지만 여전히 갈등된다. 물론 진소청이 이대로는 더 성장하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역으로 내가 그에게 가르침을 주기 시작하면 그가 성장하는 속도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될 것이다. 진소청의 재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나는 생각하던 끝에 진소청을 데리고 진랑곡으로 향했다.
파앗!
진랑곡에 도착하자 천우진이 있었다. 천우진은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지 한 손에 큰 갈고리를 들고 있었다. 그는 뚱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형은 귀환했소. 오두막으로 가면 볼 수 있을 것이오."
"제갈사는?"
"하도 시끄럽게 난리를 쳐서 다시 이차원에 봉인했소."
"......"
떠난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도 또 봉인될 정도라면 어떤 난리를 친 걸까? 천우진이 불친절한 성격인걸 감안하더라도 제갈사와 상성이 안 맞는게 틀림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망량과 만나기 위해 오두막으로 갔다.
오두막에 가자 평상에 망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망량은 우리를 보자 반가운 듯 말했다.
"오, 왔구려!"
"망량. 갔던 일은 잘 됐소?"
망량이 씩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나는 이제 새로운 힘을 얻었소."
"축하하오."
아닌 게 아니라 망량에게서는 이전까지 없었던 영기(靈氣)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술법사로서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망량은 힐끔 내 옆에 서 있는 진소청을 보고는 말했다.
"동행이 있구려."
그러자 진소청이 망량에게 포권했다.
"반갑소. 청룡무관의 진소청이라 하오."
"아... 반갑소."
망량은 이미 진소청을 알고 있는지 편하게 인사를 받았다. 하긴 전생의 기억이 전승되었으니 망량이 진소청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다만 크게 아는척하지 않을 뿐이다.
잠시 후 나는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망량에게 설명했다. 망량은 이야기를 듣던 중 태산노옹과 주작의 이야기가 나오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한참동안 침묵을 하더니 내게 말했다.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군."
"무슨 소리요?"
"주작이라고 하는 변수가 생긴 이상 우리도 대응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오."
그렇게 말한 망량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설명을 하기에 앞서서 확실히 해둘 게 있소."
"어떤 걸 확실히 하란 말이오?"
"당신은 진소청을 진정한 동료로 받아들일 생각이 있소?"
망량의 질문에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지금 내가 가장 골치아프게 생각하고 있는 문제를 짚었기 때문이다.
"판단이 서지 않아서 찾아온 것이오."
"좋소. 내가 대신 말해 주지."
망량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깨달음과 가르침을 아끼지 마시오! 그리고 동료는 가능하면 늘릴수록 좋소. 이 방침을 앞으로의 전생에서도 유지하는 게 좋소."
"왜 그렇소?"
내가 반문하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흑요석으로 기억을 전달한다는 건 내게 있어서 양날의 검이다. 상대방을 구구절절 설득하는 것보다 열 배는 효과가 좋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상대방에게 내 최대의 비밀을 알려주는 셈이다. 만일에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내가 크게 손해보며 죽을수밖에 없다.
그러자 망량이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의 목표가 개인의 입신양명이라면 흑요석을 쓸 필요가 없겠지. 그러나 현재의 당신은 인과율을 모아서 신적인 존재와 싸울지도 모르오. 그렇다면 동료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일에 있어서 아까워해서는 안되오."
"누군가가 배신을 한다면?"
"그건 도리어 당신에게 이득이지. 그 자를 앞으로 동료로 하지 않으면 되니까."
"......!!"
"지금 우리는 절대적으로 힘이 부족하오. 그 힘을 모을 때까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마시오."
나는 망량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의 힘을 모으고 또 모아도 신의 권능에 도달할지 어떨지를 알 수 없으니, 인간을 일일이 의심하기보다는 최대한 동료를 늘리라는 소리였다.그게 내게 있어서 최대한의 이득인 것이다.
"저기, 지금 당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만..."
그 때 진소청이 끼어들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진소청을 한번 쳐다본 망량이 나직이 말했다.
"백웅. 선택은 당신 몫이오. 어떻게 하겠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말에 따르겠소."
스윽
' 이게 마지막 흑요석인가. 다시 한 번 캐러 가야겠군.'
동영의 흑요석 광산에 다시 들러가야겠다. 나는 잡생각을 하면서 진소청에게 흑요석을 내밀었다. 진소청은 멀뚱멀뚱 흑요석을 쳐다보았지만 나는 그에게 권유하듯 이야기했다.
"진소청. 이 흑요석을 받으면 당신은 우리가 했던 대화가 어떤 뜻인지 알게 될 거요."
"무슨 소리요?"
"그리고 당신과 나의 관계도 지금과는 달라지겠지."
"......?"
"확실한 건 당신이 흑요석으로 내 기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는다는 것이오."
진소청은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무공이 증진될 수 있소?"
나는 피식 웃었다.
"물론이오."
"일단 당신들을 믿어 보겠소."
잠시 후 진소청이 흑요석에 손을 올리자, 나는 기억 전송의 술법을 시전했다.
파아앗!
진소청은 많은 양의 기억을 받아들이자 혼란스러운듯 눈빛이 잠시 몽롱해졌다. 그는 잠시동안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약 반 각이 지나고 나자, 진소청은 몸의 경직을 풀며 고개를 저었다.
"믿을 수가 없군."
그는 무탈하게 기억을 전승받은 모양이었다.
"믿을 수 없어도 사실이오, 사형."
"......"
진소청은 아직도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내 기억은 무려 17회차나 되는 삶의 기록이었다. 독고성의 경우는 모르는 걸 대부분 건성으로 넘겨버렸겠지만 진소청은 나와 접점이 많았기에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전생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는 기분이리라.
한참 후 진소청이 말했다.
"당신은 백여 년이나 노력해서 결국 나를 뛰어넘었군. 대단하오."
"비꼬는 거요?"
"그렇지 않소. 보통이라면 당신처럼 노력하기 전에 지쳐서 그만두고 말 것이오."
진소청은 비꼬는 기색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탄하는 기색이었다. 그것은 그가 천 년의 무로(武路)를 목표로 하는 천재이기에 낼 수 있는 과감없는 평가였다. 진소청이 나를 어려워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다만 나는 백웅 당신을 사제라고 칭하기가 껄끄럽구려. 과거 전생에서는 내가 사형이었다 해도 현재 당신의 배분은 내 스승과 비슷하오. 나는 당신을 뭐라 부르면 되겠소?"
확실히 호칭이나 대우는 고려해볼 문제였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앞으로도 서로를 평대합시다. 나는 진소청 당신을 내 진짜 동료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으니, 앞으로 우열이란 건 있을 수가 없소."
진소청이 투덜거렸다.
"어쩐지 내가 손해보는 느낌인걸."
"난 백 년이나 노력했잖소? 감안해 주시오."
"끄응."
잠시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핫."
진지해지려면 한없이 진지해지는 이야기였지만 나도 진소청도 큰 거부감없이 넘길 수가 있었다. 그것은 원래부터 서로에게 나쁜 감정이 없는 사이였기 때문이리라. 물론 내게는 진소청의 재능에 대한 열등감이 있으나 그것을 이번 전생에서 꽤 해소했기에 그와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듯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망량이 진소청에게 말했다.
"당신도 이제 알겠지만, 백웅의 목표는 인간세계를 암중에서 어지럽히는 신적인 존재들의 비밀을 밝혀내고 혼란을 바로잡는 것이오. 그 와중에 얼마나 강력한 존재가 나타날지 알 수가 없소. 그래도 우리와 함께 싸워나갈 자신이 있소?"
진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나는 사실 이 제안이 아주 기쁘오."
"기쁘다고?"
진소청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사실 그동안 허무감이 강했소.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서 열심히 무예를 수련하고는 있었으나, 천 년의 무로는 너무나 길고 머나먼 목표였소.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망망대해를 돌아다니는 기분이 들었지. 그래서 무예의 수련도 다소 정체되어 있었소."
"......"
그랬구나.
나는 왠지 진소청이 청룡무관에만 있을 경우 성장이 거의 멈춰버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진소청은 어렸을 적에 의문의 무인에게 자극받았긴 하지만 지루한 일상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하물며 재능도 천하제일로 뛰어나니 그를 자극할만한 인재도 주변에 한 명도 없었을테니, 허무감이 닥쳐오는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흑요석으로 기억을 보기 전에도, 나는 백웅 당신에게 크게 자극을 받았소. 나보다 어린데도 나보다 강한 무인이 있다는 건 큰 충격이었지."
"당신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 재능이오."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줄 뿐이오. 백웅 당신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되오."
무덤덤하게 말한 진소청이 말을 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당신의 동료가 되어 따라가면서 수준을 높이고 싶소. 당신이라면 내가 원하는 궁극의 무(武)에 도달하게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
그 순간, 나는 진소청이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말이 바로 다음순간 일어날 진실처럼 느껴졌다. 다른 자들이 저 말을 하면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겠지만, 진소청이 그렇게 선언한 이상 그건 반드시 이루어질 일처럼 느껴진다. 그게 바로 불가일세의 천재 진소청인 것이다.
나는 그 모습에 알 수 없는 경외심을 느꼈다. 재능이 조금 차이나면 열등감이 복받쳐 오르지만, 이 정도로 그릇이 다르면 차라리 순수하게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 그래. 진소청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이대로라면 신적인 존재와 싸워야할 것이다. 진소청이 인간의 무예로 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지 않을까? 나는 갑자기 내 목표로 향하는 여정이 단축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휩싸였다.
"알았소."
나는 힘주어 말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당신을 지원해주겠소."
내 마음속에 결심이 선 것이다.
"자자, 그러면 진짜 작전을 세워 봅시다."
나와 진소청의 이야기가 끝나자 망량이 평상에 올라와서 앉았다.
"....."
셋이 한 상을 두고 마주앉자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경 수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우리가 한데로 뭉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망량도 어색한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꺼냈다.
"험험. 아무튼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부터 이야기하겠소."
"말해 주시오."
"우선 기본적으로는 백웅 당신은 여기 진랑곡에서 진소청을 키워주면 되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반천맹을 조직할 생각이오."
이건 무슨 소리인가? 나는 놀라서 말했다.
"이제 와서 반천맹을 조직한다고? 그건 좀 무리 아니겠소?"
지금은 전생 시점에서 꽤 지나있기에 황궁의 마인병사 양성도 꽤 궤도에 올랐을 것이다. 즉 황궁의 전력이 급격히 강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망량이 반천맹을 운영하다가 도중에 황궁의 공격으로 허물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게 있었다.
그러자 망량이 선선히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만드는 반천맹은 황궁과 정면에서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오. 사후처리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요."
"무슨 말인지 설명해 주시오."
"백웅. 당신도 알다시피 이번 생에서 천계의 반응이 이전과 다르오."
망량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과거 황건의 세력을 만들어냈던 천계의 노선(老仙)이 지상에 내려와서 활동하는 중이고, 서왕모는 미호에게 월요의 회수를 명령했소. 이전에 없을 정도로 천계의 활동이 활발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요청한 봉선의식 때문이오."
"봉선의식과 천계의 행동이 어떤 관련이 있는 거요?"
망량은 잠시 고즈넉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봉선의식을 치른 자가 불로불사의 권능과 마법을 얻으며 [옛 지배자]와 통하는 제사장의 권위를 손에 넣는다는 건 전에도 말했을 것이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새로운 지배자가 탄생할수도 있겠지."
"새로운 지배자?"
"[옛 지배자]란 존재들은 주술적인 격(格)이 극한까지 올라간 결과 탄생한 자들이오. 봉선의식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에 못지않은 권능을 지닌 지배자가 나타날지도 모르오. 천계는 바로 그것을 걱정하고 있소."
새로운 지배자.
새로운 신(神)의 탄생.
확실히 그건 천계가 걱정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앞서 진시황이나 무측천이 봉선의식으로 힘을 얻어서 암천향에 갔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왜 그 때는 천지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은 거요?"
"그 때는 봉선의식에서 가호를 내려준 신의 격(格)이 낮았기 때문이오."
망량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봉선의식이란 [옛 지배자]를 태산에 소환하는 의식이오. 어떤 자가 불려나올지는 누구도 모르지. 만일에 격이 낮은 자가 소환된다면 안심할 수 있지만, 격이 높은자가 소환될 경우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지도 모르오."
"격이 높은 자?"
"외신(外神)을 말하는 거요. [옛 지배자]조차도 신으로 섬기는 말도 안되는 존재들..."
망량은 중얼거렸다.
"천계는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겠지. 그래서 지금 인간세상에 종교를 만들어내서 세력을 갖춘 후 우리를 없애려드는 것이오. 하북(河北)에서 지금 발호하고 있다는 신규종교는 언제고 적이 되어서 우리를 가로막겠지. 그 배후에는 대라신선이 있소."
"으음."
"미호가 월요를 찾으라는 명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오."
"그건 또 무슨 상관이오?"
이어진 망량의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천계에서는 월요의 봉인을 푸는 한이 있어도 봉선의식을 막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오. 당신이 수요를 지니고 있으니 칠요에는 칠요로 대응해야 하지 않겠소?"
"......!!"
나는 놀라서 잠시 경직되었다. 그리고는 당황해서 말했다.
"하지만 미호의 힘으로는 결코 월요를 얻을 수 없소. 적어도 호법사자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텐데 어찌 그게 가능하오?"
"당신은 그 명령을 내린 게 서왕모라는 사실을 잊고 있구려."
"서왕모가 뭐가 어쨌단 말이오."
망량은 한숨을 쉬었다.
"미호가 월요의 봉인지를 찾기만 하면, 서왕모가 인과율의 혼란을 감수하고 직접 미호에게 강림해서 월요의 수호자와 싸울 수도 있소. 서왕모는 여동빈보다 몇 배는 강한 천신(天神)이니 충분히 월요의 봉인을 풀 수 있을 것이오."
"......"
나는 생각보다 일이 안좋게 흐른다는 걸 알아차렸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떠오른 최악의 상상을 인정하고싶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미호가 칠요의 주인이 되어서 내 앞을 가로막을 거란 말이오?"
"그렇소. 하지만 그건 인과율을 혼란스럽게 하며, 세상의 혼란을 부채질하는 행위겠지. 그 때 일어날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내가 반천맹을 설립하려는 것이오. 또 반천맹과 뇌신류를 움직여서 오악의 천제단을 확보하는데도 써야겠지."
망량은 단호하게 말했다.
"시간문제요. 당신은 서둘러 결정하시오."
망량이 직접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미호를 아군으로 만들던가 혹은 배제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간에 내게는 어려운 선택지였다.
나는 고뇌하다가 말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봉선의식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이오? 그냥 황궁과 달기를 쓰러뜨릴 힘만 얻으면..."
"전혀 그렇지 않소. 우리는 이번 생에 무리를 해서라도 봉선의식을 해야만 하오."
망량은 물러설 기색이 없어보였다. 그는 주먹을 불끈쥐며 말했다.
"내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자부선인(紫府仙人)의 삼황내문을 얻은 이유가 바로 그거요. 나는 삼황내문을 해석한 결과, 우리가 봉선의식에서 삼황오제의 유물을 사용한다면 삼황오제를 소환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소."
아마도 칠요 중에서 내가 가진 수요를 매개체로 삼황오제를 불러내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민하며 말했다.
"삼황오제를 소환해야만 하는 거요?"
내가 회의감에 젖어서 말하자 망량이 말했다.
"수요를 제물로 바치면 소환될 삼황오제가 누구겠소? 바로 전욱이오. 전욱은 바로 하늘과 땅의 연결을 끊은 자요."
그가 눈을 빛냈다.
"전욱에게서 삼황오제의 비밀을 듣고, 나아가서는 하늘과 땅을 다시 잇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목표요. 그게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천계에 직접 도전할 수 있게 되며 인간에게 금지되어 있던 여러가지 권능을 손에 얻을 수 있을 것이오."
"인간에게 금지된 권능이라니?"
"잘 몰랐겠구려. 전욱이 하늘과 땅의 연결을 끊으면서 인간의 술법은 많이 퇴보하고 말았소. 태초의 인간이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던 여러가지 권능이 천계에 봉인되어 있소. 그걸 해금(解禁)하게 된다면 우리는 더욱 강해질 수 있소."
"그렇군..."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되자 망량은 떠날 채비를 했다. 그는 오악의 천제단을 점검해보러 가겠다고 말하면서 내게 말했다.
"하는 김에 태산에 있다는 주작이라는 자가 어떤 자인지도 알아 보겠소. 시덥지 않은 자라면 내가 바로 처치해버리지."
"그냥 내가 따라가는 게 낫지 않겠소?"
"그럴 필요 없소. 삼황내문이 있으면 대부분 해결될 테니 당신의 시간을 아끼시오."
망량은 전에 없이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 같았다. 아마도 선인의 유물을 얻어서 단숨에 상급 술법사의 경지에 오른 게 그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망량에게 걱정스럽게 말했다.
"만일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하시오."
"물론이오. 그럼."
망량이 떠나가자, 나는 잠시 고민했다.
' 미호가 월요의 소재를 알아내려면 시간이 걸릴 거다. 천계도 월요가 어딨는지 잘 모르는 눈치였고, 정작 그 위치를 알고 있는 십이율주는 정보를 숨기고 있지.'
경험으로 볼 때 미호가 자력으로 월요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십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나는 그 전에 미호와 만나서 어떻게든 해야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소청을 가르치면서 좀 더 내 힘을 쌓아야 했다.
나는 진소청에게 말했다.
"그럼 전승을 시작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