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1 ----------------------------------------------
천계(天界)
"......!!"
망량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천계의 지선이라니, 설마 망량은 신선이 되었단 말인가?
내 머릿속에서 온갖 추측과 방황이 맴도는 동안에 망량의 팔이 휘둘러졌다. 동시에 오화칠금선에서 무시무시한 폭염(爆炎)이 날아들었다.
화르르륵!!
폭염은 옥좌의 방을 통째로 날리고도 모자라서 수십 장이나 더 뻗어나갔다. 나는 순간적으로 비등을 사용해서 회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고, 비등을 이용해서 궁 밖으로 나오자 태룡전의 지붕이 폭발하는 장면이 보였다.
쿠콰콰쾅!!
"음...!!"
후폭풍을 버텨내던 나는 순간적으로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 저게 보패 오화칠금선의 위력!'
과거 주술사의 사주를 받은 금의위들과 태경촌에서 결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때 망량은 온갖 제약을 다 걸어서 겨우 보패 오화칠금선을 사용했는데, 그 때는 마을 전체를 불꽃의 벽으로 가두는 용도로 썼다. 그러나 지금의 망량은 그때보다 더한 폭염을 단순히 휘두르기만으로 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오화칠금선의 폭염은 순식간에 태룡전의 상층을 전소시키고도 모자라서 허공에 염구(炎球)를 여러 개 띄웠다. 그리고 염구의 한가운데에는 오화칠금선을 거머쥔 망량이 떠올라서는 재차 염구를 어디론가 날렸다.
콰광
염구가 부딪힌 곳에서 다시 섬광과 폭염이 일어났다. 그리고 폭염의 중심에서 무언가가 치솟아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위이잉
제갈사가 허공에 떠 있었다. 제갈사는 반쯤 열려있는 황금상자를 띄운 채 반투명한 보호막을 자신의 몸 주변에 두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명백히 [옛 지배자]의 권능을 빌리는 술법인 마법(魔法)이었다.
제갈사는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오늘 이 자리에 있었던 거지? 이해가 안 된다 조카야."
그 말에 망량은 제갈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나는 반 년 전부터 황궁에 잠입해 있었소. 황궁에 존재하는 마의 실체를 알아내고 나서 하부세력을 토벌하려 했는데, 어느날 제갈부도 죽고 크게 어수선해지더군. 그래서 틈을 살피던 중에 당신이 쳐들어온 것이오."
"호오 그렇군. 천계는 이미 행동에 들어갔던 건가?"
"이족의 세력이 과하게 팽창하는 건 누구도 원하지 않소."
그러자 제갈사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글쎄다? 그냥 천계만 싫어하는 건 아니고?"
콰과광
말이 끝나자마자 망량이 다시 공격했고 제갈사는 황금상자의 힘을 돋우어서 막아내었다. 그러나 방어막이 크게 흔들리는 걸 보아서는 망량의 힘이 크게 우위에 있는 듯 했다. 제갈사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이 굵어보였다.
"크윽."
망량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과 여기서 논쟁할 생각은 없소. 순순히 항복하고 [옛 지배자]의 권속을 소환해제하시오."
"완전 날로 먹으려 드는구만. 제갈부도 내가 처리해주고 잔당들도 말끔하게 청소해 줬는데 말이야."
제갈사가 핀잔을 날렸다. 망량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당신에게 천하대의를 위한 동기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어차피 사리사욕때문에 움직인 게 뻔한데 뭐하러 빚진 기분을 느껴야한단 말이오?"
"크하하. 너는 몇 년이 지나든 그대로구나. 여전해."
"그건 내가 할 말이오만."
제갈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땅에서 그 대화를 지켜보던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말해두지만 나는 칠요의 주인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건 바로 너다, 현아."
"......"
"너라면 이게 얼마나 유리한 건지 알겠지."
망량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했다.
너무나 심유한 눈빛이다.
나는 그것이 망량이 술법을 완벽하게 깨우치고 정신력을 극도로 가다듬은 흔적이라는 걸 즉시 알 수 있었다. 무인이 초절정을 지나서 의념을 깨우치듯, 술법사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경지가 있는 게 분명했다. 술수의 경지가 신선급에 이르렀다는 건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다.
망량이 내게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약간 감사해야겠군. 수요 막야가 깨어났다는 소식 때문에 천계의 대라신선들이 발칵 뒤집혔고, 그 덕에 내게 큰 술수를 익힐 기회가 주어졌으니."
아무래도 여동빈이 내게서 쫓겨나서 천계로 간 후 큰 변화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칠요 막야의 해방이 그만큼 천계에는 큰일이었던 것이다. 망량이 지선까지 성장한 배경에도 작용한 게 틀림없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망량에게 말했다.
"... 우리는 나쁜 뜻으로 황궁을 멸한 게 아니오. 황궁에 존재하는 마(魔)를 쓸어버리고자 한 건 바로 나의 의지이고, 나를 도와주는 자들은 거기에 따른 것 뿐이오."
내 대답에 망량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당신은 오늘 불려나온 권속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하는 말이오?"
"잘 모르오."
망량의 시선이 지상의 전장으로 향했다. 거기에서는 아직도 한창 황궁 초인병들과 투명한 마물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제갈사는 은카이의 수면자 차토구아에 봉사하는 종족인 [형태없는 자손]을 수천 마리나 불러내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화산의 신 과타노차의 권능을 빌려서 죄없는 자들을 석화시켰소. [옛 지배자]의 힘을 이 정도로 자유자재로 사용한 일은 일찍이 거의 없었던 일이오. 그 어떤 대마도사도 불가능했소."
"......"
"저 황금상자의 힘은 너무 엄청난 것이오. 그러므로 나는 단언할 수 있소."
스윽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들어서 제갈사를 겨누며 노려보았다.
"오늘 제갈사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는 황궁보다 10배는 강력한 마왕(魔王)이 되고 말 것이오. 당신은 지금이라도 생각을 고쳐먹으시오."
마왕!
그건 무시무시한 의미를 머금은 단어였다. 대라신선조차도 감당해낼 수 없는 고대신의 사도, 달기를 칭할 때나 마왕이라는 칭호가 쓰였다. 제갈사가 만일에 황금상자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어서 강대한 권능을 손에 넣는다면 마왕급 존재가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리라.
내가 침을 꿀꺽 삼키자 제갈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가 제갈일족 아니랄까봐 머리는 더럽게 좋군. 수요의 주인만 회유하면 이긴 싸움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리다니."
"회유라니. 당신이 비인외도(非人外道)로 끌어들인 것 뿐이겠지."
망량이 일갈하자 제갈사가 대답했다.
"그럼 하나 물어보자. 천계에서는 왜 이제 와서 너 하나를 보내서 황궁을 징계하려 한 거지? 지선이 높은 신분이긴 하지만 곤륜산에는 망량 너보다 강력한 신선이 열 명은 넘게 있을 것이다. 움직이려 했다면 연금술사가 초상기인을 제작하기 전부터 제압 가능했을텐데 왜 이제 와서?"
"......"
"대답은 간단해. 천계는 [옛 지배자]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너희 천계 놈들은 인간종족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진실을 숨기고, 왜곡하고, 호도하는 데 지나지 않아. 심지어 마를 토벌하기 위해 인간을 수천 단위로 죽이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위선자들."
제갈사의 말에 망량이 말했다.
"부정하진 않겠소.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옛 지배자]와 관련된 진실을 세상에 알려서 좋을 게 뭐가 있단 말이오? 과거 대양 아래로 사라졌던 전설의 대륙처럼 인간이 [옛 지배자]를 섬겨봤자 광기만이 충만해질 뿐이오."
망량은 오화칠금선을 치켜들었다.
"나는 마도(魔道)에 타락한 당신을 없애겠소, 숙부."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제갈사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황금상자에 손을 뻗었다. 두 명의 술법사가 서로를 마주보고 최고수준의 술법을 사용하려고 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나타났다. 그 때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의 전음이 내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 백 호법!! 당장 저 놈을 베어버려. 아무리 보패 오화칠금선의 화염이라고 해도 수요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니.]
[ 제갈사를 없애야 하오! 당신은 저 자에게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오. 제발 인간을 위해 옳은 선택을 해 주시오.]
"......"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수요 막야를 내려다보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느 쪽 편을 드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절대적으로 갈릴 게 분명했다. 수요 막야는 환신 천우진의 환술도 가볍게 찢어버릴 정도의 위력이 있으므로 어느쪽을 공격하든간에 반드시 상대방의 목을 따는 게 가능했다.
' 빌어먹을...'
사실 보통 상황이라면 망설임없이 제갈사를 도와서 상대편 주술사의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적으로 나타난 천계의 사도는 바로 망량 제갈현, 내게 있어서는 최고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동료였다. 아무리 이번 전생에서 초면이고 적으로 만났다고는 해도 망량의 목을 베는 건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나는 이윽고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그만둬!!"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나는 피맺힌 음성으로 외쳤다.
"당장 전투를 그만둬.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죽여버릴 테니까!"
파칭
나는 진심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막야에 검강을 돋우었다. 이제는 억지로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깨달음으로 시전할 수 있는 검강이었기에, 내력을 불어넣으면 넣을수록 예전보다 엄청난 기세가 흘러나왔다. 짙푸른 뇌기(雷氣)를 머금은 채 이글거리는 막야의 검강을 보자 두 사람은 주춤하는 기색이었다.
제갈사가 끌끌 혀를 찼다.
"백 호법. 뭐하려고 빙빙 돌아가나? 여기서 현이 목만 따버리면 모든 게 순탄해져. 무주공산이 된 황궁에서 보물을 챙겨서 돌아가기만 하면 끝이야."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빌어먹을 개자식아, 그 입 닥쳐! 자기 조카의 목을 딴다는 소리가 그렇게 쉽게 나오는 거냐!!"
"......"
"당신도 그만두고 잠시 우리와 얘기를 해 봅시다. 분명히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거요."
내가 망량에게 말을 걸자 망량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망량을 오랫동안 봐 왔기 때문에 지금 진심인지 아닌지 쉽게 판별할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망량이 말했다.
"지금 그럴 여유가 없소. 제갈사에게 조금만 더 여유를 주면 그는 엄청난 힘을 손에 얻게 될 거요. 적어도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해야만 하오."
"무슨 소리요?"
"저 자가 당신 말마따나 순수하게 황궁의 마(魔)를 제압하러 온 거라고 생각하오? 당연히 황궁에 존재하는 또 다른 힘을 손에 넣으려고 온 것..."
그 때였다.
파앗!!
갑자기 눈치를 보던 제갈사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내가 흠칫해서 그 위치를 보았지만 제갈사가 어디로 갔는지 종적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망량이 이를 으득 악물면서 내게 말했다.
"역시 그걸 찾으러 왔었군!"
"무슨..."
"수요의 주인. 당신은 제갈사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니오? 이대로라면 마왕이 탄생하고 말 것이오."
망량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무슨 일인가?"
그 때 황궁 앞의 전투가 거의 끝나고 검마와 독고성이 이쪽으로 날아왔다. 용인과 마인들은 전멸해 있었고, 제갈사가 소환한 마물들은 천천히 녹듯이 지면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소환이 해제되는 중인 것이다.
지붕 위에 올라선 검마는 힐끔 망량을 쳐다보았는데, 망량이 하늘에 떠 있으며 보패를 들고 있는 걸 보자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강해졌군 망량."
나는 검마에게 말했다.
"일이 꼬인 것 같습니다. 제갈사가 사라졌습니다."
"뭣이."
"망량의 말로는 그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는군요."
"흐음... 아무래도 긴급한 상황인 듯 하군."
고개를 주억거리던 검마가 망량에게 말을 걸었다.
"망량. 제갈사가 어디 갔는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를 추적 가능한가?"
"알고 있소. 추적도 가능하지만..."
망량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당신들은 나와 초면인데 말투가 왜 그렇소?"
"음..."
나와 검마는 난감함을 느꼈다. 나와 전생의 기억을 공유한 검마는 망량을 충분히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망량에게 있어서 우리는 완전히 처음 보는 타인이었다. 게다가 일단은 대립하는 적수로써 만난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알고 지내던 것처럼 서슴없이 말을 걸어오니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검마가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가 자네를 미리 알고 있는 이유는,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일세."
"말도 안 되는 소리."
"설명해 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군. 백 호법."
"네."
나는 검마의 말에 목갑에서 흑요석을 꺼냈다. 흑요석을 받아든 검마가 망량 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이것은 기억을 전달하는 술법일세. 자네가 이 상황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부터 이해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네."
"당신들의 기억을 담고 있다고? 내가 그걸 어떻게 믿소?"
"믿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만일 믿는다면 우리는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겠지."
"......"
망량은 한참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하늘을 나는 술법을 그만두고는 지붕 위로 착지해서는 검마에게서 흑요석을 받아들었다.
"받았소."
"좋아. 백 호법."
나는 망량에게로 흑요석의 술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망량은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기억을 받아들이는 듯 머리가 지끈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우우웅...
잠시 후 기억의 전송이 모두 끝나자, 망량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이럴 수가...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망량. 당신이 지상의 신선이 되어 보패를 다루는 경지에 이르렀다면 알겠지만, 이게 위증이나 거짓일 리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거요."
나는 말을 이었다.
"다시 봐서 반갑소, 망량."
"......"
망량은 고개를 휘휘 젓더니 말했다.
"알았소. 그럼 제갈사를 추적합시다."
"기억을 다 받아들인 거요?"
"안될 것도 없지.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도, 당신들이 해야할 일도 달라지지 않았소. 그럼 남은 건 행동밖에 없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한 망량이 말했다.
"당장 황금비등을 써서 태룡전의 가장 깊은 곳으로 갑시다."
"가장 깊은 곳?"
"수정석비가 보관되어 있던 곳에서 더욱 깊은 이공간이오. 연금술사가 고문당해서 제갈사에게 비밀을 털어놔 버렸소."
아무래도 아까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황제가 불문곡직하고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연금술사가 고문당하던 중인 듯 했다. 짧은 시간에 어떤 고통을 가했는지는 몰라도 제갈사는 연금술사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낸 후 죽이려 한 것이다. 그리고 망량은 그 틈을 타서 우보법으로 제갈사를 제압했던 게 내가 보았던 상황이었을 것이리라.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그 곳에 전국옥새(傳國玉璽)가 있소. 제갈사가 그걸 얻게 놔둬서는 안 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