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286화 (286/1,615)

0286 ----------------------------------------------

천계(天界)

쉬가각

소름끼치는 검음(劍音)이 흐르며 공간에 스무 개의 검선(劍線)이 스쳐 지나갔다. 매화검진을 형성한 매화검수들이 일시간에 검기를 발출한 것이다. 나는 그들의 공격을 멸혼보를 운용해서 쉽사리 피해냈으나 그들을 쓰러뜨려야 할지 망설여져서 일단 뒤로 물러났다.

'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닌데.'

나는 이족 중에 괴상한 무리나 술법을 사용하는 무리가 굉장히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섣불리 저 자들을 해치웠다가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랐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눈 앞의 매화검수를 쓰러뜨리는 건 여반장이지만 우선 주변을 관찰하기로 했다.

쉬쉬슁

멸혼보로 피하는 와중에도 매화검수들의 검술은 상당히 정교하다는 걸 느꼈다. 내 털끝도 스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보통이라면 여기서 죽음을 느낄 정도의 함정이리라. 내심 무공을 높이고 나서 찾아온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음... 저건?'

나는 주변을 살피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철판교로 검기를 피하던 와중, 어둠의 뒤편에 더 많은 알이 존재하는 걸 알아챈 것이다. 다만 그 알들은 현재 뇌광아래 비쳐보이는 것처럼 커다랗지는 않고 대략 수박만한 크기로 보였다. 나는 좀 더 상황을 확인할 겸 뇌령인(雷靈印)에 공력을 실어서 알 쪽으로 날려보냈다.

꾸궁!

"어?!"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나는 그저 뇌령인의 빛줄기로 시야를 확보하려 했을 뿐인데, 내게 다가오던 매화검수들이 일제히 뇌령인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내공을 실은 뇌령인은 엄청난 위력이라서, 그들은 뇌령인에 닿이자 몸이 찢기고 터져나갔다. 핏줄기와 육편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무려 여섯 명이 한꺼번에 죽은 듯 했다.

비명소리도 없는 걸 보면 통각이 없거나 아예 의식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어찌된 일일까? 애초에 공격할 생각도 없었는데 알아서 뇌령인에 맨몸을 박아서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자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알을 보호하려고 하는구나!'

어쩌면 저 매화검수들은 모종의 술법에 조종당해서 알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그들에게는 통각도 의식도 없는 채 그저 알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만이 주입된 것이다. 그 말은 매화검수들을 전락시킨 존재는 알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이 곳은 부화장이다.

벌레의 생태로 볼 때 일족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나간 나는 손을 꾸욱 말아쥐었다.

"그럼 망설일 필요가 없지."

중요한 장소이니만큼 이 곳에는 갈수록 경비병이나 이족이 충원될 것이다. 지금 나는 어찌된 상황인지 몰라서 갈팡질팡했지만, 실제로는 이족의 급소를 찌른 셈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부화장을 파괴하는 게 가장 이득이 될 게 분명했다.

쿠구궁

나는 공력을 가득 끌어모아서 뇌령인을 알으로 계속해서 날렸다. 이족에게 지배당한 매화검수들은 마치 불나방처럼 뇌령인에 달려들어서 몸으로 막아냈지만, 내가 작정하고 공력을 담으면 인간의 육체 한두 개 정도로는 기세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스무 명도 넘게 있었던 매화검수들은 모조리 갈가리 찢겨버렸고, 뇌령인은 가볍게 거대한 알을 부숴 버렸다.

쿠콰곽

흉물스러운 소리와 함께 푸른 물이 허공으로 터져나왔다. 그것은 끔찍한 냄새를 흘리고 있었으며 바닥에 말라붙자 푸르죽죽하게 녹아들었다. 가죽같은 표면이 찢기자, 표면의 꿈틀거리는 근육이 생동하는 모습이 끔찍했다. 그리고 나는 거대한 알의 내면에서 주륵 흘러나온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 파리?"

크기가 꽤 크다. 한 아름 안아들만한 성체 닭만한 크기였다. 하지만 여러 개의 절지식 다리가 존재하며 거대한 겹눈을 가진 걸로 봐서는 파리라고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파리는 이마와 입에 촉수를 지니고 있었다. 아직까지 생기가 있는지 푸른 양수에 몸을 뉘인 채 꿈틀거렸다.

나는 저 놈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다가가서 발로 다리를 뭉개 버렸다. 콰작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파리의 몸이 크게 꿈틀거렸고, 이윽고 놈은 입의 촉수에서 괴기한 소리를 토해냈다.

[ *@&$#*@((!! ]

거대파리는 고통때문에 발버둥치다가 몸을 뒹굴뒹굴거렸다. 푸른 체액이 튀는 모습이 끔찍했다. 놈은 연속해서 이족의 말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잠시 후 내게 천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 하%&@#크!! 바깥경#&를 어&%&@ 하@*&%!! 미개한 인#$&$따위가 내 다리를 부#&%^%어!! 용서 못해!!]

"......"

[ 내 변태가 얼마 안 남았@&%^ 이런 꼴이 되@%&!!]

해석이 된다. 그것도 꽤나 선명해서, 도중에 안 들리는 몇 마디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나는 놈의 말을 듣던 중, 저 거대파리 종족이 바로 화산파를 멸망시켰으며, 눈 앞의 파리는 알 속에서 모종의 변태를 겪어서 더 강해지려는 예정이었던 모양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거대파리의 머리쪽 촉수를 잡아채며 말했다.

"이족. 네가 화산파를 이 꼴로 만들었나?"

거대파리는 알아들은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거대한 겹눈을 데굴거렸다. 나는 놈의 모습이 너무 흉측해서 인상을 찡그리다가 손에 뇌광을 모았다. 거대한 공력이 모이자 나는 알무더기 쪽을 향해서 뇌령인을 발출할 준비를 했다.

"당장 내가 알아듣게 대답해. 그렇지 않으면 알을 모두 부숴버리겠다."

그 순간이었다.

"알, 았, 따! 그만, 둬, 라!! 우리가, 그랫, 따!"

거대파리가 꽥꽥 거리며, 서투르긴 하지만 인간의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저 놈이 성대구조가 완전히 다를 텐데도 인간의 말을 하는 걸 보자 어이가 없었다. 뭔가 술법이라도 쓸 줄 알았는데 설마 인간의 말을 구사할 줄 알 줄이야!

' 교활한 놈이군.'

나는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그렇게 한 거지?"

"우리는, 멀리서, 왓, 따! 일족의, 보존을, 위해, 영양이, 필요햇, 따! 그리고, 알을, 지킬 하인도, 필요, 햇, 따!"

"......"

나는 서투른 인간어를 들으며 잠시 생각했다.

' 알과 새끼의 영양공급을 위해서 인간노예를 수급하려 한 거군. 그리고 화산파 고수들을 세뇌시켜서 납치와 경호담당으로 쓴 거야.'

상당히 머리가 좋고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종족으로 보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말했다.

"화산파의 고수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나?"

그러자 놈은 왠지 득의양양한 기색으로 말했다.

"나만이, 할 수 , 있, 따! 당장 나를, 놓아, 줘, 라!"

"어떻게 할 수 있지?"

"뇌에 들어간, 놈들을, 꺼내면, 된, 다!"

"뇌에 들어가? 뭐가 들어갔다는 말이냐?"

내 질문에 거대파리가 겹눈을 데룩거리다가 말했다.

"한놈, 꺼내, 보겠, 따!"

쥬르르륵

그 때였다. 어둠속에 멍하니 앉아있던 화산파 고수 중 한 명이 비척대며 걸어왔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그 사내는 멍한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내의 미간에서 무언가 시꺼먼게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츄륵

꾸물거리며 사내의 미간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시꺼먼 거대파리였다! 내가 붙잡고 있는 이 파리와 똑같이 생긴 파리가 밖으로 튀어나오더니 앵앵거리며 제 자리를 날았다. 나는 사내의 모습을 살펴보았는데, 파리가 튀어나왔는데도 미간에는 상처가 없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이 파리들의 능력을 직감했다.

' 이놈들은 물리적인 간섭을 뚫고 뇌에 들어가는구나! 그리고 인간을 조종한다.'

이런 식이라면 화산파 고수들의 무공이 뛰어나다 한들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기습하듯이 파리들이 뇌로 기어들어와서 염을 조종하기 시작하면 완벽하게 세뇌당해 버린다. 간단하지만 정말 무서운 능력으로 보였다.

거대파리가 말했다.

"너는 강한, 인간, 이구, 나! 오늘 일은, 봐줄, 테, 니, 돌아가, 라! 우리는, 너와, 싸우고, 싶지, 않, 따!"

"... 이렇게 큰 이변이 일어나는데도 왜 주위 사람들은 화산파의 이상을 모르지?"

"우리는, 인간을, 멀쩡하게, 조종할 수, 있, 따! 오늘도, 결계를 쳐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 따!"

"......"

"너는, 결계를, 무시했, 따!"

나는 소름이 끼쳤다. 저 말대로라면 대뇌피질이 벗겨진 흉측한 모습으로 인간을 조종할 뿐만 아니라, 겉보기에는 멀쩡한 인간처럼 만들어서 화산파 고수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 이 놈들... 뭔가 숨기고 있다.'

나는 거대파리가 내게 대한 적의를 숨기고 자꾸 돌아갈 것을 종용하는 게 의심이 갔다. 그리고 왜 화산파에 결계를 치면서까지 인간들을 전부 건물 구석으로 몰아넣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는 거대파리의 촉수를 꽉 쥐었다.

"끄아아, 아아악, 아아아악!! 놔라!! 놔라!!"

"나머지 화산파 인간들은 어딨지? 여기 있는 게 전부일 리가 없잖아."

"안쪽, 안쪽에, 있, 따!!"

나는 거대파리를 붙잡은 채 어둠의 안쪽으로 신형을 옮겼다. 공력을 끌어올려서 뇌령지기를 허공에 띄우자 횃불보다 훨씬 밝았다. 쓸데없는 공력낭비일 정도로 효율이 안 좋았지만 시야가 필요한 지금은 괜찮은 운용방법이었다.

그렇게 대략 삼십여 장을 더욱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큭...!!"

내부에는 지옥(地獄)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파리처럼 생긴 이족들이 여기저기에 왱왱거리며 이족의 말로 무어라 지껄이고 있었고, 인간의 목을 그대로 술잔처럼 만들어서 거기에 고기를 채워넣어서 뭔가를 장식한 상태였다. 유흥거리인지 인간의 남녀가 뒤엉켜서 성교를 하고 있었고 이족들은 낄낄거리며 구경하고 있다.

그리고 근처에서 잡아온 듯한 민간인들이 매달려서 내장이 파인 상태로 덜렁덜렁 매달려 있었다. 인간의 뇌수를 쪽쪽 빨아먹고 있는 놈들도 더러 보였다. 개 중 살아있는 듯한 인간도 보였으나 가학적인 고문에 시달린 듯 피를 흘린 채 미쳐버린 듯 했다.

무명제사서로 인해 나타났던 지옥과 동급, 혹은 그 이상!

나는 순수한 분노로 인해 이가 갈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게 여동빈이 강림하려 하는 게 느껴졌다.

[ 연자여. 내 퇴마경험으로 볼 때 저 자들은 극도로 사악하고 가학적인 종족이다.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느니.]

[ 여동빈. 내게 힘을 빌려줄 필요 없습니다. 내가 다 때려죽이겠습니다.]

여동빈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 저 자들은 강력한 정신계 술법을 사용한다. 위험할지도 모른다.]

[ 정신계 술법?]

[ 매우 강력한 능력이니 조심해야한다.]

나는 별 수 없이 여동빈에게 몸을 넘기기로 했다.

[ 부탁드립니다.]

만일에 정신을 지배당하거나 기절해버리게 되면 무공을 쓸 여지도 없다. 내게 강력한 정신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기에 여동빈에게 부탁하기로 한 것이다. 노예가 되어서 천년만년 죽지도 못하고 고문당하는 일만큼은 피해야 했다.

쿠구구구

[ 마를 퇴치하러 내가 왔도다!!]

육의성천도 운결이 일렁이더니, 예고없이 거대파리들을 덮쳤다. 거대파리들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공격에 크게 당황하더니 이윽고 하나하나 검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터져나갔다. 육체적인 능력은 별것 아닌지 순식간에 안에 있던 파리들의 반수가 죽어나갔다.

수천수만개의 검기가 덮쳐오자, 개 중 술법능력이 있는 파리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이 자리를 도망친 듯 했다.

쉬쉭!

' 순간이동?'

나는 지켜보면서도 기가 막혔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는 파리에 불과한데 저런 고급술법을 사용하다니!

[ 뇌를 내놔라!!]

그리고 더러는 자신의 몸을 영체화시켜서 내 뇌를 차지하려는지 돌격해 들어왔다. 영체화된 몸뚱이는 확실히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 듯 했으며, 심지어 검기도 뚫고 들어왔다.

하지만 여동빈은 퇴마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싸늘하게 이족들을 쳐다보더니 자신의 검을 세로로 세웠다.

[ 하압!!]

퍼버벙

여동빈이 일갈하자 영체화한 파리들이 허공에서 튕겨져 나가서 터져버렸다. 파리들은 자신들의 영체화 공격이 안 먹히자 당황한듯 우왕좌왕하다가 하나하나 검강에 꼬챙이처럼 찔려죽었다. 여동빈이 장내의 청소를 대략 마치자 나는 신기해서 질문했다.

[ 방금 어떻게 한 겁니까?]

[ 저 자들에게는 기(氣)가 통하지 않는 영체화 능력이 있다. 그럴 때는 의념(意念)을 모아 반격하면 저 자들의 뇌가 따라잡지 못하고 터져버리는 것이다.]

[ 그렇군요.]

의념은 영체화도 없애버릴 수 있는 속성무시공격인 모양이었다. 나는 만일에 저 놈들이 내 뇌속에 들어와서 기생하려 했을 경우를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여동빈이 밖으로 도망친 파리들을 잡으려고 뛰어나가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 인간의 뇌속에 기생하는 파리들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 저 종족을 다스리는 강력한 술법사가 한 마리 존재할 것이다. 그 술법사를 해치우면 놈들의 기생명령은 풀리게 되겠지.]

[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 만당의 시대에도 이족들이 암천향에서 쏟아져 나와서 인간을 괴롭힌 일이 있었느니라. 암흑과 혼돈의 시대였느니... 이 종족과도 대략 세 번은 싸워본 적이 있다.]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여동빈이었다. 나는 약간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 이족과는 결코 타협할 수 없겠구나.'

방금 내가 봤던 지옥도는 그야말로 끔찍한 것이었다. 내가 오랜 모험을 통해서 잔인한 광경에 내성이 있지 않았다면 미쳐버리거나 정신력에 한계가 왔을 것이다. 그런 잔인한 짓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이족이라면, 그들은 기필코 박멸해야 하는 종족이다. 이족에 대한 여동빈의 강한 적대감과 혐오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쿠르르르릉

바깥으로 나오자 갑자기 하늘에서 소용돌이와 함께 먹구름이 꼈다. 여동빈은 어검을 불러서 하늘로 솟구치며 외쳤다.

[ 사악한 존재여! 감히 인간을 농락하고도 살 수 있으리라 여겼나!!]

하늘에는 파리떼가 가득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심어(心語)를 날리며 여동빈을 비웃었다.

[ 끄크크.. 인간이라... 우둔하고 눈 먼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종족이라는 게 질투가 난다! 여기에 올 필요가 없었으나 너희를 괴롭히러 샤가이에서 왔다. 그리고 우리를 부른 게 너희 인간이 아니었던가?]

[ 미친 존재들... 그 불길한 자를 섬긴다는 건가...]

[ 여동빈이여. 일족의 기억에는 네가 천 년 전의 퇴마사로 기억되어 있구나. 여기서 끝장을 내 주마!]

파지지지직

허공에 엄청난 양의 번개가 모여들었다. 난데없이 몰려드는 엄청난 뇌류(雷流)는 이제껏 내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공할만한 기세였다. 이런 게 떨어지면 결코 인간으로서는 생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나는 절로 긴장되었다.

' 파리 주제에 이렇게 엄청난 술법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저 번개는 내가 가진 방어력으로 막아내는 게 불가능하다.

내가 상대할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번개가 내려치기 전에 끝장을 내는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여동빈이 걱정한대로 나는 아직까지 이족 중에서도 지성을 가진 상위종족을 상대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듯 했다.

하지만 여동빈이 자신의 전력을 집중시키며 외쳤다.

[ 울어라, 화룡(火龍)의 신검(神劍)이여!]

천둔검법(天遁劍法)

화룡신검(火龍神劍)

멸광(滅光)

[ 사특한 자 근원으로 되돌아갈지니!]

화룡신검과 함께 거대한 빛덩어리가 된 내 몸이 검선 여동빈의 의지를 안고 정면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예전에 흉신의 후예를 쓰러뜨릴 때 사용했던 여동빈의 필살기였다. 파리들은 몰려있다가 대항해서 외쳤다.

[ 결계!]

콰칭

예전의 그놈과 달리 파리들은 종족들이 모여서 협동하는 군체(群體)였다. 그래서인지 허공에 단단한 방어결계가 생겨서 여동빈의 공격을 막아내는 듯 했다. 하지만 여동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멸광의 힘을 더더욱 돋우며 분노의 일성을 내질렀다.

[ 사라져라!!]

결계가 여동빈의 검력을 버티지 못하고 유리처럼 깨졌다. 다음 순간, 파리들은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화룡의 멸겁화에 먹혀서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다. 구워진 수준도 아니었고 전신이 녹아내리는 멸겁화에 먹혔으니 생명체인 이상 살아있을 수가 없었다.

쿠콰콰쾅

허공에서 굉음이 울렸고 여동빈이 어검을 타고 보화각의 지붕 위에 멈춰섰다.

[ 적을 물리쳤노라!]

폭발이 잦아든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 연자여. 할 이야기가 있다.]

[ 무엇입니까?]

[ 그대는 동료와 함께 봉선의식의 권리를 얻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여동빈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한 일은 없었다. 그 또한 천계 소속이라서인지 봉선의식이 적지 않게 신경쓰이는 모양이었다. 여동빈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 오늘의 혼란을 보았으면 알겠지만 이미 이 세상에는 이족의 입김이 여기저기에 침투하고 있다.]

[ 설마 우리가 봉선의식을 원했기에 생긴 혼란이란 말입니까?]

[ 아니 그렇지는 않다. 저 파리들은 누군가의 부름을 받아서 이곳에 온 걸로 보인다. 이족을 이용해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존재겠지.]

나는 여동빈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이족이 제멋대로라고는 해도 하필이면 구파일방의 화산파를 집어서 자신들의 희생물로 삼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누군가가 이족을 시켜서 화산파를 공격했을 확률이 높다.

[ 그럼...]

[ 그대들이 봉선의식으로 뭘 얻고싶은지는 몰라도, 이 세상에 암약하는 어둠의 세력을 퇴치하는데 도움을 줬으면 한다. 그 자들은 틀림없이 그대들의 봉선의식에도 개입해서 권리를 뺏으려 할 것이다.]

[ 그들이 권리를 뺏으면 어떻게 됩니까?]

[ ......]

침묵하던 여동빈이 말했다.

[ 그들은 성좌의 운행을 빠르게 할 것을 요구하겠지.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 성좌의 운행?]

[ 자세한 것은 그대의 동료에게 물어보아라. 그는 광성자의 삼황내문을 최근에 얻어서 선계에서도 주시하고 있다.]

망량이 해냈구나!

나는 내심 기뻐서 속으로 춤을 췄는데 여동빈이 서서히 내 몸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 조만간 우리는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여동빈이 물러간 후, 나는 건물 내부에 있던 파리들의 잔당을 모조리 잡아죽였다. 더러는 영체화해서 덤벼드는 놈도 있었지만 여동빈이 가르쳐준 요령을 써먹자 상대하기 쉬웠다. 알까지 모조리 부수고 나니 마기(魔氣)가 한층 가라앉았다. 그리고 나는 생존자들의 미간에서 꿈틀거리며 튀어나오는 파리들도 모조리 없앴기에 화산파 생존자들이 원래대로 돌아오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대부분 미쳐 있었다.

"으흐흐흐... 흐흐..."

"히히.. 히힉..."

나는 이족의 노예가 되어 처참하게 되어버린 화산파 고수들 중에는 장래가 촉망받는 신진고수나 여자고수도 있음을 알고 씁쓸함을 느꼈다. 더러는 알을 낳는 노예 신세로 전락해 있었는데 이들의 몸을 원상복구시키려면 꽤 노력이 필요할 듯 했다. 근처의 민간인들은 몸이 약해서 해골이 되어 죽어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나마 멀쩡한 사람들을 추려보자 대략 서너 명에 불과했다. 나는 부상자들과 학대받은 자들을 치료하는데 만 하루를 써야 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나는 생존자들의 대표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장문인께서는 돌아가셨소."

자신을 화산파의 일대제자인 모준기 라고 밝힌 20대 청년이 침통하게 말을 이었다.

"화산파는... 멸문이오... 우리는 화산파의 진수를 이을 수가 없소."

"외부에 나간 속가제자들도 전멸이오?"

"그렇지 않소. 그러나 화산파의 뼈대를 이루는 진산무공과 절기들을 알고 계시던 장문인과 장로님들이 모두 학대 끝에 돌아가셨으니... 본파는 더 이상 구파일방은 커녕 중소문파로도 남아있을 수 없을 것이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 외부에서는 아무도 몰랐단 말이오?"

"철저한 세뇌술법에... 파리가 뇌 안에서 들끓으면서 정신을 지배했기에 아무도 진실을 외부에 알릴 수 없었소. 장문인조차도 폐관수련 중이라고 헛소문을 퍼뜨렸기에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던 거요."

"언제부터 놈들이 쳐들어 온 거지?"

모준기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대략 한 달 전이었소."

"한 달..."

나는 시기가 너무 공교롭다고 생각했다.

' 설마...?'

이번 화산파의 멸문이 우리의 봉선의식 요청과 관련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실한 게 없다. 나는 아까 잡아서 목갑에 집어넣었던 파리를 본거지에 돌아가서 심문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모준기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괜찮다면, 낙양 한씨세가에 의탁하는 게 어떨까 싶소."

"한씨세가..."

"내가 당신들을 도와주라고 말해둘 테니 생존자들을 추스릴 지원금과 원조를 받을 수 있을 거요."

모준기가 굵은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아아, 악몽 같소... 어찌 이런 일이..."

"......"

나는 고개를 저으며 화산파에서 물러나왔다.

다음은 숭산에 가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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