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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파앗
나는 우선 하남성으로 갔다. 나는 근처 사람들에게 지리를 물으며 숭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는데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다 보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고보니 전생을 이렇게 많이 했는데도 숭산에 가는건 처음이군.'
숭산에는 구파일방의 태두인 소림사가 있다. 소림사의 역사는 천년이 훨씬 넘어서, 백련교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소림사 이전에도 무림이 있긴 했으나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 소림사라는 점에서 그 위대함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문득 소림사에서도 화산파같은 참극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면으로 방문하는 것보다는 몰래 잠입하는 방법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화산파 때도 내가 정면으로 방문했다면 파리들이 인간의 정신을 조종해서 멀쩡한 척 가장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숭산의 봉우리가 떼지어 있는 모습이 멀리에서 보였다. 나는 물끄러미 숭산의 원경을 쳐다보다가 근처의 민가로 향했다. 그리고 민가 사람들에게 은자를 몇 푼 쥐어주며 정보를 얻어내었다.
"수상한 일이유? 그런 거 없었는디..."
농민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스님들은 가끔씩 마을에 내려오시지유. 아니면 속가(俗家)의 사람들이 식재료를 대신 사러 오기도 하구..."
"이상현상은 없단 말이지요?"
"글츄..."
"감사합니다."
나는 농민의 집을 물러나왔다. 그리고나서 숭산에 진입해서 인적없는 산길로 향하기 시작했다. 숭산 소림사의 거점이 되는 소실봉을 비롯한 몇 개의 봉우리를 파악해 두었으니, 다른 봉우리를 먼저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어쩌면 소림사의 눈에 안 띄는 곳에서 태산노옹이 은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휘익
숭산 칠십이봉 중에서 십육 봉을 뒤지는데는 대략 하루가 걸렸다. 나는 기감을 극도로 돋우며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수상한 낌새가 있는지를 찾아보았지만, 역시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쉬려고 토굴에 들어가서는 생각했다.
' 술법을 배워두는 게 좋지 않을까?'
이번에 화산파의 파리들을 상대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그것은 이족을 상대하는데는 무림인보다 술법사가 훨씬 더 낫다는 점이었다. 영체화라는 특수능력은 무림인에게는 악몽같은 것이지만, 여동빈이 말하기를 술법사라면 대항할만한 방법이 열 개도 넘는다는 말이었다. 의념지경에 오른 무림인이 천하를 통틀어도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술법능력을 갖추는 게 앞으로 필요할 것 같았다.
마(魔)에 대항할 방어능력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 나는 술법을 배우려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상태이다. 과거 미호에게서 법보를 받아서 십여 년간 품고 있었던 덕분에 술법의 잠재력이 높아졌고, 막야를 몇십 년이나 들고 다니는 동안에 영통(靈通)이 깨인 듯 하다. 무공에 있어서도 나름대로 한계치에 도달한 지금은 술법을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나는 상념을 마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공이 워낙 높은 덕에 잠깐만 쉬어도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는데다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활력이 늘 가득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로부터 약 사흘 내내 숭산을 돌아다니면서 태산노옹의 흔적을 찾았다. 덤으로 이족의 흔적도 찾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얼추 숭산 일대의 7할은 돌아보았다고 생각했다.
... 이제 소림사에 들어가 보자.
나는 화산파에서처럼 이족을 마주칠 가능성도 염두에 둔 채, 소림사의 건물이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다니지 않는 험한 잔도와 절벽을 타며 접근하자 이목에 걸리지 않았다. 위쪽의 봉우리에서 조심스럽게 소림사 내부의 광경을 육안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 스님들이 멀쩡하게 돌아다니는군...'
일단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하지만 속단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멸혼보를 이용해서 소림사 내부로 숨어들어가려 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뭔가가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멸혼보로 빠르게 이동해서 소림사로 진입하려고 하는 그 때였다.
[ 소협. 잠시 멈추시오.]
멈칫!
나는 뜬금없이 어딘가에서 들려 온 육합전성에 멸혼보를 멈추었다. 그리고 절벽의 나뭇가지에 한 발로 버티고 서서 가만히 대기했다. 육합전성을 보내 온 상대의 위치를 알고 싶었지만 잘 느낌이 오지 않았다.
의문의 고수가 재차 육합전성을 보내왔다.
[ 그대가 며칠간 숭산을 염탐하는 기척을 알 수 있었소. 허나 악의가 없어보이기에 일단 놔두었는데, 본산에 침입하려 한다면 좌시할 수가 없소.]
어렴풋이 위치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자세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내게서 대략 삼백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도 그 쪽으로 육합전성을 내쏘았다.
[ 당신은 누구요?]
[ 빈승은 소림사의 명정이라 하오.]
명정 대사!
나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약간 곤혹스러웠다. 당연히 이 정도 무공수위를 지니고 있는 자라면 소림사의 최고수라는 신승 명호대사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이다. 얼핏 느껴지는 상대방의 무공수위는 최소한 초절정급이었기 때문에 내 놀라움은 더욱 컸다.
' 신승 명호대사와 같은 명자배 승려라고 하지만... 이런 고수가 명성도 없이 소림사에 묻혀있단 말인가?'
왠지 소림사의 저력이 느껴졌다. 명정 대사같은 기라성같은 고수들이 여기저기에 묻혀있을 게 분명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초절정고수들이 덤벼든다면 지금 내 실력으로 모두 이겨내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일단 전투는 피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절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에게 공손히 대답했다.
[ 얼마 전 화산파가 멸문했습니다. 그 일에는 사악한 마(魔)의 일족이 연관되어 있었고, 나는 혹시나 해서 소림사도 당했나 해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던 중입니다.]
그러자 명정 대사는 잠시 침묵하다가 육합전성을 보내 왔다.
[ 천기가 어그러졌기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했건만.. 화산파가 당했구나! 허나 우리 소림사는 현재 그런 일이 없소.]
[ 정말입니까?]
[ 소협이 강호정의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고마우나 본사의 일은 본사가 해결해야 할 일.]
이어진 전음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 그리고 우리는 전후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소협과 이야기를 해 봐야겠군.]
스스스슥!!
갑작스럽게 사방에서 기척이 몰려들었다. 그것은 하나같이 강력한 기를 보유한 자들이었고, 그들이 내가 서 있는 절벽에 도달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숫자는 총 세 명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길게 수염을 늘어뜨린 나이먹은 고승들이었고 가사를 걸치고 있었다. 또한 굉장히 뛰어난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운데에 서 있던 승려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빈승이 명정(明情)이오. 그리고 내 옆은 명우(明雨), 명진(明珍)이오."
"......!!"
"소협. 그대의 정체를 밝히시오."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현 소림사에서 가장 높은 항렬이라고 하는 명자 배의 고승들! 그 중에서 세 명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믿기지가 않았지만, 그들 하나하나의 무공은 초절정급 같았다. 그들이 심후한 불가공력을 반세기 이상 수양해서 내공의 깊이도 대단하다는 걸 고려하면 눈 앞에 구파일방 장문인급 세 명이 서 있다 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 무공으로 이기려 하면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겠구나!'
아무리 뇌명을 쓴다고 해도 그들의 합공을 당해내는 건 힘들 것이다.
눈 앞에 있는 게 바로 정파무림의 저력이자 태산북두 소림사를 떠받치는 진정한 고수들이었다. 내가 전생으로 거듭하며 힘을 쌓지 않았다면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할 자들이 눈 앞에서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들에게 말했다.
"화산파가 멸문한 건 사실입니다. 거리가 멀어서 아직 여기까지 소식이 도착하지 않은 듯 싶으나, 그들은 이족(異族)의 습격을 받아서 장문인을 포함한 장로들이 사망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도와주고 오는 길입니다."
"중요한 걸 말하지 않았군. 소협은 누구이며, 어째서 화산파와 본사를 차례대로 방문하고 있는 것인가?"
"......"
"소협의 무공은 나이답지 않게 무척 고강하므로, 우리는 그대가 반로환동한 고수라 생각하오. 어쩌면 백련교의 백련인(白蓮人)일지도 모르지."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다. 그들이 생각할 때는 반로환동 혹은 백련인 중의 기재라고 생각하는 게 합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내 사정을 밝히자면, 나는 현재 오악(五岳)에서 태산노옹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화산파와 소림사를 차례대로 들르게 된 것이지요."
명정 대사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태산노옹을?"
"그렇습니다."
"그를 왜 찾는가?"
나는 기왕 이렇게 된거 소림사에도 어느 정도 정보를 흘려두는 게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태산노옹이 수상쩍은 것은 사실이었고, 소림사가 정보를 얻고 경계하는게 나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태산노옹은 황궁(皇宮)과 연락을 하며 큰 관련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너무나 신비해서 그 행적을 아는 자가 없는데, 유독 오악을 돌아다니면서 제례의식에 큰 관심을 가진다 했습니다. 황궁과 연관지어보니 그 자가 너무 수상하기에 태산노옹의 행적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흐음...!!"
명정 대사가 침음성을 흘리다가 말했다.
"소협은 누구기에 그런 걸 궁금해하는 것이오? 우리는 그대를 백련교의 밀정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소."
나는 태연하게 맞받아쳤다.
"말해두지만 내가 백련교인이라면 이렇게 어설프게 뒤적거리고 다니지는 않을 겁니다. 호법사자라도 데리고 와서 당신들을 상대했겠지. 그렇지 않습니까?"
"......"
"당신들이 신경쓰이게 한 건 미안한 일이군요. 태산노옹의 행적만 알려준다면 나는 숭산을 떠나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명정 대사는 명진, 명우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한동안 침묵했다. 아무래도 전음을 나누면서 서로의 의견을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명정 대사가 말했다.
"소협의 성명별호를 말해 주실 수 있소?"
"나는 소웅(小熊)이라 합니다."
"소웅 소협.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소림사에 일어나지 않았소. 그리고 태산노옹은 일 년 전에 본사를 방문했으나 이후로는 숭산에 찾아온 일이 없었소."
아무래도 나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고 생각하고 적당히 정보를 줘서 내쫓으려는 생각으로 보였다. 나는 내심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대꾸했다.
"일 년 전? 그 때 태산노옹이 뭔가 특이한 행보를 했습니까?"
이어진 대답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그는 천제단(天梯壇)에서 제사를 지내고 갔소."
"......!!"
천제단!
그것은 항산에서도 들었던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당황을 감추며 말했다.
"내가 알기로 천제단은 항산에 있었는데 숭산에도 천제단이 있단 말입니까?"
"소협. 천제단은 오악 모든 곳에 한 군데씩 있소. 그것은 삼황오제를 모시는 고대의 신앙이 유적으로 남은 것으로써 곳곳에 있소이다."
뜻밖이다. 시간관계상 형산이나 화산을 다 뒤져보지는 못했지만, 설마 오악에 천제단이 하나씩 존재한다니! 천제단이 하늘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던 장소로써 하늘과 땅을 잇는 상징성이 있다는 걸 고려하면 굉장히 의미심장했다.
' 이건... 망량한테 꼭 이야기해야겠군!'
그렇다면 태산노옹이 오악을 순회하던 이유가, 바로 천제단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는 말인가? 태산노옹이 제사를 지내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가?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명정 대사에게 말했다.
"... 천제단을 꼭 방문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안 되오."
명정 대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대는 자신의 정체를 명확히 밝힐 생각이 없어보이는군. 태산노옹에 관한 정보를 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게 확실한지도 알 수가 없소. 소림사를 수호하는 우리로서는 결코 그대가 이 숭산을 함부로 돌아다니게끔 할 수가 없소."
명정 대사의 뜻은 강경했다. 최소한의 정보를 줬으니 여기에서 당장 나가버리라는 뜻 같았다. 어쩌면 본인은 이것만 해도 많이 양보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그 때였다.
[ 잠시 기다리게!]
우렁한 육합전성이 울리더니, 가공할 압력이 천지를 내리누르는 듯 했다. 워낙 가공할 기세라서 나를 포함한 소림사의 삼대고승이 모두 비틀거렸다. 나는 그 기세를 받으면서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 뭐... 뭐야 이 엄청난 내공은?!'
내공의 잠재력만 따지면 나와 동급이 아닐까? 단지 상대방은 한번에 확 풀어버렸고 나는 숨기고 있다는 차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겪은 내공기연의 숫자를 생각하면, 일개 무림인이 내 내공을 따라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후우웅
일진광풍이 몰아치더니 허공에서 천상제로 왠 승려가 다가와서 내려앉았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자 침음성을 흘렸다.
"신승(神僧)...!!"
소림사 최고의 고수이자 정파 삼대기인의 일인, 신승 명호대사!
일전에 진소청과 함께 무당파를 찾아갔을 때 보았던 얼굴이기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명호대사가 현재 하늘을 날아서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신승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망량선사께 그대의 이야기를 들었네. 오늘쯤 찾아올거라더니 그 말대로군."
"네?"
신승이 몸을 빙글 돌렸다.
"따라오게. 천제단을 보여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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