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263화 (263/1,615)

0263 ----------------------------------------------

천계(天界)

검선 여동빈은 검마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힐끔 우리 쪽을 둘러보더니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여동빈이 말했다.

"연자여. 여기서 양보할 수는 없겠는가?"

"......"

"그대는 무엇을 더 이루려 하는 거지? 행복한 삶을 살고자 이족을 물리치려 한 게 아니었는가?"

여동빈의 말에 나는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그렇다. 나는 어째서 천계에 대항하면서까지 수요 막야를 지키려 하는 것인가? 어차피 이번 생에 막야를 넘겨준다고 하더라도 다음 생에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는가. 신선과 싸우면서까지 이런 대립각을 세우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검마의 말이 더욱 무겁게 내 마음속을 짓눌렀다. 어떤 좋은 말로 하더라도 강탈은 강탈이다. 천계가 수요를 빼앗겠다고 해서 순순히 내주는 게 결코 좋은 결과로 끝날 리가 없다는 것을, 전생의 경험으로 직감하게 된 것이다. 나는 검마의 말을 듣는 쪽이 옳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나는 생각을 정리한 후 말했다.

"나는 칠요를 모아서 해방시키고 [옛 지배자]를 물리칠 거요."

"... 엄청난 꿈이군."

여동빈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그리고 불가능한 꿈이지. 칠요는 결코 해방되어서는 안 돼."

"어째서...?"

나는 이를 으득 악물었다.

"천계도 [옛 지배자]가 근본적인 원인이란 걸 알고있지 않소? 그렇다면 그 존재들에 대항할만한 힘인 칠요를 모으는 게 옳지 않소? 어째서 내가 갈 길을 방해하는 거요."

"근본적인 원인... 그 말도 맞지."

여동빈은 심유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허나, 도대체 누가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가?"

"무슨 말이오."

"삼황오제가 칠요를 만들었으나, 그게 모두 모였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는 것은 그들 중에서도 황제 공손헌원 뿐이다. 만일 칠요를 해방시킨 결과 인간의 멸망이 앞당겨진다면...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

"인간의 멸망은 앞으로 약 오백여 년이 남았네. 칠요가 벌써 풀려나는 건 옳지 않은 일일세."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인간의 멸망이 예정되어 있으며 그 기간을 대략적으로 말하다니!

그 말이 대라신선의 입에서 나온 이상 엄청난 공신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때문인지 검마와 독고성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제갈사가 인간의 멸망 운운했던 게 사실이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이해가 안 가는군. 어차피 오백 년 후 모든 것이 멸망한다면 어찌 필사적으로 천계는 그걸 막으려 드는 거요?"

"그건 말할 수 없네. 하지만 천계는 최소한의 안식을 위한 계획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 말해 두겠네. 그것이 바로 천기이며, 모든 존재를 위해 가장 옳은 선택이야."

단호하게 말한 여동빈이 서서히 자신의 검을 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 헛된 욕심을 버리게.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

그 때였다.

옆에 있던 망량이 갑자기 기묘한 수인을 맺더니 말했다.

"봉(封)한다."

파앗!

"......!!"

그 순간이었다. 나는 갑자기 말이 안 나오고 움직임도 딱딱하게 굳은 것을 알아차렸다. 그걸 신호로 하듯 여동빈과 검마, 독고성이 동시에 움직였다. 세상에서 적수를 찾기없는 절세고수들이 투선과 결전을 벌이는 일이 생긴 것이다.

슈쾅 -

검마의 이기어검과 여동빈의 이기어검이 충돌하며 기이한 검명(劍鳴)이 울렸고, 뒤늦게 독고성의 검뢰가 날아들어서 여동빈을 공격했다. 여동빈은 가볍게 검뢰를 피하더니 순식간에 분신을 3개 만들어내며 삼재의 방위를 차지했다.

내가 그들의 대결이 전개되는 걸 꼼짝 못하고 지켜보자 망량의 전음이 들려왔다.

[ 미안하지만 백웅 당신의 움직임과 주문부터 우보법(牛步法)으로 봉인해야겠소. 당신이 지닌 절연(絶緣)의 언령은 너무 위험한 술법이니.]

당했다!

나는 망량이 선수를 친 게 뼈아프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여동빈이라는 강적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에 놀라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지만, 실상은 냉정하게 절연의 언령을 시전하기만 하면 퇴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망량은 흑요석으로 내 인생경험을 알고 있었으므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앞질러서 생각해낸 것이리라.

망량은 우보법을 발휘한 동안에는 움직일 수 없는지 꼼짝하지 않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내공을 끌어올려서 금제를 풀어보려 했으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내 이마에 혈관이 솟아오르자 망량의 전음이 들려왔다.

[ 소용없소. 이 우보법은 신선술의 경지에 이르러 있지. 당신의 내공이 무한이 아닌 이상 결국 막히게 될 것이오.]

[ 빌어먹을!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거요?]

나는 울부짖듯이 망량에게 전음을 보냈다.

[ 당신도 흑요석을 보았다면 알 텐데!!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오.]

[ ... 알고 있소. 그 기억이 사실이라는 것 정도는.]

망량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내게는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소. 그리고 나는 그 기억을 보고 나서, 진심으로 당신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소.]

[ 뭐라고?]

망량은 진지한 눈빛이 되었다.

[ 여기서 당신이 수요 막야를 포기하기만 한다면 당신은 손쉽게 행복한 인생을 거머쥘 수 있소. 당신은 이미 좋은 스승을 얻었고 근거지인 무영문을 얻었으며 아내될 자도 예비되어 있소. 황궁도 멸망했소. 고려의 십삼율 소속으로서 앞으로는 평범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말이오.]

[ ......!!]

[ 이해하지 못하겠소? 나는 당신의 고난을 이해했기에 편하게 해주려 생각한 거요. 내가 정말로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면 아까 일격에 당신을 봉인해 버렸을 거요. 지금 많이 봐주고 있다는 걸 알아 주시오.]

망량의 말은 허세나 농담이 아니었다. 망량의 술수능력은 지상의 신선급이었으며, 일반적인 인간술법사와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었다. 어쩌면 제갈부보다 더욱 강력할지도 모른다. 나는 또 다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한 인생.

그게 정말로 내 눈 앞에 다가와 있단 말인가?

막야를 손에서 놓기만 하면 그게 내 손에 들어온단 말인가?

16번째 전생을 시작했을 때의 절망이 새삼 느껴졌다. 나는 그 때 망량의 말이 아니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망량의 말 한 마디를 동아줄처럼 부여잡고 억지로 여기까지 끌고온 것이다. 그리고 내게 인생의 이유를 제시해 준 친구가 그만 포기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

행복한 인생.

나는 다시 한 번 속으로 그 단어를 되뇌었다. 내가 고뇌하고 있을 때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 황궁이 멸망했으니 이족은 서방세계에서 발호하게 될 것이오. 그러나 서방에도 수호자가 있으니 그쪽 일은 거기서 처리하게 될 거요. 더 이상 당신의 삶이 고난의 길을 걸을 필요는 없소.]

콰과광!!

그 때 하늘에서 폭음이 터졌다. 내가 하늘을 쳐다보자, 그 곳에서는 표현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의 격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천둔검법(天遁劍法)

육의성천도(六意聖天圖)

운결(雲決)

순식간에 여동빈의 몸 근처에 기검(氣劍)의 환영이 수천 개나 떠올랐다. 빛의 검은 구름처럼 엄청난 밀도로 쏟아지더니 정면에서 번개와 화염의 파장을 떨쳐 내었다. 시공간을 격하고 여동빈의 손에서 웅검이 떨쳐나갔다. 예전에 여동빈이 마물을 멸할 때 사용했던 절학이었는데 직접 육안으로 제삼자로서 쳐다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위용을 보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 세상에...!!'

어찌 저런 무학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예전에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지만, 여동빈의 천둔검법 육의성천도는 초월적인 위력을 품고 있었다. 저 기검 하나하나에 올올이 살아숨쉬고 있는 의념의 공격력은 말 그대로 인간의 무공과는 격을 달리했다. 운결이 쏟아진다면 나로서는 대적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운결이 허공에서 퍼져나가며 검마와 독고성을 공격했다. 검마와 독고성은 아주 지친 표정이었는데 여동빈과 겨우 일백 초수를 겨루었는데도 파김치가 되어가는 듯 했다. 검마가 기합을 내질렀다.

"하앗!!"

동시에 운결이 흩어지며 검마의 기세가 크게 충천했다. 내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던 절학이 나타났는데, 그 형상은 마치 태극(太極)을 이루고 있었다. 굴공검과 천축검은 자연스럽게 검마의 의념에 따라 일변하며 공간과 거리를 자유자재로 축소시켰고, 운결의 어마어마한 기세를 흩어버릴 수 있었다.

독고성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뢰와 함께 신검합일의 기세로 쏘아져 가서 여동빈을 공격했다. 그러자 검뢰의 막강한 속도에 여동빈의 환영이 꿰뚫렸는데, 여동빈은 이미 실체를 옮겨서 또다시 거검(巨劍)을 수십 개나 소환해 놓은 후였다.

콰과과광

"크흐허억!!"

독고성이 비명을 토해내며 나가떨어졌다. 겨우 큰 부상은 피했으나 독고성의 표정에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름대로 회심의 공격을 했는데 여동빈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은 것이다. 독고성의 무공수준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 세상에... 용비천이나 한백령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저렇게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독고성과 검마를 상대로 2대1을 하면서 도리어 가볍게 몰아붙이다니!

이제야 여동빈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죄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강자들이라서 추측이 되지 않았지만 내 무공수준이 올라가면서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해진 것이다. 여동빈은 천령단을 보유한 호법사자를 훨씬 초월한 강자였으며 근본적으로 인간의 무공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보고 있던 망량이 전음을 걸어왔다.

[ 여동빈은 천계에서도 상대할 자가 몇 없는 막강한 투선이오. 손오공과 싸워도 살아남을 정도의 존재이거늘, 인간의 초절정고수를 붙여놓다니 당연한 일이오. 백련교주 정도는 되어야 여동빈과 싸워볼 만 하겠지. 아니, 이건 백련교주가 괴물인가? 그 자는 이미 신선을 초월했으니.]

[ 크윽.]

[ 이대로라면 검마와 독고성은 반드시 죽을 것이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대라신선이자 투선인 여동빈은 내공의 한계나 의념의 한계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필살기와 초필살기를 난무하고 있었다. 검마가 막아내는 게 되려 대단한 것이다.

[ 여동빈이 어떻게 인간세계에 강림한 거지? 인과율 때문에 안 될 텐데.]

[ 당신의 수요 막야가 2차해방된 일은 그만큼 큰 명분을 천계에 제공해 준 것이오. 투선 여동빈의 강림은 바로 당신의 폭주를 막기 위한 세계의 억지력이란 말이오.]

[ ......]

[ 자. 이제 포기하시오. 나라면 여동빈을 멈출 수 있소.]

나는 점점 외통수에 몰리는 걸 느꼈다. 이대로라면 검마나 독고성이 죽을 위기였다. 검마는 그나마 잘 버티는 듯 했으나 여동빈을 이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독고성은 벌써 한계가 보이는 것이다.

나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전음을 보내려 했다.

[ 수요 막야를 주겠...]

그 때였다.

키이이잉!!

수요 막야가 빛났다. 그리고 막야의 내면에 있던 거대한 [무언가]가 내게 말을 거는 게 느껴졌다.

[ 겨우 저런 놈들에게 굴복하는 것인가.

재미가 없군.

내가 좀 더 재밌어지게 만들어 주마.]

쿠구구구구...

"아."

동시에 나는 망량의 우보법이 풀리고 내 몸이 자유로워진 걸 느꼈다. 하지만 거기에 적응할 새도 없이, 거대한 무언가가 내 몸에 덧씌워지는 이물감에 몸서리를 쳤다.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존재감이 내 영혼을 짓눌러버리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크으으으윽...!!"

망량이 경악했다.

"이... 이럴수가... [옛 지배자]가 강림한다고...?!"

동시에 눈 앞에 환영이 떠올랐다. 그것은 과거 막야를 해방할 때 마주쳤던 거대한 해골거인의 형상이었다. 그 이름은 이타콰, [옛 지배자]의 일원이자 막야와 계약을 맺은 존재였다. 내가 극렬한 고통에 몸을 떨고 있자 이타콰의 영혼이 내게 말했다.

[ 소멸하지 않았다고? 넌 대체 어떤 존재냐?]

이타콰는 정말로 당혹한 듯 했다. 내가 대꾸하지 않자 이타콰가 말을 이었다.

[ ... 뭐 상관없다. 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치워 주지.

그것이 나 이타콰의 의지다.]

그리고 내 의식이 내면으로 서서히 침잠해 들어가며, 수요막야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타인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 꺼져랏!!]

[나]의 육체를 움직이던 이타콰는 갑자기 절연의 언령을 내뿜었다.

[ 크아아악...]

그러자 그 때까지 검마와 독고성을 상대로 싸우고 있던 검선 여동빈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타콰는 내 기억 속에서 술법을 자유자재로 꺼내서 쓸 수 있는 모양이었다.

파앗

그리고는 이타콰는 황금비등을 이용해서 어디론가로 이동했다.

마치 천지가 가라앉은 듯한 영성이 잠재되어 있는 산야(山野)! 나는 이 곳이 어떤 장소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삼황오제 전욱이 하늘과 땅을 갈라놓은 장소이자, 과거 항우가 나를 데려왔던 천지간(天地間)이었다. [나]의 몸뚱이를 가지고 가만히 천지간에 서 있던 이타콰가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수요 막야를 들어서 하늘을 겨누었다.

[ 부숴져라!]

콰과광

그와 동시에 천지간의 공간이 부숴지면서 허공에 균열이 일어났다. 그 균열 너머에는 마치 환상과도 같은 이계가 보였는데,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무릉도원 혹은 선계(仙界)라고 부르는 장소와 아주 닮아 있었다. 이타콰는 망설임없이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겨서 들어갔다.

후우웅...

이타콰가 들어온 순간 나는 천지사방에서 무언가가 날아들어온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 하나하나는 신선이나 도사, 혹은 천녀(天女)로 보였다. 이 장소는 말로만 듣던 천계였으며 그 자들은 천계의 신선인 것이다.

신선들은 내 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느꼈는지 하나같이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있던 강해보이는 신선이 호통을 쳤다. 영혼의 격으로 보았을 때 대라신선급으로 보였다.

[ 옛 지배자여, 감히 천계에 쳐들어오다니! 삼황오제와의 약속을 깨는 것인가!]

그러자 이타콰는 씩 웃더니 대답했다.

[ 버러지 놈들. 우리와 황제의 계약이 뭔지도 모르는군.]

[ 뭣이...]

[ 그냥 다 죽어라.]

천빙(天氷)

그 순간이었다.

이타콰가 허공을 향해 수요 막야를 한 번 휘두른 것 뿐이었다.

그러나 막야의 힘은 시공을 통째로 얼려버리더니, 이윽고 천계의 모든 시공간을 얼음으로 채워버리기 시작했다. 백색의 광채가 스쳐지나간 곳에 있는 것은 모조리 얼어버리고 말았다.

[ 크아아악!]

[ 도망쳐!!]

신선들은 비명을 지르며 천빙을 피하려 했으나 천빙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영체든 신이든 모조리 얼려서 주살시켜 버리는 [옛 지배자]의 권능 그 자체! 순식간에 수백이나 되는 신선과 대라신선들이 소멸하거나 꽁꽁 얼어버리고 만 것이다.

쿠르르릉...

[ 옛 지배자여, 죽어라!]

[ 소멸하라!!]

뒤늦게 이타콰의 주변으로 더 강력한 신선들이 나타나서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투선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존재들도 더러 있었으며 신수(神獸) 또한 존재했다. 그들이 동시에 공격을 하기 시작하자 이타콰는 방어막을 소환했다.

콰과과광

콰과광

지상이었다면 일개 성이 몇 번이나 소멸할 정도의 공격이 이타콰에게 때려박혔으나 이타콰의 방어막은 점차 흐려질 뿐 소멸될 기색이 없었다.

[ 벌레같은 놈들!]

그러나 이타콰에게도 힘의 한계는 있는지, 이윽고 귀찮은 표정을 짓다가 다시 천빙을 시전했다.

[ 막아라...!!]

우오오오 -

천빙이 펼쳐지자 천계의 강력한 존재들은 동시에 결계를 쳐서 천빙을 막아냈다. 하지만 힘에 부치는지 몇몇 존재들이 소멸하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재차 호통이 울려퍼졌다.

[ 약속된 멸망의 때는 오지 않았다!]

[ 그대의 오만을 후회하게 해 주겠다 이타콰!!]

쉬쉬쉭

동시에 여기저기에 또다른 존재들이 소환되었다. 그것은 내가 익히 본 적이 있었던 태허천존, 서왕모, 남화노선 등의 존재들이었다. 지상의 신앙을 받는 강력한 신급 존재들이 본격적으로 이타콰를 멸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태허천존을 발견한 이타콰가 멈칫거렸다.

그러더니 낭패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당신은 나보다 장난이 심하군.]

태허천존은 대답하지 않고 의미모를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격렬한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전투가 끝난 것은 그로부터 사흘 밤낮이 지나서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졌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느 새 이타콰는 강신을 풀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이타콰에게 잠식당해있던 나도 서서히 정신을 되찾았다. 전신은 피투성이가 된 채 멍하니 천계 한가운데에 꿇려앉혀져 있는 나는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변은 팔괘를 이용한 진법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일종의 감옥이었다.

대라신선들은 내 처분을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지 막야를 뺏어가고는 나를 일단 감옥에 넣어둔 것이다.

그리고 감시자로서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망량이었다. 천계로 복귀한 망량은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백웅. 당신이 황금비등을 이용해서 도망치는 건 이제 불가능하오. 천계는 마도구의 이동술이 통하지 않는 장소이니 말이오."

"......"

그러더니 내게 가까이 오더니 살며시 속삭였다.

"... 황궁이 중요한 게 아니오. 앞으로는 목표를 바꾸시오."

"무슨 말이지?"

우우웅

"......!!"

나는 그 순간, 망량과 맞잡은 손을 통해서 그가 알고 있는 술수의 지식과 경험이 쏟아져 들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놀라서 망량을 쳐다보았지만, 이내 그것이 흑요석의 술법과 비슷하게 자신의 기억을 타인에게 전승하는 고유술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망량은 숨을 몰아쉬더니 말했다.

"헉... 헉... 구천현녀께 전수받은 시해술(尸解術)... 다행히 잘 써졌군..."

내가 놀라서 그를 쳐다보자, 망량이 서글픈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난... 당신이 알던 망량이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왔소... 그리고 이번 임무가 끝나면... 구천현녀께 받은 비밀임무를 하려 했는데... 도저히 죄책감때문에... 그렇게는 못 하겠어..."

"무슨..."

"이대로라면... 백웅 당신은 죽지도 못하고... 영겁토록 봉인될 것이오... 그러니까... 그 전에..."

망량은 피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말했다.

"... 천계의 가장 깊은 곳에... 어둠이 존재하고 있소... 그걸 반드시... 밝혀내 주..."

풀썩

이윽고 망량의 숨이 끊어졌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망량은 자신의 목숨을 댓가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내게 전승시키는 걸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죽으면 회귀하는 능력을 가지고 전생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미래]의 나에게 도박을 건 것이다.

' 아마... 그 천계의 어둠을 밝혀낼 자신이 없었겠지.'

망량의 기억을 들여다 봤을 때, 그 어둠은 일개 지선인 망량의 힘으로 함부로 캐내기 두려울 정도로 강력한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망량은 죄책감을 언급했다.

내가 흑요석으로 전승시킨 기억은 현재의 망량의 가치관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영향을 준 것이다.

나는 눈 앞에 있는 망량의 시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예전과 달리 복잡미묘한 감정이 내면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망량이 적이 된 것은 처음일 뿐만 아니라, 그가 적이 될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내 내면에 심대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처럼 무작정 슬퍼하거나 나 자신을 자책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무엇이 최선의 길인가?

"......"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알고 있다. 그래서 한숨을 쉬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푸콱!

나는 이내 심맥을 끊었다. 상당한 격통과 함께 전신에서 울혈이 비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예전에 비하면 허망하다 싶을 정도의 자살이지만, 이번에는 그나마 선택할 여지가 있다는 정도의 차이였다.

그것이 내 16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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