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275화 (275/1,615)

0275 ----------------------------------------------

천계(天界)

다음날, 나는 새벽 일찍부터 나와 있었다. 새벽공기와 함께 먼 동이 붉은 빛으로 흘러나오는 풍광이 눈을 아리게 만들었다.

"......"

눈 앞의 철혈문(鐵血門)이라는 명패를 보며 팔짱을 꼈다. 내 머릿속에는 어제 한진성이 했던 말이 맴돌고 있었다.

[ 철혈태검(鐵血太劍) 장서이한(長徐李韓)이라고 불리는 쌍문사가(雙門四家)는 낙양 무가의 상징이며 자존심입니다. 그 세력은 아무리 수도에 위치해 있다지만 일개 무림세가의 수준을 뛰어넘었지요. 그렇기에 가주님께서는 당신이 그들을 짓밟아주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 말 뜻이 잘 이해되지 않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오.]

[ 쌍문은 비밀리에 구파일방(九派一邦)과 연합했고 사가는 십이율(十二律)에 손을 뻗었습니다. 가주님께서는 그걸 몹시 괘씸하게 생각하십니다.]

나는 그 말에 놀랐었다.

[ 철혈문과 태검문이 구파일방과? 사가가 십이율과? 정말이오?]

[ 그들은 몇 년 전부터 무림의 지각변동을 예측하고 생존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낙양에서 뭔가 거대한 사건이 터질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름뿐인 동맹이 아니라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타지의 세력과 구축하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설명한 한진성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 지금까지는 그들의 행동을 보아넘겼지만, 당신의 경험을 쌓게 할 겸 날뛰고 오라 하셨습니다. 쓸데없이 나대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지요.]

[ ......]

한진성이 많은 사실을 설명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말 행간에 담겨있는 의도를 알아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잠시동안 생각하다가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한씨세가가 원하는 건 강호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집중시키는 것이다.

황연 대장군의 탐색 및 화신류나 백련교가 진짜로 노리고 있는 목적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나를 미끼로 쓰려는 것이다.

망량의 옆에서 오랫동안 지냈던 풍월이 있었으므로 이 정도 계략은 쉽게 유추가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예측을 한진성에게 직접 물어보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한진성이 똑바로 대답해줄 리가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에서는 최대한 예측과 사실을 숨기면서 상대의 의도를 짐작하는 게 최선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다.

' 남의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군.'

하수인처럼 움직이는 것만큼 불쾌한 일도 달리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인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한 가지는 기왕 백련교의 비밀을 캐기로 했다면 철저하게 그들에게 호의와 신뢰를 얻어야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살겁(殺劫)을 벌인다 해도 따를 용의가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바로 쌍문사가에는 구원(舊怨)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철혈문에 비무신청을 했다가 속절없이 목이 잘려나갔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아침일찍부터 나와서 호기롭게 달려들었던 것 같다.

상당히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눈 앞의 문지기들을 차분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 내가 내 원한을 통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망량은 내게 조언했었다. 앞으로 살면서 무수한 원한을 지게 되겠지만, 그걸 잊지말되 항상 머릿속 한구석을 냉정하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화를 낸다는 것은 틈을 보인다는 것이고, 그게 약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섣불리 상대를 죽였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이 덮쳐올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목표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최대한 점잖게 간다!

어줍잖게 원한을 갚으려 했다가는 큰 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다. 그럴 바에는 그냥 이번에 조용히 넘기고 다음번에 더 강렬한 복수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생각을 끝내자 문지기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백웅(白熊)이다. 철혈문에 비무를 신청하러 왔다."

"... 비무? 크크, 이거 원..."

제자 둘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개 중 한 명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같은 놈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지만, 너는 정말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 같구나. 우리 철혈문에 시비를 걸었다가 병신이 된 놈들이 몇 명이나 되는줄 알고 있느냐?"

"......"

청룡무관 때와 똑같다. 역시 내가 그때의 기억을 살려서 똑같은 말을 하자, 상대도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약간 다른 어감이었지만 분명히 비슷했다. 나는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이 법칙을 어떻게 이용해먹을 방법이 없을까?'

우선은 상대가 같은 반응이라는 건 미래의 불확실성이 덜해진다는 의미였기에 나는 다소 안심하며 대꾸했다.

"비무를 받을지 말지는 니가 결정하는거냐?"

내가 사납게 쏘아붙이자 그 문지기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좋아. 잠시 기다려라. 절차에 따라서 맞아줄 테니."

"기다리지."

내 대답을 들은 철혈문의 제자 하나가 불퉁한 목소리로 나를 비웃었다.

"괜히 센 척 하지 마라. 얻어맞고 끝날 게 병신되서 끝난다."

이 말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화내는 대신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병신이 아니지. 목이 날아가서 죽겠지."

"그걸 아는 놈이 감히 철혈문에 비무신청을 했단 말이냐? 네놈은 목숨이 몇 개나 되는 건지."

철혈문의 문지기가 이죽거렸지만 나는 마주 웃었다.

"여러 개 있지."

"......"

문지기는 상종을 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나는 여유로웠다. 여기서 굳이 폭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대방을 내 의도대로 끌어들일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철혈문의 제자가 나와서 말했다.

"어이, 들어와라. 비무장까지 안내해 주마."

나는 그를 따라서 비무장으로 향했다. 수백 명의 제자들이 숙식하고 있는 기숙사는 물론 대련장에 체력단련장까지 마련되어 있다. 꽤 오래된 기억같지만 마치 훈련장과 같은 거대한 위용도 새삼 기억이 났다. 나무바닥에서 향내가 나는 커다란 실내대련장까지 가자 수많은 하급제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후에 있을 일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어이 - !!

갑자기 철혈문 제자들이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내질렀다. 소리라기보다는 기합으로, 내 기를 죽이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실내에서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과연 소리가 굉장히 크게 울리긴 했다. 아마 어지간한 무림인은 수양이 얕다면 기세에서 압도당할 것 같았다. 내 기를 꺾기 위한 철혈문도들의 행동이었다.

우웅... 우웅...

하지만 나는 예전과 달리 맞대응해서 사자후를 지르지 않았다. 결과가 별다르지 않을 뿐더러 굳이 대응하지 않아도 되는 도발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잔향이 지나가자 차분하게 맞은편에 앉아있던 백의(白衣)의 사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임검당주(臨劍堂主) 교준(較俊). 철혈문은 본래 비무 전에 이렇게 떼로 악을 지르는 게 관례인 거요?"

"......!!"

내 시선을 받은 백의 중년인, 임검당주 교준은 당혹한 표정을 지었고 하급제자들도 웅성거렸다. 임검당주가 명성이 꽤 있는 무림인이라고는 해도 딱 짚어서 이야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그가 정신을 차리고는 앞으로 걸어나왔다.

"미안하군. 자네가 어중이떠중이인지 시험해보려고 우리 제자들이 무례(無禮)를 범했네."

"어중이떠중이같소?"

"아니. 자네는 대응할 가치도 없다는 듯 무시를 해 버리는군. 자네는 틀림없이 뛰어난 내공과 경험을 지닌 고수일세."

냉정한 관찰결과를 말한 교준이 한숨을 쉬었다.

"어린 나이에 상당한 무예경지에 이르렀군. 명가(名家)의 후예인 듯 한데 어찌 비무행처럼 무례한 짓을 한단 말인가?"

나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나는 당신 상대가 아니오. 괜히 망신살을 보지 말고 물러서시길."

내 기억으로 그는 그리 나쁜 자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위치에 충실한 평범한 무림인이라서 그리 괴롭히고싶지 않은 것이다.

"......"

임검당주는 고민하며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던 하급제자들의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사내가 벌떡 일어서서 외쳤다.

"저 건방진 놈을 놔둘 거냐? 달려들어서 때려눕혀!"

"오오오오 - !!"

우르르

다음 순간 무려 오십여 명이 훨씬 넘는 하급제자들이 일시에 목검을 빼어들고 내게 덤벼들었다. 내 외견이 십대의 아이라는 걸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장대한 단체폭력이었다. 무공이 별것아니라고는 해도 장성한 장골들이 수십 명이나 덤비는 건 누구도 무시하기 힘든 압박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눈 앞에서 날파리떼가 덤벼드는 기분이 들었다. 수십 명 중에서 단 한 명도 제대로 무예를 쓰는 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찰나, 검을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는 찰나, 왼쪽 발을 움직이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는 찰나, 삼 초 이내에 제압하자고 생각했다.

슈슈슉

멸혼보가 분영(分影)을 만들어 내었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 멸혼보의 행로는 오십여 명의 하나하나에 다가가서 치명적인 위치를 점했고, 나는 왼쪽 발을 움직이지도 않은 채 가볍게 손을 움직여서 점혈을 하기 시작했다. 간혹 건방져 보이는 놈들은 수도(手刀)로 뒷골을 쳐서 기절을 시켜버렸다. 뇌신류의 경공수법과 권장법, 검술의 응용이었다.

투투퉁!

삼 초의 시전이 끝났을 때, 철혈문의 하급 제자들이 덤벼들던 홍수같은 기세는 일시에 멈춰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눈에 보이듯 흐르고 다음 순간 - 하급제자들이 허물어지듯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하나같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깔끔하게 기절해버린 것이다.

쿠궁

"허... 허억..."

이제 장내에 멀쩡히 서 있는 건 임검당주 교준밖에 없었다. 그는 찰나에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지 못하는 듯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했다. 그의 얼굴에는 명백히 공포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초... 초고수! 고... 고인(高人)께서 어쩐일로..."

"손풀기로 딱 좋군. 철혈문 장로와 문주들은 어딨소?"

"......"

임검당주 교준이 그 자리에 굳어있을 때였다.

"반로환동한 고수인가? 정말 대단하군."

"문주님!!"

나는 등을 돌려서 입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패기를 휘감은 채 털옷을 입고 있는 왠 중년남성과, 그를 옆에서 호위하듯이 따르고 있는 6명의 무인들이 보였다. 중년남성의 기운은 내 기감으로 볼 때 눈으로 보일 정도로 유형화(有形化) 되어 있었고, 6명의 무인들도 그만큼은 아니었으나 상당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또다시 임검당주 교준처럼 수실을 매달고 있는 검(劍)을 패용한 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 철혈문주와 철혈문의 육대장로군.'

원래라면 그들의 행차에 철혈문 제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러야 정상이다. 나는 과거 그들의 등장에 크게 주눅들고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그들을 일견(一見)하자, 과거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겨우 저 정도의 적들을 상대로 두려워했단 말인가?

물론 철혈문주나 육대장로는 상당한 고수들이었다. 철혈문주는 초절정고수가 틀림없었고 육대장로도 서너 명이 절정지경이었으며 두어 명이 초절정의 초입에 발을 딛고 있었다. 무림세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틀림없이 강대한 무력단체가 틀림없다.

그러나 - 지금까지 내가 상대해 온 적수들에 비하면 크게 못 미친다. 진소청이나 이광과 마주쳤을 때 느꼈던 그 절망적인 압박감에 비하면 너무 묽고 연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괴수나 마수들과 목숨걸고 칼을 나눴을 때와 비교하니 잔잔하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나는 과거에 내 죽음을 담보했던 철혈문의 최정예와 마주친 지금에 있어서도 아무런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철혈문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문주. 나와 한 수 겨뤄보시겠소?"

옆에 있던 장로들은 건방지다는 기색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개중 초절정에 발을 디딘 한두 명의 장로는 심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철혈문주에게 자웅을 가리자고 내가 말하는 게 괜히 해보는 소리가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내 실력을 파악하고 있는 건 철혈문의 최고수인 철혈문주였다. 그는 의념의 경지와 내면의 결계로 나와 간합을 은연중에 겨루다가, 계속해서 밀리게 되자 반 보를 뒤로 딛었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이 내게 못 미치는 걸 분명히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철혈문주가 한숨을 쉬었다.

"구파일방에서 오셨소? 나는 반로환동한 절세고수를 명룡자 님 이외에는 알지 못하거늘."

그는 나를 반로환동한 고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 출신을 궁금해 할 필요는 없소. 당신은 내 비무신청을 어찌 해결할지 대답하시오."

"본문을 멸(滅)하려 하는가?"

"말했을 텐데, 친선비무라고."

나는 비웃듯이 말했다.

"친선비무를 빙자해서 낭인의 목을 베어버리는 몰염치한 어떤 문파와는 다르오."

"......"

철혈문주는 왠지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생전 면식도 없는 반로환동 추정의 초고수가 자신들을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 어쩌시겠소? 나를 상대로 철혈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오?"

철혈문주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같은 초고수에게 져도 할 말은 없소. 나 하나로 끝내주시오."

철혈문주는 이미 패배를 각오한 듯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나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너무 오만하군."

"무슨 말이오?"

"당신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하니 육대장로와 함께 덤비시오."

"뭣..."

"두 번 말하지 않겠소. 내가 실수로 당신을 죽여버리기 전에 합공하시오."

철혈문주가 당혹해 하더니, 이내 분노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말 후회하지 마시오!"

스스스스

잠시 후 철혈문주를 위시해서 철혈문의 육대장로가 나를 포위해서 둘러쌌다. 내 합공요구를 거리낌없이 들어준 것이다. 명분을 준 이상 그들은 이제 나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려 할 것이다. 나는 그 가공할 포위진을 보면서도 되려 웃었다.

그리고 옆에서 합공의 좌를 차지하고 있는 귀영검객 진평을 보며 말했다.

"나는 당신을 제일 나중에 쓰러뜨릴 생각이오."

"......?"

이 오만하기 그지없는 공투를 제안한 이유.

그것은 바로 - 청룡위 이광이라면 이 정도면 우습게 해치웠을 거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초절정의 세계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에 서 있는지를 확고하게 알아보기 위한 마음인 것이다.

약 삼백 오십 초가 지난 후.

"크헉!!"

철혈문주가 굴공참에 얻어맞아서 삼 장을 튕겨서 날아갔다.

"어... 어째서 거기서 공간이 비틀리는..."

그는 비틀거리더니 나를 원독어린 눈빛으로 보더니 쓰러졌다. 승부근성이 강한 자라서 끝까지 이기려고 덤벼들었지만, 굴공참으로 합공이 모조리 와해되면서 뇌명과 멸혼보에 농락당한 끝에 당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쉴새없이 뇌명을 쓰면서도 지구력과 폭발력이 내 쪽이 훨씬 앞섰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꽤 쉽게 이긴 기분이다.

그리고 철혈문의 육대장로 중에서 한 명을 제외하고는 죄다 기절해서 뻗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것은 비틀거리는 귀영검객 진평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안심하시오. 죽일 생각은 없소."

"... 모를 일이군."

귀영검객 진평은 우묵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당신같은 고수를 구파일방에서도 한두 명밖에 보지 못했고, 쌍문사가에서도 극소수밖에 보지 못했소... 천하를 오시하는 절대자가 어찌 이렇게 해괴망측한 시비를 건다는 말이오?"

나는 피식 웃었다.

"말했잖소. 나는 당신들 덕에 큰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소. 그래서 그걸 가르쳐주고 싶소."

"깨달음?"

"무림(武林)이 무엇인지 아주 혹독히 가르쳐 줬지."

나는 귀영검객 진평에게 원한이 없다. 왜냐하면 그가 무인으로서 정정당당히 일대일로 싸웠을 뿐만 아니라, 내공을 기술로 이겨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의 죽음이 내가 가지고 있던 무림에 대한 환상을 깨 주었기에 이후에 성장하는데 큰 발판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쿠웅!

이윽고 귀영검객 진평이 십 초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나는 그를 손쉽게 무당파 절학의 응용으로 쓰러뜨린 것이다.

' 철혈문 토벌 완료인가.'

이걸로 확신한다.

지금의 나는 무림을 오시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