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288화 (28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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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신승 명호대사의 인도에 따라 소림사 내부로 들어왔다. 그들은 일반 제자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더욱 깊숙한 부지 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커다란 탑과 대웅전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자 신승 명호대사가 뒤편의 야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웅전 뒤편의 저 산에 천제단이 있네."

"......"

나는 내심 이 곳의 천제단에 잠입하는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림사의 대웅전이라 함은 소림의 장문인은 물론 최정점에 선 고수들이 거처하고 회의하는 장소였으니, 대웅전 뒤편 야산이 얼마나 들어가기 힘든지는 불문가지였다.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할지도 모르는 장소에 신승이 데려다 준 셈이었다.

나는 신승에게 질문했다.

"망량선사께서 말씀하셨다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

"그건 좀 있다 이야기해 주겠네."

짧게 대답한 신승이 주변에 있던 자신의 사제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 사제들."

"네."

휘익

나는 신승과 함께 경공으로 야산에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천제단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천제단의 형상을 보며, 이게 항산에 있던 것과 대동소이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관리상태에 차이는 있지만 역시 다른 점이 없는 것이다.

신승이 말했다.

"이 천제단은 늘 소림제자들이 관리하고 있네. 다른 오악의 천제단과 달리 항시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무슨 뜻입니까?"

"천제단의 의미를 알고 있는 건 현재 오악 중에서도 소림사 뿐이라는 말일세. 이 곳이 천지간을 뒤틀어놓은 신화(神話)의 장소라는 게 전승되어 오는 건 소림 뿐일세..."

"......!!"

신승은 천천히 걸어서 천제단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천제단의 중앙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비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삼황오제 전욱이 하늘과 땅의 연결을 끊었다 함은 바로 천제단의 기능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렸다고 함일세. 천제단이 기능을 상실한 순간부터 신은 인간에게 개입하기 힘들어졌지. 인간 또한 승천(昇天)이 힘들어졌고."

"기능을 상실한 천제단이라면 관리하는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기능을 상실했다 한들 천제단은 천제단. 신이 만들어놓은 인간계와의 통로일세. 나중에 언제 어떻게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찌 함부로 놔둘 수 있겠는가. 다시 사용할 날까지 관리하는 게 인간의 의무일세."

"......"

나는 신승이 신화적인 전승에 밝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쩌면 술법사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뭔가를 숨기고 있으시군요. 그리고 망량선사와 관련이 있다니..."

신승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왜 그러는가? 망량선사께서는 대륙의 모든 방문좌도를 관리하는 존재이자, 인간의 수호신(守護神)일세. 빈승은 소싯적부터 망량선사의 도움을 받아 왔지."

"소싯적부터요?"

"빈승 뿐만이 아닐세. 현재 모든 인간은 그 분의 노력 덕분에 생존하고 있다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신승이 말을 이었다.

"망량선사께서는 각지의 현사(賢師)와 진인(眞人)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파천(破天)의 가호를 종종 내려주시곤 한다네. 부질없이 꺾일 운명이었던 인간들이 성장해서 악(惡)에 맞서서 정의의 기치를 지켜나갈 수 있는 건 그 덕분이지."

"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짜증나는 흑묘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니! 내가 놀라자 신승이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 세상에는 [옛 지배자]라고 불리는 거대한 악신들과 그 추종자들이 드글거리지. 인간의 사고방식과 문화는 손쉽게 악 성향에 물들어야 정상일세. 그렇게 되지 않고 인간이 선(善)과 정의를 추구할 수 있는 건 망량선사께서 악신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인 걸세."

"......"

"그 분은 불교나 도교의 가치관에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세. 좀 더 우주적인 존재일세."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오늘 자네가 찾아올거라는 사실도 망량선사께서 현몽으로 일러주셨지. 빈승은 그 덕에 자네와 이야기하게 되었군."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망량선사의 역할이 예상외로 엄청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 고양이새끼한테 존경심은 들지 않는다. 명확한 도움도 주지 않고 사람 약올린 게 도대체 몇 번인가!

"망량선사는 그 사실을 왜 알려준 거죠?"

신승이 싱긋 웃었다.

"그야 자네에게 천제단을 보여주기 위해서겠지. 빈승이 나서지 않았다면 자네가 숭산의 천제단을 볼 수 있었을까?"

"음... 볼 수 없었겠죠."

나는 솔직히 인정했다. 신승의 사제인 명자배 항렬의 고수들은 강호 전체를 놓고 봐도 최상위권의 고수들이었다. 그들과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싸우는 도중에 소림사에서 108나한진이나 십팔나한, 사대금강이 충원되면 나는 정말로 죽고 말 것이다. 멸혼보를 이용해서 잠입하는 것도 통할지 아닐지 의문이었다.

' 이거 엄청난 난이도였네.'

나는 속으로 소름이 끼쳤다. 숭산의 천제단 하나를 볼려면 말 그대로 목숨 하나를 써야하는 것이다. 신승이 천제단에 합장을 하고 나서 말했다.

"망량선사께서는 자네를 도우라 말씀하셨네. 그러므로 앞으로 사마(邪魔)와 싸울 일이 생긴다면 소림사는 그대를 도울 것일세."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나는 갑작스러운 신승의 제안에 당황했다.

정파무림의 태두인 소림사가 나를 돕는다니!

그것도 망량선사의 한 마디에!

내 전생으로 볼 때는 굉장한 도움일 게 분명하지만 나는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의도도 확실치않은 흑묘 녀석의 의도대로 휩쓸려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도움을 거절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아뇨, 감사합니다."

"자네는 천제단을 둘러보기 위해서 숭산을 방문한 겐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태산노옹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문점, 그리고 태산노옹을 찾기 위해서 천하의 오악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화산파에서 일어난 참극에 대해서도 신승에게 설명했다. 신승은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고 있다가 말했다.

"화산파는 원래 본사에도 뒤지지 않는 술종(術宗)이 있었으나, 술법사의 비중을 낮추고 무림세력으로서만 몸집을 불려왔네. 그 탓에 화산파의 술법사들은 따로 분리해서 나가버리고 말았지. 그 탓에 이족이 습격해 오자 막아낼 도리가 없었던 것이 분명하네..."

"그렇겠지요. 이족을 상대하는 데는 무공보다 술법이 더욱 주효한 것 같습니다."

신승이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화산파를 습격한 이족에게는 배후가 있는 게 분명하네. 그리고 그 배후는 태산노옹과 관계가 있겠군. 본사에서도 태산노옹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나는 신승에게 전생자라는 사실을 말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다보니 독고성한테도 말하게 되었지만, 신승과는 신뢰관계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신승에게 물었다.

"태산노옹이 일 년 전에 천제단에 참배를 하러 왔다 들었습니다. 그 자의 무공은 어느 정도 수위입니까? 특징이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언제나 회색 거적데기를 걸치고 다니며 삿갓으로 자신의 외모를 숨긴다네. 그리고 무공수위라 함은... 굉장히 강하지."

"어느 정도입니까?"

"빈승도 그를 확실히 꺾을 자신이 없네. 무(武)에 관한 한 확실히 명인(名人)의 위치에 올라있으며, 호법사자가 아니라면 천하제일을 다툴만한 초고수일세."

"으음..."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자인 사공린이 하는 이야기는 객관성이 없어서 잘 믿지를 못했는데, 신승의 입으로 확인받은 것이다. 태산노옹의 무공은 지금의 나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일 게 분명했다. 굳이 따지자면 호법사자가 아닌 이상 천하에 그 무공을 감당할 자가 없을 수준으로 보였다.

' 골치아프겠군.'

신승이 말했다.

"그가 천제단에 참배하는 걸 허락했던 이유는 그가 도가의 숨겨진 은거고수라서 도맥의 의식을 치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세. 하지만 자네의 말대로 태산노옹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그 또한 그의 노림수였을지도 모르겠군."

"천제단은 이미 기능이 상실되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천제단의 기능을 끊은 자가 다시 이을수도 있지."

"......!!"

"물론 인간의 힘으로는 안되겠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닐세. 큰일났군..."

걱정스럽게 중얼거린 신승이 말했다.

"또 물어볼 게 있는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조금 잡스러운 질문입니다만 괜찮겠습니까?"

"해 보게."

"대사께서는 진천휘 장군을 알고 있으실 듯 합니다. 그와는 어떤 인연이십니까?"

"허허..."

신승은 잠시 헛웃음을 터뜨렸다.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껄껄 웃더니 내 말에 대답했다.

"의외로군. 왜 그리 생각하는가?"

"그냥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망량선사의 지인답게 자기자신을 숨기는군."

신승이 씁쓸하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진천휘 장군과는 오래된 인연이지. 빈승은 그의 지략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도 있었네."

"그가 사실 황족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십니까?"

흠칫!

신승은 이번에야말로 놀란 듯 몸을 경직시켰다. 그리고는 꺼지듯 한숨을 쉬었다.

"자네, 함부로 그런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게. 자네가 망량선사의 지인이 아니었다면 이곳에서 큰 곤경을 치렀을 걸세."

"으음... 죄송합니다."

"천하에서 가장 중대한 비밀 중 하나일세."

신승이 하늘을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말했다.

"만에 하나, 진천휘 장군의 독자(獨子)가 역모지화에서 살아남았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는 천하에서 다시없는 황위계승권자가 될 걸세. 현 황제보다 도리어 계승서열이 앞서는 셈이니."

"앞선다고요?"

"현 황제에게는 정통성이 부족하다네. 빈승의 입장상 여기까지만 말해 두겠네."

"알겠습니다."

나는 신승을 통해서 이야기를 듣자 확신할 수 있었다.

' 진소청은... 원래 황태자를 거쳐서 황제가 되었어야 할 존재구나.'

아마 이광이 사신위에서 방출되면서 몰래 진소청을 보호하여 황궁에서 데리고 나왔고, 황연을 비롯해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이 진소청을 암중에서 보호해 준 것이리라. 그리고 그들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으리라.

다만 진소청에 대한 생각은 차이가 있어 보였다. 신승이나 황연 대장군은 진소청을 마땅히 황제위에 올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정작 보호자인 이광은 진소청을 그저 무림의 고수로 키워내고자 하는 것이다.

' 왜 그럴까?'

이광의 선택이 더욱 현실적이긴 하다. 진소청을 억지로 황제로 올리는 건 현실성이 없을뿐더러 그에게 행복한 선택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타고난 무재를 지닌 진소청이 무림에 몸담고 살아가는 게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광을 오랫동안 보아왔던 나로서는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것은 이광이 지니고 있는 진충보국의 충성심이 크게 걸렸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동시에 백련교에 대한 복수심을 끌어안고 있는 모순적인 존재가 이광이다.

나는 그 순간 이광과 털어놓고 이야기할 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독고성의 권유가 아니더라도, 나는 이광에 대해서 정말 중요한 핵심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 그래. 언제고 악연을 청산하려면 확실히 하자.'

나는 생각을 끝내고는 신승에게 포권했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자네의 다음 행선지를 알 수 있겠는가?"

"예상하고 있으실텐데요."

"허허, 들켰군."

신승은 멋쩍게 웃은 후 말했다.

"충고해 두겠네. 태산노옹과 싸울 때는 그의 검법을 조심하게. 그 검법은 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하다네."

"공손검법(公孫劍法) 말입니까?"

신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천하에 삼대기인으로 우뚝서게 한 대표적인 절기일세. 조심, 또 조심하게."

"네."

나는 신승에게서 정보를 얻은 후 태산으로 향했다.

파앗!

' 약속했던 한 달은 아직 안 되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태산노옹이 태산에 있을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혈겁이 일어난 화산파라던가 항산, 형산, 숭산 등에는 태산노옹이 은신하고 있는 기척이 없었다. 내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둘러볼만큼 둘러본 것이다. 태산을 한번 더 살펴보고 나서 오악을 뒤져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태산이 가장 확실한 은거지로 보였다.

태산 근처에 도착하자 나는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음... 칠살마을에 들릴까?"

독고성은 내게 백련교주를 암살할 것을 주문했었다. 백련교주만 쓰러뜨리면 백련교의 마수를 대부분 걷어낼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백련교주의 제자가 되는 일이 더욱 끌렸으므로, 우선 백련교주의 비밀을 좀 알아내고 나서 시도하는 게 나았다. 그렇게 치면 백련교주의 암살권을 낭비할 수 없으므로 칠살마을에 들리는 건 시간낭비였다.

태산 근처는 관문도 많고 관병도 많았다. 무림문파의 숫자가 드물었으며, 각지에 가난한 화전민과 도적들이 들끓었다. 쓰레기같은 현실을 직시하기에 아주 좋은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지역과 달리 그다지 볼만한 명소도 없었으므로 나는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 청월이나 독고성이 도착하기 전에 태산을 좀 둘러보자.'

나는 우선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태산 여기저기를 다니기로 했다. 관병의 눈을 피하면서 이 곳에 있는 요소를 탐지해 두어야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윽고 멸혼보를 운용해서 태산 인근을 쥐잡듯이 뒤지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쉬쉬쉭!

나는 약 사나흘 동안 쉬지 않고 태산을 멸혼보로 돌아다녔다. 태산이 큰 산이긴 하지만 멸혼보의 속도로 돌아다니니 금새 다 살펴볼 수 있는 듯 했다. 도중에 관병이나 관문의 시선이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들은 멸혼보의 속도를 감지할 수가 없었다. 또한 정히 들킬 것 같으면 기척을 숨기고 은신했으므로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다.

또다시 만 하루를 돌아다녔을 때 나는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태산노옹이 없다!

이렇게까지 돌아다녔는데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다.

' 관문 내에 있거나, 아니면 태산의 정상에 있거나...'

나는 태산의 관문 안까지 들어갈 용기가 없어서 그저 산야만 돌아다녔다. 관병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산의 정상은 관병들이 관문을 설치해서 민간인의 통제를 금지하고 있는 장소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굴렸다.

태산 인근에 존재하는 관문은 모두 네 개이다. 그 중 하나는 태산의 정상에 있고, 나머지는 계곡지형에 설치되어 있다. 네 개의 관문을 하나하나 뒤지는 건 굉장히 무리가 되는 일이다.

아니 그것보다 태산노옹이 관문 내에 있다면 그게 어떤 상황인 걸까?

관아의 장군과 병사들은 무림의 고수를 매우 싫어했다. 그들은 잠재적으로 무림고수가 치안을 흐트러뜨리는 존재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설령 강호의 고수이자 정파삼대기인인 태산노옹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시선일 것이다. 태산노옹같은 인물을 관문에 머무르라고 내버려 둘 이유가 없었다.

' 이상해.'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산의 정상관문으로 가서 몰래 살펴 보았다. 성채가 쌓여있는 부근에는 병사들이 여기저기에 돌아다니고 있었고, 더러 신분이 높은 군관도 돌아다녔다. 군인이라서인지 그리 높은 무공을 지닌 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섣불리 관문으로 잠입하기에는 꺼려지는 점이 있었다.

많다!

최소한 1천 명은 되어보이는 인원이 정상관문에 주둔하고 있었다. 저런 산꼭대기에 1천명이나 산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태산이 봉선의식 때문에 황권에 중요한 장소이다보니 많이 배치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나라도 1천명의 이목을 뚫고 잠입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결국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저 정상관문 근처에는 소관문과 봉화가 있다. 아무래도 저쪽에서 변란이 일어나면 근처의 관문에서 인원이 충원될텐데, 최소 5천여명 이상의 병사들이 반 시진 이내에 지원하러 올 것이다. 말 그대로 철통같은 관문이었다.

나는 일단 청월과 독고성을 기다리며 태산의 입구 부근에서 야숙하기로 했다. 가만히 있어도 청월과 독고성이라면 내 기(氣)를 느끼고 찾아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삿갓을 쓴 청월과 독고성이 내가 만들어놓은 임시움막에 찾아왔다.

"잘 지냈느냐."

"스승님을 뵙니다."

내가 포권을 하자 독고성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간만에 천하를 돌아보니 재미있었다."

"어디를 돌아보셨는지..."

"그야 이광 놈을 잠시 보고 왔다."

"......!!"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놀라는 사이에 옆에 서 있던 청월이 말했다.

"이광에게도 우리 일에 협력하라고 일러뒀다."

"무슨..."

그 때였다.

"앗, 소협! 오랜만이오!"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입구에서 들려왔다. 나는 혹시나 해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그 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진소청...!!"

"크흠..."

그리고 진소청의 옆에는 뚱한 표정의 이광이 함께 와 있었다. 아무래도 우격다짐으로 관중에서 여기까지 이끌려 온 듯 했다. 내가 멍하니 서 있을 때 독고성이 말했다.

"그래. 먼저 와 있었던 모양인데 지금 상황을 말해 다오."

"네."

나는 오악을 먼저 돌아보았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화산파의 참극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곳 태산에서도 정상관문에 태산노옹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독고성이 호쾌하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가자!"

"가... 가다니요?"

독고성이 씨익 웃었다.

"이 인원이 모였는데 뭐가 두렵겠느냐? 다 때려부수자!"

기본 주둔군 1천여 명. 거기에 충원될 병사가 최소 5천여 명.

그 철통의 요새에 고작해야 다섯 명이서 쳐들어가자는 소리였다. 나는 기겁을 했지만 옆에 서 있던 청월이 흐뭇하게 하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간만에 신나겠군요."

"......"

이 인간들 진심인가?

수천 명의 군사라고!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그나마 이성적인 이광이 그들을 말렸다.

"그들을 없애는 건 큰일이 아니지만 우선 태산노옹이 거기에 있는지부터 확실히 해야합니다, 어르신들."

"음, 그렇군! 그러면 이광 네가 갔다와라. 한때 관직에 있었지 않느냐?"

이광이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독고성의 무대포정신에 진저리를 치는 모양이었다.

"... 은퇴해서 야인이 된지라 제가 가봤자 의심만 살 겁니다."

"답답하기는... 엥이. 너는 관직에서 뭐 했냐?"

"죄... 죄송합니다."

독고성이 혀를 끌끌 차자 이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제 후임과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두었습니다. 며칠만 기다리십시오."

이광의 말대로였다. 약 이틀이 지나서 산동의 장경익 장군이 보낸 전령이 도착했고, 전령과 함께 도착한 두세 명의 군관이 이광을 만났다. 그 군관들은 이광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장 장군의 명을 받들고 왔습니다. 여기에 통행증이 있습니다."

"수고했다."

"가 보겠습니다!"

따그닥 따그닥

군관들이 떠나자 이광이 내게 통행증을 건네주었다.

"장경익이 발행해 준 통행증이다. 이게 있으면 태산노옹이 있는지 없는지는 쉽게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고맙소."

"흠."

이광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돌리며 내게 전음을 보냈다.

[ 네 꿍꿍이가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 뇌신류를 이용해먹으려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아무래도 이광은 어쩔수없이 독고성에게 끌려나오면서도 나를 크게 경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긴 의심받아도 어쩔 수 없는 처지이긴 했다. 하지만 나도 이광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전음으로 쏘아붙였다.

[ 당신이야말로 무슨 속셈이오? 진소청이 황위계승권자인 걸 알면서도 뇌신류의 고수로 키운 저의가 뭐요?]

그 때였다.

이광이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러더니 눈에 불꽃을 일렁이며 말했다.

"... 아무래도 네놈과는 언제고 결판을 내야겠구나!"

쿠구구궁!

뇌광이 일렁인다.

위험할 정도로 이광의 살기가 솟구쳐 올랐다. 지난번에 대련을 할 때 이상으로 극렬한 기세였다. 나는 이 정도로 이광의 노화가 솟구친 일을 거의 본 적이 없었으므로 갑자기 긴장되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이광은 생사결전에서 더 강해지는 무인이란 말인가?

이광의 살기가 끓어오르자 독고성이 중간에 끼여들어서 손을 휘저었다. 독고성의 의형강기가 스쳐지나가자 살기의 기류가 가라앉았다. 독고성이 혀를 찼다.

"이광. 그리고 백웅. 너희는 젊어서 그런지 피가 끓어넘치는구나. 자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독고성이 마뜩찮은 듯 말을 이었다.

"태산행 도중에 한번 더 이런 일이 생긴다면 너희 모두 가만두지 않겠다."

"유념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태산에 올랐다.

태산에 오르는 도중에 진소청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 백웅. 사부님과 다투지 말아 주시오.]

[ 무슨 말이오?]

[ 사부님은 내심 뛰어난 뇌신류의 고수가 나타난 것을 기뻐하셨소. 그대와는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으니 잘 해봅시다.]

[ ......]

그게 가능할까?

나는 회의감이 들었지만 굳이 진소청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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