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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81화 (28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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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약 한 시진 후, 나는 간신히 고통을 억제하고 정신을 차렸다. 화타오금희 삼부맥의 호흡으로 고통을 절반 이하로 경감시키지 않았다면 고통 때문에 죽었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여동빈은 말 그대로 내 몸의 가능성을 한계까지 끌어내서 뒷일 생각 안하고 굴려버린 것이다. 내가 아닌 보통 인간이었다면 분명히 아파서 정신이 나갔으리라.

청월과 독고성은 이야기를 다 끝낸 듯 했다. 내가 정신이 들자 독고성이 입을 열었다.

"이제 좀 괜찮나?"

"네..."

"외상이 있으면 모르되 순수한 통각이 자극당한 것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중얼거린 독고성이 말을 이었다.

"검술의 성취는 좀 있었느냐?"

"......"

나는 내 내면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기억을 다시 한 번 정리한 후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뭔가 깔끔해진 느낌입니다."

"그런가. 그렇겠지."

독고성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에는 더 이상 볼 일이 없다. 이만 비등을 써서 용왕곡으로 돌아가자."

"네."

파앗

우리는 동영의 대검호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용왕곡으로 되돌아갔다. 청월은 용왕곡의 험난한 절지와 운무가 신기한지 여기저기를 쳐다보고 있었고, 독고성은 말없이 우리를 이끌어서 용왕곡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잠시 후 심산유곡에서도 운무가 절정에 달한 계곡을 지나자 왠 사찰이 나타났다. 그 사찰은 작지 않은 크기였으며 상당한 건축기술로 지어져 있었다. 나는 신기해서 독고성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 지으신 것입니까?"

"아니다. 원래 있었다."

독고성이 암자의 기둥을 한번 손으로 쓸며 말을 이었다.

"사찰에 남겨진 말로는 남종선의 칠조(七祖)인 하택 신회가 말년에 은거하며 지은 곳이라 했다. 선종의 고문서가 여럿 남겨져 있었지."

남종선이란 불교 선종을 이르는 말로써, 칠조인 하택 신회라면 선종의 육조혜능의 제자뻘 되는 인물이었다. 이 또한 당나라 시기의 유적이니 지금부터 수백 수천년 전의 유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승(高僧)의 유적이군요."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지."

내부에 진입하자 확실히 생활감이 느껴지는 공간이 나타났다. 독고성이 더러 잡아놓은 야생동물의 가죽도 널려 있었고 곳곳에 식기와 생필품도 보였다. 넓은 공간의 중앙에 걸터앉은 독고성이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은 청월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해라."

"네."

나는 청월에게 꿇듯이 뇌신류의 예를 갖추며 포권했다.

"저는 뇌신류의 전승자인 백웅입니다. 청월 선배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러자 청월은 씁쓸하게 말했다.

"아닐세. 자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거기에서 비참하게 죽었겠지."

"원월천살법을 찾으러 가신 건 알았습니다만, 입해에서 더 나아갈 수 없으셨습니까?"

"사해를 뚫는데 무려 수십 년이 걸렸네. 허나 대략 삼 년 전에 입해에 진입한 후 나는 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해 버렸네. 아무것도 없는 혼연의 지옥도에서 간혹 등장하는 마물들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지. 내 실력으로 입해를 뚫는 건 무리였네."

그가 한숨을 쉬었다.

"결국 나는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 중간에 발견해낸 제단동굴에서 하루하루 연명했던 것일세."

"......"

청월 또한 극강한 초절정고수였다. 얼추 보아도 다른 적월 호법이나 녹월 호법에 비해서 떨어지는 실력이 아니었고, 그 말은 현재의 나보다 훨씬 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벽력삼존의 무공은 대개 이 시점에서 이광보다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청월조차도 입해에서 진입도 탈출도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버릴 정도라니! 아오키가하라 수해는 인세에 존재하는 마경임에 틀림없었다.

듣고 있던 독고성이 말했다.

"청월. 정말로 그 자가 정보를 넘겼느냐?"

청월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곧이어 그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리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반드시 그 자를 찾아가서 따질 생각입니다."

"흠... 그렇다 해도 의외군. 어째서 그 자가..."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공신력 있는 정보였습니다."

"하긴 그 자의 명성이 있으니 말일세."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어리둥절해졌다.

"그 자라뇨? 그게 누굽니까?"

"청월에게 원월천살법의 위력과 위치에 대한 정보를 넘긴 인물이다."

나는 눈이 번쩍 뜨이는 걸 느꼈다.

"그게 누구입니까?"

"태산노옹(泰山老翁)."

"......!!"

"너도 알다시피 정파삼대기인의 한 명이지."

태산노옹!

나는 여기에서 태산노옹이 언급될 줄은 몰랐기에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는 정파 삼대기인의 한 명으로서 강호에서 최상의 연배와 절세지경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진 기인이기도 했다.

개방의 전대방주인 걸선(乞仙)이나 소림신승(少林神僧) 명호대사와는 달리 태산노옹은 특정한 문파 출신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었으며 신비에 휩싸인 인물이기도 했다. 내가 여태껏 전생하면서 알기로는 태산노옹이 사공린 그녀의 스승이었다는 사실 뿐이다.

' 아니... 아니군. 분명히 그 정보가 있었어.'

나는 문득 머릿속에서 예전에 들었던 정보가 스쳐지나갔다. 바로 검마가 흑야문을 멸망시키고 흑마에게서 정보를 얻어낼 때의 일이었다. 그 때 흑마는 편하게라도 죽기 위해서 온갖 정보를 털어놓았고, 개중에서도 특급정보라고 자처하는 걸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흑마는 분명히 태산노옹에 대한 정보를 언급했던 것이다.

[ 정파 삼대기인인 태산노옹은 황궁과 큰 관련이 있는 자이며 정기적으로 황궁과 접촉한다. 태산노옹과 중원지보 제갈부가 면담해서 뭔가를 모의하는 정황도 포착되었다. 이건 아마 강호의 누구도 모르고 있는 특급정보다.]

그 당시 흑마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검마는 그 특급정보를 듣고는 반문했었다.

[ 그게 정말이냐?]

[ 그렇다.]

[ 태산노옹(泰山老翁)이...?]

[ 방금 말한 건 내가 알고 있던 최고의 특급정보다. 제발 이걸로 봐 다오.]

물론 검마는 후환을 남기는 성격이 아니기에 봐주지 않았다. 그나마 깔끔하게 죽인 것으로 정보의 값을 치렀을 뿐이다. 나는 그 당시에는 특급정보라고는 해도 태산노옹이라는 존재가 별로 와닿지가 않아서 그냥 머리속 한켠에 넣어두었다. 그저 태산노옹이 황궁의 끄나풀이라는 정도만 알고있어도 족했다.

그러나 지금 또다시 태산노옹이 언급되었다. 나는 머리를 팽팽 회전시켰다.

' 태산노옹은 황궁과 접촉한다... 그것도 제갈부... 게다가 수십 년 전 청월에게 원월천살법에 대한 정보를 흘려서 그를 수해로 보낸 것도 태산노옹...'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인물인 게 분명하다!

태산노옹의 비밀을 캐내는 게 곧 황궁의 약점을 찌를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뜻밖의 단서를 얻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 사실을 청월에게 말해줄까 말까를 생각해 봤지만, 우선은 미루기로 했다.

' 청월을 믿을 수가 없어.'

뇌신류의 인간이 착하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최종적인 목표인 황궁과 천계의 타도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뇌신류의 재흥이라는 목적과 꼭 합치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변수를 잘 재어줄 수 있는 망량의 조언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내가 침묵하자 독고성이 말했다.

"너는 화신류의 그 할망구와 친분이 생겼다고 했지. 그렇다면 화신류의 힘을 빌리면 태산노옹을 찾는 건 아주 쉬울 것이다."

"태산노옹이면 태산에 있지 않겠습니까?"

내 질문에는 청월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내가 그를 만난 것도 안휘성에서였다. 태산노옹은 태산에 가끔 있을 뿐이고 천하를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걸로 유명하다."

"......"

두 사람은 은연중에 내가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거절할 수 있는 모양새가 아닐뿐더러, 내가 태산노옹을 찾는데 되려 뇌신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나는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가 반드시 그 자를 찾는데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믿음직하구나."

그리고 나는 독고성에게 뇌룡신검의 초식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뇌영검법에서 만승검결로 나아가고, 만승검결이 10성 진경에 이르렀을 때 뇌룡신검에 입문하게 되는 셈이었다. 내게 약 한 시진동안 뇌룡신검의 형을 가르치던 독고성이 말했다.

"자, 한 번 펼쳐 보아라."

나는 예전에 뇌룡신검의 초식을 배우고 거기에 천뢰기를 싣는 것까지는 다 배웠었다. 그래서 아무런 부담 없이 뇌룡신검을 시전했다. 그러자 독고성이 꽤 놀란 표정을 지었고 옆에서 보고 있던 청월 호법도 놀라는 듯 했다. 독고성이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이 정도 재능이니 그 나이에 초절정에 이른 거겠지."

"......"

바로잡아야 하는건가 싶었지만 아직까지 무슨 말을 할 단계가 아니다. 나는 그냥 내가 천재인 걸로 넘어가기로 했다. 독고성은 그로부터 한 시진 정도 내게 천뢰기를 끌어내는 법을 가르치다가 천뢰기도 쉽게 뽑아내자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만승검결에 천뢰기를 싣는 것!

바로 이게 되어야 진정으로 내 검술의 전반에 자연스럽게 천뢰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 몸에 배여있는 무수한 검류와 버릇 때문에 그게 불가능했었다. 나는 긴장하며 검을 들어올렸다.

' 잘 되어야 할 텐데.'

쉬이익

만승검결은 마치 천하를 굽어보듯 도도하게 흐르다가, 구름처럼 흐르고, 이윽고 소쇄해지다가 풍우(風雨)처럼 몰아쳤다. 뇌신류에서 가장 화려하고 변초가 많은 검법이라는 명성대로 익히면 익힐수록 감칠맛이 나는 검법이었다. 나는 만승검결의 묘에 따라 검형을 펼치면서 동시에 천뢰기를 실어내기 시작했다.

위잉 -

"오오!!"

옆에서 보던 청월이 감탄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 검기와 검염에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뇌기(雷氣)가 흘러나온 것이다. 명백히 천뢰기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증거였다.

이윽고 만승검결의 시연이 끝나자 독고성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에게 가르칠 수 있는 건 이제 뇌신검무 뿐이겠구나!"

"과찬이십니다."

"나는 네가 솔직히 부럽구나."

독고성은 진심으로 나를 부러워하는 눈빛이었다.

"아마 검선 여동빈이 엄청난 격전을 치르면서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검술의 경험과 경지를 너에게 흡수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네 내면에서 방황하던 수많은 검류와 무술이 압력때문에 통합되어 버린 것이지. 기연을 얻었구나."

확실히 검선 여동빈의 강림때 둔의 단계를 거친 덕에 헤매고 있던 고민을 돌파한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독고성에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천둔검법이 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신선의 검법이지 않느냐? 알고 있어도 깨달음이 부족한 거겠지."

"으음..."

그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청월이 내게 불쑥 말했다.

"백웅. 너는 멸혼보를 펼칠 줄 아는 듯 한데 혹시 네 예전 스승이 멸혼보를 가르쳤느냐?"

"네, 그렇습니다."

"괜찮다면 내 앞에서 멸혼보를 아는 데까지 펼쳐볼 수 있겠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전심전력을 다해서 멸혼보를 펼쳤다. 멸혼보를 익힌지도 십 년이 훨씬 넘어갔기에 이제는 몸에 붙듯이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이윽고 보법의 환영이 잦아들고 뇌기가 수그러들자 청월이 말했다.

"멸혼보의 비기(秘技)는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그러자 잠시 독고성의 눈치를 보던 청월이 말했다.

"태산노옹을 족치는데 도움을 준다면, 네게 그 비기를 전수해줄 수 있다."

"그리 말씀하지 않으셔도 동문의 어르신이 하시는 부탁이니 꼭 들어드릴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몰염치한 사람은 아니다. 네게 구명지은을 빚졌으니 반드시 갚긴 갚아야지. 그래서 기왕 신세를 지는 김에, 내가 가진 가장 귀중한 비기를 전수해주는 걸로 마무리하자는 이야기다."

청월은 그나마 다른 벽력삼존보다는 성격이 나아보였다. 어쨌든 간에 자신이 입은 은혜는 제대로 갚으려고 하며 체면을 신경 쓰는것이다. 그런 청월의 이야기를 듣던 독고성이 피식 웃었다.

"이 놈. 적월이나 녹월이 죽어라 가르쳐달라고 해도 무시할 정도로 아끼는 비기가 아니냐?"

"그놈들에게 비기를 주느니 자살하고 말지요. 하지만 여기 백웅에게는 가르쳐주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그 때 나는 문득 생각이 났다.

' 설마?'

아니나 다를까 청월이 자신있게 말하는 건 들어봤던 이름이었다.

"멸혼보 비기 천광(天光)! 네게 알려 주겠다."

역시 뇌신류의 제자인 극호가 썼던 비기였다. 아무래도 청월이 알고 있는 멸혼보와 극호가 전승받은 멸혼보는 중복이 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면 기껏 청월을 구해냈더니 손해를 본 셈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 청월은 극호와 비교할 수 없는 고수다. 게다가 극호는 멸혼보도 남에게 알려줄 줄 모르는데 비기를 알려줄 수 있을 리가 없지. 멸혼보의 비기를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나는 청월에게 포권했다.

"제자, 감사드립니다."

이로써 나는 독고성에게서는 뇌신검무를 비롯한 뇌신류 검술의 오의를, 그리고 청월에게서는 멸혼보 비기 천광을 전수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약속대로 독고성에게는 굴공검과 천축검을 비롯한 무당파 절학을 알려주기로 했다.

수련일정이 잡히자 독고성이 청월에게 말했다.

"전에 말했던대로, 무작정 세상에 나가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청월 너도 수해에 갇혀있으면서 심신이 많이 상했을테니 용왕곡에서 요양하면서 차분하게 힘을 쌓아라."

"알겠습니다."

"태산노옹이 네게 거짓을 말했다면 틀림없이 그의 뒤에는 무언가 흑막이 있을 것이다. 정파삼대기인의 뒤에 있는 흑막이라면 보통 세력이 아니겠지. 백련교가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 또 조심해야한다."

"넵."

독고성은 그동안 개인적인 수련에만 몰두해 온 수련광이었으나 그 나름대로의 지도력과 판단력, 통솔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아마도 조직경영력이나 수완도 상당히 좋을 것이고 심계도 깊었다. 이런 인물도 수장이 될 수 없었던 게 전성기의 뇌신류였으니, 과거의 뇌신류 호법사자 이청운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으리라.

나는 수련할 준비를 하면서 생각했다.

' 뇌신검무를 배우고 나면 먼저 사공린을 찾아가야겠군.'

내가 가지고 있는 태산노옹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단서가 바로 그녀다.

태산노옹에게서 무공을 배우고 나서 하산했다는 사공린이야말로, 가장 큰 단서를 지니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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