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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78화 (27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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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파앗!

나는 사천의 용왕곡으로 즉시 향했다. 독고성과 다시 대면할 경우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이미 다 생각해놓은 후였다. 운해가 장중하게 떠도는 용왕곡은 그 자체로 천하의 험지이자 절지라서 사람이 살기에는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거대하고 자욱한 운무(雲霧)속에서 나는 희미한 살기를 느꼈다.

' 이런 거였나?'

예전에는 검마가 난데없이 뛰쳐나가길래 왜 그러나 싶었다. 그러나 지금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디에선가 내 육감(六感)을 자극하는 살기가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초절정의 진경이 깊어지고 의념에 익숙해지면서 생긴 현상인 듯 했다. 직접적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어딘가에 호랑이보다 두려운 가공할만한 존재가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산 정상에 조용히 서 있다가 무예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스으으

시작은 근처에 있던 큰 나무막대기로 뇌령팔식(雷靈八式)이었다. 그리고 뇌령팔식의 전개가 끝나자 천뢰무극창을 펼쳤고, 그 이후에는 뇌영검법과 만승검결을 차례대로 펼치며 천주살을 더러 섞었다.

파파파팟

내 몸이 하나의 돌개바람이 된 것처럼 풍륜(風輪)을 일으켰다. 거대한 자연에 항거하듯 일어난 기세가 이윽고 뇌기를 머금으며 춤췄고, 혼연중의 춤사위가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배운 걸 정리하는 겸 최선을 다해 검무(劍舞)를 이끌었다.

나는 한참 후에야 뇌신류의 무예를 펼치는 걸 멈추고 원래 위치에 잦아들었다.

그리고 약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나타난 기척이 내게 육합전성을 보내 왔다.

[ 너는 뇌신류의 고수구나. 성명별호를 밝혀라.]

검마와 찾아왔을 때와는 상이한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독고성이 낯선 이방인에게 공격적인 태도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의 경계심을 낮추고 호기심을 높이는 게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위해서 일부러 뇌신류의 달인임을 그에게 과시한 셈이었다. 아무리 독고성이 공격적이라도 동문(同門)을 다짜고짜 팰 인물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있는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뇌신류의 백웅이라고 합니다. 뇌신류의 염원을 안고 독고성 선배님을 찾아왔습니다."

독고성은 내 대답에 당황한건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눈에 보일 정도의 거리에 나타나서는 육합전성이 아니라 육성으로 말했다.

"너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느냐?"

"천지사해를 뒤지며, 뇌신류 고수 중에 호법사자 다음가는 게 독고성 선배님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오니 감개무량합니다."

"......"

독고성이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호법사자 이청운이 죽은 지금은 그가 뇌신류의 제일고수이겠지만 직접 타인에게서 그런 평가를 들으면 낯설 것이다. 하지만 이건 화신류의 호법사자이자 그들과 절친했던 한백령이 내린 평가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이 객관적이었다.

"뇌신류의 염원을 안고 왔다는 건 무슨 소리지?"

나는 그 자리에 꿇어앉듯 부복하며 그에게 말했다.

"저는 우연히 기연을 얻어 뇌신류의 무공을 대성(大成)했으나 자기자신의 벽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뇌신류가 처한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 사문의 앞날이 걱정되는 마음도 앞서게 되어, 노선배님을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디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으음."

그는 당혹한 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골수무인인데다 수련광이라서 세속의 일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자기자신의 수련에만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동문이 찾아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잠시 후 독고성은 약간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 이야기는 받아들일 수 없다."

"왜입니까?"

"너처럼 뛰어난 제자가 있는 건 본문의 홍복이자 지운(至運)이지만, 내게는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너는 이미 일가의 종사(宗師)가 될 자격이 있으니 알아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사정.

아무것도 모르고 독고성을 찾아왔다면 여기서 당황해버렸을 것이다. 명실상부한 현 뇌신류 제일고수가 후배를 돕지않는다는 게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냉철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혹여 그것은 수신류의 호법사자 독고준 때문입니까?"

"......!!"

독고성은 진심으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표정을 숨길 수도 없을 정도로 경악한 탓이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너는 나에게 대해서 많은 걸 조사하고 찾아왔구나."

"선배께서 독고준과 사촌지간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자가 선배님의 은거지에 찾아와서 은거를 강요했으리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 말 대로다."

독고성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현재로서는 뇌신류의 힘만으로 백련교에 대항할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청운은 역대 뇌신류 호법사자 중에서도 최강이었는데 그가 죽었으니 어찌하겠느냐?"

"... 그렇군요."

근본적으로는 독고성도 벽력삼존과 관점이 비슷했다. 현역 뇌신류의 장로였던 자들이니 만큼 뇌신류와 백련교의 전력차이를 그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독고성을 차분하게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렇다 해도 저는 뇌신류 검술을 깊게 배우고 싶습니다. 천하에서 제게 가르침을 주실 수 있는 건 독고성 선배님 뿐입니다."

"으음... 네 검술진경에서 독특함이 느껴지긴 했다."

"설령 독고성 선배께서 강호에 출도하지 않더라도 제게 가르침을 주신다면 뇌신류의 재흥(再興)을 이루는데 큰 도움을 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게 뇌신류의 장로로서 꼭 해야만 할 일이 아닐까요?"

"재흥이라..."

독고성이 중얼거리다가 내게 물었다.

"너는 설마 뇌신류의 종사(宗師)가 되려 하는 것이냐?"

종사!

그 단어는 단순히 유파의 달인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뇌신류의 모든 달인과 고수들을 통솔하는 지도자의 위치로서, 원래는 호법사자가 겸하고 있던 위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뇌신류가 분열되어서 파편화된 지금은 그 누구도 뇌신류의 종사라는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이광도 자신의 무예가 절세지경에 이른 후에야 시도할 수 있었고 그나마도 벽력삼존들에게 부족하다는 혹평을 들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제가 많이 부족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 있는 일만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백련교의 약점을 찾아내고 그들에 대항할 힘을 키우겠습니다."

"으음... 너라면 족히 강호를 오시하는 위치에 군림할 수 있을 터인데 가시밭길을 가려 하는구나."

"그게 유파 전승자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

독고성의 침묵이 이어졌다. 팔짱을 끼고 한참 생각하던 그는 팔짱을 풀며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네게 가르침을 주겠다. 그게 내가 해야할 일일 것 같구나."

"감사합니다."

나는 이후 독고성에게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 왔는지를 간략하게 말했다. 초기에 나를 가르친 스승이 있었으나 검술 창술 보법의 기본을 가르친 후 사망했으며, 이후에 나는 무당파의 기연을 얻고 무영문의 검마에게 의탁해서 검기를 수련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세세한 과정은 완전히 달랐지만 완전히 거짓이라고 할 수 없었기에 독고성은 흥미진진하게 듣는 기색이었다.

그가 말했다.

"그 무당파의 절학이란 건 굉장히 호기심이 생기는구나. 어떤 무공이지?"

"직접 십여 초만 겨뤄보시겠습니까?"

"그것도 좋겠지."

키잉!

검강이 쏟아지듯 부딛혔다. 마치 낙양에서 태검문주와 겨룰 때처럼 변화없는 일검식이 마주쳤으나, 나는 그 때와는 달리 거센 압박감이 목젖까지 밀려오는 걸 느꼈다. 독고성의 검강이 너무나 현묘한 기세를 담고 있어서 미처 중화를 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하다. 독고성은 호법사자를 제외하고는 최고의 고수 중 한 명이다.

나는 이윽고 그의 검날에서 뇌전(雷電)이 뿜어져나오며 포효하는 걸 볼 수 있었고, 급히 굴공검과 천축검을 이용해서 간격을 조정했다. 섬광이 제자리에서 열 번이나 터져나왔고, 그 때마다 나는 신형을 번복시키며 아슬아슬하게 받아냈다.

타닷

나는 고작해서 십여 초를 겨루었는데도 진이 빠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 검마의 조언대로야. 검뢰(劍雷)는 정말 무섭구나.'

검뢰!

그것은 무당파의 절학을 익힘으로서 절세고수의 경지에 이른 검마조차도 크게 경계했던 기술이었다. 단순히 검에서 뇌전을 뿜어내는 것을 넘어서서 필살(必殺)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간격을 조정해서 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 살육기술이었다.

독고성이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내 검뢰를 피해냈구나. 공간과 간합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검도(劍道)라... 확실히 현묘하고 강력하다."

"후우... 저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 무당파의 절학은 절세무공이다. 내게도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독고성은 예전과 달리 무당파 절학에 욕심을 부리는 기색이었다. 예전에는 흥미롭다고 하며 일별하고 지나갔으나 오늘은 유독 흥미를 넘어선 감정이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8년 후의 독고성은 자신의 성취를 공고히 했기 때문에 다른 무공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 어쩌지? 독고성에게 무당파 절학을 가르쳐 주는건...'

틀림없이 독고성이 장삼봉의 심득을 배우면 급격히 강해질 것이다. 어쩌면 과거의 검마를 뛰어넘을 정도의 초고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초고수가 된 독고성이 어떤 행동을 할지, 그를 내가 제어할 수 있을지는 전혀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계속 계곡에 은거해있으면 모르되 그가 세상에 나가게 되면 어찌될지 알 수가 없다. 가장 큰 문제점은 나와 독고성 사이에는 그리 신뢰관계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물론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한 가지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무엇이냐?"

"곧 독고준이 찾아올 텐데 그에게 제 이야기를 잘 해주십시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나는 독고성에게 낙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는 끝까지 다 듣더니 말했다.

"네 계획은 백련교주의 제자로 들어가려는 거군."

"네, 저는 그 방법이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독고성은 침음성을 흘렸다.

"네가 내 제자를 사칭한 것 정도는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네가 그 사실을 내게 솔직히 고한 걸 보니 다른 뜻이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네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련교주의 제자가 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수신류에는 거대한 비밀이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특히 저는 현 백련교주만이 알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사대무류를 통합하여 자유자재로 시전가능한 경지에 오르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그의 제자로 들어가서 그가 어떤 비밀과 약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백련교에 대항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비밀... 으음..."

독고성은 뭔가 한참 망설이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사실은 나도 그 비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일족을 뛰쳐나왔다. 그 비밀은 너무나 깊고 거대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치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백련교주의 제자가 되려 하느냐?"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놀라서 독고성에게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독고성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현 백련교주는 내 숙부 되시는 분이다. 그 분이 일족의 종사가 된 이래로 수신류는 많이 변해버렸지. 나는 그 변화가 너무 두려워서 순수한 무예를 추구하고자 대등한 뇌신류에 입문했지만, 반백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 분이 안고 있는 비밀이 두렵다."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나도 잘은 모르지만... 숙부께서는 무공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도움을 받았다. 나를 제외한 수신류의 일족들은 인간이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그가 꺼지듯 한숨을 쉬었다.

"네 생각대로 수신류의 비밀을 알아내는게 우선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건 아무리 네가 초절정고수라고 해도 캐내는 도중에 사망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위험한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그래도 백련교주의 제자가 될 것이냐?"

"......"

나는 독고성의 말에서 심상찮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의지가 굳게 세워져 있었기에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기필코 그 자의 약점을 찾아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백련교주만 쓰러뜨릴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될 겁니다."

"으음!!"

그 순간 독고성은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어린 뇌신류의 천재가 목숨을 걸고 운명에 도전한다는 게 뇌신류의 장로에게 큰 감회를 준 듯 했다.

"... 좋다. 그렇게 하자. 나는 이제부터 너를 정식제자로 받아들일 테니, 너와 나의 운명이 함께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나는 독고성과 최소한의 신뢰관계가 쌓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그에게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검류의 혼란과, 무술의 벽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독고성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

"확실히 네 생각대로 그건 백련교주의 제자가 되는 방법밖에 없겠구나."

"네. 무예의 절대자라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흐음, 하지만 너에게는 왠지 다른 복안도 있는 것 같군."

"네?"

독고성이 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이긴 하지만 너는 백련교주에 의지하려는 것 같지 않다. 혹시 대등한 경지의 절대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냐?"

"... 맞습니다."

나는 독고성에게 말했다.

"검선 여동빈의 힘을 빌려서 돌파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호오!"

나는 검선 여동빈이 내 몸에 강림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가 지닌 천둔검법을 익히다보면 현재의 경계가 뚫릴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여동빈에게서 수요의 축복을 받은 경과도 이야기했지만 독고성은 술법에는 거의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독고성이 감탄하며 말했다.

"너는 반로환동의 기척도 없고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도대체 어떤 수라장을 헤쳐온 것이냐? 이미 보통 사람이 열 번 죽었다 깨나도 하기 힘든 경험을 쌓았구나."

"... 뭐, 열여섯 번쯤 죽으면 누구든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응?"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털고는 말했다.

"아무튼 어찌 생각하십니까?"

"흐음..."

이윽고 고민하던 독고성이 말했다.

"아주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인 방법이다."

"어떤 방법입니까?"

이어진 독고성의 말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검선 여동빈을 강림시켜서 나와 대련을 시키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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