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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일지의 말대로 거대지렁이를 무찌르자 그 뒤에 있던 동굴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동굴은 성인남성 두 명이 나란히 걸을 정도의 폭이었으며 내부에 횃불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주변의 나무를 꺾어서 횃불을 만들어 기다란 동굴을 걸어가게 되었다.
나는 동굴 안을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청월 호법은 어떻게 생해를 통과한 걸까요?"
방금 보았던 거대지렁이의 크기는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아니, 일반인이나 일반적인 무사의 상식에서는 재앙 그 자체라도 해도 좋았다. 군병(軍兵)을 동원한다고 해도 수천수만은 필요할 법한 전설적인 괴물이었던 것이다. 지금 뇌신류의 장로인 독고성이 일순간 전력을 다해서 겨우 명줄을 끊었을 정도이니, 청월 호법이 생해의 수문장을 무슨 수로 통과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 일대일로 쓰러뜨렸을 리가 없다.
내 중얼거림에 앞서나가던 독고성이 대꾸했다.
"아마 지렁이의 이목을 속여서 몰래 진입했겠지."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 아까 그 놈은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웬만한 경공술로는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청월의 신법재간은 뇌신류에서도 탁월한 편이므로 어떻게든 했을 것이다."
나는 듣던 중 궁금해져서 말했다.
"청월 호법의 특기가 신법이라고요? 그렇다면 설마 멸혼보(滅魂步)를..."
"너도 멸혼보를 익힌 것 같더군. 청월도 멸혼보의 전승자가 맞다. 아마 살아있다면 천하제일의 신법대가 중 하나로 꼽히겠지."
"으음."
멸혼보라고 하면 납득이 된다. 멸혼보는 내가 펼치면서도 그 가공할만한 빠르기에 때때로 놀라곤 하는 보법이었다. 너무 빨라서 내 움직임을 내가 조절 못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반세기 이상 멸혼보를 익힌 고수가 있다면 거대지렁이를 피해서 진입했다고 해도 납득 가능했다.
멈칫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움직임이 멈추었다. 동굴절벽의 좁은 길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맞은편 절벽까지는 약 이십여 장이나 되는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독고성은 힐끔 거리를 살피더니 말했다.
"신법으로 건널 수 있겠는가?"
그러자 노부츠나가 힐끔 아래쪽의 어둠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념절기를 사용하면 가능하겠지만 저 아래가 신경 쓰입니다."
내가 그 말을 통역해주자 독고성이 납득했다.
"역시 그렇겠지."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천하를 오시하는 고수들이라서 이십여 장 정도는 어떻게든 건널 수 있다. 문제는 저 한도 끝도 보이지 않는 무저갱같은 지저에서 뿜어져 나오는 심상치 않은 살기였다. 고수의 육감을 간지르는 위협적인 존재가 있다는 증거였기에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독고성이 내게 횃불을 내밀었다. 내가 횃불을 받아들자 그는 대뜸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휘익!
독고성의 신형은 순식간에 절벽사이를 뛰어넘어서 반대편에 가 있었다. 그가 전음을 써서 우리에게 말했다.
[ 안심하고 뛰어라. 적이 습격하면 내가 어떻게든 해 주마.]
[ 알겠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츠카하라 보쿠텐이 신법을 발휘해서 절벽 반대편으로 뛰었다. 그러자 방금 전과는 달리 절벽 아래에서 거대한 촉수같은게 빠른 속도로 튀어오르며 그를 공격했다.
"이런!"
츠카하라 보쿠텐은 급히 검을 휘둘러서 촉수를 잘라내었으나, 먼 거리를 뛰던 와중에 초수를 사용하는 바람에 허공 한가운데에서 멈춘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독고성이 검뢰를 뿜어내며 아래에서 치솟아오르는 거대한 촉수줄기를 공격했다.
파지지직
[ 끼아아아아아아!!]
거대하고 흉측한 비명소리같은 게 울렸다. 독고성은 촉수가 물러서는 걸 놓치지 않고 어기지력을 사용해서 츠카하라 보쿠텐을 끌어당겼고, 나도 재빨리 노부츠나와 손을 잡고 절벽을 뛰었다.
네 사람이 무사히 착지하자 보쿠텐이 혀를 내둘렀다.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군. 저건 또 무슨 괴물이란 말인가?"
"아마 마물(魔物)이겠지."
노부츠나가 질린 얼굴로 말을 받았다.
"헛허... 사해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군..."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보쿠텐의 말은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대검호조차도 향후의 난이도에 골머리를 썩일 정도의 압도적인 마경(魔景)이 바로 아오키가하라 수해인 것이다.
우리는 한참을 걷자 불빛이 보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상당히 밝고 큰 불빛이라서 인위적인 흔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횃불이 필요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계단으로 접어들자 일행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어디서 적이 덮쳐올지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나선형의 계단이 나왔고 그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나선형의 계단을 걸어가며 생각했다.
' 역시 이것도 이족(異族)의 유적인가.'
느낌이 아주 익숙하다.
계단의 끝에는 넓은 공동이 있었으며 제단(祭檀)도 마련되어 있었다. 내가 여태껏 보아왔던 유적의 인신공양 제단 그 자체였다. 독고성은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길이 막혔군."
"되돌아가서 찾아봐야 할까요?"
"아니. 그냥 길이 막혔다. 지금까지 줄곧 외길이었으니 틀림없다."
단호하게 말한 독고성은 제단을 노려보며 말했다.
"거기 숨어있는 놈은 이리로 나와라."
스스스...
그러자 안개가 흩어지듯이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한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이윽고 완전히 인간의 형상을 갖춘 '그것'은 제단 위에 구현화되었다.
그 자는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으며 특수하게 제작된 의관을 쓰고 있었다. 나는 그 복장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침음성을 흘렸다.
"음양사(陰陽師)."
저건 동영의 술법사라고 불리는 음양사들이 입는 복장이었다. 아주 오랫적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다는 복식인 것이다. 성별은 확실하지가 않았는데 왜냐하면 아주 예쁘장하고 중성적인 외모였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음양사는 독고성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아주 잘 오셨습니다. 저는 수해의 관리자 일족인 아베노 요시히라(安倍吉平) 라고 합니다."
나는 독고성에게 그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그러자 독고성은 요시히라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했다.
"나는 뇌신류의 독고성이다. 너는 우리 문파의 청월 호법을 알고 있느냐?"
내가 다시 그 말을 요시히라에게 통역하려 했으나, 뜻밖에도 요시히라는 중원어를 잘 알고 있는 듯 망설임없이 그 말을 알아듣고 중원어로 대답했다.
"수십 년 전에 들어왔던 그 자를 말하시는 거군요. 그는 물론 사해(死海)를 넘어서 입해(入海)에 들어가 있습니다."
"확실한 건가?"
"후후..."
아베노 요시히라는 의미모를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그대들은 청월을 찾아서 이 지옥에 들어오신 것인지?"
"그렇다."
"그렇다면 이대로 되돌아가시는 걸 추천드리겠습니다. 저는 관리자로서 그 말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무슨 뜻이지?"
"이걸 보십시오."
우우우웅
잠시 후 제단 여기저기에서 빛이 나더니, 넓은 공동의 팔방(八方)에 기묘한 형체가 떠올랐다. 우리는 그게 요시히라의 술법공격인가 해서 긴장했지만, 이내 각각의 방위에 괘(卦)가 떠오르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요시히라가 천천히 말했다.
"이 곳은 팔괘의 힘으로 봉인되어 있는 장소입니다. 수해 내부에 존재하는 강대한 마(魔)를 억누르기 위해 이중삼중으로 만들어둔 강력한 결계 중 하나죠. 우리는 팔괘술법의 힘을 이용해서 물리적으로나 술법으로나 완벽한 봉인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독고성이 힐끔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전혀 완벽하지 않은 듯 한데."
독고성의 말을 들은 요시히라가 씁쓸하게 말했다.
"하하, 그렇지요... 청월이라는 분께서는 신법 하나로 저희의 제지를 뚫고 돌파해 버리셨으니 말입니다. 그 이후로 혹여나 싶어서 결계를 몇 배로 강화시켰으나 당신들 뇌신류의 고수들 앞에서는 도저히 자신이 없군요."
"결계가 망가질까봐 두려워서 우리에게 후퇴를 권고하러 온 것인가?"
"그렇습니다. 무예의 정점에 도달한 자라면 우리의 결계를 종잇장처럼 찢을지도 모르니까요."
"아까부터 우리니 저희니 하는데 관리자 일족이란 게 뭐지?"
그러자 요시히라가 천천히 대답했다.
"아베노 세이메이 때부터 시작된 저희 관리자 일족은 동영 땅에 창궐해있던 마(魔)를 끌어모아서 수해(樹海)에 봉인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단의 일족처럼 신보(神寶)를 갖고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의 문명이 성립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때부터 지속적으로 이 봉인을 관리하는데 모든 심혈을 기울이는 겁니다."
"봉인이 풀리면 어떻게 되지?"
"수해에 모아두었던 마(魔)가 외부로 뛰쳐나가서 이 동영 땅을 사흘만에 멸망시키겠지요."
"......"
과장이 아니었다. 겨우 4구역 중에서 1단계인 생해에 있던 마물들조차도 보통 인간의 힘으로는 대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했다. 앞으로 사해, 입해, 멸해에 존재하는 마물들이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다면 인간의 문명 따위는 순식간에 멸망해버릴 것이리라.
독고성은 상황을 이해한 듯 했다. 하지만 팔짱을 끼며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가 뭘 하던간에 관심없다. 우리가 중요한 것은 본문의 청월 호법을 만나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방해하면 벨 수밖에 없다."
"그러시겠지요..."
요시히라는 크게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독고성이라면 자신들의 결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한참 고민하던 요시히라가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8인을 모아 와 주십시오. 그럼 사해로 가는 문을 기꺼이 열어드리겠습니다."
"무슨 뜻이지?"
"사해부터는 무술경지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마물이 출몰합니다. 독고성 님을 포함해서 일행 8명을 채워 오신다면, 저희 관리자 일족이 팔괘의 힘으로 축복을 드리겠습니다. 그걸로 생존율은 굉장히 오르게 될 것입니다."
독고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개소리 하는군. 우리가 왜 너희의 축복을 받아야 하지?"
"그렇지 않는다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고 난 후 당신들의 시체와 영혼은 마신(魔神)의 소유가 되어서 적의 힘을 불리기 때문이지요."
"......"
독고성이 묵묵히 검을 뽑았다. 그는 요시히라의 말이 개소리라고 판단한 듯 지금 당장이라도 출수할 기세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노부츠나와 보쿠텐이 경악해서 내게 눈짓을 했고, 나는 급히 독고성을 말렸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이런 헛소리를 듣고 있을 시간은 없다. 마물들 따위 내가 다 물리칠 수 있다."
"저 자의 말은 헛소리가 아닙니다. 귀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뭐라고? 너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 자의 말은 사실입니다. 정신공격을 하는 마물이 있다면 우리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런 마물과 싸워본 경험이 있어서 알 수 있습니다."
"환술따위는 뇌신류의 비전을 운용하면 버틸 수 있다."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강한 정신공격을 하는 마물은 설령 종사급 고수라고 해도 현혹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법보의 힘으로 겨우 버텨냈습니다."
내 말에 독고성은 놀라는 듯 했다.
"정말이냐?"
"네. 제 목을 걸 수 있습니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만일 정신공격이나 환술지배력을 지닌 마물이 있을 경우 정말로 위험하다. 왜냐하면 과거 대뢰옥의 최심부에서 달의 짐승과 싸울 때, 이광과 진소청은 초절정의 무위를 갖고 있는데도 놈의 주살(呪殺)에 당할 뻔 했기 때문이다.
생해의 수문장의 위력을 보면 앞으로 그정도 마물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반드시 존재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독고성은 내 말투에서 무언가를 느낀 듯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8명은 어떻게 채우면 되지? 그냥 머리수만 채우면 되는 건가?"
"아군으로 거치적거리지 않는다 생각되는 자를 넣어 주십시오. 술법사를 넣으셔도 무방합니다."
"더럽게 까다롭군."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곳은 인세 최악의 마경이니까요."
"현재 청월이 입해에 있다고 했는데 그는 지금 살아있는 건가?"
"네, 살아 있습니다. 그 이상 진입하지는 못하고 있지만요."
독고성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돌아가자. 정비하고 와야겠다."
요시히라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우... 감사합니다. 출구까지 보내 드리겠습니다."
파앗!
잠시 후 우리는 요시히라와 함께 수해 입구의 전진기지 건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요시히라의 술법을 본 노부츠나가 그에게 질문했다.
"이렇게 편리한 전이술이 있으면 8명을 채우고 말고를 떠나서 우리를 그냥 입해로 보내줄 수 있는 게 아니오?"
"이 술법은 후행관문에서 선행관문으로밖에 쓸 수 없습니다. 개인이동으로는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만 단체이동에는 그런 제약이 붙지요."
"으음..."
"그럼 다시 뵙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요시히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꺼지듯 사라졌다.
독고성은 요시히라가 소실된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신비한 존재군. 실체가 느껴지지 않아."
"무슨 말씀이십니까?"
"허깨비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허깨비임과 동시에 실체였으니, 저 자는 무언가 특이한 술법으로 자신의 육신을 탈바꿈시킨 모양이군."
그렇게 중얼거린 독고성이 말을 이었다.
"청월이 있는 곳을 알았으니 됐다. 여기서는 물러나자."
나는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 가만. 막야의 힘을 충전시키기에는 여기가 제일 좋은 수련장소인 거 아닌가?'
노부츠나와 보쿠텐의 말에 따르면, 생해의 마물들은 마기에서 저절로 무한생성된다고 했다. 마치 정해진 숫자를 채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막야는 그 마물들의 힘을 흡수할 수 있으니, 좋은 수련치를 채우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독고성에게 말했다.
"저는 마물과 싸우며 수련을 좀 하고 싶습니다."
"마물과?"
독고성은 뜻밖이란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건 됐다. 나는 이런 곳에서 시간낭비하지 않고 검마를 만나고 싶다."
"으음..."
나는 곤란함을 느꼈다. 아직 검마와 약속한 한 달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독고성은 지금 당장이라도 검마에게 가고싶은 모양이었다. 독고성 입장에서는 이런 험지에서 마물과 줄창 싸우는 게 내키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다.
"사실은..."
나는 별 수 없이 사정을 모두 말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제갈사가 의심스러운 존재이며, 그를 꼬여내기 위해서 시간을 두고보는 작전을 쓰고 있으며, 기왕이면 막야에 힘을 충전시키고 싶다는 사정 전반이었다.
내 말을 들은 독고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갈사라는 놈이 의심스럽다고? 그럼 죽여버리면 되지 않느냐?"
"그러기에는 그 자가 이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재능이 큰 쓸모가 있습니다."
"흐음. 까다로운 판국이군."
"혹시 안좋은 상황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막야의 힘을 충전시키고 싶습니다."
그러자 독고성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녀석은 무인 나부랭이면서 신외지물에 너무 의존하는군."
"그게..."
"좋다. 그 한 달을 채울 때까지만 여기서 머물도록 하지. 그 때까지 막야라는 걸 최대한 성장시켜 보거라."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수해의 초입에 머물면서 마물과 싸워서 막야를 성장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고성과 약속했던 한 달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고려로 돌아가게 되었다. 독고성은 아침밥을 먹은 후 말했다.
"목표는 다 채웠느냐?"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 동안에 내가 막야에 흡수시킨 마물의 숫자는 무려 수백 마리나 되었다. 초절정고수 네 명이 몰려다니면서 마물들에게 강기를 날려대니 위기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야에 힘을 흡수시키는데도 막야가 딱히 눈에 보이는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고 있었다.
' 물론 막야가 강해진 느낌은 들지만...'
막야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성장시킬 수 있는 걸까?
내가 고민하자 독고성이 말했다.
"그 막야라는 건 신이 만든 보물이라고 했지 않느냐? 그럼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지."
"단순하게요?"
"그냥 제물의 양도 질도 부족한 거 아니겠느냐."
"......"
이 수해에 사는 마물이나 요괴는 하나같이 바깥 세상이라면 대요괴라고 불릴만큼 강력한 놈들이었다. 그런 마물에서 뿜어져나온 마기를 흡수시켰는데도 부족할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제물이 필요한 것일까?
"그럼 가자. 이제 마물이라면 징글징글하니까."
"네."
파앗
우리는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작별인사를 하고 고려의 무영문으로 돌아왔다. 무영문으로 돌아오자 별다른 이변은 보이지 않았으며, 문파 사람들도 다들 멀쩡한 기색이었다.
우리는 검마를 찾아갔다. 검마는 우리가 찾아오자 반색하며 맞이했다.
"오! 왔군 백웅."
"네, 문주님..."
검마가 만면에 웃음을 띈 그 순간이었다.
쉬칵!!
독고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려들어서 검마의 목을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