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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84화 (28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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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사공표국의 국주이자 사공일족의 수장인 사공환을 만났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인물이었지만 일견하니 인상이 바로 기억이 났다. 그는 덥수룩한 수염을 만지작대며 말했다.

"귀하가 반로환동한 고수요? 무슨 일로 우리를 찾아 왔소."

사공환은 눈 앞의 10대 소년인 내가 반로환동했다는 사실을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사공환이 사공린의 안목을 그만큼 신뢰하며, 내 존재를 심상치 않게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거래를 하고자 찾아왔소."

"거래?"

나는 사람을 물렸으면 좋겠다는 눈짓을 했다. 그러자 사공환이 근처에 도열해있던 부하들을 손짓해서 물러가게 했고, 나는 그제서야 말을 꺼냈다.

"사공일족은 현재 황산파의 위협때문에 앞날이 불투명한 걸로 알고 있소. 내가 그 위협을 물리쳐 주겠소."

"하핫."

사공환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치곤 말했다.

"황산파를 물리치겠다고? 그들이 구파일방의 일원이며 절정고수를 몇 명이나 보유한 이 일대의 패주라는 사실을 알고 하는 말인가."

"물론 알고 있지. 아마 국주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나는 나직이 대꾸한 후 그를 강하게 쳐다보았다.

"나라면 황산파가 함부로 사공일족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보호해줄 수 있소. 덤으로 그들의 확장도 막아줄 수 있지. 이게 지금 당신이 일족의 수장으로서 가장 염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오만."

사공환이 침묵했다. 내 말이 그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황산파나 사공일족에 얽힌 복잡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심리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사공환이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믿을 수 없소. 당신이 반로환동의 고수라 하지만 구파일방이란 일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당신 혼자서만 기억해 두고 무덤까지 갖고 가시오."

"무슨?"

나는 다짜고짜 그에게 전음을 날렸다.

[ 당신도 황산파의 뒤에 수상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오. 그 세력의 이름은 백련교의 사대 호법무류인 풍신류(風神流)라고 하며, 황산파의 장문인인 도룡신검 용중일은 풍신류 수장의 아들이오.]

"......!!"

그가 눈을 부릅뜨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난데없이 엄청난 비밀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사공환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 그리고 나는 그들을 견제하는 다른 호법무류에서 파견된 자요. 내 임무는 바로 당신들 사공일족을 도와서 황산파의 확장을 막는 것이오.]

"다... 당신은."

[ 내 말에 대답이나 하시오. 나를 돕겠소, 아니면 이대로 살겠소?]

나는 냉소를 지으며 전음을 보냈다.

[ 물론 내 입장에서는 사공일족이 아니라 다른 세가라도 좋소만.]

"으음."

사공환이 내 밀어붙이기에 당황한듯 입술을 악물었다.

그렇다.

지금 내가 생각해낸 작전은 바로 화신류의 사자인 척 해서 사공일족을 영향력에 넣어서 보호하는 작전! 한백령은 물론 한진성도 나를 돕기로 했으므로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며 사공환을 뒤흔들기에도 충분했다. 게다가 백련교의 호법무류라는 이름값 때문에 사공환이 냉정한 판단을 하기 힘들게 했다.

잠시 고민하던 사공환이 말했다.

"당신을 돕겠소..."

"잘 생각했소. 현명한 결정이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오?"

사공환이 힘없이 묻자,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는 사공린의 스승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 있소. 그 정보를 그녀가 내놓는다면 충분한 보호의 대가로 해 두지."

"내 딸의 스승? 그게 왜 궁금하오?"

사공환이 당혹스러워했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것까지 내가 말해줘야 할 이유는 없을텐데?"

"......"

칼자루를 쥔 것은 이쪽이다. 게다가 사공환은 이미 내가 반로환동급 고수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섣불리 덤비지도 못했다. 잘못해서 내가 여기서 혈겁이라도 벌인다면 사공환으로서는 초가삼간이 불타는 결과를 맞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공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태산노옹이오."

"알고 있소. 내가 알고싶은 건 태산노옹의 거처와, 그가 사용하는 무공, 그의 생김새같은 특이사항 전반이오."

"그건 나도 모르는 일이오."

"당신의 딸은 알고 있겠지."

"......"

사공환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다가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우리를 몰아붙이지 마시오. 우리 사공일족이 줏대없이 굴종만 하며 이 험난한 무림을 살아온 건 아니오. 목숨을 걸고 명예를 지킬 수도 있소."

스르릉

사공환은 자신의 검을 뽑았다. 최대한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양보를 했지만, 딸의 은사인 태산노옹의 정보를 파는 것은 무인의 명예로써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 듯 했다. 나는 그를 차분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말했듯이 나는 피를 보고싶지 않소. 사공환 국주는 쉬운 길을 돌아가려 하는군."

"태산노옹 어르신은 우리 일족이 황산에 정착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크게 도와주신 분이오. 그런 분의 정보를 파느니 명예를 지키다 죽는 길을 택하겠소!"

"어리석은..."

나는 사공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 뭐가 그리 힘들지?'

나는 딱히 사공환을 죽일 생각도 없었고 사공일족과 원수를 질 생각도 없었다. 간단하게 협박하는 척 하면서 그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만한 배경까지 만들어준 것이다.

사공환이 이번 일을 그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넘기면서 슬며시 내게 정보만 넘기게 되면, 그로써는 엄청난 이득을 보는 셈이다. 황산파의 침공을 막을 수 있을 뿐더러 강력한 뒷배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런 인물이기 때문에 사공린같은 딸을 키워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에 어느정도는 타협하고 순응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절의를 지켜나가는 기개있는 무인이었다. 일족 전체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명예를 지키려는 자였기에 힘으로 꺾는 것은 의미가 없어보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태산노옹은 당신 일족을 걸고 지켜줄만큼 훌륭한 인물인 건가?"

"그건 무슨 뜻이오?"

슬며시 떠 보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태산노옹이 황궁과 수 차례 접촉했으며 명백히 동맹관계에 있다는 정보를 얻고 여기에 찾아온 것이오. 태산노옹은 그대들을 그저 하부세력으로 여기고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 자신도 강호에 거의 알려진 적이 없는 신비한 기인이지만 뒤에서 뭘 꾸미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오."

"......!!"

"말해두지만 기회를 더 이상 줄 생각은 없소. 사공환 국주는 잘 생각하시오."

내가 가볍게 흔들자 사공환은 더 크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내가 흔드는 말은 그로써도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게 있기 때문이리라.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단호하게 부정할텐데 침묵한다는 건 바로 그런 뜻이었다.

그 때였다.

"당신은 정말 비열하군요!!"

뒤편에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며 사공린이 걸어왔다. 내가 힐끔 그녀를 쳐다보자, 사공린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제 사부님을 근거없이 비방하고 모욕하다니요? 저는 사부님의 명예를 걸고 당신같은 인간에게는 결코 굴복하지 않겠어요!"

"정말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되려 날카롭게 그녀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내 임무가 아니었으면, 태산노옹이 수상쩍지 않았다면 이런 변두리에 오지도 않아. 나는 당신들같은 군소세력과 드잡이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고. 태산노옹이 수상할 만큼 수상하니까 당신들과 교섭해서 모양좋게 정보를 얻어가려는 건데... 그게 그렇게 나쁜 짓인가?"

사공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이에요! 당신이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강압과 강제로 정보를 얻어내려는 게 아닌가요? 그리고 당신이 내세우는 뒷세력이란 걸 얼마나 믿을 수가 있는 거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데도 제 은사를 팔 수는 없어요!"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반문했다.

"그렇다면 내가 태산노옹을 만나서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게 확실해진다면 만나게 해 줄 수 있겠나?"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죠?"

"......"

갑자기 나는 신경질이 났다. 내가 왜 이러고 있냐는 생각이 들자 절로 말투가 퉁명스러워졌다.

"당신도 사공환 표국주도 아주 용감해. 대단히 용감한 사람들이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표국과 일족의 전멸조차도 각오하다니, 어지간한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선택이지."

운을 띄운 후, 나는 우묵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손을 쓰기 시작하면 죽는 건 당신들 뿐만이 아니야. 기왕 개입한 이상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공일족은 물론 표국의 쟁자수나 표사는 물론 사돈의 팔촌에 거래하는 전장까지 다 찾아가서 후환을 없애버릴 것이다. 그게 강호의 항쟁이며 생리니까 물론 각오하고 있을테지."

"......"

두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화난다.

나는 왠지 화가 나서 언성을 높였다.

"당신들은 유파의 명예와 은사의 의리때문에 죽을 수 있지만, 그 수십 수백명의 지인들은 무슨 죄지? 당신들을 알고 지냈다는 죄? 고용인을 잘못 선택했다는 죄? 당신들이 그 쟁자수나 표사들에게 목숨을 걸라고 할 자격이 있는건가?!"

쿠구구구!!

내 몸에서 거대한 내공과 무형지기가 뿜어져 나왔다.

"흐억!!"

그 순간 사공환은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해 버렸고, 사공린은 전신을 파들파들 떨면서 하얗게 질려서 주저앉았다.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내공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서, 호법사자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내 내공의 힘을 경시할 수 없는 것이다.

' 이런.'

나는 내가 너무 화를 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기세를 빠르게 거두었기에 두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그들이 무공을 익혔기에 망정이지 보통 사람이 방금 내 앞에 있었다면 그대로 심장이 멈춰버렸으리라.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나는 표사로 수십 년간 일하면서, 강호의 항쟁에 휘말린 표국이 그대로 혈겁에 휩싸이는 일을 심심찮게 보아왔다. 그리고 그 때마다 무공이 낮은 쟁자수나 표사들은 처참하게 죽어갔던 것이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겨우 생존해 나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표사들은 대체 왜 죽어야 하는가?

주인을 잘못 고른 죄?

단지 그것만으로 죽어야 하는 게 무림이라면, 어째서 그 결정을 한 인물들은 함부로 표사들의 목숨을 걸 수 있는 것인가?

그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도저히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선택을 사공환과 사공린이 하고 있기에 벌컥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죽을 수 있는 건 좋지만 그들의 선택은 수십 수백명의 목숨을 담보하고 있다. 강호의 의리만으로 그 수많은 목숨을 내다버린다는 건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

나는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내가 너무 흥분했군. 하여간 결정은 신중히 하길 바라오."

협박하는 주제에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언어도단이다. 나는 지금의 내 꼴이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화를 낼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러자 사공린이 겨우 몸을 추슬렀다. 무형지기 한 방에 기절해버린 사공환과 달리 오래지 않아서 침착해지는 걸 보면, 사공린의 무공도 절정지경에 근접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말했다.

"알았어요. 알고싶으신 걸 알려 드리죠."

"고맙소."

사공린이 씁쓸하게 대답했다.

"당신의 무력에 굴복했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하지만 쟁자수와 표사들의 목숨을 우리 등에 지고 있다는 말... 그 말이 더욱 옳다고 느껴졌어요."

나는 그녀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찌되었든 내가 사공표국에 쳐들어와서 정보를 얻으려고 강짜를 부리는건 사실이었고, 그들은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간은 배려를 해 주기로 했다.

"상관없소. 당신이 내게 줄 수 있는 정보가 중요하니. 그 외의 일은 신경쓰지 않소."

"정말로 그 정보만 드리면 저희 일족의 안전을 보장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이오. 당신 스승에게 해를 끼칠 생각도 없소."

"그렇다면 알려드리겠어요."

이야기하면서도 이 행동이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약간 시간이 걸려도 사공린에게 접근해서 신뢰를 얻고 천천히 태산노옹의 정보를 알아가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시간도 여유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사공린은 이윽고 태산노옹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제 사부이신 태산노옹께서는 정파의 삼대기인으로 꼽히시는 분이며 천하를 제 집처럼 유람하시는 분이에요. 그 분께서는 어렸을 적에 제 근골과 무재가 뛰어나다고 하시며 저를 제자로 받아주셨고,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 분을 따라서 각지의 산을 돌아다녔어요."

"당신은 그에게서 어떤 무공을 배웠소?"

사공린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수라천광대법(修羅天光大法)과 공손검결(公孫劍決)이에요. 수라천광대법은 내공심법을 비롯한 내가중수법의 운용이며 공손검결은 상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검법입니다."

"......?"

"두 가지 무공은 직계비전이기에 가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지 못하고 있어요."

나는 내가 뭔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수라천광대법? 확실하오?"

"네."

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도 믿겨지지 않아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잠시 후 나는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왜 그러시죠?"

사공린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나는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과거 제갈부와 겨룰 때의 기억이 스쳐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수라천광대법(修羅天光大法)을 극성까지 끌어올렸는데도 내 손이 얼얼하군. 어떻게 그 정도의 내공을 얻은 거지?]

왜냐하면 수라천광대법이란 바로 중원지보이자 황궁의 대천문관, 내황각주인 제갈부가 사용하던 절세신공이기 때문이다. 놈은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으며 젊은 나이에 공력을 대단한 경지까지 익혔는데, 그 때문인지 천년설삼을 몇 번이나 먹은 내 공격을 가볍게 받아칠 정도였다. 직접 싸워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무공의 이름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태산노옹의 직전제자인 사공린이 익힌 무공과 제갈부의 성명절기가 동일하다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사공린이 말을 이었다.

"사부님께서는 평소에도 천하를 돌아다니고 계시지만 유독 태산에 기거하실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천하 무림인들도 사부님을 태산노옹이라고 부르시죠. 하지만 실제로는 오악(五岳)을 순회하듯이 돌아다니시는 일이 많으세요."

"오악..."

오악이란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을 뜻했다. 확실히 그 말대로라면 태산노옹이 태산을 거쳐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태산이야말로 오악의 으뜸으로 꼽히는 산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사공린에게 말했다.

"그는 왜 오악을 돌아다니는거지?"

"제게 말씀하시기를, 오악의 제례(祭禮)를 늘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오악의 제례를 왜?"

"잘 모르겠지만 사부님은 평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도가의 신비문파에서 신령스러운 지식을 얻었다 하셨지요."

"으음..."

제사(祭祀)!

또 다시 저 단어가 나오자 나는 침음성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제사라는 게 신(神)을 위한 공양(供養)의식이라서 굉장히 상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악을 순회하듯이 돌아다니는 태산노옹이 제례의식과 제사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수상쩍은 일이었다.

나는 확인차 물어보았다.

"혹시 해서 묻는데, 당신의 사문에 혹시 제갈부라고 하는 자가 존재하오?"

"전혀 못 들어본 이름입니다만... 낙양에서 최고로 뛰어났다던 절세기재가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요."

"흠."

사공린이 시치미를 띄는 기색은 아니었다. 아마 정말로 제갈부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다. 나는 그 외에도 이런저런 태산노옹의 정보를 캐내었고 사공린은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는 듯 했다. 나는 뭔가 일이 재미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사공린에게 말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태산노옹을 좀 만나봐야겠소. 그가 어디 있는지 알 방법이 없겠소?"

"사부님께서는 워낙 제멋대로 다니셔서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어요. 저도 전혀 모르겠어요."

"방법이 없겠소?"

"하지만 이 신표를 가지고 가신다면 어쩌면 만나주실지도 몰라요."

스윽

사공린이 내게 왠 동그란 은패를 내밀었다. 그 은패에는 주작이 정교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내가 주작은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자 사공린이 말했다.

"사부님께서 저와 헤어지실 때 주신 은패예요."

"그렇게 귀중한 걸 내게 줘도 되오?"

"......"

사공린이 맑은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말했다.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흉악한 수법을 써서 겁박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마음속에 흉심(凶心)이 없다는 게 느껴졌어요. 백웅 당신은 본질적으로 사악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 뿐이에요."

"후... 별 소리를 다 하는군. 어서 은패를 주시오."

나는 민망해서 재빨리 은패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사공환의 맥을 짚어서 기를 원래대로 되돌린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삿갓으로 얼굴을 길게 가리며 말했다.

"약속한대로 당신 스승을 내가 죽일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시오. 그리고 당신 일족의 보호도 말해 두겠소."

파앗!

나는 사공린의 대답을 듣지 않고 서둘러 사공세가를 빠져나왔다. 왠지 사공린의 눈빛에 마음이 읽히는 기분이 들어서 답답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에게 살의를 갖고있지 않다는 게 들켰다는 게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 하, 미치겠군.'

나는 너무 무른 게 아닐까?

좀 더 잔혹한 게 좋지 않을까?

나는 잠시동안 고민했지만 고개를 젓고는 앞으로의 목적을 상기했다.

"오악(五岳)을 돌아다녀야겠군."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崇山)!

그 중 한 곳에 태산노옹이 은거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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