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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72화 (27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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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왠 어두운 방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 몸의 상태를 점검했는데, 사지가 멀쩡했고 내공도 거의 손실되지 않았다. 신경이 모두 붙어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손가락만 움직여도 상당한 격통이 몸에 덮쳐왔다.

' 고통을 가라앉히려면 호흡법을 골라야 해.'

화씨세가의 전통의술 중에는 고통이 극심할 경우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호흡법이 따로 있었다. 정확히는 심맥과 호흡을 연결시켜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상당한 내공이 필요했지만 확실한 것은 이 호흡법을 사용하면 평소보다 고통이 열 배 이상 줄어든다는 사실이었다.

화타오금희(華陀五禽戱)

삼부맥(三部脈)의 호흡

서서히 몸에 존재하던 통증이 줄어들면서, 사지에는 아련한 느낌이 남은 채 큰 껍질을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지의 감각이 꽤 둔감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고통을 경감시키기에 이보다 좋은 호흡법은 없었다. 다만 정신을 집중해야 하고 전투에는 쓸 수 없다는 게 단점이지만 자기응급처치에 있어서 고통경감 이상가는게 있을까?

나는 몸을 일으켜서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새 옷가지를 챙겨입고 방을 걸어나오자, 왠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내부가 진탕되어서 전신이 쑤시듯이 아플텐데 벌써 움직이는 건가? 대단한 영걸(英傑)이군."

복도의 맞은편을 보자, 거기에는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왠 노인이 있었다. 나는 그를 처음 보았지만,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노인이 말했다.

"내가 자네를 치료했네. 자체치유력이 강하지 않았다면 나라도 살릴 수 없었을 게야."

"당신은 누구요?"

"나는 현재 한씨세가에서 일하고 있는 황보윤(皇甫允)이라고 하는 늙은이일세."

노인은 대충 밝힌 듯 했지만, 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천하오대의원 약왕(藥王)!"

"그렇게 불린 적도 있었지. 지금은 그 명호를 못 쓰지만."

약왕 황보윤은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천하 오대의원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약(藥) 하나에 관해서는 천하오대의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만 나머지 의술분야는 그리 능통하지 못해서 종합적으로는 오대의원중에서 처진다고 화서명에게 들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그가 황보세가(皇甫世家)의 고수였기에 의원보다는 무림인이었으므로 의술에만 파고들지 않았다는 점이 있었다.

약왕 황보윤은 책을 덮고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자네 소지품은 별채에 따로 보관해 두었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으니 걱정 말게."

"어디가 별채요?"

"안내해 주지."

나는 황보윤을 따라서 별채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곳에는 내 목갑과 천암비서가 있었다. 비등은 목갑에 넣어두었기에 따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다른 사람이 목갑을 들춰보았거나 천암비서를 보았는지 의심스러웠는데, 약왕 황보윤이 내 낌새를 알아챈 듯 핀잔을 줬다.

"그 비무는 가주님의 불상사였네. 부상자의 짐을 뒤질 정도로 한씨세가가 비굴한 곳은 아닐세."

아무래도 자존심의 문제 때문에 건드리지 않은 듯 했다.

나는 목갑과 천암비서를 품속에 넣고는 말했다.

"고맙소. 그럼 나는 이제 가봐야겠소."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서로 얼굴 보기가 민망하게 되었으니,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소."

내 대답에 황보윤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건 무례한 짓이지. 아무리 가주님의 실수였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대화도 없이 나가버리는 것은 안될 일이네. 가주님께 말씀을 드리고 가게."

"... 당신은 무엇때문에 한씨세가에 의탁하고 있는 거요?"

"초면인 자네에게 말해줄 정도로 가벼운 사정은 아니지."

황보윤은 단호하게 말을 끊어버렸다. 그동안 만났던 천하오대의원들과 다르게 다소 무심하고 차가운 성격으로 보였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가만 있게. 몸 상태를 봐야겠군."

황보윤은 내 목에서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촉진을 하더니 말했다.

"몸 상태는 괜찮군. 그런데 아프지 않은가? 분명히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해야 정상인데."

"호흡법으로 고통을 다스리고 있소."

"허, 그런 호흡법도 있는가."

"있소."

황보윤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천하오대의원인 황보윤도 화씨세가 전통의 비법은 화타오금희의 비기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황보윤에게 말했다.

"백련교의 소교주가 걸린 괴질... 그 원인이 인외(人外)의 존재가 건 주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소? 천상괴의 동방무결이 그 문제의 핵심에 가장 근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흠칫!!

황보윤은 평정을 잃은 표정이 되었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난데없이 무슨 소리냐?"

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이 일에 대해서 천하의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소. 그리고 내 생명을 구해준 은혜 때문에 그 단서까지는 이야기해줄 수 있소. 하지만 이 이상을 듣고 싶다면 당신이 한씨세가에 의탁하게 된 경과를 이야기해 주시오."

"......"

황보윤이 잠시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구명지은을 거래하겠다는 건가?"

"어차피 당신도 나를 살리고 싶어서 살린 건 아니잖소? 가주의 명이기에 따른 점도 있을 텐데."

"정말 묘한 놈이군. 마치 강호에서 수십 년 굴러먹은 노강호같아."

툴툴대던 황보윤이 말했다.

"그래. 내 사정을 얘기해 줄테니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말해 다오."

"좋소."

나는 계획대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약왕 황보윤 입장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바꿔버린 백련교 소교주의 괴질에 대한 정보를 결코 놓칠 수가 없었다. 다소 어거지로 보여도 내 거래제안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건 백련교의 음해로 천하오대의원의 평판이 땅에 떨어지고 강호인들이 우리를 배척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었다."

"대충의 사정은 알고 있소. 당신들이 각자 살아갈 길을 찾아나섰다는 것도."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 얘기하기 쉽겠군."

황보윤이 말을 이었다.

"나는 황보세가의 주 거래처였던 한씨세가에 몸을 의탁하기로 마음먹었다. 동시에 가주님께 부탁해서 황보세가도 한씨세가의 영향력으로 보호하게끔 했지. 그래서 강호인들은 암암리에 황보세가가 나와 관계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섣불리 황보세가를 건드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댓가는 당신이 한씨세가의 주치의로 일하는 거겠군."

"내게 이 이상의 뒷사정은 없다. 이제 네 이야기를 해 다오."

황보윤은 더 이상 자기 얘기를 하고싶지 않은 듯 이야기를 독촉했다. 하지만 나는 황보윤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고, 머리를 굴려서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보았다.

"황보세가는 오대세가(五大世家)의 일원이오. 그렇다면 한씨세가가 오대세가 전체를 압박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는 건가?"

그러자 황보윤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그런걸 묻는 거지?"

"대답해주지 않을 생각이오? 그럼 나도..."

내가 슬며시 한 걸음을 옮기자 황보윤이 급히 말했다.

"아니다. 네 말대로다. 한씨세가에는 그 정도 영향력이 존재한다. 무력의 필두에 있는 남궁세가를 포함해서 사천당문(四川唐門), 황보세가, 모용세가, 하북팽가 모두가 한씨세가의 말을 거역하지 못한다. 오대세가의 가주들도 한 가주께는 얼굴도 들 수 없다."

"......!!"

"실질적으로 오대세가는 한 가주께 굴복하고 있다."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 한백령은 이미 강호를 웬만큼 접수한 상태구나.'

오대세가!

남궁세가, 사천당문, 황보세가, 모용세가, 하북팽가를 가리켜서 오대세가라고 일컬었다. 무림에는 온갖 군소문파와 세가가 있었지만 중원 전체에 이름을 드날릴 수 있는 가문은 오로지 다섯 개밖에 없었다.

오대세가의 힘과 명성은 구파일방과 맞겨룰 정도였으며 세가 특유의 결집력과 자금력을 이용해서 일대의 패주로 군림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만큼 오대세가가 정파에서 적어도 삼 할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는 거대세력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 오대세가의 가주들조차도 한백령에게는 감히 대들 수가 없다니!

한백령이 사실은 백련교의 호법사자이자 화신류의 수장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미 이 시점에서 백련교의 중원정복은 웬만큼 이뤄진 셈이다. 한백령이 오대세가를 움직인다면 구파일방을 견제하는 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이오? 오대세가가 한 가주의 무력에 굴복한 거요?"

"그것도 있지만 한씨세가의 엄청난 금력(金力)이 오대세가를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무슨 소리지?"

황보윤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한 가주께서는 한씨세가의 휘하에 있는 무림세력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고 있네. 그 지원은 무려 이십 년 전부터 암암리에 이어지고 있고, 오대세가가 각 지역의 강호문파들 틈바구니에서도 굴하지 않고 패권을 잡을 수 있는 건 그 금력 덕분일세. 비단 무력 뿐만이 아니라 그 지원이 끊길까봐 두려워서라도 오대세가는 한씨세가에 반발하지 못하네."

"......"

"이 정도면 대답이 된 것 같군."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설마 한씨세가의 세력이 이 정도였다니! 그렇다면 한백령이야말로 오대세가의 수장(首長)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예전 전생에서 한백령의 화신류에 들어갈뻔한 적이 있었기에 왠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알았소. 그럼 내가 아는 걸 말해 주겠소."

나는 소교주의 괴질이 사실 [옛 지배자]라는 사악한 존재의 저주이며, 천상괴의 동방무결이 현재 그 치료법을 찾기 위해 백련교주의 명을 받고 남만으로 갔다는 사실을 말했다. 내게서 정보를 들은 황보윤이 머리를 짚으며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어... 엄청난 일이군. 자네의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어디 있지?"

"내 목숨을 걸고 보증할 수 있소. 한 가주라면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아실 테니."

"미친... 정말로 그렇게까지 장담할 수 있는가."

"물론이오."

황보윤은 내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는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걸로 하지. 나는 아무것도 못 들은 걸세."

"그렇게 하시오."

황보윤은 내게서 들은 진실을 갈무리하기도 벅차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황보윤은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백령의 손에 제거당할수도 있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으므로 어깨를 으쓱했는데 황보윤이 내게 전음을 보내 왔다.

[ 자네에게 쓴 약은 괴혈단(怪血丹)일세. 자네의 몸에는 극음의 기운이 휘몰아치는 듯 해서 극양(極陽)의 영약을 투입해서 치유력을 높였지. 경락의 흐름을 일러 줄테니 이 흐름대로 진행한다면 더욱 빠르게 괴혈단을 체내에 흡수하여 내공을 높일 수 있을 것일세.]

그리고 황보윤이 천천히 걸어가면서 내게 경락의 흐름을 도인하는 법을 일러줬다. 나는 뇌정경을 써서 암기력을 높이며 그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기억했다.

' 확실히 천년설삼과 흑백련을 같이 먹었다지만 음의 기운이 더 강한 건 사실이지.'

지금까지도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영약을 섭취하긴 했지만 천년설삼의 음기가 더 강했다. 그렇기에 내 공력은 미묘하게 음기를 띄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괴혈단의 양기가 투입되면서 그 조화를 더 쉽게 맞추게 해주는 듯 했다. 나는 걸어가면서 기를 움직였고, 이윽고 기운이 융화되며 한층 강하게 풀어지는 걸 느꼈다.

공력이 강해졌다!

뜻밖의 기연에 나는 미소가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천년설삼과 흑백련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내공상승이 더뎠는데, 괴혈단을 먹자 더 큰 상승폭이 느껴진 것이다. 황보윤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나를 한 가주에게 데려가는 듯 했다.

이윽고 나는 한백령이 기다리는 방에 들어갔다. 장원이 부숴져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거처로 들어와있었다.

"가주님. 백웅을 데려왔습니다."

황보윤이 포권하며 공손히 말했다. 한백령은 기다란 곰방대를 늘어뜨린 채 반쯤 누워있었는데, 요염하다기보다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건 한백령이 마치 인형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한백령의 옆에는 한진성이 정좌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백령은 투명한 눈으로 황보윤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수고 많았네."

"네."

"이번에 수고했으니 그대 가문에 더 큰 지원을 약속하지."

그러자 황보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게 감읍드리옵니다!"

"그대는 물러가 보게."

"네, 알겠습니다."

이윽고 황보윤이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세상의 강호무림인 그 누구도, 황보세가의 장로이자 절정고수이며 천하오대의원 중에서 약왕인 황보윤이 저렇게 저자세가 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천하무림인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지닌 황보윤이 하인처럼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다니!

한백령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한나절도 되지 않아 움직일 수 있다니 네놈도 어지간히 철골(鐵骨)이구나."

"가주께서 마지막에 손속에 인정을 담은 덕이지요."

"그건 내 잘못이었다. 실수로 네게 중상을 입힌 걸 사과하마."

한백령은 솔직하게 내게 사과를 하는 듯 했다. 한백령의 위치에서 사과하기가 쉽지 않을텐데도 선뜻 사과하는 걸 보면 도리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지나간 일일 뿐입니다."

"그래. 너는 내일부터 좀 더 요양을 해라."

"그 이후에는 검술을 지도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한백령이 곰방대를 늘어뜨리더니 말했다.

"네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을 듯 하다."

"무슨...?"

"네 검류(劍流)가 통합되지 못하고 꼬인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걸 넘기 위해서는 잡류를 통제할 정도로 강력한 심득(心得)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걸 해결해주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녀는 몸을 약간 옆으로 움직이더니 말을 이었다.

"독고성이 너를 보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시무시한 수련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

"무시무시한 수련..."

"허나 그 수련은 단순히 지옥훈련으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겠지.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경험과 단련 끝에 자기자신을 깎아내야 할 것이다. 나는 네게 그 정도의 수련을 시켜 줄 자신이 없다."

한백령의 말은 단호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절망을 느꼈다.

' 그러면 현재 경지에서 더 나아가는 건 불가능하단 말인가?'

한백령은 백련교의 호법사자로서 그녀보다 강한 인간은 오로지 백련교주나 독고준 뿐이었다. 그런 검술의 달인인 한백령조차도 내 문제를 섣불리 해결해 줄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가? 괜히 전생에서 검마나 독고성이 애먹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한백령이 말했다.

"네게 화신류의 무술을 좀 가르쳐줄 수도 있지만... 네 문제를 심화시키기만 할 뿐일 것 같다. 너는 어떻게든 무류의 혼란을 바로잡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한백령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인간을 초월한 대라신선이라면 어떻게 될지도...? 하여간 너는 아직 젊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아라."

그 순간이었다.

"......!!"

대라신선!

나는 그 단어에서 해결책을 느꼈다. 그래서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

한백령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것이 대라신선이라는 소리는 은유적으로 불가능함을 시사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직접 천계나 대라신선의 존재를 느끼고 있으며 직접 대하고 있는 처지였기에 그 단어가 해결책이 될 수 있었다.

' 여동빈이다!'

검선 여동빈의 천둔검법(天遁劍法)!

인간을 초월한 자의 그 검법을 익혀서 단계를 올리고, 여동빈에게 도움을 받는다면 현재의 문제를 타파할 수 있으리라.

이광에게서도 이미 한 차례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 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무예에 있어서 극고의 경지에 오른 두 사람이나 같은 이야기를 했기에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게 된 셈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 응? 그래 말해 봐라."

나는 조심스레 그동안 가장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뇌신류가 숙청당한 이유가 뭔지 알고 계십니까?"

한백령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한진성의 얼굴도 굳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돈 후, 한백령이 말했다.

"설마 독고성은 그 이유를 모른다더냐?"

"네. 사부님은 독고준에게 경고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전부터 떠나 있으셔서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십니다."

"... 으흠. 그런가."

한백령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가 아는 건 하나 뿐이다. 뇌신류 호법사자 이청운이 교주와 뭔가 이야기를 하다가 틀어져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짐작가는 게 없으십니까?"

"없다."

그녀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수신류 호법사자 독고준이라면 알고 있겠지. 그는 그 자리에 동석했으니."

"......"

진실을 알고 있는 자가 한 명 더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뭐지? 그렇다면 수신류의 고수들이 일부러 뇌신류만 골라서 숙청했다는 건가?'

교주가 이청운과 이야기하는 자리에 수신류 호법사자 독고준을 불렀다면, 처음부터 불러들여서 해치울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교주의 격을 생각할때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천하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이청운 하나를 두려워해서 합공을 하려고 한다는 게 어색한 일이었다.

뭔가가 있다.

그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수신류부터 파헤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고민할 때 한백령이 말했다.

"더 할 말이 없다면 본녀는 이만..."

그 때였다.

밖에서 왠 중년무인 한 명이 뛰어들어왔다. 그는 화신류의 고수인듯 보법에서 화신류의 흔적이 엿보였다. 그는 한백령 앞에 부복하며 말했다.

"가주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급한 보고인지라..."

"무슨 일이냐?"

중년무인이 떨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풍신류의 수장 용비천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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