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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85화 (28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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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어차피 태산은 청월과 독고성이 알아서 찾아볼 거라고 생각했으며 나중에 합류하면 저절로 찾게 될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 한 달의 시간이 남아있는 동안에 내가 찾아봐야 하는 것은 오악 중의 나머지 4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북악 항산부터다.'

나는 어디를 먼저 가볼까 생각하다가 항산(恒山)을 먼저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화산, 형산, 숭산에는 당연하다는듯이 구파일방 중 화산파와 형산파, 소림사가 있기 때문이다. 항산에는 특별한 무림문파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만만한 곳부터 뒤지는게 정석이었다.

항산은 산서성에 존재했으며 오악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는 산이었다. 보통 구파일방이 오악의 명산(名山)에 자리를 잡는 편이었으니 항산에도 도가문파가 있을 법 했지만, 그렇지 않은데는 이유가 있었다.

쿠구구구...

나는 반나절 걸려서 항산 아래까지 온 후 높은 산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보아왔던 산 중에서도 상당히 높고 험준한 편이었고 자비없을 정도로 깎아지른 지형이었다. 게다가 여기저기에 관문(關門)이 있는걸로 봐서는 민간 무림문파가 있을래야 있을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항산은 태산과 더불어 오악중에서도 높고 험한 산으로 유명했으며, 역사적으로 군사적인 요충지로 쓰여온 장소였기 때문이다.

물론 항산이 도교의 성지 중 하나로 꼽히는만큼 여기저기에 도관 정도는 보였다. 다만 구파일방같은 성세를 떨치는 곳이 없는 걸로 봐서는 관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지형인 탓도 있는 듯 했다. 나는 항산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현공사라는 절에 들리게 되었다.

현공사의 안에 들어가서 주지를 만나서 시주금을 공양했다. 그리고 불상에 참배를 마친 후 면담하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물론 태산노옹이라는 존재를 이 근처에서 본 일이 있는지에 관해서였다. 주지는 어린아이인 내가 무려 수백 장 높이에 있는 현공사까지 찾아온 걸 이상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대답해 주었다.

"허허... 소협은 무림인인 모양이구려. 태산노옹 께서는 종종 본사나 인근의 도관에 들르곤 하신다오."

"현재 항산에 거하고 있습니까?"

"글쎄... 워낙 신룡(神龍)처럼 떠돌아다니는 분이시라 노납은 잘 모르겠구려. 허나 이 항산에서는 그리 자주 보이지 않으시오."

"그렇군요."

아무래도 한번 항산 전체를 뒤져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문득 대웅전의 불상 곁에 또다른 괴이한 거인(巨人)의 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교의 수호신이라고 하기엔 독특한 형태의 상이었다. 나는 저런 걸 본 적이 없었기에 신기해져서 질문했다.

"저 거인은 무엇입니까?"

"허허... 저것은 반고(盤古)요."

"반고!!"

나는 흠칫했다.

왜냐하면 반고는 창세신화(創世神話)에 등장하는 창세신으로서, 무저갱의 혼돈속에서 세계에 질서를 만들어낸 존재였다. 하지만 불교는 물론 도교에서 섬긴다기에도 너무 까마득한 존재인데다 상징적인 존재였으므로 직접적인 동상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현공사의 주지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고는 천지의 혼연을 머금고 달걀처럼 생긴 우주 속에서 잉태되었다 하오. 그리고 반고가 달걀을 깨어 가볍고 맑은 기운을 하늘로 올려보냈고, 무겁고 탁한 기운으로 땅을 만들었던 것이오. 본사에서는 그 반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 불전에 함께 모시고 있는 것이오."

"흠..."

확실히 문제될 것은 없다. 반고가 불교의 신은 아니지만 민간신앙에서도 종종 숭배되는 위대한 존재이긴 하다. 하물며 도교의 발원지 중 하나로 꼽히는 오악 항산에서 불교가 그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주지에게 질문했다.

"반고가 죽어서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설화도 존재하고, 복희와 여와가 세상을 창조했다는 설화도 존재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여러 개의 창세설화가 공존하는 것일까요?"

"허허... 소협은 신화에 관심이 많구려."

"궁금한 게 많습니다."

"알았소. 이 또한 인연이니 소협에게 빈승의 생각을 들려주리다."

주지는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더니 말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약간 다른 것이오."

"어떻게 다릅니까?"

"반고는 세상을 만들었고 복희와 여와는 인간(人間)을 만들었소... 인간 그자체보다 세계의 기원이 더욱 오래된 게 당연하지 않겠소?"

"......"

"땅과 하늘이 검고 누렇고(天地玄黃) 우주가 넓고 거칠다는 것은(宇宙洪荒) 삼황오제가 아니라 창세신 반고가 만들어낸 진리인 셈이오."

나는 주지의 비유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자문(千字文)의 구절이군요."

"소협은 신화에 관심이 많아보이니, 시간이 있으면 이 근처의 천제단(天梯壇)에 가 보시오."

"천제단?"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가 설치되어있었다는 장소요. 지금은 삼 년에 한 번씩 각지의 도사들이 제사를 지내는 장소가 되어 있소. 풍경도 운치가 있지."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하늘사다리.

나는 절을 떠나면서, 얼마 전에 현천도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 팔괘를 창조한 복희는 태초에 '불(火)'을 인간에게 전해준 존재라 할 수 있소. 그리고 불이란 건목(建木)으로 만들어진 하늘사다리를 통해서 인간에게 전해졌다 하는데, 즉 불이라 하는 것은 원래 천상(天上)에서 비롯되었단 말이오.]

하늘사다리(天梯)라고 하는 것은 고대적부터 천상(天上)과 지상을 잇는 수단이었던 모양이었다. 또한 이 항산에는 하늘사다리에 대한 전승이 직접 전해져 내려오는 듯 했다. 나는 지금까지 얻었던 정보를 종합하면서 곰곰히 생각하던 중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 잠깐. 그렇다면 삼황오제 전욱이 하늘과 땅의 교류를 끊었다는 건 하늘사다리를 치워버렸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내 가설을 확인해보기 위해서 우선 주지가 말해줬던 항산의 천제단으로 가 보았다.

이 곳에서는 종종 도사들이 들렀다 가는지 오두막이나 각종 생활시설이 보였다. 천제단이라고는 해도 그저 삼 장 크기의 넓은 공간에 마련되어 있는 평범한 제단이었다. 나는 제단 가까이에 가서 뭔가 특이한 점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으음, 이건..."

특이하게도 이 제단에도 반고의 상이 모셔져 있었다. 아까 현공사에서 보았던 것과 대동소이했다. 아무래도 항산 일대에는 불교와 도교를 막론하고 반고신앙이 꽤 퍼져있는 듯 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일단 천제단을 물러나왔다.

그 후 약 이틀동안 항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태산노옹의 기척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항산의 탐색을 끝내고 다음으로 향할 오악을 정해야 했다.

"흐음. 항산이 아니라면 이젠 화산 형산 숭산 중에서 정해야 하는데..."

고민이 된다. 어느 쪽이든간에 구파일방의 근거지가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항산에서처럼 태산노옹을 찾는다는 건 굉장히 껄끄럽고 위험한 일인 게 틀림없었다. 자칫하다가는 구파일방과 충돌이 일어날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민끝에 그나마 만만한 형산부터 가기로 했다. 섬서지방의 패주인 화산파나 구파일방의 태두 소림사보다는 형산파가 그나마 나았기 때문이다.

형산은 호남성에 있었으며 북악 항산과 대비되는 남악(南岳)으로도 불렸다. 호남성 인근으로 이동해서 형산을 찾아가기까지 만 하루가 걸렸고, 형산의 입구에서 사람의 이목을 주의하며 안으로 진입했다.

' 형산파 고수들은 잘 안보이는군.'

구파일방이라고 해도 드넓은 오악 전체를 세력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거대한 소림사조차도 칠십이봉 중에서 4~5개의 봉우리를 근거지로 할 뿐이다. 다만 고수의 인식능력과 활동범위가 넓기 때문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형산에는 의외로 사찰이 많았다. 나는 형산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찾아보다가 문득 강한 기를 느끼고 수풀에 은신했다.

사삿!

' 상당한 고수가 있다.'

호흡과 기를 최대한 숨기고 은신한 상태에서도 명확히 느껴지는 힘! 내가 있는 곳에서 일백 장 근처에 쉽게 볼 수 없는 고수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찰나지간에 상대도 내 존재를 느꼈는지 이윽고 기척이 사라졌다. 나는 풀숲에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서는 골치아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상대방은 초절정고수일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다가 우선은 은신한 채로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그렇게 버티기를 대략 한 시진이 지났다. 상대방 쪽에서 먼저 참을성이 떨어진 듯, 이윽고 거대한 사자후가 울려퍼졌다.

[ 어떤 고인이신지 모르나 모습을 드러내시오! 이 형산파 장문인 조진웅(曺珍熊)이 상대해 주겠소!]

"......!!"

나는 바위 위에 신형을 솟구친 인물이 형산파 장문인 조진웅이라는 걸 알자 깜짝 놀랐다.

팔비검선(八臂劍仙) 조진웅!

그는 형산파의 장문인이자 천하에 널리 알려진 검술의 달인이였으며, 특히 호남성 일대를 대표하는 초절정고수이기도 했다. 팔비(八臂)란 명호를 가질 정도로 변화무쌍한 환검(幻劍)의 달인이며 검선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가 천하를 오시하는 초고수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 어쩌지?'

조진웅의 눈을 피해서 돌아다니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싸워서 이기는건 다른 문제이지만 조진웅쯤 되는 자의 감지영역을 피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는 형산 깊숙한 곳에서 홀로 수련을 하고 있던 조진웅에게 재수없게 걸린 모양이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형산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형산파의 검법도 궁금하지만 지금은 분란을 일으킬 때가 아니다. 나는 품속에서 비등을 꺼내서 간단하게 이 자리를 벗어나고 말았다.

파앗!

나는 이번에는 화산(華山)으로 오게 되었다. 화산은 전생을 거치는동안 근처를 지날 일이 있었으므로 손쉽게 올 수가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쓸데없이 화산파 고수들에게 걸리지 않으리라 다짐을 한 후 재빨리 멸혼보로 숨어들었다.

' 어라. 뭐지.'

그렇게 화산을 뒤적거린지 만 하루가 지나자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내가 험준한 산야를 골라다니면서 인간의 이목을 피하고 있지만, 이상할 정도로 인기척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형산을 돌아다닐 때보다 더욱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화산파의 성세가 형산파보다 훨씬 드높다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호기심을 느껴서 구파일방 화산파의 본단건물을 찾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는 화산파의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도가건물을 찾아냈는데 역시 뭔가가 이상했다.

"......"

사람이 없다.

화산파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건물은 있지만 응당 화산파 여기저기를 지키고 있거나 내부에서 수련해야할 무림고수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화산파 문인들 전부가 어딘가로 출전했을 리는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일이 있어도 문파를 지켜야 할 자들은 지켜야 하기에 최소한 십여 명의 인원이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위험을 감수하고 화산파의 본단건물에 잠입했다.

' 이상현상이라면 이유를 알아내야 해.'

그래야 다음번 전생부터 정보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나는 빠르게 멸혼보로 파고들어서 화산파의 건물으로 들어갔고, 이내 중요인물이 거처할 듯한 크고 웅장한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보화각(寶華閣)이라고 되어있는 걸로 봐서는 화산파의 중요한 거점인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보화각으로 들어와서도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기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더욱 이상한 점을 발견하자 몸서리를 쳤다.

"......!!"

그렇다.

동물은 물론 곤충과 같은 아주 사소한 기척까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곳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완전히 죽음의 대지로 화해 있었다. 생명체가 이 일대에서 아예 사라져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응당 돌아다녀야 할 쥐나 잡벌레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 전투의 흔적은 없어.'

만일 외적이 쳐들어와서 화산파가 멸문했다면 그만한 흔적이 있어야 한다. 그 어떤 고수라고 해도 파괴흔 하나 남기지 않고 화산파에서 인간만을 없애버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혈흔이나 파괴흔이나 전투의 흔적같은 건 일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동식물의 기척도 없는 것까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의문을 느끼면서도 화산파의 건물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화산파 제자들이 평소에 숙식을 하는 시설도 발견했다. 심지어 검이나 무기들도 단정하게 꽂혀 있었다. 나는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장문인이나 화산파 장로들이 있을법한 공간을 찾아보기로 했다.

' 뭔가 있군.'

보화각에서도 가장 깊은 공간. 나무로 된 바닥에 향내가 감돌고 있었지만 그 영험함을 잊을 정도로 강렬하고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나는 건물의 어둠속에서 뇌기를 일으켜 광구(光球)를 형성해서 시야를 밝힌 후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이상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알?"

꾸르륵...

꾸르르르륵...

기괴한 생명의 소리를 토해내는 알이 있었다. 알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보통 볼 수 있는 조류의 딱딱한 껍질이 아니라 마치 가죽으로 만들어진 듯한 알이었다. 문제는 그 알의 크기가 보통 성인남성 키보다 두 배는 커 보인다는 것이었다.

저 알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화산파 고수들이 대량실종해 버린 일과 큰 연관이 있는 건 틀림없다. 내가 알을 좀 더 조사해 보려고 알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꺄끾!

꺄랴략!!

기괴한 소리와 함께 어두운 공간 여기저기에서 비척대며 사람들의 모습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복장을 보니 화산파 고수들이었는데 아마 여기에 전부 몰려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화산파 고수들에게 대화를 하려고 한 걸음을 내딛었지만 이내 눈을 크게 부릅떴다.

"......!!"

입에서 촉수가 뻗어나와서 넘실거리고 있다. 그리고 머리가죽이 벗겨져서 뇌피질이 살짝 드러나보이는 상태였고, 두 눈의 눈동자가 제멋대로 데굴데굴 돌아다니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저걸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그 자들의 복장에서 그들이 화산파가 자랑하는 매화검수(梅花劍手)라는 걸 깨닫자 기가 막혔다.

' 매화검수들이 도망도 치지 못하고 저런 꼴이 되었단 말인가?'

스스스

그러면서도 광란에 휩싸인 매화검수들은 천천히 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자세를 제대로 잡는 것으로 보아 놈들은 무공을 제대로 할 줄 아는 듯 했다. 또한 펼치는 포위진의 형태를 보자 강호에 이름높은 일류합격진인 매화검진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구파일방 화산파는 이족(異族)에 의해 멸망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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