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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56화 (25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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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우리는 동영의 두 대검호,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와 츠카하라 보쿠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무예의 경지를 참오하던 중 강력한 적을 상대로 싸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이 아오키가하라 수해에 온 듯 했다.

그리고 노부츠나가 독고성에게 말했다.

"아오키가하라 수해는 총 4개의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독고성에게 말을 통역해 주었다.

"무슨 말이지?"

"당신들이 청월이라고 부르는 그 자가 남긴 일지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우연히 아오키가하라 수해를 관리하는 존재와 만나게 되었고 그때 수해의 구역을 알게 되었다 합니다."

노부츠나는 건물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울창한 산림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이 바로 초입부인 생해(生海). 여기서 약 십 리를 더 들어가면 그때부터 제 2해인 사해(死海)가 시작됩니다. 사해를 넘으면 제 3해인 입해(入海)가 있으며, 거기를 넘으면 멸해(滅海)... 수해의 최종구역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 설명을 곰곰히 듣고 있던 독고성이 말했다.

"생사입멸(生死入滅)인가?"

"그렇습니다. 불교에서 삶과 죽음을 초월함에 이른다고 하는 그 단어를 수해에 붙인 것이지요."

"거창하군."

독고성은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래봤자 여기에는 요괴나 잡귀가 산다는 거잖나."

"그렇습니다만... 여기에 존재하는 놈들은 보통 요괴가 아닙니다. 하나같이 대요괴급입니다."

"그래서 겁이라도 먹은 건가?"

"물론입니다."

옆에 서 있던 츠카하라 보쿠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와 노부츠나는 무려 삼 년 동안 합격술(合擊術)까지 연마하며 무공수련을 했으나, 생해에서 사해로 넘어가는 건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이 건물에서 이십여 장만 바깥으로 나가도 지옥도가 펼쳐집니다."

"......!!"

"죽을 뻔한 적도 수십 번이 넘지요."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록 무예의 볼모지인 동영출신이라서 얕보일 수는 있지만, 눈 앞에 있는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와 츠카하라 보쿠텐의 실력은 분명히 초절정고수였다. 그것도 왠만한 구파일방의 장문인급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천하를 오시할만한 자들이 합격술을 연마하며 싸울 정도라면 왠만한 요괴 따위는 쉽게 쳐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초입부인 생해를 넘어가지 못하다니?

독고성은 그 말을 듣자 대뜸 물었다.

"관리자란 놈이 청월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다고 했지. 왜 알려줬다더냐?"

"그 경과가 명확히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럼 관리자라는 놈은 뭔데?"

"일지에 쓰여있기를, 음양사(陰陽師)의 우두머리라고 합니다."

"음양사?"

"저희 동영에서 술법사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흐음... 그 관리자를 만날 방법은 없겠나."

독고성의 질문에 노부츠나가 쓰게 웃었다.

"저희도 그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일지에 따르면 그 자를 만난 건 기적에 가까웠다 합니다. 아마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만나볼 수 없겠지요."

"그렇군."

독고성은 무미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어디 그 일지라는 걸 보고 싶군. 중원어로 되어 있나?"

"네. 저희는 중원어를 공부해서 해석했지요."

나와 독고성은 대검호들이 내민 청월의 일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중원어로 쓰여있는 책을 차분하게 읽기 시작했다. 독고성은 일지를 약 반 시진 가까이 읽더니,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했다.

"청월은 들어간지 수십 년이나 되었구나. 그가 살아있을지 모르겠군."

"적어도 사해 너머로 간 듯 합니다. 생해에서는 코빼기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렇군... 나는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하니 기다리게."

독고성은 그 말을 남기고는 성큼성큼 걸어서 근처의 수풀으로 가 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노부츠나가 말했다.

"백웅이라 했는가. 그대는 정말 대단한 기재인 듯 하군."

"저도 두 분의 무명(武名)은 익히 들은 바가 있었습니다."

나는 공치사를 하고는 질문했다.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해서 혹평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로 미야모토 무사시는 재능만 뛰어난 한량에 불과합니까?"

"... 무네요시 녀석이 입단속을 못한 모양이군."

"저로서는 꼭 알아야 하는 일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노부츠나가 츠카하라 보쿠텐을 힐끔 보았다. 보쿠텐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부츠나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혹시 간류지마(巖流島)의 싸움을 알고 있는가?"

"들어본 적 있습니다."

"이 동영 땅에서 가장 유명한 결투 중 하나지. 미야모토 무사시는 간류지마의 싸움에서 사사키 코지로(佐?木 小次?)를 쓰러뜨림으로써 우리와 대등한 절세검객으로 인정받았다네."

그렇게 말한 노부츠나가 약간 울적한 눈으로 말했다.

"나와 보쿠텐은 크게 기꺼워했지. 검객에게 있어서 뛰어난 적수는 곧 스승과 같지 않은가? 그래서 무사시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 그를 찾아가서 실력을 살펴보았네."

이해가 간다. 동영 땅에 적수가 없어서 요괴와 싸워서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아오키가하라 수해까지 들어온 무술광들이었다. 저런 자세는 되려 당연할 것이리라.

"어땠습니까?"

"그는 분명히 절정고수를 넘어선 실력을 지니고 있었네. 하지만 명성에 비하면 너무 낮은 수준이었지. 나나 보쿠텐, 어느 쪽이 나서도 그를 이백 초 이내에 패배시킬 수 있을 정도였으니."

"......"

노부츠나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내가 눈 앞에서 그들의 무위를 비교해보니 그 정도 차이가 날 것 같았다. 그와 같은 대검호는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과장하지도 허세를 부리지도 않는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젊은 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젊으니 발전도상인 무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무사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신 게 아닐지?"

"후후... 그래. 물론 그럴 수도 있어. 우리가 과한 기대를 했을지도 모르지."

노부츠나가 씁쓸하게 웃으며 넘기려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츠카하라 보쿠텐이 끼어들었다.

"백웅. 우리가 이렇게 평가하는 데는 이유가 있으니 잘 들어보게."

"그만해 이 친구야. 그것까지 말해서 무엇한단 말인가?"

"우리는 이 건물에 살아가는 자체로 뇌신류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 그러니 성실하게 정보를 말해 줄 의무가 있는 게야."

"쩝... 그렇게 말한다면."

노부츠나가 한 발 물러서자, 보쿠텐이 깡마른 얼굴에 작은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그 자는 발전중이 아니라 이미 성장이 끝나 있었네. 미완성의 무학(武學)을 익히다가 스스로 한계를 정해버리고 멈춰버린 자였지."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입니까?"

"그렇네. 어디선가 절세무공의 비급을 주워서 타고난 재능으로 습득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재능의 한계에 부딪힌 거겠지. 게다가 명성에 자만해서 오만한 성정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 뿐일세."

"으음..."

노부츠나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가짜'야. 나는 전해지던 명성을 보유한 진짜 무사시를 한 번 본 적이 있었지."

"네?"

"그 또한 이천일류를 사용했지만 수준이 달랐네. 별격의 천재였지. 하지만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서 확신할 수가 없네..."

보쿠텐이 핀잔을 주었다.

"이 사람아. 확신할 수 없는 일을 어찌 함부로 입에 담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모순을 설명할 수 없으니 말일세."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번뜩하고 스쳐지나가는 게 있었다.

' 오륜서?'

예전 전생에서 검마가 미야모토 무사시를 죽였을 때 그의 시체에서 나온 유품이 바로 오륜서였다. 나는 오륜서에 관한 사람들의 언급을 떠올려 보았다.

[ 뭐냐? 병법서같긴 한데 이건 일종의 무공비급이 아니냐? 자세히 안 읽은 모양이구나. 여기저기에 호흡법이나 검술이 은밀하게 암시되어 있느니라.]

[ 이걸 지은 자는 정말, 정말로 대단한 고수다!]

[ 중원의 무공은 아닌 듯 하지만 이건 정말 굉장한 무공일세. 허나 아마 나도 자네도 익힐 수는 없을 것이야.]

[ 이 오륜서에 쓰여있는 무공은 두 개의 도(刀)를 사용하는 이도(二刀)일세. 그것도 정이도가 아니라 역이도(逆二刀).]

[ 도법에 대한 재능이 극도로 뛰어나지 않으면 입문조차 허용되지 않는 극상절예(極上絶藝)로써, 천지간에 이걸 익힐 수 있는 자는 두세 명도 되지 않을 것이야.]

[ 이건 천고의 기재에게만 도전을 허락하는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무서(武書)일세. 아마 오륜서를 지은 본인이 천하에 다시없는 천재이기 때문에 발생한 단점이겠지.]

"......"

나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갑자기 팍하고 구슬꿰듯이 사실이 하나로 묶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

"그랬던 건가..."

"응? 뭔가 알았나?"

"아니요."

나는 말을 얼버무렸지만 속은 뛸듯이 기뻤다. 왜냐하면 전생을 하며 정보를 수집한 결과 또다른 숨겨진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세상에 알려진 미야모토 무사시는 가짜다!

정확히는, 오륜서를 품속에 가지고 다니며 조그마한 번의 검술사범을 하고 있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가짜이다. 진짜 미야모토 무사시가 따로 있으며 그런 이름을 쓰고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오륜서의 저자]는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역이도를 쓰는 절세도법을 창안한, 천하에 다시없는 무술천재!

바로 그 존재가 진정한 [동영 최강의 고수]일 것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런 절세고수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 아마 가짜 미야모토 무사시는 어딘가에서 오륜서를 습득한 거겠지. 그리고 나름대로 뛰어난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서 역이도를 습득했을 거야. 그것만으로도 절정고수의 경계를 돌파해서 동영에서 혁혁한 명성을 이뤘겠지. 하지만 재능이 부족해서 그 이상은 노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할 일은 간단하다.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오륜서의 저자를 찾아내는 것!

그 자는 틀림없이 엄청난 절세고수일 테니 그의 조력을 얻든 무공을 배우든 내게 큰 이득이 될 게 분명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독고성이 되돌아왔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대뜸 말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노부츠나와 보쿠텐은 아까부터 독고성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실력으로든 배분으로든 독고성이 훨씬 높았기에 그런 고수에 대한 경의의 의미로 존대를 하는 것이다. 독고성은 날카로운 눈으로 수해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지에는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중앙인 멸해(滅海)에 원월천살법(圓月天殺法)이 존재한다고 적혀 있었지. 왜 원월천살법이 거기에 있을거라고 생각하느냐?"

"으음..."

두 사람은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노부츠나가 입을 열었다.

"제가 백련교주에게 들은 바로는, 원월천살법은 맹인(盲人)만이 익힐 수 있다는 궁극의 쾌도술(快刀術)이라 했습니다. 또한 그 무공을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무공]이라고 표현했지요. 존재하는 자체로 재앙이 될 수 있는 무공이기에 누군가가 수해에 봉인(封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독고성이 이윽고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일단 이 생해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부터 알아봐야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겠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 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으니."

"명심하지."

이윽고 우리는 함께 건물을 나서서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탐색에 나섰다. 건물에서 멀어질수록 음기(陰氣)와 마기(魔氣)가 농후해졌고, 오십여 장을 넘어서자 인간세상에서 느끼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마기가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쿠지지직...

우리는 무려 크기가 오 장도 넘을 법한 괴이한 식물이 조그마한 줄기를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성장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식물은 마치 살아있는 동물처럼 전신을 꿈틀거리며 촉수를 꽃잎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붕괴될지도 모르는 광경이었다.

"저건 뭐지?"

"무간화(無間花)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을 포함해서 동물이라면 모조리 먹어치우는데다가 몸뚱이가 유연하고 단단합니다."

"흐음."

스카카칵

잠시 후 마치 톱날같은 강기가 독고성의 손에서 날아가서 무간화의 줄기를 수백 조각내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자 무간화는 우수수 떨어져 버리더니 흉칙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끄이이이이익!!

독고성은 그 모습을 보자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괴물이군. 이 땅에는 저런 놈들밖에 없나?"

"네. 전부 쓸데없이 튼튼하고 강하지요. 나중에는 강기를 쓰지 않으면 아예 공격이 통하지 않는 놈도 나옵니다."

"미쳤군. 일개 요괴가 그리 강하다고?"

"여기는 약과입니다. 생해의 수문장은 정말 무시무시한 놈이니까요."

파바바밧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우리 네 명은 마치 산책을 나온 듯 여유롭게 검을 휘두르며 죽음의 수해를 건너고 있었다. 독고성이 말로는 수해의 괴물들에게 놀란 듯 하지만 실제로는 독고성의 공격력이 너무 뛰어나서 모조리 한방에 다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 오십여 장을 더 지나왔을까?

난데없이 거대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오... 오...

땅에서 무언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그 존재감과 크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자 뒤로 잠시 물러섰다. 그러자 거대한 수해의 부지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들어엎히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몸길이가 수십 수백장은 될 듯 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쓰러뜨렸던 괴물 중에서 가장 거대해 보였고, 지형 그 자체를 뒤바꾸는 괴물의 크기는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새하얀 몸뚱이에서 연신 점액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마치 거대한 지렁이처럼 보였다.

그오오오오 - !!

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한 마물!

설령 대뢰옥 지하에 있던 달의 짐승이라고 해도 지금 저 놈보다 크고 강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침을 꿀꺽 삼키며 놈을 쳐다보자 옆에 있던 노부츠나가 잔뜩 긴장해서 말했다.

"바로 저 놈이오! 저 놈이 바로 생해의 수문장이며, 저놈을 쓰러뜨려야 사해로 넘어갈 수 있소."

"강합니까?"

"백웅. 저걸 어떻게 쓰러뜨리겠단 말인가?"

도리어 노부츠나가 반문하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크기가 조그마한 산만큼 거대한 마물을 어떻게 해치워야 할까?

물론 나는 저렇게 거대한 마물을 상대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대개 내가 스스로 싸우기보다는 검선 여동빈이 알아서 강림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천계와 막야때문에 사이가 틀어져서 여동빈을 쫓아내버린 상태다.

즉,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네 명의 힘만으로 저 거대지렁이를 해치워야 하는 것이다.

독고성이 말했다.

"쫄지 마라. 대요괴인지 마물인지 모르겠다만 여하튼 잡으면 되는 것이다."

"말은 쉽습니다만..."

나는 빠르게 검을 휘둘러서 검강을 날려 보았다. 그러자 거대지렁이의 엄청난 몸뚱이에 실시간으로 검강이 베고 지나가는 게 보였으나, 역시 저 엄청난 동체를 쓰러뜨리기에는 그야말로 생채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독고성이 말했다.

"좋지 않구만. 저걸 무시하고 사해로 갈 순 없겠는가?"

"보시다시피 저놈 뒤에 존재하는 동굴을 통해야만 하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어쩔 수 없군."

독고성의 눈이 파르스름하게 빛났다.

"없애버리자!"

그 순간이었다.

치링!

독고성이 외치자마자 그의 몸에 뇌명이 일어났고, 그의 검 또한 뇌광을 넘어서 완전한 백광(白光)을 띈 것이다. 심적권청으로 겨우 확인할만큼의 짧은 찰나 동안에 독고성의 검은 지렁이 괴물의 머리쪽 동체를 가르고 있었다.

독고성의 백색 검뢰(劍雷)는 공격범위가 엄청나게 넓었다. 그저 두세 번을 휘두른 것에 불과해 보였으나, 다음 순간 산을 연상시키는 동체가 한꺼번에 쪼개져서 둥실 떠올랐다. 한 번의 공격으로 몇 장을 베어버린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윽고 지렁이가 비틀거리더니 거대한 산성액을 뿜어내었다.

콰과과광!!

폭발음과 함께 대단한 양의 산성점액이 허공에 흩날렸다. 우리는 모두 산성점액을 피하거나 호신강기를 써서 몸을 보호했다.

곧 수해에 내려앉은 독고성이 괴물의 시체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그리 센 놈은 아니지만 강력한 일점파괴력이 있어야 죽일 수 있겠군. 너희가 고전했던 이유를 알겠다."

"세상에... 그걸 잡다니..."

노부츠나와 보쿠텐의 얼굴에는 경악의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그들 또한 초인적인 검술가들이지만 설마 수백 장 크기의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쓰러진 지렁이 괴물의 잔해를 쳐다보다가 막야로 시체를 찔러 보았다.

쿠우우우...

"으음..."

나는 그 순간 지렁이 괴물의 몸에 흩어져있던 기(氣)가 막야에 흡수되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초상기인의 심장을 도려냈을 때처럼 진동이 울리는 건 아니었지만 사용자를 위해서 힘을 비축한다는 실감이 난 것이다.

' 쉽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깊은 곳에 사는 것은 대요괴같은 게 아니다.

마(魔)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너무 깊이 들어가다가는 - 상상하지도 못했던 무시무시한 적이 나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약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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