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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69화 (26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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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진랑곡의 망량에게 돌아와서 며칠간 있었던 일을 말했다. 망량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말했다.

"미호 님의 일은 미안하게 되었구려."

"아니오. 그 봉선의식이란 게 중요하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씁쓸하게 대답하자 망량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당신에게 앞으로의 계획부터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군."

"그보다 저건 또 뭐요?"

내 시선이 향한 곳에는 나무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왠 사내가 있었다.

' 저런 꼴이 되다니.'

물론 그 사내의 외모는 내게 익숙했고, 그가 장령곡주인 제갈사이며 망량의 숙부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제갈사는 기절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보다시피 제갈사요."

"저렇게 놔둬도 되는 거요?"

"저 인간이 정신차리게 해 주려면 저 정도론 부족하지."

"......"

망량은 제갈사에 다소의 원한이 있는 듯 했다. 아마도 제갈사는 망량의 사제인 천우진에게 며칠 사이에 제압당해서 끌려온 게 틀림없었다. 매달려있던 제갈사를 곱지 않은 눈으로 노려보던 망량이 말을 꺼냈다.

"이번 생의 목표는 천계를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어도 봉선의식을 치르고 막야까지 해방시키는 것이오. 그래야 헛수고를 하지 않고 앞으로의 전생을 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오."

"봉선의식이란 게 [옛 지배자]에게 공양을 함으로써 불로불사의 힘과 권력을 손에 얻는 의식이란 건 알겠소. 하지만 그걸 굳이 권리를 얻어가며 해야할 이유가 뭐요?"

나는 궁금했던 점을 상세하게 질문했다.

"저기 매달려있던 제갈사가 했던 것처럼 제단을 마련해서 충분한 의식과 공양을 하면 비슷한 걸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소?"

"봉선의식은 그런 통상적인 의식공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오."

망량의 눈이 약간 날카로워졌다. 아무래도 지선 망량의 기억을 되살리는 중인 듯 했다.

"중화의 역사가 길었으나 제대로 된 봉선의식을 치른 자는 단 두 명에 지나지 않았소. 나머지는 봉선의식의 차례를 모르거나, 자격이 되지 않거나, 권리가 없거나, 시운이 맞지 않았던 것이오. 그렇게 까다로운 의식인 만큼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소."

"두 명?"

"진시황과 무측천(武則天)이오."

"......!!"

역대 중화에서 가장 유명한 군주 중 두 명이 언급되자 나는 목덜미에 진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진시황은 최초로 중화를 통일한 전제군주이자 황제의 칭호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었고, 무측천은 측천무후라고 불리며 최초의 여성황제였다. 두 사람의 특징은 생전에 가공할만한 군주로서의 위엄을 뽐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머릿속의 지식을 정리하며 말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중구난방이라서 그런데, 역사상에서 그 두 사람은 결국 병으로 죽지 않았소? 봉선의식에서 얻은 힘이 불로불사라면 그래서는 안되는 것 아니오?"

"인간으로서의 그 자들은 분명히 죽었소. 그러나 그들은 봉선의식의 댓가로 사후(死後)의 불멸(不滅)을 약속받은 것이오."

이어진 망량의 말은 섬뜩하리만치 차가웠다.

"인간의 영혼을 버리고, 암천향에서 신격(神格)으로 전생(轉生)해 버렸지."

그 말은 그들이 이미 암천향에서 하위 신격, 혹은 강력한 이족으로 탈바꿈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렇게 된다면 인간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수명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수천 년이 아니라 수만 년도 살 수 있다.

"으음... 그건."

그러나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반문했다.

"이상하지 않소? 그냥 지금의 황제처럼 인체에 마(魔)를 이식해서 반영구적인 불로불사를 유지하고 자기 나름의 권력을 누리면 되는거 아니오? 어째서 죽음 이후의 전생과 불멸을 꾀한 것이오?"

이상한 일이 분명하다. 진시황이나 무측천은 괴팍하고 잔인한 면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권력자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낯선 이족으로 전생한다느니 암천향에서 신으로 지낸다는 소리는 터무니없는 환상이 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굳이 봉선의식을 치르면서까지 전생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

망량은 한숨을 쉬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확실한 것은 봉선의식은 단순한 공양의식이 아니라 제사장으로써 [권한]을 얻게 되는, 쌍방이 대등한 의식이라고 알고 있소. 즉 봉선의식의 주재자는 [옛 지배자]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다룰 수 없다고 할 수 있지."

"그런 의식의 권리를 어째서 천계가 갖고있는 거요?"

"봉선의식을 발안하고 창안한 것은 진시황이 아니라 사황(史皇) 창힐, 한자(漢字)를 만들어낸 자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심복이 천계에 봉선의식의 권리를 위임했다고 할 수 있지."

그렇게 말한 망량이 고소를 머금었다.

"천계가 품고있는 모순은 아주 심대하오. 거악(巨惡)인 암천향의 힘을 늘려주는 일일진대 그 일을 천계가 허락해야 하다니... 아쉽게도 나는 중급 신선인 지선(地仙)에 불과했기에 봉선의식에 대해서 그 이상 자세하게 알 수는 없었던 듯 하오."

"......"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당신은 설마 봉선의식을 치르면 삼황오제가 소환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내 질문에 망량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

나는 예상이 맞아들어가자 침음성을 흘렸다. 내가 망설이자 망량이 주먹을 불끈쥐며 말했다.

"백웅 당신은 16번째 전생에서 충분히 황궁을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소. 그러나 앞으로 천계를 적으로 삼는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앞날이 보이지 않지. 그것은 비단 전력(戰力)의 차이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무지(無知)하기 때문이오."

"무지라..."

"천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황오제를 이해해야 하오. 그러나 현재 지상계에는 삼황오제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남아있지 않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봉선의식 뿐이라고 생각하오."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백웅. 반드시 이번 생에는 봉선의식을 성공시켜서 삼황오제의 진의(眞意)와 정체를 알아내시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게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만 알 수 있어도 쓰러뜨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오."

나는 놀라서 반문했다.

"쓰러뜨린다고? 삼황오제를?"

"그렇소."

"그들은 신(神)이잖소."

"신처럼 강력한 존재일 뿐이오. 그렇지 않다면 황제(黃帝) 공손헌원이 치우(蚩尤)에게 패배하는 일이 있었겠소? 인간에 비해서는 현격하게 강대하지만 그들 또한 분명히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지."

신을 쓰러뜨린다(神殺)!

나는 지금까지 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망량의 말을 듣고 크게 고민했다. 확실히 천계의 뒤에 삼황오제가 있고, 그들이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지상을 도탄에 빠뜨린 거라면 삼황오제와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암비서를 얻기 전에는 말 그대로 전설속의 창세신이나 다름없던 자들과 싸운다고 하니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망량이 말했다.

"나는 힘을 쌓을 시간이 필요하니 예전같은 반천맹을 만들어서 나서지는 않겠소. 지금까지는 적을 황궁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반천맹을 설립했지만, 적이 인외(人外)임이 확실해졌으니 나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게 더욱 중요하오. 제갈사와 천우진을 데리고 술법을 연마하며 지낼테니 황궁의 견제는 당신에게 맡기겠소."

"황연 대장군이나 대뢰옥의 포로들은 어떻게 하오?"

"이광에게 맡기시오. 그들은 어차피 구면이니 이광이 황연을 내칠 리는 없소. 예전에 한 번 결과를 보았잖소?"

"......"

그 말대로다. 지금까지는 황연을 필요에 의해 이용할 생각으로 반천맹에서 보호하곤 했지만, 망량이 반천맹을 만들지 않기로 한 이상 황연을 여기서 맡을 필요는 없다. 이광에게 넘겨주는 게 훨씬 나은 것이다.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말했다.

"그러면 나는 독고성 밑에서 검술을 수련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오?"

"그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당신은 벽에 부딪혔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소."

나는 이미 독고성에게서 검류(劍流)가 혼탁하게 섞여서 뇌룡신검법을 제대로 익힐 수 없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걸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한층 뛰어난 재능으로 이겨내든가 독고성과의 무모한 실전대련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힘들었기에 나는 지지부진하다가 16번째 삶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망량이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독고성이나 검마는 당신에게 해결책을 주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그들과 동격에 있는 다른 검술의 달인을 찾아보는 게 좋을 듯 하오."

"그러면 명룡자(冥龍子)밖에 없소."

"명룡자가 주창했던 초회복 근성훈련도 기본적인 골조는 독고성의 극한실전대련과 다를바가 없소. 당신은 생과 사의 고비를 넘기다가 이번에야말로 죽게 될 거요."

"......"

"다른 인물을 찾아 보시오."

너무 담담하게 말해서 할 말이 없다. 하긴 명룡자에게서 다시 그 상담을 한다면 예전 이상으로 혹독한 훈련이 반복될 것이고, 나는 훈련을 받다가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건 애초에 인간이 해낼 수 없는 훈련일진대 내 내공과 명룡자의 무량신공에 의지해서 외줄타기를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가 복잡해지자 앓는 소리를 냈다.

"너무 할 일이 많군."

"하하... 그건 선택할 게 많아졌기 때문에 배부른 고민을 하는 것이오. 아무것도 모를 때 속수무책으로 죽던 상황에 비하면 얼마나 나아졌소?"

"그렇긴 하오."

망량이 빙그레 웃으며 오화칠금선을 펼쳤다.

"자, 내 조언은 여기까지. 3년 정도는 당신 마음대로 움직여 보시오. 지금의 당신이라면 왠만해서는 큰 판단을 그르치지 않을 거라고 믿소."

"알았소. 건승을 비오."

"잘 갔다 오시오."

그 때였다. 저편 너머에서 천우진이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망량에게 말했다.

"사형! 큰일났소."

"무슨 일인가?"

"천계의 전령이 말하기를, 조만간 황천(黃天)의 사자를 지상에 내려보낼 것이라 했소."

망량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그 자를 시켜서 방해할 생각이군."

"어찌할 거요?"

"일단 놔 두게. 어차피 그들도 섣부른 행동은 못 할 테니."

나는 망량에게 물었다.

"황천의 사자가 뭐요?"

망량이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과거 세상을 헤집었던 대라신선이 지상에 내려온다는 소리요. 그리고 적당한 자를 물색해서 술법을 전해주고 또다시 종교를 만들겠지."

"......?"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니 신경쓰지 마시오. 뭔가 변화가 생기려면 최소 십 년은 걸릴 거요."

"뭐, 알겠소."

나는 망량이 말하기 싫어하는 기색이었기에 더 캐묻지 않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천계에서도 봉선의식을 경계해서 무언가 움직임을 보이는 모양이었다.

파앗!

나는 황금비등을 써서 먼저 이광이 있는 청룡무관으로 향했다. 청룡무관은 현재 수련생들이 사범인 윤광과 지평 밑에서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높은 건물의 지붕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옛날 생각이 소록소록 났다.

'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나는 고개를 흔들고는 이광이 거처하는 와룡전 근처에 갔다. 그리고 예전에 했던 것처럼 적당한 장소를 골라서 목갑에서 황연 대장군과 포로들을 방생해 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목갑을 꺼내려고 품 속에 손을 넣은 상태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무형지기!

초절정고수 중에서도 일부만이 발현할 수 있는 강렬한 의기가 내 몸을 옥죄고 있었다. 몇 번이나 절세고수들에게 당해본 기술이었기에 익숙했다. 나는 무형지기를 내뿜고 있는 게 누구인지 알아채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형지기를 내뿜고 있던 주인공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귀하는 누구시오? 어린 나이에 엄청난 무공이군."

"......"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까까머리에 무복의 청년. 머리를 깎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훤칠한 외모. 나는 그가 누구인지 천하에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천천히 대꾸했다.

"청룡무관의 진소청 사범."

"나를 알고 있군."

그랬다. 무형지기를 내뿜으며 정체불명의 침입자를 견제하고 있는 것은 바로 현재 청룡무관의 총사범이자 이광의 둘도 없는 애제자, 그리고 무학에 있어서는 중원에서 제일가는 천재인 진소청이었다. 기백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내게 재능의 열패감을 안겨주었던 진소청 사형이 눈 앞에 있었다.

나는 일이 꼬인 걸 느끼자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 그냥 비등으로 도망칠까?'

어차피 목갑에서 꺼내서 풀어놓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다음에 적당한 때를 모색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문득 호승심이 생겨서 진소청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뇌신류의 전승자요. 이 곳에 뇌신류가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찾아왔소."

진소청은 뇌신류라는 말을 듣자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찬찬히 나를 살피더니 말했다.

"확실히 그런 듯 하군. 허나 나로서는 생면부지의 당신을 함부로 와룡전에 들일 수 없소."

"누가 와룡전에 들어간다 했소? 그저 실력만 확인해보려는 거요."

진소청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당신은 나와 비무(比武)를 하고싶다는 말인가?"

"그렇소. 무례하다 여겨지면, 나중에 제대로 절차를 밟지."

내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대화를 유도하자 진소청의 대답이 이어졌다.

"괜찮소. 나 또한 뛰어난 고수를 보니 호승심이 일어나는구려."

"마음이 맞는군."

스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와룡전 앞의 비무대에 뛰어올라서 삼 장 거리를 잡고 서로의 병장기를 꺼내들었다. 나는 검을 들고 마주선 앞에서 진소청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 이번에야말로.'

지금까지 진소청과의 대련에서 이겨본 적은 없다. 그나마 싸워볼 만 했던 마지막 비무에서도 한 수 아래라서 농락당했었다. 그러나 그 때 이후로 나는 지옥훈련과 수련을 거듭하며 경지를 올린 것이다.

그래.

오늘이야말로 진소청을 넘어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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