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258화 (25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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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검마의 목이 날아가는 걸 보자,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은 정지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하지만 분노해서 폭주하기보다는 그 이상으로 냉정하게 지금의 상황을 관조하는 나 자신이 있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백전연마된 고수로서의 직감이 이성을 붙들어매었다고 표현하는 게 나았다. 그리고 물끄러미 목을 잃고 서 있는 검마의 동체를 바라보며 검을 서서히 뽑았다.

독고성이 말했다.

"진짜 검마가 내 일 초식에 당할 리가 없지."

"가짜라는 겁니까?"

"첫 대면에서 느꼈던 기질과 너무 달랐다. 시험해 본 것 뿐이다."

"......"

기질이 다르다는 건 무슨 뜻일까? 나는 방금 전에 검마를 다시 보면서 위화감을 손톱만큼도 느끼지 못했기에, 지금 독고성의 말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만일에 정말로 검마가 독고성의 기습을 막아내지 못해서 죽은 거라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독고성이 말했다.

"술법사의 장난질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이대로 이곳을 모조리 부숴버리겠다."

"잠깐 그건..."

독고성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특히나 뇌신류 출신이기에 직선적인 성향이 더욱 강했다. 내가 급히 말리려고 할 때였다.

"이런, 장난이 들켰군요."

잘려서 나동그라져 있는 검마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동체가 움직여서 목을 들더니, 몸뚱이에 목을 접합시켰다. 그러자 의학지식으로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선뜻 목과 몸뚱이가 붙어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침음성을 흘렸다.

"인형(人形)..."

내가 아는 술수지식 중에서 저걸 설명할 수 있는 건 인형술밖에 없다. 뛰어난 인형사는 인간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인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외견상으로 완벽한 인형을 보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검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인형]이 말했다.

"어째서 들킨 거지? 평소의 검마를 완벽하게 따라했다고 생각했는데."

독고성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검마의 기질은 의념으로 강고하게 연마되어 있다. 그 미세한 흐름을 인형 따위로 따라할 수는 없지."

"과연... 확실히 인형으로 그것까지 해내는 건 무리겠군. 나 자신이 의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고수가 아니라면 말이야. 큭큭."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검마의 인형이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검마 문주님은 멀쩡하니까."

"그 말을 어떻게 믿지?"

"현재 곳곳에서 암살자들이 문주님의 목을 따려고 발악을 하길래 대타로 인형을 세워둔 것 뿐입니다. 진짜 문주님은 인근의 안가(安家)에서 수련하고 계십니다."

"직접 우리 눈으로 봐야겠다."

"연락을 드렸으니 곧 오실 겁니다."

나는 제갈사의 말을 도무지 신용할 수가 없었다. 그는 술법과 사법에 능통했기 때문에 저 말 자체가 기만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독고성은 그저 인형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있어서, 나도 일단 대기하기로 했다.

휘리릭

잠시 후 하늘 저편에서 천상제로 날듯이 검마가 무영문으로 왔다. 검마는 우리 둘을 발견하고 피바다가 되어있는 실내를 보자 어떻게 된건지 알아챈 듯, 난감하게 웃었다.

"하하. 내 불찰이군."

"검마 문주님을 뵙니다."

"갔던 일은 잘 갔다왔나?"

"네. 문주님께선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그리 강녕하지 못했네. 보다시피 대역을 세워둘 정도로 암살자가 들끓어서 말이지."

"......"

옆에 서 있던 독고성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십이율에서 보낸 암살자인가?"

"아마 그럴 거라 생각하오. 뒷선을 캐보았지만 드러내지 않는 걸로 봐서는 이 반도의 문파들도 꽤나 음험하군."

"고생이겠군. 중원에서는 자리를 잡았으니 잡졸들이 덤벼들 틈새도 없었을텐데."

"감수해야지 뭐 어쩌겠소."

채앵!!

검마의 대답이 끝나는 순간 검음(劍音)이 울렸다. 독고성이 기습적으로 내뻗은 일 검을 검마가 가볍게 막아낸 것이다. 검마는 독고성의 의도를 파악한 듯 피식 웃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나는 진짜요."

"그렇군. 미안했네."

"제갈사의 인형술이 매우 뛰어나기에 오해를 일으켰구려."

그 때까지 상황을 보고 있던 제갈사의 인형이 끼어들었다.

"세 분께 제 연구성과를 보여드리고싶은데 제 공방(工房)으로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독고성이 큭큭 웃더니 살기를 돋우었다.

"개소리 마라. 네놈이 내 눈앞에 나타나면 목을 뽑아버리고 싶으니까."

"이런, 그것 참 유감이군요."

"말할 게 있다면 네가 직접 성과물을 들고 우리 앞으로 와라. 일개 군사 주제에 뭐 그리 건방지단 말이냐?"

"그것도 그렇군요. 직접 들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제갈사의 인형은 흐느적거리더니 그 자리에 쓰러져서 눈에 빛을 잃고 말았다. 외견상으로는 검마와 하나도 차이가 없었으므로 약간 기분이 나쁜 모습이었다. 검마는 인형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전음을 보냈다.

[ 아직까지는 제갈사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네.]

[ 그의 본색을 알아보시겠습니까?]

[ 아니. 무리군. 그는 아주 신중하고 교활해서 틈을 보이지 않아. 단지 자신이 정한 목표에 아주 성실한 것은 사실인 듯 하네.]

[ 목표라고요?]

[ 그는 황궁에 대항할 병사를 양산하려는 목표가 있더군.]

전음으로 약간의 대화가 오갈 때 독고성이 말을 꺼냈다.

"검마. 할 이야기가 있다."

"말씀 하시오."

"이 놈의 성취에 관한 건데... 이대로는 뇌신류의 검예를 익힐 수가 없다."

"짐작은 했지.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소?"

독고성은 현재 내가 부딪혀 있는 난관을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 있던 검마가 말했다.

"해결방법은 간단하겠군."

"무슨 수가 있는 것이냐?"

"기존의 검형을 또다시 잊고 뇌신류의 검술에 입문하는 것은 너무 큰 수고가 들며 비효율적이오. 지금의 문제라는 건 결국 자질이 부족해서 여러 개의 검류(劍流)가 섞이는 걸 통제하지 못해서가 아니겠소?"

"그렇다 할 수 있지."

"그렇다면 백 호법이 기존에 익히고 있던 무예들의 숙련도를 올려서 온전히 이해하게 하는 편이 빠를 것이오. 숙련된 경지를 보유하고 있다면 거기에 휘둘리지 않게 될 테니."

검마의 말을 들은 독고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더 어렵지 않겠나? 굴공검이든 천축검이든 그 외의 잡다한 기(技) 하나하나가 무림에서 절세무공으로 불릴만한 수준일진대."

"백 호법은 이미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망아(忘我)를 체현했소. 더 이상 망아의 수련을 하다가는 무예의 흐름이 더 꼬여버릴수도 있는 거요."

"흠! 내가 그 생각을 못 했군."

"아무튼 함께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문 저편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리고 제갈사가 장내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직접 뵈어서 반갑습니다."

독고성이 그를 곱지 못한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보나마나 또 인형을 보냈군. 못된 놈."

"지금 죽기는 싫어서요."

어깨를 으쓱한 제갈사가 말했다.

"여하튼 문주님. 전에 말씀하셨던 중간보고를 지금 해도 되겠습니까?"

"해 보게."

"황궁에 있다는 마인병과 용인병을 조사해본 결과, 그것들은 이족(異族)의 마(魔)를 몸에 이식한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족이 품고 있는 강대한 힘을 인간의 육체에 결합시킴으로써 육체의 한계치를 월등히 뛰어넘을 수가 있었지요. 저는 거기에 대항할 방법을 생각하던 중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좋은 생각?"

제갈사는 씨익 웃더니 말했다.

"이쪽도 똑같은 걸 만들어서 대항하면 됩니다."

"이족의 마력을 인간에게 이식하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불가(不可)! 그럴 순 없다."

검마의 얼굴에 냉엄한 살기가 스쳐지나갔다.

"무영문의 문도들은 내 가족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이족과 융합하라고 할 순 없어."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정 그렇다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뭐지?"

"죽어도 상관없는 인간쓰레기들을 재활용하는 방법이지요."

우리는 제갈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제갈사가 천천히 두세 걸음을 앞으로 옮기며 말을 이었다.

"고려의 세도가인 이씨 가문과 잘 교섭하면 그런 사형수나 극악한 죄수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 놈들이 어디서 객사하든간에 걱정할 자가 하등 존재하지 않지요. 놈들을 이용해서 기초실험을 끝내놓으면 이후에는 안정적으로 양산이 가능할 겁니다."

"......"

독고성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검마는 의자에 앉아서 턱을 괴었다. 나는 제갈사의 말을 듣자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 극악(極惡)하군...'

말은 무덤덤하지만 제갈사는 자신의 뜻을 위해서라면 수백 수천명의 죄수들을 생체실험에 쓸 뜻을 밝힌 것이다. 가능성은 둘째 치고라도 제정신인 인간이 할 수 있는 발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것은 사도(邪道)를 한단계 넘어선 마도(魔道)의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검마가 말했다.

"효율성이 좋다면 충분히 그 제안에 따를 생각이 있네. 하지만 문제는 현재 무영문은 암살자가 계속 찾아올 정도로 십삼율에서 위치가 불안정해."

투웅!

말하던 검마의 손에서 지풍(指風)이 쏘아져 나가더니 약 이십 장 밖에 있던 누군가를 격살했다.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일격에 급소를 적중시켜서 죽인 모양이었다. 암살자나 정탐꾼이 숨어있었던 듯 하다.

"이런 놈들이 넘치지. 이 상황에서 비인간적인 생체실험을 하면 매장당하고 말 것일세."

"중원에서라면 아주 쉬웠을텐데 말입니다."

"그걸 내게 말한들 어쩌겠는가? 방법을 생각하는 게 제갈군사의 일이지."

검마가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제갈사가 훗하고 웃었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만."

"말해보게."

"백 호법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나?

내가 어리둥절해서 제갈사를 쳐다보자, 제갈사가 내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백 호법. 딱 2가지만 도와주면 되네. 방금 말했던 방법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병사를 양산할 수 있어."

"무엇을 말이오?"

"수요 막야, 그리고 무명제사서!"

"......!!"

"자네는 그 가치를 잘 모르겠지만, 그 두 가지가 있으면 천지를 뒤집는것따윈 손쉬운 일이지. 조금만 도와주면 돼."

나는 제갈사를 노려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당신은 무명제사서를 해석할 수 있단 말이오? 이 괴어(怪語)를?"

"물론이지."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오. 괴어는 그 어떤 대현(大賢)이라도 해석할 수 없는 언어이며 인간세계의 발음구조와 상이한 것이오. 당신이 아무리 똑똑해도 괴어를 알 수 있을 리는 없소."

그러자 제갈사가 눈을 멀뚱멀뚱하게 뜨더니 웃었다.

"으하하하... 그거야 인간세계 한정이지. 나는 오랜 시간동안 다른 차원을 엿보면서 이계의 지식을 습득했다. 괴어를 해석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마도서(魔道書)를 탐낼 수 있겠나? 나는 왠만한 괴어는 다 읽을 수 있다."

"......"

"십이율주조차도 막야의 힘을 경계하고 있어. 그걸 단순히 싸움박질에 쓰는 건 너무 큰 낭비야. 황궁에 대항할 힘을 얻기 위해서는 막야가 꼭 필요하다."

제갈사의 설득은 꽤 간절한 면이 있었다. 내가 힐끔 검마와 독고성을 보자, 그들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러더니 검마가 말했다.

"백 호법. 그에게 협력해 주게."

"네?!"

"단, 전제조건은 인도(人道)에서 크게 그르치지 않을 것일세. 그리고 백 호법을 과하게 이용하려는 낌새가 있으면, 백 호법이 제갈군사를 즉결처분해도 좋네."

"......!!"

즉결처분!

이 정도로 강경한 명령은 무림문파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사도나 마도문파라고 해도 군사쯤 되는 자를 숙청할 때는 그만한 과정과 명분이 필요했다. 그런데 호법에게 군사의 척결권을 주는 건 파격적인 일인 것이다.

하지만 제갈사는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대찬성입니다. 그렇게라도 막야의 주인이 협력해준다면 목숨을 바쳐야죠."

"라는군. 백 호법."

나는 별 수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와서 제갈사와 함께 그의 공방으로 향했다. 나는 그를 따라가는 내내 그에게 살기를 내쏘았는데, 제갈사가 그 때문에 너스레를 떨었다.

"오오, 과연 백 호법의 무공은 대단하군. 하지만 내 심장에 좋지 않으니 적당히 해 주게."

"당신. 설마 그 동안 문주님께 흉계를 부린 건 아니겠지?"

"흉계라?"

"고(蠱)나 독(毒)을 썼다면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

내가 으르렁거리자 제갈사가 일순간 살기때문에 멈칫했다. 너스레를 떨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살기가 그에게 꽂혔기 때문이다. 제갈사는 자기 이마의 땀을 닦더니 한숨을 쉬었다.

"흥... 제갈부 녀석을 죽인 일때문에 그런가 본데, 놈을 죽일 때 썼던 건 음양천고(陰陽天蠱)라고 하는 아주 귀한 고독이다. 백 년에 한 번 만들까말까한 것이며 그나마도 십여 장 내에 없으면 발동이 불가능하지. 나는 음양천고를 써서라도 제갈부를 죽일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에 썼던 것 뿐이다."

"당신이 음양천고를 다시 제작해서 문주님께 투여하지 않았다는 보장도 없지."

"크크크... 뭔 말을 못 하겠군. 나중에 직접 술법사들에게 알아보게. 음양천고가 보패취급 받을 정도로 귀하다는 걸 알면 그런 소리는 못 할 거야."

그렇게 대꾸한 제갈사가 말했다.

"그리고 검마는 내 마음에 들었어. 내게 흥미를 느끼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주군에게 충성을 바칠 이유는 충분해."

"......"

"우리 일족의 운명이란 게 이런 걸지도 모르지."

덜컹

제갈사가 공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바깥보다 안쪽이 넓은 공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역시 제갈사도 뛰어난 술법사라서 이런 공간술법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이다. 제갈사는 한켠에 누워있는 초상기인 7체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한 달 동안 저것들을 연구하면서 많은 성과를 얻었지. 백 호법이 조금만 도와주면 그 성과를 현실로 구현화시킬 수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말하는 거요?"

"세 가지를 알아냈지."

제갈사는 방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첫째. 초상기인의 제작자는 한 사람이 아니야."

"무슨 소리요?"

"초상기인에게 동력을 불어넣으려 한 것은 그 연금술사라는 놈이지만, 몸뚱이를 제작한 인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아마 팔괘술법의 달인이겠지."

"흠..."

"그 제작자는 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한 술사(術士)다. 그 자의 정체를 알아내는 편이 좋겠지."

"제갈부가 아니겠소? 그는 보패 백우선을 쓸 정도로 뛰어난 술사인데."

"그 놈은 아니야. 놈은 오행술(五行術)과 부신술을 전문으로 연마했지. 팔괘술법은 아주 특별한 술법이기 때문에 제갈부가 아무리 천재라도 그정도로 익혀내진 못해."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기에 침음성을 흘렸다.

연금술사의 협력자!

팔괘술법의 달인!

또 다른 강적이 황궁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으로 볼 때 황궁이 큰 위기에 처하고 연금술사가 죽음에까지 몰렸는데도 그 존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둘째. 초상기인이 만들어진 목적은 1차적으로 [결계]를 깨기 위해서란 거다. 현자의 돌은 연금술사의 개인적인 목적에 가까워."

"결계? 무슨 결계 말이오?"

"잘은 모르겠지만 초상기인에 새겨진 기억을 읽다 보니, 초상기인은 결계를 깨기 위해 만들어진 제물이라는 걸 알 수 있더군.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엄청나게 강력한 결계인 게 틀림없어."

나는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개를 저었다.

"무슨 결계인지 모르겠군."

제갈사가 히쭉 웃었다.

"그래? 나는 대충 뭔지 짐작은 가는데..."

"말해 주시오."

"아마 수도 낙양을 둘러싸고 있는 대결계가 아닌가 싶다."

"그건 제갈부가 관리하는 황궁의 결계를 말하는 거 아니오?"

"아냐.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공(禹貢) 시대의 신화급 결계를 말하는 거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그를 쳐다보자, 제갈사가 말했다.

"우공이란 역사상에 기록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치수(治水)의 기록을 말한다. 너도 공부를 했다면 우공의 내용 정도는 알고 있지?"

"물론이오. 대우가 천하를 돌아다니며 물길을 다스린 내용이오. 분주, 도산, 도수, 오복같은 주제가 담겨있고 지역지분, 수토지공, 강리지치 같은 왕조의 기본 12강령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지 않소. 또한 최초의 왕토(王土)가 표현된 책이기도 하오."

내가 망설임없이 대답하자 제갈사가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꽤 박식하군. 글공부 소양이 상당해."

"칭찬해줄 필요는 없고, 그래서 우공이 어떻다는 거요?"

"우공은 구주(九州)를 나누어서 최초로 세계를 분할하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세간에는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구주의 개념은 도가(道家)에서 아주 의미가 깊은 것이지. 왜냐하면 구주의 왕토라는 건 사실 삼황오제(三皇五帝)의 활동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낙양에 신화시대 때부터 이어져 오는 강력한 결계가 존재한다는 건 왠만한 술법사라면 다 알고 있어. 단지 그게 대지와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어서 거의 낌새도 느껴지지 않는 것 뿐이지."

"그 결계는 무엇때문에 만들어진 거요?"

"간단하잖아. 연금술사는 이족의 편이지. 그렇다면 초상기인으로 대결계를 깨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나?"

"......"

"[무언가]가 낙양에 봉인되어 있다. 그런 뜻이야."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그건..."

짐작가는 건 있다. 달기의 존재, 그리고 망량의 언급. 대략적으로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초상기인이 낙양에 봉인된 마(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제갈사가 손사래를 쳤다.

"모르지. 대라신선이 아닌 이상 그걸 어떻게 알겠냐? 억측은 그만두고 세 번째로 넘어가마."

"말하시오."

"세 번째는 초상기인을 나도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수정석비, 무명제사서, 그리고 그 막야만 있으면 여반장처럼 쉬운 일이다."

나는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인신공양이나 납치 살인은 안되오."

"하하! 그럴 필요도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껄껄 웃은 제갈사가 말했다.

"잔말 말고 무명제사서를 이리 내놔 봐. 신기한 걸 보여주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목갑에서 무명제사서를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수정석비는 제갈사가 필요하다고 하길래 먼저 줬던 상태였다. 무명제사서를 받아든 제갈사는 한동안 팔락거리며 훑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해했어."

그러더니 제갈사가 갑자기 수정석비 옆으로 가서 주술을 시전했다.

"#*%&*(@*(%*(@...!!"

괴어다!

정말로 제갈사는 괴어를 쓸 줄 아는 것이다!

그러면 저것도 주술이라기보다는 마법(魔法)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더욱 놀라운 일이 눈 앞에서 벌어졌다.

파지지직...

수정석비에서 뇌광(雷光)이 흐르더니, 허공에 시꺼먼 빛 같은게 구름처럼 나타났다. 그 수상쩍고 불쾌한 빛은 잠시 후 혼돈스럽게 뭉쳐지기를 반복하더니 서서히 형체를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인의 육체가 만들어졌다. 약 20대로 보이는 절세미녀였으며 인형같은 외모라서, 초상기인 그 자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헉!!"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설마 무에서 유가 창조되다니? 이런 일은 예상치도 못한 것이다. 내가 놀라는 반응을 즐기고 있는지 제갈사가 낄낄거리더니 말했다.

"수정석비는 현자의 돌을 만드는 방법이 새겨져 있지만, 동시에 생명의 근원도 해석되어 있다. 나는 그걸 이용해서 생명의 근원부터 만든 다음 무명제사서의 술법으로 구현화시킨 것 뿐이다. 이것만으로 인공생명체를 만들 수 있지."

"초상기인을 만드는 데는 팔괘의 힘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수정석비와 무명제사서의 힘으로 그 과정을 무시한 거라니깐."

"......"

"뭐, 이건 말 그대로 껍데기에 지나지 않으니까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그 막야가 필요하지."

제갈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봐. 수정석비에 무명제사서에 막야... 하나하나가 보패를 우습게 뛰어넘는 천하의 기보인데 그런걸 3개나 모아놓고 이정도가 안될 리가 없잖아. 이 이상 대단한 일도 할 수 있다고."

나는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보물들은 마도사(魔道師)의 손에 들어갈 경우 천지의 균형 그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내용 약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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