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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60화 (26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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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아침부터 나는 목갑과 비등을 이용해서 독고성, 검마, 그리고 제갈사를 수도 낙양으로 데려갔다. 낙양에서도 한산한 지역으로써 무림인이든 일반인이든 인적이 거의 없는 장소였다. 버드나무 아래에 서서 검마가 말했다.

"겨우 우리 넷이서 황궁을 뒤엎는게 가능하단 말인가?"

"......"

"강하게 주장하길래 오긴 했네만 믿겨지지 않는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게."

검마의 말은 지당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다소 지치고 피로한 표정의 제갈사가 그의 말에 대답했다.

"문주님. 그 전에 하나 여쭐 게 있습니다."

"말해 보게."

"낙양에 존재하는 인간들을 몰살(歿殺)시킨다면 일이 아주 쉬워질 것인데 허용해 주시겠습니까?"

"......!!"

그 말에 우리 셋은 아연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설마 이런 말을 제정신으로 꺼낼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사파나 마도무림인들이 항쟁을 할 경우 몰살같은 단어는 자주 꺼내는 편이지만, 낙양을 몰살시킨다는 건 차원이 다른 말이었다. 삼국시대의 동탁같은 경우 낙양을 불질렀다는 만행 하나만으로도 수천년간 회자될 정도의 극악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독고성이 기가 질려서 중얼거렸다.

"미친 놈."

당연하지만 검마의 가치관이나 생각에서 용납될 리가 없는 일이었다. 검마는 제갈사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 두뇌라면 내가 아니라고 대답할 걸 알겠지. 진짜 필요한 요구를 얻기 위해서 심리전을 거는 건가?"

제갈사는 고개를 숙였다.

"얕은 수로 여겨졌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 안 되네. 민간인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하네."

검마는 때로는 비정한 손속을 휘두르는 사파의 무림인이지만 정도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자였다. 낙양의 수백만 인구를 학살하는 일을 그가 감당하려 할 리가 없다. 검마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황궁에 있는 모든 인간을 전멸시켜도 되겠습니까?"

"그것은 일반 관리나 시비나 평범한 무사들도 말하는 건가?"

"당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검마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필요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꼭 전멸을 시켜야 하는건가? 당위성을 말해 주게."

제갈사가 버드나무잎을 하나 뜯더니 대답했다.

"제가 지금부터 쓸 방법은 천계(天界)의 이목을 크게 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건의 목격자나 경험자가 최대한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후환이나 추적을 최대한 모면할 수가 있으니까요."

"천계라고?"

"그렇습니다. [옛 지배자]의 힘을 빌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후처리를 위해 나서는 천계의 존재들과 충돌하게 될 겁니다. 못해도 지선(地仙)급 존재가 나타나겠지요. 그들이 나타나서 술법의 근원을 캐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야 합니다."

검마가 침중하게 말했다.

"신선이라는 존재가 진짜로 인간세계에 간섭할 수 있다는 거군."

"물론입니다. 하지만 일을 신속하게 끝낸다면, 한 시진 내에 모든 걸 끝낼 수 있다면 그런걸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어차피 이 일은 [옛 지배자]에 의해 용인된 것이기 때문에 시치미만 떼면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으니까요."

"신선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강한가?"

검마의 질문에 제갈사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원래 인간이라면 그들과 싸울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투선(鬪仙)급 존재라면 마주치는 것 자체가 재앙이 되겠지요."

"......"

"문주님,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검마는 팔짱을 낀 채 오랫동안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백 호법. 자네가 결정하게."

"네?"

"내가 무영문의 문주로써 그대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사실 백 호법 자네가 아니었으면 이 계획은 결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일세. 그리고 수요 막야를 비롯한 기보를 제갈사에게 제공한 것도 자네였지. 그렇기에 자네에게는 최종결정을 내릴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네."

제갈사도 검마의 말에 동의하는지 나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으음."

나는 검마의 말에 고민했다.

과연 제갈사가 이대로 행동하게 허락해도 될까?

천추의 한을 남기는 일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이내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황궁에서도 마(魔)와 결탁한 존재나 하수인만을 해치워 주시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따르겠소."

그러자 제갈사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역시 제일 어려운 길을 골라 주는군. 그게 또 재밌지만."

"할 수 있겠소?"

"물론! 다소 귀찮을 뿐."

그렇게 뇌까린 제갈사가 한쪽 손에 황금상자를 들었다. 그러더니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세 사람 모두, 지금부터 어떤 일이 있더라도 놀라거나 동요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황궁에서도 황제가 있는 곳으로 곧장 향해 주십시오. 중간에 소환물에 손을 대거나 적대해서는 안 됩니다."

"대체 뭘 하려는 건가?"

"소환술(召喚術)입니다."

"소환술?"

"아주 재밌는 소환술이지요."

키이이잉 -

갑자기 황금상자가 빛났다. 그러더니 조각조각 분해되듯 천천히 열리더니, 안에서 기괴한 어둠이 새어나오는 게 느껴졌다. 제갈사는 황금상자를 허공에 둥실 띄우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혼돈이여,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 자여, 기어다니는 안개여... 나 빛나는 부등변다면체의 힘을 빌리노니, 성좌를 지배하는 권능을 부여하소서."

그 때였다.

쿠르르릉....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미친듯이 몰려들더니 순식간에 낙양의 하늘은 어둠으로 가득 메워졌다. 하지만 비구름과는 묘하게 다른 게, 먹구름은 마치 고정된 것처럼 빽빽하게 들어차서는 거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어둠으로 가득 찬 낙양에서 제갈사의 음침한 음성이 흘렀다.

"은카이의 수면자여, 나 그대의 권속을 부리노니. 형태 없는 자손이여, 일어나소서. 축제를 벌이소서."

쉬리리릭

하늘 여기저기에서 시꺼먼 물덩어리 같은게 엉겨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난데없는 어둠에 당황하면서도 무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건 알아챈 모양이었다. 꾸물렁거리며 대지에 떨어진 것은 서서히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둠이 울부짖는 듯한 괴이한 소리가 울렸다. 음산한 분위기가 맴돌면서 갑자기 주변에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 듯 했다. 제갈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손을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화산의 신이여, 영겁에서 비롯된 자여, 그 이름을 빌리옵니다. 섬기는 자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파앗

거기까지 주문을 외운 제갈사는 갑자기 홀연히 연기처럼 변해서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황금 상자도 그와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우리는 어둠으로 물든 을씨년스럽고 불길한 낙양의 한구석에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고 잠시동안 당황했다. 아무리 초절정고수라고 해도 이런 초현실적이고 신비한 현상을 그리 자주 맞이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수백 장 내의 인기척이 모두 잦아들고 인간들이 문을 걸어잠그며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스산한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마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듯한 불길한 바람이었다. 독고성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빌어먹을. 놈이 말한대로 할 수밖에 없겠군."

"황궁으로 가야겠군요."

타다닷

우리는 건물의 지붕을 날듯이 넘어서 저만치 멀리에 보이는 황제의 내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황궁까지 가기 위해서는 약 십오 리를 더 가야했는데 이 정도 거리는 금새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뛰어가는 도중에 길거리의 풍경이 기괴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이었다. 아까 하늘에서 떨어진 투명하고 꾸물텅거리는 '무언가'가 수백 수천마리씩이나 몰려들어서 황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명확한 형체는 보이지 않았으나 마치 예전에 보았던 비강장처럼 강력하고 까다로운 마물일 게 분명했다.

번쩍!

황궁 바로 앞의 관문까지 도착했을 때 황궁에 붉은 번개같은게 크게 떨어졌다. 제갈사가 싸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우리는 관문병사를 어떻게 제압할까를 생각했으나 관문 앞에 도착한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석상...?"

그랬다.

본래 황궁 앞에 우글대며 몰려다니면서 황궁을 수호하는 수비대 병사들은 수십 수백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어두워진 낙양의 하늘을 보자 비상사태라고 생각했는지 재빨리 출동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갑옷과 무기는 물론 전신이 완전히 딱딱하게 돌로 굳어서 석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살아서 움직일 듯한 병사들의 석상을 보자 기이한 공포심이 흘러나왔다.

검마가 그 석상더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제갈사가 술법으로 이 자들을 돌로 만들어버린 모양이군."

"하지만 이건 너무 강력합니다."

나는 한탄하듯 말했다. 물론 제갈사의 술법수준이 높아서 그렇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보통 술법이라는 건 아무리 공격용이라고 해도 이렇게 강력할 수 없다.

수십 수백명이나 되는 경비무사들, 그것도 나름대로 내공도 익혀서 술법에 약간의 저항력이 있는 자들을 반항도 못하게 석화시킬 수 있는 술법이 존재한다면 - 무공을 익히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석화의 술법은 내가 태어나서 보았던 술법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했다.

옆에 있던 독고성이 말했다.

"그 놈이 신의 힘을 빌린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 놈의 술법이라기 보다는 신의 힘을 이용한 거겠지."

"음... 그렇겠군요."

"저 투명한 괴물들이 우리를 일부러 공격하지 않는 듯 하니 빨리 가 보자. 괜히 신경질 나는군."

독고성의 말대로 황궁 내로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는 투명한 괴물들은 우리를 인식하고 있지만 일부러 못본 척 하는 듯 했다. 제갈사가 그들에게 우리를 공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 마물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魔氣)가 하도 농밀했기에 신경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황궁의 관문을 통과해서 더욱 안쪽으로 들어가자 더욱 기괴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 끼에에에엑!!]

여기저기에서 마인과 용인들이 변신해서 날뛰고 있었다. 얼추 보기에도 그 숫자는 사오십 마리는 되었기에 굉장히 많아 보였다. 놈들은 그 가공할 신체능력을 사용해서 돌바닥을 깨고 담장을 부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퍼억

콰과광

그리고 그런 마인과 용인들에게는 형태없는 투명한 괴물들이 마구 달라붙어서 치고 깨물고 잘라내는 중인 듯 했다. 마인이나 용인 하나에 최소 수십 마리씩 엉겨붙어서 찰거머리처럼 공격을 해대니, 초인병사들이라고 해도 마땅히 당해낼 방법이 없는 듯 했다.

우드득 우드득

[ 끼엑... 크에에엑...]

용인 하나가 쓰러지더니 뭔가 뜯어먹는 소리가 그 자리에 울려퍼졌다. 수십 마리의 괴물들이 용인을 뜯어먹는 중이었다.

제갈사가 소환해 낸 투명한 괴물들은 너무나 손쉽게 황궁의 초인병들을 제압하고 있는 중이었다. 몇몇 용인과 마인들은 반항하다가 결국 전신이 뜯겨서 잡아먹히고 있는 신세가 되고 있었다.

독고성이 어이가 없는 듯 중얼거렸다.

"저 괴물들은 대체 뭐지?"

"암천향에서 소환된 마물일 겁니다."

"끄응..."

독고성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 또한 초절정 무인이기에 용인과 마인의 객관적인 전력을 파악하고 있었다. 만일 이 자리에 있던 용인과 마인들이 한꺼번에 달려들 경우 우리 셋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 초인병들을 투명한 마물들이 손쉽게 잡아먹고 있으니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타닷

우리가 더 뛰어가서 황궁의 내밀한 궁전 쪽으로 향하자, 황제가 거처하는 궁궐인 태룡전(太龍殿)과 내황각이 보였다. 아까보다 더 격렬하게 괴물들끼리 싸우는 광경이 눈에 보였다. 여기가 최후 방어선인 듯 용인과 마인들이 아까보다 몇 배나 몰려들어서 필사적으로 투명한 괴물들과 싸움박질을 하고 있었다.

콰과광

콰쾅!!

[ 끼에에엑!!]

대결은 백중세로 보였다. 용인과 마인들이 시꺼먼 기운을 방출할 때마다 투명괴물들도 몇 마리씩 소멸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전각 지붕에 서서 그 모습을 쳐다보던 검마가 내게 말했다.

"백 호법은 황제의 궁으로 들어가서 제갈사를 만나게."

"알겠습니다."

쉬캉!

이윽고 검마와 독고성이 뛰어들어서 참전했다. 그들은 의념절기와 검강을 뿜어내며 황궁의 초인병들을 도륙하기 시작한 듯 했다. 나는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본 후 태룡전 내부로 재빨리 들어갔다.

태룡전은 예전에 와본 적이 있지만 역시 느낌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인간의 기척이 없는 스산한 장소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서 황제의 옥좌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옥좌의 방을 열었을 때였다.

"백 호법. 조금 곤란하게 되었구만."

제갈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제갈사의 발 아래에는 처참하게 오체분시된 황제의 시체가 있었고, 제갈사는 연금술사의 목을 잡아쥐어서 들어올린 상태였다. 어떤 살육극이 있었을지는 익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제갈사가 말했다.

"이 놈을 바로 처리해버리려고 했는데 방해가 들어왔어."

"방해?"

제갈사가 낄낄거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참 기구한 인연이지..."

제갈사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기둥 뒤편의 어둠이었다. 그 어둠을 자세히 살펴보니, 한 인영(人影)이 있었다. 기척을 감추는 술법을 사용해서 내가 바로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그 인물은 천천히 어둠 밖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숙부는 죽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멀쩡히 살아있었구려."

아주 익숙한 목소리다.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줄 알았다.

"하하하... 내가 더 놀랐다. 네 녀석은 진랑곡에서 대충 지내는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강력한 우보법(牛步法)을 익혔느냐?"

그 자의 모습이 밝은 곳에 드러났다. 그는 물끄러미 제갈사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열심히 수련했으니까."

"열심히 수련하는 것만으로는 고작 칠팔 년만에 보패(寶佩)를 사용할 수 없을텐데?"

"좋은 스승과 기연도 좀 있었소."

그렇게 대꾸한 그가 도포를 휘날리며 한손에 오화칠금선(五火七禽扇)을 치켜들었다. 오화칠금선이 모든 것을 멸하는 천계의 화염을 일렁이기 시작했다.

"지선(地仙) 망량, 천계의 명에 따라 마도(魔道)에 잠식된 사악한 자를 토벌하겠소."

그랬다.

우보법으로 제갈사를 묶어놓고 오화칠금선의 화염으로 마무리를 하려는 저 젊은 도사(道師)는 내가 익히 아는 자였다.

망량(??) 제갈현(諸葛賢).

내 최대의 지기이자 동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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