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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66화 (26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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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잠시 후 천우진이 깃발을 흔들더니 태허천존의 신위를 자신의 몸에 깃들게 했다. 흔히 강신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었으며 이건 지식이나 경험으로 되는 게 아니라 그에 걸맞는 [그릇]이 필요했다. 그 정도의 술력을 지니고 있는 건 이 자리에서 천우진 뿐인 것이다.

강림한 태허천존이 말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준엄한 목소리였다.

[ 수기는 잘 먹었다. 너희에게 축복을 내려주려고 하나...]

"안 되겠지요. 그러니 다른 분의 축복을 받고 싶습니다."

망량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천우진의 몸이 움찔했다. 그리고 태허천존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 그... 그래...]

후웅

[ 그대들이 막야의 수기를 공양했는가?]

태허천존의 직후에는 서왕모의 신위가 천우진에게 들어왔다. 서왕모 또한 축복을 거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번에도 망량이 그냥 넘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망량은 틈을 노려서 다른 걸 질문했다.

"서왕모시여. 제가 이해한 강신의 순서가 맞는지 알아봐도 될지요?"

[ 어떤 순서를 말하는 것이냐?]

"시작은 태허천존으로 하여 서왕모님으로 이어졌으며 아마 다음번은 남화노선, 그도 아니면 검선 여동빈, 또는 원원자가 될 것입니다. 맞습니까?"

그러자 서왕모가 다소 놀란 듯 대답했다.

[ 맞다. 그걸 어찌 알고 있느냐?]

그야 지금까지 망량이 보고들었던 경과가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뻔한 사실이라고 생각했지만 망량은 뜻밖에도 자신의 오화칠금선을 촤르륵 펴면서 말했다.

"이십팔수(二十八宿)의 분야(分野)가 할당된대로 소환되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바로 구주(九州)에 예속된 선인들의 법칙임을 알고 있습니다."

[ 너는 굉장히 뛰어난 지식을 지니고 있구나. 그 말이 맞도다.]

"다른 존재를 추천해주실 수도 있으나 아마 그리 되겠지요."

[ 뭔가 말하고 싶은게 있느냐?]

서왕모의 물음에 망량이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다른 축복은 필요 없습니다. 두 가지 권리를 주십시오."

[ 무엇이냐?]

"첫째는 저와 백웅이 곤륜산에 입산할 수 있는 권리, 또 하나는 태산에서 봉선의식을 치를 권리입니다."

[ ......!!]

그 말에 서왕모가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서왕모처럼 높디높은 대라신선이 당황할 정도라면 지금 망량이 제시한 권리는 굉장히 거대한 문제점을 품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서왕모가 대답했다.

[ 욕심이 과하구나. 전자의 권리는 줄 수 있으나 후자의 권리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

"허나 당신께선 구천현녀조차 휘하에 두고 있는 천계 여선(女仙)들의 수장입니다. 대신위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권위라 할 수 있지요. 그 정도 권한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서왕모가 침음성을 흘리고는 말했다.

[ 인간이여. 그대는 봉선의식의 권리를 지닌다는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가?]

"네, 알고 있습니다."

[ 그것이 천지의 균형을 깰 정도의 권리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하지만 막야의 수기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대꾸한 망량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기의 생명력을 얻음으로써 말라죽어가던 천계의 화원이 꽃피며 신선들이 활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을 겁니다. 이는 천하에 다시없는 공덕이지요."

[ 흐음... 좋다. 책임질 자신이 있다면 그 두 개의 권리를 부여하겠노라.]

"아마 그러고도 인과율에 의하면 대가가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 또 뭔가 부탁할 생각이 드느냐?]

망량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상에 떨어진 구미호를 용서해 주시고 팔선(八仙)을 소환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무어라...]

"대가가 딱 맞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서왕모는 한참동안 침묵했다. 그리고는 왠지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좋다. 너는 어딘가에서 천계의 지식을 아주 많이 알게 되었구나. 그러나 향후 그로써 신선을 농락하려 들면 천벌을 받게 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 너희는 대가를 받았으니 이만 물러가도록 하라.]

스스스...

서왕모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천우진의 눈에도 생기가 되돌아 왔다. 강신이 두 번으로 끝나서인지 천우진은 약간 피로한 기색일 뿐 예전처럼 지쳐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천우진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망량에게 말했다.

"사형. 서왕모를 화나게 해서 좋을 것이 없소. 그녀는 정말로 드높은 존재요."

"나도 알고 있네. 삼황오제를 직접 알현하고 대면한 적이 있을 정도니."

"그런데 어찌 그녀의 심기를 긁은 것이오?"

"그래야만 진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일세."

"......?"

망량은 훗하고 웃더니 다시 한 번 사당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당 앞에 포권을 하더니 말했다.

"스승님. 아까의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제자 망량은 이제 세상으로 떠날까 합니다."

망량선사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역시나...'

졸린다.

대신에 나는 엄청난 졸음이 느껴졌다. 아무리 무공과 술법을 익혀도 저항할 수 없는 수면이었다.

나는 곧 예전처럼 꿈 속에서 망량선사를 마주칠 수 있었다. 꿈 속에서 검은 고양이의 형상을 한 망량선사는 말했다.

[ 내 제자지만 대단하지 않으냐? 서왕모를 대상으로 교섭을 할 수 있는 인간따위는 유사 이래로 없었다.]

"......"

[ 궁금한 게 가득한 얼굴이군.]

나는 망량선사에게 그동안 가장 궁금했던 걸 질문했다.

"넌 대체 뭐야?"

가장 근본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는 질문이었다. 내 질문을 들은 망량선사가 검은 꼬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 보다시피 망량선사다. 왜 그런게 궁금한지 모르겠군.]

"아냐. 넌 좀 달라."

[ 뭐가 다르다는 거지?]

"네가 이 마을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낙양에 잠들어 있는 마(魔)를 봉인하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그건 보나마나 황궁을 지배하고 있는 [옛 지배자]겠지. 그리고 그 존재의 힘은 홀로 천계를 쓸어버릴 정도로 강할 게 분명해."

망량선사가 무감정하게 대꾸했다.

[ 꽤 많은 걸 알고 있군.]

나는 중얼거린 후 망량선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존재를 봉인하고 감시할 수 있는 너는 도대체 뭐야?!"

지금까지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긴 문제였다. 망량선사가 강력한 존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갈사를 통해서 이계의 유물과 마법을 접하게 되고, 그 권능의 강력함을 체험한 입장에서는 그렇게 넘길 수가 없게 되었다. 게다가 칠요 막야가 폭주했을 때 나타났던 이타콰의 힘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그런데 일개 대라신선인 망량선사가, 이타콰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옛 지배자]를 봉인할 수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옥황상제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도교의 수호자라고 하지만 격이 다른 존재를 상대로 봉인이 가능하다니?

그러자 망량선사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 나는 경계의 제망량이다. 그리고 지금은 망량선사다. 내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으니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다.]

"무슨 뜻이지?"

[ 삶도 죽음도 존재하지 않기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무언가 비웃듯이 중얼거리는 망량선사였다. 그는 곧이어 말했다.

[ 너와 나는 아직 이런 대화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무슨 개소리야!! 나는 이미 충분히..."

그 순간이었다.

[ 지금은 말세(末世)가 아니지 않느냐?]

나는 망량선사의 눈과 닿이자 오싹하는 느낌과 함께 전신에 차가운 전율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생경할 정도의 압박감이 전신의 한올한올을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마치 광대한 우주의 어둠을 바라보는 듯한 절망과 좌절감이 일순간에 덮쳐왔다. 백련교주에게서도 이 정도의 힘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 신(神)!'

그나마 '감정'이나 변화라고 표현할만한 게 있었던 신선들과는 달리, 눈 앞의 망량선사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기계적이지만 절대적인 존재였다. 인격이 존재하는 척 흉내는 내고 있지만 진실된 존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감히 인간으로서 추측하는 게 불가능했다.

파앗

광명이 흘러들어왔다. 따스한 듯 하면서도 존재 자체를 뒤덮어버리는 듯한 빛이었다. 나는 그 빛에 휩싸여서 점차 꿈에서 멀어져가며, 메아리치는 듯한 어둠의 맥박을 느꼈다. 그 맥박은 왠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 오늘은 이만 돌아가라.]

잠깐! 이렇게 쫓아내지 마!

뭔가 칠요에 대한 단서라도 하나 달라고!!

내가 속으로 비명을 지르듯 외치자 망량선사가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복희(伏羲)의 팔괘를 쫓아라. 힘을 쌓기에는 가장 편한 방법이겠지.]

그리고 꿈이 끝났다.

"으음."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망량이 먼저 일어나 있었다. 망량이 손을 뻗어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며 말했다.

"슬슬 가 봅시다."

"아, 그래야겠군..."

나는 별 생각 없이 망량과 함께 마을을 나섰다. 여기까지는 몇 번이나 해왔던 과정이므로 질릴 정도로 잘 알았다. 그러나 마을의 문턱을 나서는 순간,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송별해주러 나온 거요?"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인상의 청년이 농사꾼 복장을 입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건 환신이라고 불리는 천우진이었고 망량의 사제였다. 천우진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무슨 소리요? 나는 사형을 따라가는 것이오."

"엥?!"

내가 놀라서 외치자 망량이 말했다.

"그렇게 되었소."

"그렇게 되었다니 대체 뭐가?!"

"내 사제의 역량은 매우 뛰어나니, 내가 스승님께 말씀드려서 데리고 나오기로 했소. 이로써 사제의 뛰어난 실력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오."

"......"

나는 황당해서 망량과 천우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환신 천우진을 데려오다니!

나는 이런 일이 여태껏 없었기에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망량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안될 것도 없지. 어차피 사제도 한가했던 참에 봉선의식을 구경하고싶은 모양이니까."

"제기랄... 사형. 헛소리 하지 마시오. 구경은 무슨 구경이란 말이오?!"

천우진이 이를 바득 갈더니 말했다.

"봉선의식이 잘못되면 큰일이 일어나니 감시할 필요성을 느낀 것 뿐이오!"

"사제는 천계에서 은혜입은 일도 없는데 아주 충성심이 투철하군."

"봉선의식이 뭔줄 몰라서 말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망량이 어깨를 으쓱했다.

"잘 알지. 그러니까 사제가 잘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네."

"말을 말아야지, 시벌."

투덜거리는 천우진을 보자, 그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끌려나온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망량은 아마 봉선의식의 권리를 얻었는데 천우진을 데려가고 싶다고 해서, 감시역으로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으리라. 천우진은 어쩌지도 못하고 그대로 망량의 꾀임에 걸려든 셈이었다.

' 이런 건 예상에 없었는데.'

천우진이 동료가 될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저 짜증만 내고 괴팍하고 띠꺼운 녀석과 앞으로 어떻게 합을 맞춰나가야 하는가?

잠시 후 우리는 객잔에 도착했다. 망량은 늘 하던 것처럼 방을 잡아두고 닭요리를 시켜서 먹기 시작했고, 먹는 와중에 우리에게 설명했다.

"우음... 이제부터 각자 해야할 일을 말해둘테니 잘 들으시오."

"경청하겠소."

망량은 닭다리 하나를 뜯더니 말했다.

"백웅 당신은 곧장 선지자에게 향해서 술법을 하나 얻으시오. 그 다음에는 미호 님을 진랑곡에 데려오면 되오."

"알겠소."

망량이 힐끔 천우진을 쳐다보았다.

"나도 내 나름대로 준비를 할 거고, 사제는 제갈사를 때려패서라도 진랑곡으로 데려 오게."

"제갈사는 또 누구요?"

"내 숙부인데 괴팍한 인간이 장령곡에 한 명 있지. 배교의 사술과 인형술을 쓰니까 조심하게."

"흥!"

불쾌한 듯 콧김을 낸 천우진이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 기척도 없이 사라졌다!'

내가 놀라자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던 망량이 말했다.

"놀랄 거 없소. 저게 바로 진짜 축지법(縮地法)이니."

"진짜 축지법?"

"보통 축지법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지만, 저건 공간을 자유자재로 접어서 경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최고위 술법이오. 인간세계에서 사제처럼 축지법을 쓸 수 있는 자는 한두 명밖에 없을 것이오."

나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검마도 제갈사를 경계했는데 천우진이 그를 잡아올 수 있겠소?"

"배교의 술법은 일반적인 무림인에게는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지. 검마가 그를 경계한 건 옳은 판단이오. 그러나 그런 배교의 사술은 천우진 사제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소."

망량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단언할 수 있소. 제갈사는 죽지 않을만큼 맞아서 끌려올 거요."

"......"

천우진에 대한 망량의 평가는 매우 높았다. 그도 그럴것이 술법에 관한 한 중원에서 제일가는 천재였기 때문이다. 나는 제갈사가 맞는다니 왠지 복잡한 기분이 들어서 생각을 했는데, 망량이 재차 말을 꺼냈다.

"백웅. 이번 생에서는 봉선의식을 치르는 데 집중해야 하오. 그래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소."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봉선의식이 그렇게 중요한 거요?"

"당신도 지선 망량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알고 있을 테지만, 태산에서 치르는 봉선의식은 두 가지가 있소. 하나는 진짜이고 하나는 가짜요. 우리가 얻은 것은 바로 진짜 봉선의식의 권리요."

망량이 천천히 설명했다.

"봉선의식이란 최초의 황제를 자처한 진시황이 처음으로 시행한 것으로써 천지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오. 그리고 이 봉선의식에 성공한 자는 즉시 구주(九州)의 지배권을 얻게 되며 천운(天運)을 얻게 되는 것이오."

"그건 알고 있소만, 그건 어차피 군주에게 중요한 능력이 아니겠소? 그걸 우리가 필수적으로 얻어야 한다기엔..."

망량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당신은 지선 망량의 지식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군."

나도 한숨을 쉬었다.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오. 뭐가 뭔지 모르는 부분이 많소."

그렇다.

흑요석에 버금가는 기억전송술법인 시해술로 지선 망량의 지식을 전해받았지만 그걸 이해하기에는 내 머리가 딸렸다. 배경지식을 풍부하게 쌓고 이해하지 않으면 신선급의 술수나 지식은 아예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망량은 원래부터 박식했기 때문에 그 지식을 거의 다 이해한 모양이었다.

망량이 말했다.

"먼저 분야(分野)에 대해 설명하겠소. 분야라는 건 점성학이 지리에서 표현된 것으로써 그 진가는 [하늘의 별과 행정구역을 대응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소."

"하늘의 별과 행정구역을 대응시킨다고?"

"그렇소. 성좌(星座)의 운행을 구주(九州)라고 불리는 광대한 지상세계에 반영시킨 것이지."

분야의 의미를 정의한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점성의 분야이론에서는 하늘의 별을 주로 이십팔수(二十八宿)와 십이차(十二次)로 구분하오. 하늘의 인연은 땅의 구역을 묘사하는데 빼놓을 수 없다는 사상의 극치라고 할 수 있지. 전국시대 열국의 이름도 영원한 성야의 언어에 의해 지어진 것이오."

"흠..."

"우리가 자주 쓰는 분야 라고 하는 일상적인 단어도 사실은 거기서 기원한 거지."

망량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늘이 상을 드리우고(天垂象) 땅은 형태를 이룬다(地成形). 이것이 바로 중화의 수천년 역사에서 지리(地理)를 움켜쥔 가장 중요한 관념이었다고 할 수 있소."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게 봉선의식으로 구주의 지배권과 천운을 얻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소?"

"조금 복잡한 일이니까 풀어서 설명해 주겠소."

망량이 팔짱을 풀며 새로운 닭다리를 집어들었다.

"아까 보았듯이 대라신선의 강신순서도 언뜻 불규칙해보이지만, 실상은 분야 이론에 따라서 성좌에 대응되는 천계의 질서에 따르는 것이오. 신선조차도 하늘의 구역과 땅이 상응한다는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 하늘이란 신성한 질서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오.

자, 그럼 생각해 보시오. 왜 수천 년 전의 고대인들은 중화를 넘어서 사이(四夷)마저 끌어안는 구주의 영토를 성좌(星座)에 대응시킨 거겠소?"

"......"

나는 그 순간 퍼뜩 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성좌'라고 하는 단어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옛 지배자] 때문인가?!"

"바로 그거요. 현재의 학자들은 그저 고대인의 덧없는 신앙이었을 뿐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신(神)적인 존재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던 거요. 이 비밀은 천계를 비롯해서 지극히 은밀한 도맥의 문파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이지."

망량은 술을 벌컥 들이키고는 말했다.

"구주에 정의된 분야는 바로 태초의 [옛 지배자]들에게 할당된 지상의 지배권역이자 영토였소. 그 안에서 그들은 진정한 신 노릇을 하며 태초의 인류에게 암흑신화(暗黑神話)로서 군림했던 거였지."

"......!!"

"이 또한 천계가 지상의 인간들에게 숨기고 싶어하는 비밀이오. 그렇게도 숨기고 싶어하는 [옛 지배자]의 존재를 알 수밖에 없으니까."

뜻밖의 진실에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파편화되어서 흩어진 지식이라서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뜻밖에도 그런 고대의 비사가 있었던 것이다.

망량이 말했다.

"봉선의식으로 구주의 지배권과 천운을 얻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천하(天下)의 주인이 됨과 동시에 신과 인간을 잇는 제사장(祭事長)이 된다는 걸 의미하오."

"제사장?"

"그렇소 제사장."

그는 보기드물게 염세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옛 지배자]에게 인간을 대규모로 공양하여 먹이로 바치면서 천하의 태평을 약속받으며 본인도 불로불사의 마법과 힘을 손에 넣으니... 진시황이나 연후의 황제들이 눈에 불을 켤 수밖에 없었겠지."

태산 봉선의식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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