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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용비천이라고?!
' 갑자기 놈이 왜?'
나는 풍신류 호법사자가 찾아온다는 말에 그만 반응할 뻔 했다. 하지만 내가 그걸 아는 티를 내게 된다면 분명히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나는 한진성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로 마음먹으며 최대한 동요를 감추었다.
한백령이 황당한 듯 중년무인에게 말했다.
"그놈이 뭐하러 여기 왔단 말이냐?"
"지금 낙양성에 입성했다고 기별을 보내왔습니다. 곧 도착할 듯 합니다."
한백령은 뭐라고 대꾸하려다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렇군."
슈슉
어느 새 넓은 장내의 입구에 한 인영이 서 있었다. 중년무인은 흠칫 놀라며 물러섰는데 아마도 그 자가 언제 자기 뒤까지 왔는지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풍신류의 신법으로 만들어내는 분영(分影)은 상상을 뛰어넘는 정밀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크다!
커다란 삿갓을 쓴 채 흑장속(黑裝束)을 입은 사내는 마치 태산같은 압박감을 좌중에 전달하고 있었다. 체구가 그리 큰 인물은 아니지만 지니고 있는 기(氣)가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삿갓 너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이 자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중년무인이 자신의 검을 뽑으며 호통을 쳤다.
"용비천! 감히 가주님의 거처에 멋대로 침입한 거요?!"
팔짱을 낀 용비천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한백령에게 말했다.
"급히 사람을 찾아야하니 도움을 빌리고 싶다."
"이익."
파앗!
무시당한 중년무인은 이를 갈더니 빠르게 용비천을 공격해 들어갔다. 나는 그의 검속이 상당히 쾌속하며 자세가 완성되어 있는 것을 보자 내심 놀랐다.
' 상당한 절정고수군.'
강호에서 일류라고 행세하는 자들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있었다. 아마 지금 그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낼 수 있는 자를 찾기도 힘드리라. 여기가 한씨세가이며 중년무인이 한백령의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무사라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용비천의 신형이 투명하게 일렁이며 빠르게 중년무인의 검격을 회피했다. 그러자 화염의 칼날이 허공에 빠르게 다섯 번 스치고 지나가는 듯 하더니 용비천과 중년무인이 서 있던 위치가 바뀌었다. 중년무인이 급히 몸을 반회전 하는 순간 노갈성이 터져 나왔다.
"그만둬라!"
"하지만..."
한백령이 한숨을 쉬었다.
"알아서 할 테니 물러가 있어라."
나는 찰나지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용비천은 극히 빠른 풍백보로 검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분신을 남겨서 중년무인을 혼란시켰다. 그러자 중년무인은 검염을 뿜어내어서 분신을 베었지만 그 때는 이미 용비천이 완벽하게 그의 등 뒤를 잡은 것이다. 저건 나도 당해본 적이 있는 수법이었으므로 등골이 오싹했다.
' 다시 봐도 분간이 안 가는군.'
과거 10번째 전생에서 용비천의 분신과 겨룰 때 느꼈던 점이었다. 용비천의 분신은 도저히 분신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정밀도와 완성도를 지니고 있어서 절정고수의 기감으로도 분간해낼 수 없었다. 방금 전에도 나는 집중한 끝에 겨우 위화감을 발견해냈으니 그 자체로 무서운 기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존명."
중년무인이 물러나자 용비천이 이죽거렸다.
"저 친구가 화신대(火神隊)를 대기시켜 놓겠군."
한백령은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되려 귀찮은 듯한 얼굴로 턱을 괴면서 곰방대를 늘어뜨렸다.
"난데없이 찾아와서 왠 강짜냐? 이렇게 만나는 게 본교의 대계(大計)에 방해된다는 것도 모르는 돌대가리였나?"
한백령이 용비천을 조롱하는 듯 했지만 용비천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억지인 건 알고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아랫것들을 보내면 될 것이지."
"다른 놈들은 사람의 눈에 띌 게 아닌가."
"흥, 그놈의 풍백보(風魄步)."
한백령은 마뜩찮은 듯 고개를 돌렸다. 아마도 용비천은 극성에 이른 풍백보를 이용해서 극비리에 한백령을 만나러 직접 온 듯 했다. 그래야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 빠르게 일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잠시 생각하던 한백령이 말했다.
"어디 말해봐라.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네놈이 직접 왔는지 궁금하구나."
용비천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그 전에 저 꼬마는 누구지? 소가주는 전에 본 적 있지만 저 놈은 뭔지 모르겠군."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동시에 좌중의 이목이 내게 모였다. 한백령은 그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곰방대를 늘어뜨리고 있다가 대답했다.
"걱정 마라.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니까."
"저 놈이 누구냐고 물었잖은가."
"알려줄 이유가 없다."
용비천이 실소를 흘렸다.
"크크, 호박씨를 까고 있었군."
그러자 한백령의 표정도 약간 사나워졌다.
"지금 본녀의 성질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을 텐데...?"
쿠구구구
"......!!"
나는 엄청난 기(氣)가 허공에서 충돌하는 걸 보자 침을 꿀꺽 삼켰다. 천령단이 무한의 내공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나도 호법사자를 제외하고는 천하제일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은 주변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듯이 기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 대치하고 있던 용비천이 말했다.
"... 알았다. 일이 바쁘니 일단 넘어가지."
"닥치고 꺼져라. 네놈 부탁이나 들어줄 정도로 한가하진 않다."
"뭣..."
용비천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한백령의 표정을 보자 진심이라는 걸 알아차린 듯 했다. 한백령 또한 한 성질 하는 인간인지라 용비천의 깐족거림을 들어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용비천은 일이 잘못됨을 느꼈는지 서둘러 말했다.
"다시 생각해라. 이건 본교의 대계와도 큰 연관이 있는 일이다."
"그럼 당장 말해."
한백령의 엄포에 용비천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 황궁에서 관리하던 대뢰옥이 뚫리고 거기에 있던 죄수들이 모두 탈주했다. 거기에 있던 죄수들을 찾아내야 한다."
한백령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해 했다.
"무슨 말이냐? 대뢰옥이 뭔지는 안다만 왜 그 일이 우리와 관련이 있다는 거지?"
"죄수의 명단에 황연 대장군이 있다."
"......!!"
"그의 영향력은 굉장히 위험하다. 서둘러 그를 찾아내야 하니 한씨세가와 화신류의 힘을 빌려주기를 바란다."
나는 뜻밖의 말에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황연 대장군!
황궁에서 전력을 다해서 그의 행방을 찾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이 그때문에 화신류 호법사자를 찾아올 줄이야! 아마도 천하제일의 자금력을 지니고 있는 한백령의 힘을 빌려서 황연을 찾아내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한참동안 생각하던 한백령이 나직이 말했다.
"그 부탁은 못 들어 주겠다."
"왜지? 더 설명해 줘야 알아듣겠나? 황연은..."
용비천이 설명하려 들자 한백령이 난데없이 곰방대를 그에게 던졌다.
엄청난 속도로 투척된 곰방대는 어검(御劍)의 묘리에 따라 시공간을 꿰뚫는 듯 용비천의 미간으로 향했다. 용비천도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는지 찰나지간에 분신을 남기며 잔영술으로 피해 버렸다. 그러나 한백령의 곰방대는 다시 한 번 방향을 틀어버리더니 용비천의 진체(眞體)로 날아가 버렸다.
용비천은 별 수 없이 호신강기를 써서 곰방대를 막아내려는 듯 했다. 용비천의 손이 곰방대에 닿이는 순간, 그는 불에 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퍼엉!
"윽."
가벼운 폭발음과 함께 용비천이 주춤거렸다. 곰방대에 실려있던 와력(渦力)이 용비천의 호신강기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휘리릭
곰방대를 다시 자신의 손으로 회수한 한백령이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본녀야말로 묻고 싶구나. 그건 황궁의 일이다. 네놈은 본교의 호법사자이면서 어째서 황궁의 뒤를 닦아주고 있는 게냐?"
"큭..."
"시덥잖은 놈."
한백령의 말에 용비천이 피가 흐르는 자신의 손을 꽉 말아쥐었다.
"하고픈 말은 많으니 여기까지 해 두지. 썩 가버려라."
"교주께서도 황궁과 직접 적대하지 않으시며 내 행동도 용인해 주셨다. 그리고 나는 내 행동이 본교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거야말로 내 알바 아니지."
한백령은 차갑게 웃었다.
"찾든말든 네가 알아서 해라."
"......"
용비천이 이를 부드득 갈더니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보통 상대라면 무력으로 으름장을 놓기라도 할 텐데 한백령은 그럴 수가 없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내 정체를 끝까지 캐묻지 못한 것도 그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용비천을 이대로 보내주고 싶지 않았다.
' 죽이고 싶다.'
억지로 살기를 인내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한계치에 도달해 있었다.
미호가 저 놈 손에 죽었을 때의 일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마음속에서 생생하게 맴돌고 있다. 그 때 저 놈을 찢어죽이면서 일말의 복수는 했지만 그럼에도 증오는 가라앉지 않았다. 아마도 내 은근한 살기를 장내의 모두가 눈치채고 있겠지만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때 한진성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문득 과거의 기억이 되살려졌다.
[ 아생(我生) 연후(然後)에 살타(殺他). 자신이 산 이후에 타인을 죽이는 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 기란 인생과 같습니다. 이기는 게 전제이지만, 동시에 지지 않는 법을 찾아야 합니다. 진다는 것은 곧 죽음(死)이니, 자신이 살아갈 길을 먼저 만들지 않으면 결코 상대방에게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이 세상 그 어떤 강자라고 해도 약점(弱点)이 반드시 존재하며 그걸 찌르기 위해서는 얼음처럼 냉정한 판단력과 뛰어난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자는 결코 요행으로 쓰러뜨릴 수 없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 명심하십시오.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게 될 수 있는 겁니다.]
"......"
그랬다. 과거 멋도 모르고 암경무투회에 출전하려 하다가 흉계에 휘말려서 죽을 뻔 한 나를 깨우쳐 준 게 바로 한진성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데 그쳤지만, 한진성의 말은 이후에도 금과옥조처럼 내 전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새삼 경험이 쌓이면서 돌이켜보니 한진성은 젊은 나이에 굉장히 많은 것을 깨닫고 있었던 걸로 보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그래 맞아. 용비천에게 지금 정면으로 덤벼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
한백령에게 덤볐다가 깨짐으로써 호법사자와 실력의 벽은 확실히 느꼈다. 새삼스레 용비천과 싸우면서 재확인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설혹 이긴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풍신류 전체가 직접적인 적수가 되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망량의 계획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쉬리릭...
이윽고 용비천은 마치 허공에 스며들듯이 사라졌다. 놈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한백령은 곰방대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진성아. 저 자가 말했던 황연 대장군을 찾아 봐라."
"네."
"그리도 중요한 인물이라면 먼저 확보해서 우리가 써먹을 수 있겠지."
"군부 최대의 실력자이니 충분히 그만한 가치는 있을 겁니다."
"덤으로 대뢰옥에 투옥된 걸로 의심되는 자들도 함께 조사해라."
"알겠습니다."
마치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한백령과 한진성의 대화는 용비천에게서 좋은 정보를 받았다는 낌새였다. 겉으로는 용비천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실제로는 그 정보를 잘 이용해먹을 생각으로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설마... 과거에 망량이 반천맹을 운영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것도?'
한백령은 다 알면서 능구렁이처럼 모르는 체 하면서 반천맹을 도왔을 수도 있다. 황연 구출이 불가능했던 시점에서는 그저 미래에 대한 투자였고, 이후에는 황연의 가치를 알고서 반천맹을 암중에 지원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화신류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곳이라는 걸 깨닫고 침음성을 흘렸다.
한백령이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살기가 넘쳐 흐르더군. 뇌신류의 제자이니 용비천을 보면 그럴 만 해."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이르다. 용비천을 꺾기 위해서는 적어도 네 사부보다 훨씬 강해져야 한다. 섣부른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거라."
나는 문득 한진성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한백령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용비천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흐음?"
한백령은 자못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풍신류 자체의 약점을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용비천 개인의 약점을 말하는 것이냐?"
"두 가지 모두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강하게 말하자 한백령이 모호하게 웃었다.
"네 스승은 별로 풍신류를 싫어하진 않을텐데 제자란 놈은 꽤 별나구나."
"......"
"뭐 좋다. 저 놈은 슬슬 견제를 해야 하니."
중얼거리던 한백령이 입을 열었다.
"먼저 풍신류의 약점은 공격력이 약하며 환술분신이 파악되면 무력해진다는 점이다. 그걸 감추려고 온갖 비기나 기술으로 감추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환(幻)의 무공이니 어쩔 수 없지. 특히 정공법에서 한번에 분신을 없애버릴 수 있는 특수한 안법(眼法)이나 술법에도 약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극강의 공격력으로 한번에 밀어버리는 것도 좋겠지. 특히 너희 뇌신류의 무공은 풍신류에 상성상 매우 강력한 편이다."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던 약점이었지만 한백령의 입으로 들으니 색달랐다. 이건 앞으로도 잘 써먹을 수 있는 요긴한 정보인 듯 했다.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기억하려고 노력하자, 한백령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용비천 놈의 약점은 역시 아들놈이겠지."
"아들이라니요?"
"저 놈은 자신의 아들인 용중일을 끔찍하게 아낀다. 말년에 늦게 본 자식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백련교에서도 둘도 없이 아끼기로 소문이 났지. 반면에 그놈 외에는 개차반처럼 대하기에 악명이 자자하다만..."
"......"
이것도 중요한 정보일까?
용비천과 황산파 장문인인 용중일이 긴밀한 관계인 건 알고 있었다. 아들일 거라고 대충 짐작도 하고 있었다. 과연 용비천이 용중일을 아낀다는 정보가 얼마나 쓸모있을 것인가? 어차피 용중일 또한 미래시점의 진소청이 인정할 정도로 강력한 초절정고수라서 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 아무래도 호법사자의 무력적인 결함은 없나 보군.'
앞서 말했듯 풍신류의 무공은 단점이 많아보이는데도 그 숫자가 많고 화신류와도 대등하게 겨룰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대표인 호법사자가 정점에서 균형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용비천의 무공약점을 알아내는 건 직접 목숨걸고 겨루기 전에는 힘들다는 사실을 새삼 알 수 있었다.
그 때 한진성이 내게 말했다.
"혹시 본가를 떠나고 싶다 하셔도 며칠만 참아 주십시오. 제 사촌동생이 그대를 매우 보고싶어 합니다."
반쯤 장난을 섞어서 하는 말인 듯 했다. 그래서인지 한백령도 그저 쿡쿡 웃을 뿐이었다. 나는 황당해서 말했다.
"당신의 사촌동생이라면 낙양사화의 한 명인 지화 소저가 아니오?"
"네, 그렇습니다."
"그녀가 나처럼 어리고 못생긴 사내를 봐서 뭐하겠소."
나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고는 말했다.
"그럼 저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한백령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백웅. 한 가지 물어보자."
"네."
"너는 백련교에 감정이 좋지 않으냐?"
나는 난데없이 한백령이 이런 질문을 하는 저의를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골똘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좋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구나. 그러면 앞으로 입신양명할 생각은 있고?"
"없지는 않습니다."
흠잡히지 않고 잘 대답했다고 생각하자, 한백령이 난데없이 제안을 했다.
"그러면 백련교에 입교(入敎)하거라."
"네?"
이어진 한백령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알기로 교주께선 늘상 뇌신류의 숙청이 자기 개인의 원한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그 일을 후회하는 듯한 모습도 종종 보이셨지. 뇌신류의 신진고수인 네가 들어온다면 틀림없이 높은 직위를 주실 것이다. 그건 내 이름을 걸고 장담할 수 있다."
"......"
"또한, 교주라면 네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도 제시해 줄 수 있겠지."
백련교주의 가르침!
그것은 지금의 내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한백령은 굳어있는 나를 보고 훗하고 웃더니 마무리를 지었다.
"차분히 생각해 보고 현명하게 결정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